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선비님, 여기서부터 갈림길입니다. 세 갈래의 길이 있지요. 예전에 두 번 왔을 때는 한 번은 왼쪽길로 다음 한 번은 오른쪽 길로 갔었거든요.”
그러자 선준이 은진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첫 번째 갔던 길에 대무당 할멈을 만났다면 다음에도 그 길로 갔어야 하는 거 아니요..?”
선준의 당연한 질문은 은진은 슬쩍 웃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요. 그런데 처음 올라갔을 때도, 두 번째에 갔을 때도 전 길을 헤맸습니다. 길이 오락가락하여 다시 처음부터 가고자 돌아가려 하면 또, 돌아가는 길도 뒤죽박죽이 되어있지요. 제가 처음에는 왼쪽길로 갔다고 했었지요? 그런데 나중에 다시 내려와서 돌아보니 오른쪽 길로 내려왔더군요.”
“허어.. 그런 일이..”
선준은 이틀 전 대벽산에서 겪었던 이중 결계가 떠올랐다. 이제는 결계라는 말만 들어도 그때의 악몽이 떠오를 지경이 되었다.
“허나, 다행인 건, 제가 악의를 품고 찾아갔던 게 아니었던 터라 결국 대무당 할멈을 만났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오늘도..?”
“네, 하지만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할멈을 두 번째 만난 날, 실은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거든요.”
“아니.. 왜요??”
“그야 저도 모르지요.”
둘의 사담이 길어지자 이를 참다못한 자령이 끼어들었다.
“저기.. 두 분, 죄송하지만 얼른 길을 정하고 가시지요? 듣자 하니, 어느 길로 가든 결계에 걸릴 건 뻔한데..”
“어, 그렇지. 자, 그럼 이번에는 어느 길로 가는 게 좋겠소?”
은진은 주변을 살핀 뒤 한 발짝 앞으로 나가더니 세 길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곧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가운데 길로 가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셔야 합니다. 길이 좁으니 제가 먼저 앞장서겠습니다.”
곧 은진에 이어 자령, 행장이 그리고 선준의 순서대로 세 봉우리의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때는 이제 막 사시(巳時, 오전 9시 11시)에 접어든 터라 날은 밝고 환했다. 그들이 걸어가는 동안 숲 속의 새들과 작은 산짐승들이 바쁘게 오가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산속의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딱히, 위험해 보이는 건 없어. 그리고 우린 도움을 청하러 가는 길이니, 결계라고 해봐야 큰 걱정은 없겠지..?’
선준은 무리의 맨 뒤에서 걸으며 혹시나 행장이와 자령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살피며 한참을 걸어갔다.
‘헉헉.. 헉헉헉’
‘다들 지치지도 않는가..? 갑자기 이렇게 빠르게..’
“저기, 은진씨, 내 말이 들리오?”
선준이 소리치자 맨 앞에서 빠르게 걷던 은진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시오?”
“아.. 이제 봉우리 중턱은 온 것 같은데, 새벽부터 십리도 넘는 산 길을 꼬박 걸었고 하니, 헉헉, 잠시 좀 쉬었다 가면 어떻소..?”
하지만 은진은 선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지금 가지 않으면 오늘 내로 도착하지 못합니다. 최대한 결계를 피해서 가는 중이니 빨리 따라오시지요.”
은진의 목소리는 딱딱하다 못해 냉정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자령은 물론이고, 아까 대벽산을 오를 때만 해도 숨이 차서 헐떡이던 행장이는 어쩐 일인지 은진을 따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잘 걸어갔다.
‘아, 내가 체력이 떨어진 건가. 그래, 은진의 말이 맞아. 산에서는 조금만 길을 잃어도 한 시진은 후딱 지나가니 얼른 따라가는 수밖에..’
선준은 은진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숨이 차오르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따라갔다.
‘헉헉헉, 그런데..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힘든데.. 헉헉..’
선준은 숨을 몰아쉬며 그들을 따라갔지만 셋과 자신의 간격은 계속해서 멀어졌다. 이에 선준은 걷다 말고 그들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지만 도저히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숨이 넘어갈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인근의 넓적한 바위에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헉헉헉, 이거, 다들 왜 이렇게 빠른 거야..? 헉헉헉.’
