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이 자신의 코앞까지 무당의 얼굴이 다가왔다고 여기며 다시 두 눈을 질끈 감을 때쯤 기가 잔뜩 실린 소백의 오른 주먹이 무당의 얼굴을 강타했다.
‘으헉.. 끄으윽.’
소백의 주먹에 머리가 돌아간 무당은 아주 잠시 동안 그대로 서 있더니 별안간 우두둑하고 뼈가 꺾이는 소리가 날 정도로 목을 정반대로 돌리고는 다시 소백과 전신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너네들 이젠 아무것도 없구나. 맞아 맞아, 부적이 하나도 없으니 주먹질이나 한 거지. 끼히히히깔깔깔.”
원거리에서 때를 기다리던 차선은 쇳물에 화형 부적을 섞어 축귀용으로 만든 촉을 가진 활시위를 당겼다. 언제 이를 쏠지 몰라 기회를 노리던 그녀는 소백의 주먹에도 끄떡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달려드는 무당을 보곤 본능적으로 활을 쏘았다.
‘휙-’
‘탁-‘
하지만 놀랍게도 무당은 마치 이를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는 듯 자신을 향해 날아온 화살을 왼손으로 낚아채고는 이내 꺾어 부숴버렸다. 더욱 기이하고 공포스러웠던 건 이제 이 정도 부적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듯 화형 부적 화살촉을 뜯어내서 한 입에 꿀꺽하고 삼켜버린 것이었다.
‘미쳤어.. 이건 우리가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버렸어. 어, 어쩐다.'
소백의 기공 주먹에도 끄떡 않고 차선의 화형 부적 화살촉까지 삼켜버린 무당을 보자 신무패 일원들은 삽시간에 무력감과 공포감에 휩싸였다. 부적이 담긴 화살 촉을 삼킨 무당은 속이 타들어가는 듯 잠시 괴로워하며 수그렸다가 곧 허리를 펴고 일어나더니 다시 괴랄한 웃음을 지으며 신무패 일원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아아아하하하하하하하하. 꺄아아아아아아아-‘
“일령, 광!”
자령, 행장이와 구석에 숨어 때를 기다리던 선준은 신무패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위기에 놓이자 경각의 망설임도 없이 일령을 꺼내 들고 무당 앞으로 뛰어가며 외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삽시간에 일령을 중심으로 오장 정도 너비의 강한 태양 빛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정면으로 마주한 무당은 끔찍한 비명소리와 함께 달려오던 쪽의 반대 방향으로 세길도 넘게 멀리 날아갔다. 곧 바닥에 넘어지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무당의 머리 뒤에 수 십의 원혼과 악령들이 야산 쪽으로 강물 흐르듯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사방은 고요했다. 대낮이었음에도 일령의 빛을 맨눈으로 본 선준 일행과 신무패는 한 동안 어안이 벙벙한 채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선준은 곧 무당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무당은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 안색이 흙빛이었지만 아까와는 달리 본래 자신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호라.. 제법인데요? 아주 쫄보는 아니었네요.”
자령이 행장이와 함께 선준의 곁으로 다가간 뒤 웃으며 칭찬의 한마디를 남겼다. 선준은 자령에게 그동안 자신이 겁쟁이였다는 오해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어 어깨가 으쓱해졌다.
신무패는 번개처럼 나타나 위기에 빠진 자신들을 구해준 사내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인사하기 위해 서둘러 선준에게 다가왔다.
“뉘신지 모르나, 정말 감사하오. 정말 꼼짝없이 당할 뻔했는데 우리를 이렇게 구해..”
“어, 이.. 이분들은..?”
소백이 선준에게 인사를 하던 중 전신이 선준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곧 소백과 차선도 선준을 알아보았다.
“아아니, 댁은 아까 새벽에 산에서 본..”
그러자 선준은 그들을 돌아보며 인사를 헸다.
“맞소이다. 새벽일은 미안하게됐소. 이걸로 제 실수에 대한 사과를 받아주었으면 하온데..”
