3화 신무패와의 만남

by Rooney Kim


선준은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지금은 행장이의 상태와 자신을 몸을 간수할 차례였다. 다행히 행장이는 멀쩡했다. 간 밤 꿈속에서 그토록 격앙되어 울부짖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하긴 꿈 속이었으니 현실과 같을 리 없었다.


“자야, 괜찮으냐? 일어나 보거라 아침이 되었단다.”


이윽고 행장이가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크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본새가 정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아재, 꿈자리가 좀 사납기는 했는디. 저는 잘잤다요. 아재는요?”


선준은 그제야 마음이 놓여 왼쪽 옆구리 상처도 잊은 채 행장이를 안아주려다 넘어지고 말았다.


“으악, 어매, 아재, 아재! 이게 뭐시당가요? 무슨 일이요? 네? 아재, 약, 약 발랐는교?”


선준은 행장이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듯 편안하게 자고 일어난 행장이를 보니 더 이상 시시콜콜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선준은 빨리 회복해야 했고 먹을 것도 찾아야 했다. 주머니 속 엽전 몇 개가 전부였지만 백중이 지난 지 한 달도 안 되었으니 동네를 돌다 보면 먹을 것을 비교적 싸게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행장이에게 고기를 먹여주고 싶었다.


“여어- 저것들은 뭐야?”


선준과 행장이 다 부서진 광 안에서 서로의 상태를 살핀 뒤 움직일 채비를 하던 중이었다. 육 척은 넘어 보이는 사내 하나와 보통 체격의 사내 하나 그리고 묘령 정도의 여자 둘과 아까 보았던 검은 옷의 여자 아이보다 어려 보이는 작은 체구의 꼬마 여자아이가 부서진 광문 밖에서 둘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하, 이것들이 우리 작전을 망친 주범들이구만. 아주 덕분에 우리 열흘의 수고가 날아갔네.”

“열흘이 뭐니, 백중 이후 반 달포(*달포: 약 한 달)도 넘게 기다렸는데, 저 치들 때문에 어제 다 놓쳤잖수. 세 냥짜리 일을 한 냥도 못 받게 생겼네. 쳇”


선준은 낯선 이들의 등장에 행장이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고 동태를 살폈다.


“누, 누구요. 당최 우리가 뭘 했다고 이러는 거요?”


선준은 낯선 다섯을 둘러보며 최대한 많은 것을 느끼려 애썼다. 시각은 묘시에 접어들어 웬만한 잡귀는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간 뒤라 귀신들은 아닌듯했다. 곧 무리 중 보통 체격의 사내가 광 안으로 들어왔다. 선준은 부상까지 당한 상태라 쉽사리 움직일 수 없어 오른팔로 행장이를 감쌌다. 사내는 저고리로 감싼 선준의 상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꺼냈다.


“다행히 솜씨가 좋은 어인이 상태를 치료해주셨군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축귀를 위해 오랫동안 이 일대에 공을 들였는데 간밤에 강한 결계 두 개가 끊어지며 마을 아래 대숲의 망령 수백이 인근 마을들로 모두 빠져나가버렸답니다. 며칠만 지나면 망혼일이라 모두 저승으로 보낼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 되었지요. 그래도 산 자의 목숨이 귀하지요. 망령들이야 또 잡으면 되니까요.”


“망혼 말인가요. 백중은 이미 서른 날도 지나지 않았소? 이미 달포가 흐른 시각인데..”


“하하. 맞소이다. 하지만 이게 저희의 일이지요. 보아하니 축귀를 하시는 분 같은데. 저희는 보통 축사 패들과는 정반대로 일한답니다. 보통 백중 후에는 축귀를 쉬라고 하지만 저희는 백중 후 상강 전까지 즉, 눈꽃이 필 무렵 전에 가장 많은 축사를 하지요. 이때가 악령과 망령이 가장 많이 모여있을 때이고 따라서 그만큼 강력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가장 무력할 때 이기도 하거든요.


“전신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만 가자. 목로주점(*간단하게 술만 파는 곳)에나 가서 막걸리나 걸쳐야겠네.”


“네, 형님.”


“그럼, 몸을 잘 추스르시지요.”


전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보통 체격의 사내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이 상황이 궁금한 행장이가 선준의 등 뒤로 얼굴을 빼꼼히 내다보았고 전신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전신의 표정이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섞여 아주 묘하게 변했다.


“아.. 아니.”

“전신아, 가자니까!”