선준이 호흡을 크게 몰아쉬며 셋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셋은 힘이 들지도 않는지 매우 빠르게 걸어갔다. 선준을 아빠 마냥 졸졸 따라다니던 행장이 마저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모퉁이를 돌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다들 체력이 왜 이렇게.. 가만, 어.. 그런데 아무래도 이거 좀 이상한데..’
선준은 순간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제아무리 셋의 체력이 좋다고 해도 행장은 물론, 셋의 태도가 본래의 성격과는 달라 보였던 것이다.
‘일령..! 일령이 어디 있지?’
선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퍼뜩 일령을 먼저 찾았다.
‘찌르르르르-‘
다행히 일령은 보따리 안에 얌전히 잘 있었다.
‘헉헉헉, 선비님..!’
‘헥헥헥, 아재! 아재..!’
선준은 일령을 확인한 후 혹시라도 자신이 결계에 걸린 게 아닌가 싶어 사방을 둘러보는데 산 길아래에서 자령과 행장이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아닌가. 이를 본 선준은 마치 심장이 내려앉는 듯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아니, 너희들은 아까, 저 위로 먼저..?!”
“헥헥.. 네? 뭐가요? 헥헥..”
“자야, 너 아까 자령과 은진씨와 함께 나보다 먼저 산으로 올라가지 않았어?”
그러자 행장이 숨을 헐떡이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령과 선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래요. 헥헥, 아재가 혼자 무슨 귀신이라도 씐 마냥 너무 빨리 산을 올라가서 지금 은진 누이가 아재를 붙잡으래서 겨우 달려온 건데.. 헥헥.”
“맞아요. 선비님, 혹시 이상한 움직임이나 사람들을 보진 않으신 거죠?? 은진씨가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따라가면 다시는 못 올 수 도 있다고.”
이 이야기를 들은 선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결계라는 것이 이토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걸려들 수 있고 결계에 걸린 이후에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며칠 사이에 두 번이나 경험한 것이다.
“다행이구나. 난 아까 너희들 그리고 은진씨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 윗길로 올라가길래.. 너무 힘들어서 조금 쉬었다 따라가려 했더니.. 그들을 따라갔다면 큰일 날 뻔했구나.. 하아..”
“아재, 아재 때문에 늦을까 봐 겁난당게요. 어서 가자요.”
“그래, 가자꾸나.. 그나저나 은진씨는 어디에 있느냐?”
행장이가 갑자기 우물쭈물 대고 말을 하지 못하자 자령이 곧바로 대답했다.
“요 아래 사잇길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거기로 가야 대무당 할멈집 길이 나온데요.”
“어, 그래? 길을 찾았나 보군. 그럼 앞장서 주시지요.”
선준은 둘을 따라 다시 산 길을 굽이돌아 내려가다가 산 중턱에서 보았던 사잇길에 도착했다. 선준이 올라갔던 반대편 길 입구에서 서너 길 떨어진 곳에 과연 은진이 서 있었다.
“은진씨, 반갑구려. 잠시 길을 헤매 혼자 있었는데.. 알고 보니 결계에 걸렸던 것 같소. 하아,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행장이와 자령이 찾으러 오지 않았으면 큰 일 날 뻔했다오. 하하..”
선준의 말에 은진은 고개만 살짝 돌린 채 그를 등지고 앞을 보며 답했다.
“큰 일 날 뻔했군요. 이 세 봉우리에는 결계가 많답니다. 제가 대무당 할멈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으니 이제 저만 따라오시지요.”
말을 끝낸 은진이 앞장서서 가기 시작했고 선준의 뒤로 자령과 행장이가 따라왔다.
“얘들아, 너희들이 앞으로..”
“에이, 선비님, 그러다 또 결계에 걸리면 안 되잖아요. 그냥 이렇게 가시죠.”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렇게 잠깐 동안 굽이치는 산길을 걷는 동안 불현듯 선준의 머릿속에 은진이 세 봉우리를 오르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자기도 길을 모른다고 했는데.. 그러게, 두 번 왔지만 두 번 다 길이 달랐고 내려온 길도 달랐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여기에 닿자 선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은진을 바라보았다. 뒷모습은 분명 영락없는 은진이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자태 그리고 작은 발까지.
‘어.. 뭐야, 바.. 발이.. 은진씨의 발이 왜 저래?!’
선준은 은진의 발을 보는 순간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은진의 발에는 그녀가 신던 신발은 온데간데없고 바늘처럼 뾰족한 끝을 가진 수북한 털이 덮인 산짐승의 발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