“무, 물론이죠. 선비님, 선비님의 높은 공력 덕분에 저희가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분인데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놀란 소백을 뒤로하고 전신이 놀라운 얼굴로 선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백은 그저 별다른 도력도 없이 어중이떠중이로 겨우겨우 잡귀신이나 지박령 정도를 겨우 축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준의 놀라운 능력에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아닙니다. 제가 폐를 끼쳐서 어떻게 이를 갚을까 했는데 다행히 기회가 온 것뿐입니다.”
이를 지켜보던 자령이 아까 활을 쏜 차선에게 다가갔다. 차선의 화형촉은 훌륭했지만 무당 속 수십의 악귀들을 당하지 못했던 것이 내심 자존심이 상했다.
“보아하니 활 깨나 쏘신 분 같은데 이런 상황에선 머리나 몸통보단 다리나 발을 노리는 게 나아요.”
“응? 넌 누구야? 저, 선비님이랑 일행이야?”
하지만 자령은 차선의 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계속 자신의 할 말만 했다.
“허헛, 초면에 반말이시네. 암튼, 귀신 들린 사람에게는 하체를 쏘는 게 나아요. 딱 봐서 정신이 나갔다 싶으면 다리를 쏘라고 조언드리는 겁니다.”
차선은 사실 신무패에서 가장 성격이 불같았다. 평소에는 차갑고 매서운 눈초리로 별 말도 없었지만 축사를 할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자령이 이를 알리는 없었다.
“하하. 누가 그걸 알려달래? 너 나이는 얼마나 먹었니? 보아하니 어디서 활도 쏘고 조총도 쏘나 본데, 축귀는 해봤니?”
상황이 살벌하게 심각해지자 차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소백이 이를 진화하러 나섰다.
“자자, 검은 옷의 아가씨, 아주 미안하게 되었소. 그래도 우리를 살려준 분의 일행이신 것 같으니 이해해주시오. 차선아, 그만해라.”
소백은 차선의 어깨를 붙들고 구석으로 끌다시피 하며 겨우 밀고 데려가 조용히 타일렀다.
“차선아, 너 미친 거냐. 지금 상황을 보고도 니 성격이 나와? 저 선비가 우릴 구해줬잖아.”
“아니, 그건 고마운데, 저 어린 여자애가 버릇없게 참견하며 조언을 하잖아. 아주 그냥 분통 터지게 만드는 화법 못 들었어?”
“차선아, 이제 이런 건 좀 그냥 좀 넘어가자. 이 오라비도 힘들다, 응?”
소백은 더 이상 말로 차선을 달래고 타이르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차선 역시 묘령의 아가씨인데 자신이 부모도 스승도 아닌지라 딱히 이래라저래라 하기도 쉽지 않았다.
“선비님, 저희가 어떻게 식사라도 대접할까 하는데..”
하지만 선준은 자령과 갈 곳이 있었기에 정중히 사양했다.
“실은 지금은 갈 곳이 있습니다. 나중에 또 인연이 닿으면 그때 같이 드시지요.”
선준은 행장, 자령과 함께 인사를 하고 먼저 그 집을 빠져나왔다. 전신과 금정은 다시 한번 선준네 일행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소백 형님, 저 선비님도 대단하지만, 저 꼬마 아이가 보통이 아니에요.”
“맞아요. 오라버니. 나중에 또 볼 일이 있을 것 같아요. 귀중한 인연이에요.”
소백은 전신과 금정을 돌아본 뒤 곧 생각에 잠긴 듯 산새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저 높고 넓은 산에 풀려난 귀신들은.. 또 언제 다 몰아서 잡냐.. 아휴.”
“한바탕 했더니 배가 고프네. 도희야, 너도 그렇지? 소백 오라버니, 우리 장에 가서 참이나 먹죠. 얘들아, 가자.”
또 귀신들을 몰 생각에 시름이 깊은 소백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차선이 나머지 애들을 끌고 우르르 집 밖을 나섰다.
“아휴, 저저, 진짜 내 마음은 누가 알아주냐. 지금 할 일이 산더미인데.. 야! 얘들아,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