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의심스러운 마을 1

by Rooney Kim


주점의 바깥양반으로 보이는 분이 문 간에 기댄 채 강렬한 한마디를 던졌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선준은 궁금증을 더 참을 수 없었다.


“보시오. 난 내 부모의 복수를 하러 가는 것이오. 그리고 이 아이의 가족에 대한 복수도 함께 걸려있소.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거나 가족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이 정도면 갈 이유는 충분하지 않소?”


그러자 방 안의 영감은 호기심이 난 듯 바깥 툇마루로 나와 양반다리를 하고서는 선준과 행장이의 행색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쯧쯧, 이 정도로 뭘 감당하겠다고. 몸이 성치 않은 사내와 쪼꼬만 아이 둘이서? 우리 마을과 이웃 고을들 무당들도 굿하다가 몇이나 발과 다리가 잘려나갔고 도력이 높다고 소문난 대사가 축귀를 하다 미쳐 돌아서 중을 몇이나 베었는지 아슈? 허허, 참나,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런 소리를 하겠냐고?”


“.. 네?”


“그러니 먹던 참이나 다 자시고 다시 돌아가게. 우린 책임 못 지오. 나중에 넋이 되어 찾아와 딴소리하지 마슈.”


선준은 곧네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간 밤에 맞닥뜨린 수 백의 망령들에게 조차 대적하지도 못했는데 윤대감과 악령들은 도대체 얼마나 더 지독하고 거대해졌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었다.


“아재, 우리 성주사 가는 거 아인교?”


“어, 그래.. 맞다. 성주사, 가야지. 가고 말고..”


선준과 행장이는 곧 주인 내외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때는 진시에 이르러 (오전 7~9시) 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작은 산골 마을인 줄 알았더니 꽤 크구나.”


“아재, 저기 멀리에 논도 있던디요. 산골 마을이 아닌가븐데.”


“그러게 말이다.”


장에 들어서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다. 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벼 활기를 띠고 있었다. 행장이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시장에 풍경에 넋이 팔렸다. 재미있고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는 혈색이 돌았다. 선준도 기대치 않은 활기찬 시장의 모습에 잠깐 정신이 팔렸다가 곧바로 성주사에 대한 주점 영감님의 경고와 두려웠던 지난밤이 떠올랐다.


‘고민이 크다. 그럼 난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한단 말인가. 혹여나 또 꿈의 결계에라도 걸리면 일령도 소용없지 않은가.. 일령없이는 역시 난 아무것도 아닌가..’


그때 수많은 행상들 사이 오른쪽으로 난 골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너지? 너 내가 첩보 약조를 제대로 안 지키면 어떻게 한다고 했어? 응?”


“누이, 아니유, 난 아니래도. 난, 참말로 말한 적이 없다고. 누이가 십 전도 줬는데 내가 무슨..”


골목 구석에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거적때기를 걸친 소년의 멱살을 잡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어디선 본 적이 있는 여자아이였다.


“그럼, 네가 아니면 누가 산적들에게 내 정보를 알려주겠어? 나 정말 죽을 뻔 했다구!”


“누이, 누이, 난 진짜 몰라유. 억울해유..”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져 보다 못한 선준이 골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백주 대낮부터 무슨 일인가? 밖에 사람도 이렇게나 많은데 큰 아이가 어린아이를 괴롭히면 쓰나?”


하지만 검은 옷의 아이는 선준을 의식하기는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너, 이젠 일 없을 줄 알아. 그리고 한 번 더 내가 위험해지면 너도 위험할 거야.”


자령이 멱살을 놓자마자 나주는 쏜살같이 달려가 사라졌다. 이윽고 자령은 맥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흙담장에 기대었다. 여전히 선준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행장이는 어찌 된 상황인지 영문을 몰라 둘을 번갈아보고 있었다.


“옆구리는 좀 괜찮소..?”


