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도화선 - 귀문 (鬼門) 1

by Rooney Kim


“어, 할멈, 호호. 그러니까, 그게..”


대무당 할멈의 호통에 괜스레 덩달아 긴장한 선준이 밥을 먹다 말고 대답을 하려다 은진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선준은 성주사로 찾아가 윤대감 악령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인데 어쩌다 보니 대벽 고을의 환난부터 이무량까지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에 엮여 버린 것이다.


“할멈, 또 이러신다. 지난번에 두 번 왔을 때도 똑같은 소리 하셨잖아요. 저 이제 안 속아요. 할멈이 사라지면 대벽산과 일대의 평화는 누가 보장해요? 그런 소리 마세요. 무서우니까..”


의외였다. 항시 진지했던 은진이 마치 자신의 친할머니에게 하듯 애교 섞인 말을 하는 것은 처음 본 것이다.


“아유, 맘에 없는 소리 한다. 저 야시 같은 것, 껄껄. 거기, 선준이라고 했나? 저기, 우리 은진이 어떤가?”


“네.. 넷..?!”


선준은 은진을 처음 본 순간부터 겉모습이며 눈매 등 발산하는 기운이 보통이 아닌 매혹적인 여인이라는 것은 이미 감지하고 있던 터였다.


“저.. 저는.. 엇허엄..”


“아, 됐네, 됐어. 은진아, 이렇게 소심한 남정네는 만나면 못쓴다. 아주 순해빠져 가지고 어디 닭 한 마리라도 잡겠어?”


이에 은진은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고 순간 무언가 억울해진 선준은 지난날 숱하게 많은 귀신 들린 자들과 악령을 베며 축귀를 해온 자신을 떠올리며 뭐라도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할멈은 또 귀신같이 순식간에 화제를 바꾸었다.


“대충 보니 이번에 온 용건은 알겠고 그나저나 어디서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모였지? 신기해.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보네.”


할멈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 선준 일행을 하나씩 뚫어져라 쳐다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어이 거기, 왕도깨비 양반. 이리 보니 엄청 반갑구먼. 해치랑 불가살이가 자네한테 꼬리 칠 때 알아봤네만, 진짜 오랜만이구려.”


할멈이 부지런히 밥을 입에 쑤셔 넣는 행장이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행장이는 오랜만에 진수성찬인 밥을 먹는데 온통 집중을 하다 말고 어느 순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어.. 어, 지요? 전 행장이인디..”


그러자 할멈이 큰 소리로 껄껄대며 웃었다.


“그렇지, 넌 귀여운 꼬마 아이지. 아니, 너 말고 니 뒤에 왕도깨비 말이야. 껄껄.”


“네…? 제 뒤예요? 제 뒤에 도깨비가 있단 말이단가요..?!”


행장이는 밥을 먹다 말고 기겁한 얼굴이 되어 뒤와 옆 천장을 살폈다. 할멈과 은진은 이런 행장이의 귀여운 모습에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자야, 아마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수호신을 얘기하는 것 같구나. 좋은 뜻이니 너무 겁먹지 말거라.”


“맞아요. 그리고 이 왕도깨비는 보통 수호신이 아니에요. 저도 무당일을 하면서도 처음 뵌 거니.. 선준씨도 잘 알지 않나요?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은데.”


은진의 말에 선준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의 왕도깨비 하나, 기가 막힌 칼자루를 쥔 무공이 좀 있는 사내 하나 그리고 아~주 끈질기게 나를 못살게 굴지만 신력은 제법 쓸만한 처자 하나. 보자, 이 아이는 누구지?”


할멈의 말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하나 움직이다 자령에게 멈추자, 자령 역시 어색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저.. 저는 소총과 활, 칼을 쓸 줄 압니다..”


자령의 대답에 할멈은 또 한바탕 크게 웃었다.


“껄껄껄, 이거 이거 정말 재미있는 아이일세, 아직 묘령은 안 지난 것 같고.”


“세 해, 남았습니다..”


평소에 열린 마음과 생각으로 그렇게나 당당하던 자령도 대무당 할멈 앞에서는 뭔가 움츠러드는 마음과 자세를 피할 수 없었다.


“이 아이가 누구더라.. 어디서 본.. 너 혹시, 니 아비가 그..”


“할멈, 이 아이가 바로 그..”


“떽! 알지, 나도 알아, 껄껄껄. 내가 그래도 왕년에 대무당으로 불렸는데 제아무리 신력이 많이 쇠했다 해도 그걸 모를까. 하하하.”


할멈은 은진의 말을 가로채곤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오호라, 너, 너구나! 아, 이제야 알겠다. 그런데 지 아비를 따라 귀신을 맘대로 부리는 운명을 타고났으면서 뭘 그리 피하고 댕기냐.. 쯧쯧, 니 팔자 니가 꼬지 않게 단단히 혀. 껄껄껄.”


할멈의 한 마디에 다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할멈과 자령에게로 향했다. 자령은 할멈의 말을 단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가뜩이나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부정하며 살아왔기에 더욱 아리송해졌다.


“아무튼 내 귀로에게 갈 참이었는데 잘됐네, 다 같이 가면 되겠네. 껄껄껄.”


‘귀로.. 백귀로.. 우리 아버지를.. 아셔?!’


자령은 할멈이 말을 끝내자마자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할멈을 바라보았다.


“우.. 우리 아버지를 아세요..?! 우리 아버지.. 구할 수 있나요? 저기, 그.. 영계? 거기에 갇혀있다던데..”


그러자 할멈은 웃다 말고 다시 표정을 싹 고치곤 자령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구하긴, 데리러 가는 거지. 귀로는 거기 스스로 들어갔어. 아니, 지난번 환난 때 나한테 일절 말도 없이 귀문을 열어서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 수 십은 끌고 들어갔지 아마? 알지? 백중이 지나고도 이승에 끈덕지게 붙어있는 잡령들 말이여, 껄껄. 개중에 수상하고 못된 것들이 있거든. 아니,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엥이, 쯧쯧.”


“맞아요, 할멈. 이거 지난번에 또 제가 얘기했던 대로..”


“그려 그려, 알지. 아, 근데 귀문은 함부로 열면 안 되거든, 귀문을 열면 보통 이승에서 영계로 가는 것보다 영계에서 저승 갈 날만 기다리던 요망한 잡령들이 다시 이승으로 빠져나올 수 도 있어. 그래서 나랑 같이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신력이 바짝 오른 어린 무당들 서너 명 이상은 데리고 해야 해.”


그때 할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은진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할멈, 그런데 사실 백귀로씨를 데리러 가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요.”


“응? 그게 뭔데 그랴?”


할멈은 정말 그 일을 모르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지 은진에게 되물었다.


“백귀로씨가 이무량.. 이무량의 눈을 보았답니다. 그때가 오월에서 유월쯤이었으니 벌써 다섯 달 날밤이 지났습니다.”


은진의 입에서 이무량의 이름이 나오자 마냥 온화하게 웃고 있던 할멈도 얼굴에 웃음기를 싹 지우고는 은진을 바라보았다.


“이무량이라고?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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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snow-moun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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