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지 멀리서 굿판이 벌어진 소리가 들렸다. 기와가 으리으리한 집 마당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대문 밖까지 나와 구름처럼 모여있을 걸로 보아하니 제법 큰 굿판인 것 같았다.
“작년부터 역병이 돌고 올 초엔 동네마다 줄초상이 났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귀신들이 한 짓이라 그러더군요. 참나, 요즘엔 이런 신식 무기가 나오는 시대 아니오? 왜놈과 양놈들까지 우리 땅에 와서 장사를 하는 시대에 무슨 귀신이오. 난.. 귀신 따윈 안 믿소. 두렵지도 않고. 오히려 보통 사람들을 억울한 원한령으로 만든 인간들이 더 나쁘오.”
선준은 어쩌면 자령이 말한 역병과 줄초상이 윤대감과 악령들의 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역병, 줄초상. 악령들이 해코지 하는 동네에는 많은 현상들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혹시 귀신 들린 사람들은 못 봤소?”
“봤죠.”
“그렇다면 필시 악령들의 소행이오.”
“전, 귀신 따윈 안 믿는다고 했소만.”
“그런데 귀신 들린 사람을 봤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자 자령이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고 선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선비님, 선비님은 그게 정신이 돌아 미친 건지 귀신이 들린 건지, 증명해낼 수 있소?"
생각지 못한 갑작스러운 질문에 선준은 할 말이 없었다. 선준은 단, 한 번도 그런 의심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 아재아재, 쩌어기, 저기 아까 우리가 산에서 본 사람들 아닌교?”
행장이가 선준과 자령의 대화는 들은 채만채 갑자기 선준의 도포자락을 당기며 손가락으로 한창 굿판이 벌어지는 마당 안을 가리켰다. 행장이가 가리킨 곳에는 선준이 산에서 보았던 축사패가 있었다. 큰 키의 남자 하나와 조금 어린 남자 그리고 여자 셋, 신무패였다. 그들은 대감집에서 벌어지는 굿판을 구경하는 듯 무당의 춤 놀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 맞구나. 저 사람들이야.”
“아재, 아재, 우리 굿판 좀 구경하다가면 안되는교?”
선준은 자령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동안 굿판을 보다 가기로 했다. 이참에 선준도 굿판에 몰려든 귀신들이나 탐색하기로 한 것이다. 신무패는 여전히 굿에 집중하느라 선준네가 근거리까지 와 있는지도 몰랐다.
“아야바사가요사가라아, 허이, 얼쑤, 오바라나가아나바가사아라, 허이.”
한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며 맨 마당과 날이 선 작두를 오가며 굿을 하던 무당이 갑자기 굿을 멈추고 작두에서 마당으로 뛰어내려오더니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필시 이제 귀신이 찾아왔고 곧 속풀이가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누구야, 누가 내 굿판을 훼방 놓으러 온 게야. 요상한 낌새가 느껴져. 어!”
이에 신무패 일당은 뭔가 찔렸는지 다들 헛기침을 하거나 뒤를 돌아 먼 산을 바라보는 척했다. 신무패 역시 간밤에 결계를 뚫고 대숲을 빠져나간 수 백의 원혼을 찾던 중 굿판에 몰려든 귀신들의 동태를 살펴 원혼들 무리가 모여있는 소굴이나 동굴을 찾을 심산이었다.
“요요요요요. 너냐? 아닌데, 너? 쳇, 별거 아니잖아. 아니, 도대체 누가 지금 내 판을 어지럽히는 게야.”
무당은 사람들이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자신의 굿을 방해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앙칼진 여자와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섞여 소름 끼치게 오싹한 소리로 괴성을 지르며 방방 날뛰었다. 그런 무당의 모습에 겁에 질린 사람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떨기도 하고 어린 처자들과 아이들은 울며 도망가기 바빴다.
“얘들아.. 무당한테 망신당하기 전에 다들 여길 빠져나가자꾸나. 전신아, 금정이 챙겨라.”
신무패의 우두머리 소백이 패 일원들을 돌아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당은 여전히 사람들을 헤집고 다녔고 소백과 일원들은 무당에게 들킬세라 허리를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네 이놈, 찾았다!”
동공이 커진 채 무서운 얼굴을 한 무당이 신무패의 가장 막내 꼬마 여자아이인 금정의 앞을 가로막고 떡 하고 버티고 섰다.
“요, 요망하고 쪼꼬만 꼬마 기집애가 보통이 아니네? 어디 감히 내 굿판을 방해해! 어디 널 지키는 귀신이 누군지 한 번 꺼내볼까? 깔깔깔.”
무당의 기괴한 모습에 사람들은 잔뜩 겁을 먹었다. 금정 역시 처음 겪는 일에 온 몸이 얼어붙어 꼼짝할 수 없었다. 무당은 금정의 안에 있는 금정의 수호신이 잡신인지 귀신인지 알아보기 위해 금정의 어깨를 잡고 연신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챙-‘
순간 금정의 어깨를 흔들며 깔깔대던 무당의 목으로 서슬 퍼렇게 빛나는 칼 날이 들어왔다. 무당은 갑작스러운 위협에 꿈쩍도 하지 않고 고개를 기이하게 꺾어 뒤를 돌아보았다. 금정의 배다른 언니 도희가 세 자쯤 되는 날카로운 칼로 무당을 막아선 것이다.
“너도 죽고 싶으냐. 끼히히히히히”
무당의 목소리는 더욱 괴상망측하게 변해갔다. 필시 지금 무당 속에는 하나의 원혼이 들어선 것이 아니었다. 소백과 전신 역시 이제 무당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 동생을 놔주시오. 아니면 당신의 목을 베겠소.”
“누나, 안돼요. 위험하니 물러서요.”
전신은 본능적으로 무당이 수 십의 귀신에게 빙의됐음을 느꼈다. 간 밤에 풀려난 귀신들이 백주대낮에 숨을 곳이 없었다가 무당의 굿판 덕에 귀문과 귀안이 활짝 열린 무당 속으로 모조리 들어갔던 것이다.
“전신아, 보여? 몇이나 들어갔어? 진짜, 저 무당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거지? 이거 이제 굿판 아닌 거지?”
전신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보따리에서 빠르게 부적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무당은 금정을 내팽개치고 전신에게 달려들어 그의 보따리를 움켜쥐었다.
“내놔, 이 보따리, 네 놈의 부적들 모조리 불태워주마. 끼아하하하하. 낄낄낄. 끼리릭. 끼리릭.”
“안돼, 이거 놔.”
하지만 무당의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수십의 원혼과 원한령이 모여 잡아당기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를 막기 위해 소백까지 합세했지만 결국 둘은 고꾸라졌고 부적 보따리를 차지한 무당은 보따리에서 부적을 쏟아내어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너희들이었구나. 대숲에 결계를 친 게 너희들이었어. 끼히히히히히낄낄낄.”
무당의 목소리는 이제 사람의 것도 짐승의 것도 아닌 끔찍하게 무서운 것으로 변해버렸다. 이는 마치 수십 명의 목소리가 한데 섞여 나오는 듯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처음엔 막연한 두려움에 슬금슬금 피하던 마을 주민들도 이젠 이 판이 굿판도 아닌 것이 되어 끝나버리고 무당까지 귀신에 빙의된 모습을 보더니 다들 소리치며 달아나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