자령은 선준을 못 본 척했지만 한눈에 그들이 간밤에 자신이 구해준 사람들이란 걸 알았다.


“아, 어쩐지 어디서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감사하오. 내 몰라봐서 미안하오이다.”


선준은 긴가민가 했던 그녀가 알고 보니 간밤에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주고 심지어 옆구리의 상처까지 치료해준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밤의 일이 너무 고마운데 어찌 갚을 길이 당장 없구려. 혹시 뭐 원하시는 거 없소.”


바닥에 앉아 선준과 행장이를 번갈아 올려다보던 자령은 그만 픽하고 웃고 말았다. 그러자 선준은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진심으로 보답하고 싶어서 그러오. 혹시..”


“선비님, 그 솜씨로는 백중 후에 함부로 밤에 돌아다니면 안돼요. 본인 무기도 하나 제대로 못 찾으시면서.”


선준은 자신을 치료해준 그녀에게 매우 감사했지만 간밤의 모습만으로 자신과 행장이를 평가하는 것에 약간의 불편함과 당혹감을 느꼈다.


“아니, 그게 말이오. 간밤에는.. 음, 이중 결계.. 아시지요? 보아하니 착호 아니면 축사를 하는 것 같은데 이중 결계에 걸린 후 잠에 들면 백약이 무효한 병에 걸린 것과 같지 않소? 기본 부적은 감당도 못하오. 그건 도력이 높은 도사들도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단 말이오.”


“네네, 물론이죠. 결계에 걸리면 누구나 귀신에 홀리죠.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이중 결계라면 몇 리 밖에서 벌써 징조가 많이 보였을 텐데 거길 의심 없이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니에요. 초면에 제가 말이 좀 심했다면 용서해주시오.”


자령은 살짝 웃어 보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준은 여전히 멋쩍은 표정을 하며 우물쭈물 댔다. 행장이에게 선준의 이런 모습은 굉장히 낯설었고 처음 보는 선준의 모습에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누구의 자식인 거죠? 보아하니 그쪽 아이는 아닌 것 같은데.”


“아, 자야, 아니, 이 아이는 행장이라고 하오. 무려..”


선준은 계속해서 자령에게 밑지는 것 같아 무슨 말이라도 덧붙이고 싶었다. 사실, 축사가 아니라면 일령이 없이도 어깨너머로 익힌 조선 유술과 택견으로 웬만한 사내 서너 명은 그냥 넘겨 이길 수 있는 무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하지만 아직 묘령도 안된 여자아이에게 자신과 여자아이보다 더 어린 행장이의 자랑을 늘어놓자니 뭔가 더 구차해지는 것 같았다.


“뭐 어디 도깨비의 왕이라도 된단 말이오? 깔깔.”


자령이 어색해지는 분위기에 농담 한 마디를 던지자 선준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자령이 뭘 알고 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아무튼, 보답을 하고 싶소.”


자령은 다시 한번 선준의 얼굴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진심이오?”


선준은 이 기회를 발판 삼아 엉망이었던 자신의 첫인상을 바로잡고 무슨 사연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 그렇소.”


“그럼 따라 오시오.”


자령은 선준과 행장이에게 이 한 마디를 던지고는 시장의 복잡한 인파 속 비집고 들어갔다. 선준과 행장이는 그녀를 놓칠세라 곧장 따라가기 시작했다. 자령은 이후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했다. 시장을 벗어나자 둘은 곧장 그녀의 뒤에 붙어 걸었다. 자령의 어깨에 나무 자루로 보이는 긴 막대와 활이 걸려있는 걸로 보아 선준은 필시 그녀가 착호갑사단에 속해있거나 의용단의 단원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눈꽃이 필 무렵은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 리그와 문피아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 리그: https://novel.naver.com/my/myNovelList?novelId=1020387

• 문피아: https://novel.munpia.com/245153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snow-mountain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화 검은 옷의 여자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