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 물포야, 잠깐 내 방으로 와라.”
근중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둘을 불렀다. 평소와는 다른 근중의 목소리에 장태와 물포는 서로 눈치를 살피며 긴장하며 근중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형님, 이마가 왜 그러십니까? 천검 형님 만나러 간다더니, 워매, 혹시 천검 형님과 한 판 붙으신..”
물포가 근중의 얼굴 상태를 살피다 민감한 부분까지 깊게 묻자 장태가 팔꿈치로 물포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형님, 혹시 무슨 일이라도..?”
근중은 장태와 물포가 방으로 들어왔는데도 근심이 어린 표정을 쉽사리 풀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호쾌하고 겁 없는 근중의 모습만 봐온 그들에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니다. 그게 아니라, 혹시 경상도랑 전라도에 얘들 다들 잘 있다고 하냐? 최근에 뭐 들은 거 없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장태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근중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건 필시 어떤 연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저희도 좀 조용히 지냈고 거기도 석경이 형님이랑 초래가 잘 이끌고 있다는 것 정도만 들은 게 지난 망종(芒種, 6월 5~6일 사이) 쯤이니까 이제 계절이 두 번은 바뀌었네요.”
“아, 그리고 거기도 이제 형님이 알아서 잘 지내라고 해서 저희는 내년에나 연락반을 좀 보내서 안부나 물을까 했는데..”
근중은 둘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시선이 꽂힌 채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이를 본 물포 역시 그제야 근중의 심중에 어떤 근심이 자리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형님, 혹시 무슨 일이라도..?”
“형님, 말씀만 하십쇼. 저희가 후다닥 가서 다 처리하고 오면 되지요.”
물포의 한 마디에 근중이 피식하고 살짝 웃어 보였다.
“장태야, 우리 애들 총 얼마나 되냐?”
“음, 아마 지금 대벽산 쪽에는 거진.. 마흔..?”
“으유, 물포야, 모르면 좀 가만히 있어. 형님, 저희를 다 포함해서 쉰셋입니다요.”
장태의 대답에 근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계록산과 저 위에 성주산은?”
“계록산은 점근이가 열댓 명 데리고 열이레 전쯤에 갔고요. 성주산은 청운이가 서너 명이랑 전에 호환 이후로 동태를 살피러 간지 사흘째지요.”
근중은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 여러 가지 선택에 대한 장단점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장태야, 물포야, 잘 들어라, 우리 모두 일단 잠시 여기를 좀 떠야겠다.”
“네??”
“네..?”
장태와 물포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근중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실, 근중은 이제 대벽산 자락에서 아주 오랫동안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기 때문이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형니임, 혹시, 천검 형님이 겁박하던가요? 저기 아전들을 등에 업고 우리를 어떻게 하겠다고 하던가요? 제가 당장 산 아래로 달려가서 저것들을 그냥 확.”
“야, 이씨, 넌 형님한테 그게 할 소리냐, 형님을 뭘로 보고, 쯧. 형님, 그런데 혹시.. 왜 그런지 이유를 좀 알 수 있을까요?”
평소라면 이 정도의 반응에 익살과 여유가 뒤섞인 웃음으로 동생들을 골려주기도 하던 근중은 이날 따라 더욱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 당장은 일자가 확정된 것이 아니라 나도 잘은 모르겠다만, 음.. 그래, 적어도 너희들은 다 알아야겠지.”
장태와 물포는 근중의 눈과 입을 번갈아보며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근중 앞에 긴장하며 서 있었다.
“야야, 너네들도 좀 앉아라. 뭘 불편하게 그리 서 있냐.”
“아, 네네. 형님.”
그러자 근중이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 대벽 고을에 군사들이 모이고 있단다.”
“네? 군사요? 어디.. 어디 또 전쟁이 났나요?”
“아니, 그냥 군사가 아니라 갑사들이라네.”
“네에?! 갑사들이요? 아니, 갑사라면 임금을 호위하고 한양을 수비하는 정예 정규군 아닙니까. 그들이 왜 이런 지방 고을엘..”
“한양의 갑사들과 대벽 고을의 아전들이 똘똘 뭉쳐서 우리를 치러 오겠단다.”
근중이 속에 있던 근심을 여과 없이 내놓자 장태와 물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아니, 아니, 왜요, 형님? 우리가.. 우리가 뭐 나라에 큰 잘못이라도..?”
“야, 사실, 산적은 나라에 반항한 자들이긴 하지.”
“아니, 형님. 그래도 왜 우리한테.. 우리를 치는데 갑사까지 동원할 일입니까요..?”
“그야, 너네들이 하도 잘 싸우니까 그게 팔도에 죄다 소문이 났지 않으냐. 껄껄.”
지금껏 너무 진지하던 근중이 갑자기 농이 섞인 말을 하며 웃자 장태와 물포는 또다시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근중을 바라보았다. 둘의 얼굴에도 슬슬 큰 근심과 두려움이 일고 있었다.
“너무 걱정할 건 없다. 오늘 천검에게 들었다. 지난번 관아의 환난 이후로 최근 부임한 수령이 동반 아전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들은 것 같더구나. 당연히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냈겠지. 그리고 귀신 들린 자들을 포함해서 고을의 농민들, 장사치들 고혈을 빨아먹는 자들이 아직 있지 않느냐, 내 확신은 못해도 분명 이번에도 그자들의 짓이 틀림없다.”
“아니, 형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어찌 한 산골 마을의 환난에 나라에서 갑사들까지 보낸답니까..? 하아참.”
“형님, 이거 믿을 만한 정보가 맞습니까? 저, 전에도 한 번 천검이, 아니, 천검 형님이 우리를 곤란하게 한 적도 있었잖습니까..”
장태와 물포가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천검과 근중은 오랜 기간 동안 묘한 우정과 오해가 얽힌 사이로 지루한 신경전이 이어져왔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 고을에서 한 해 걸러 한 해마다 벌써 두 명의 수령과 스무 명이 넘는 나졸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너네들도 알지 않느냐, 이 모든 게 귀신과 악령들의 짓이란 걸. 하지만, 백성들이 모두 귀신의 짓이라고 해도 나라일을 하는 사람들이 윗 관리에 귀신들 때문에 수령과 나졸이 그렇게 많이 죽었다는 걸 그대로 보고하겠냐? 그럴지 없지 않으냐.”
“… 네, 그건 그렇습지요.”
“만만한 게 우리다. 게다가 지난 환난 때는 우리도 서반아전과 엮여있었다. 물론, 억울한 사람들 도와주려다 그랬지. 아무튼, 이 모든 죽음과 환난의 명분 그리고 앞으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치는 게, 그들의 입장에서는 일석삼조로 보였을게다. 환난에 대한 복수도하고, 다가올 환난도 막고, 또 전국구로 유명한 산적을 소탕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 아, 이런.”
근중의 설명에 장태와 물포는 이제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우리 애들을 위해서 피하자. 나 역시 우리 애들이 다치거나 죽는 걸 원치 않는다. 상대는 갑사들이다. 정예병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녀석들이야. 녀석들은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