전신은 소백의 강한 부름에 놀라 이윽고 잽싸게 나가고 말았다.


“넌 이게 문제야. 쓸데없이 정이 많아가지고. 너 그러다 귀신한테도 정 준다. 가자, 인마.”


소백이 꿀밤을 때리려는 듯 자세를 취하며 전신을 나무랐다. 하지만 전신은 늘상 있던 일인 양 아무렇지 않게 소백의 손을 슥- 피하며 옥신각신 말을 이어갔다.


“아니, 저 안에, 저 안에 저 아이가..”

“시끄러, 가자. 배고프다.”


곧 축사패 무리는 광을 지나 산 길을 따라 내려갔다. 묘령의 여인 둘은 눈인사를 하고 갔고 전신과 꼬마 여자아이는 갑작스레 허리를 숙여 크게 인사를 올리고는 무리를 따라 사라졌다.


“아재, 아재, 저들은 누구당가요? 그래도 인사를 저리 예의 지게 하는 걸 보니 착한 사람들 아니당가요? 헤헤.”


선준은 적어도 저 전신이라는 사내와 꼬마 여자아이가 행장이가 보통 아이가 아니란 것을 알아보았다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리고 자신이 보호해야 할 아이지만 가끔 이럴 땐 선준도 행장이의 존재가 든든하고 크게 느껴졌다.


“그런가 보다. 착한 사람들인 것 같구나. 자, 그만 우리도 먹을 것을 찾아 가보자꾸나. 며칠을 감과 밤만 먹었더니 고기가 당기는구나.”

“네?! 고기요? 아재 정말인교? 오늘 우리 고기 먹으러 가능교? 우와, 무슨 고기요? 어떤 고기요? 아.. 그런데 아재 쩐은 있는교..?


선준은 옆구리의 쑤시며 쓰라린 통증을 겨우 참아내며 일어났다. 어제 들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통해 마을을 돌아보았다. 낡아빠진 집들은 환한 햇살 아래에서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보따리 안의 일광이 싸르르- 하며 우는 소리를 냈다.


‘내 필시 잊지 못할 밤이었다. 너무나 무력했구나. 이래서는 윤대감에 대한 복수는커녕 악귀들한테 씔 수도 있겠어. 어떻게 한다. 고민이 많아.’


..........


‘오늘 밤이야. 자시가 되기 전에 끝내야 한다. 너무 일러도 너무 늦어도 안돼.’


자령은 큰 바위 뒤에 바짝 엎드려 전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별빛 외엔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자령이 수집한 첩보에 따르면 오늘 밤 척결패의 부두목인 대문이 일당 대부분을 이끌고 이웃 고을을 털러 간다고 했다. 즉, 척결패의 산적 두목인 근중과 몇몇 졸개들만이 깊은 산중 근거지에 머문다는 말이었다.


“너 정말이지? 아니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누이, 내가 어디 거짓말하는 거 봤소? 빨랑 약조한 십 전이나 주시오. 아, 빨랑요.”

“어디 내가 너 누이냐. 자 여깄다. 가보거라.”


나주는 종종 심부름을 하며 척결패의 동태를 알려주는 산 아랫 고을의 아이였다. 장난기도 많고 산만한 아이였지만 시킨 일 하나는 거의 대부분 똑 부러지게 해냈다. 때는 삼경이 깊어가고 있었다. 척결패의 근거지는 산 중턱의 넓은 평지를 일궈 작은 집 여러 채와 두목이 머무는 큰 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이한 점은 그들의 근거지를 숨기기 위해 초가지붕 위로 초록의 큰 나뭇가지들을 덮여 멀리서 얼핏 보기에는 숲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입구 마당의 모닥불이 약해졌고 희미하게 일렁이던 호롱 불빛들 조차 사라지자 자령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무 길 정도 떨어진 곳에서 세 시진(약 여섯 시간)도 넘게 기다린 터라 몸이 굳어버렸다.


‘아무런 소리를 내선 안돼.’


다행히 수 백번도 넘게 동선을 파악한 터라 인근의 산 길은 자령에겐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게다가 낙엽 소리마저 최소화하기 위해 맨발로 살금살금 걸어 담 근처로 다가왔다. 자령은 미리 봐둔 수풀담 아래의 개구멍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사방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눈꽃이 필 무렵은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리그와 문피아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리그: https://novel.naver.com/my/myNovelList?novelId=1020387

• 문피아: https://novel.munpia.com/245153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snow-mountain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화 현혹의 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