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으으으으으으-‘
강철이 사라지자 주변에는 어디서부터 발생한 건지 알 수 도 없는 안개가 마치 굴뚝의 연기처럼 삽시간에 피어오르더니 소백과 차선의 눈앞에 보이는 내리막길만 남기고 가득 차 버렸다. 마치 하늘 높은 곳의 구름이 내려와 주변을 감싸기라도 한 듯 몽롱하고 묘한 분위기가 자칫 섬뜩하면서도 신비로웠다.
“어..? 여기 있던 해치와 불가살이 녀석들도 어디로 갔지?”
“어머, 오라버니, 얘네들 어디로 갔데요?”
“그러게 말이다.”
소백은 그러면서도 주변에서 또다시 잡귀나 악령이 달려들지는 않을지 예의 주시하며 주변을 계속해서 둘러보았다.
“길을 따라 내려가거라. 오늘은 너무 늦었다. 보아하니 또 만나게 될 터이니 조금만 기다리시게.”
또다시 하늘에서 아까 그 목소리가 들려왔고 소백과 차선은 그 소리를 듣고 동시에 두 눈을 마주쳤다.
“가, 가자..!”
“응.”
소백은 차선의 손을 꽉 쥐고 앞장서서 내려갔다. 차선은 소백이 꽉 잡은 손이 조금은 불편했지만 굳이 그 손을 놓고 싶진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무엇보다 다시는 혼자 결계에 걸리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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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 폴짝’
‘촤아아- 폴짝’
곧 우물 안에서 밖으로 해치와 불가살이가 튀어나왔다. 역시나 아까와 같이 온몸이 물에 흠뻑 젖었다.
“불뱌, 불뱌”
“꾸르르르르”
둘은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마치 할멈의 칭찬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할멈 주위에서 몸의 물을 털어내며 뒤뚱거리며 뭔가 기다리고 있었다.
“으이구, 그래 잘했다, 잘했어. 위험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는 것도 너희들의 할 일이지, 아무렴. 옛다, 약과 먹어라. 아참, 그나저나, 아까 우물로 들어갈 때, 장독대 뚜껑을 발로 차서 깨트린 게 누구냐? 상은 상이지만 잘못했으면 벌도 받아야지.”
할멈의 말이 끝나자 해치가 곁눈질로 불가살이를 바라보았다. 까맣고 커다라 눈은 마치 밤하늘이라도 담은 듯 신비로웠다. 아무튼 해치는 그런 신비스러운 눈알을 굴리며 불가살이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중이었다.
“정말이냐.”
“아구랴 구랴”
해치의 한마디에 할멈이 불가살이의 머리를 꽁하고 한 대 쥐어박았다. 영문을 모른 불가살이는 무서운 얼굴과는 달리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머리를 갸우뚱하며 할멈을 바라볼 뿐이었다.
“너나 흰둥이나 둘 다 조심해. 앞으론 우물로 들어갈 때 절대 장독을 밟지 않는다. 알겠냐?”
“꾸르르..?”
“어허, 어서, 얼른 대답해.”
“아규라 규라”
“꾸르르, 꾸르르르르”
“옳지. 이제 가서 쉬거라.”
해치와 불가살이는 곧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가 집 뒤편 대나무숲으로 사라졌다. 선준과 일행은 이제 곧 산봉우리를 다시 내려가 귀문을 열 준비를 하러 갈 참이었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언제부터인가 선준의 보따리 안에 있던 일령이 스스로 발광하며 미세하게 떨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니, 이게 왜 이러지.”
선준은 곧장 보따리에서 일령을 꺼내 들었다. 일령은 아주 강력한 악령이나 귀신 무리가 있을 때 선준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발광하며 진동하곤 했다.
“진정해, 일령. 진정해, 괜찮아.”
“어? 아니, 자네, 그것 좀 이리 줘보게.”
선준이 일령을 잠재우려 양손으로 잡고 있는 것을 본 할멈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본 사람 마냥 그에게 다가왔다.
“아, 할멈, 이 안의 이들은.. 그러니까 이거 일령이라는 건데..”
“허허, 내가 이들은 잘 알지. 호령, 자겸, 태례가 아닌가.”
“네? 이 칼자루는 일령인데요..?”
“내 이들을 여기서 볼 줄이야. 생전에 다시는 못 볼 줄 알았건만. 과연 이들의 주인은 누가 될까 했는데.. 허허허, 은진이 네가 이들을 이끌고 내게 온 게 우연은 아니었구나.”
선준은 깜짝 놀란 얼굴로 할멈을 바라보았다. 일령을 쥔 할멈의 눈빛은 반가운 인연을 만난 젊은 사람의 것 마냥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구먼. 반갑고 좋네. 허어, 어쩌면 정말 이무량을 다시 만나게 되는 운명인가. 그런데 그 미래는 나도 보이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지이이이이이이- 슉’
할멈이 일령을 손에 쥐고 혼잣말을 하던 중 갑자기 일령의 빛이 사라지며 다시 평범한 칼자루로 돌아왔다. 선준은 할멈의 말이 무슨 영문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자, 다시 안정을 찾았네. 방금 건 아마도 강철이 때문이었네.”
“강철이요?? 그.. 이무기와 비슷한..”
“응, 웬만한 용보다 더 독하고 무서운 녀석이야. 아까 산 허리에 강철이가 나타나서 흰둥이랑 불덩이가 뛰어 내려간 거거든. 왜인지는 몰라. 정말 너네들 말대로 이무량이 나타난 건지, 아니면 다른 녀석인지, 여하튼 그 무언가가 강철이까지 여기로 불러들였네. 흐음, 보아하니 곧 대벽 마을에 뭔 일이 터지긴 터지겠어. 이건 점을 안 봐도 느껴져. 훤히 보인다고.”
일령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다는 건 대무당 할멈이니 그렇다고 해도 일령 속 영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에는 선준도 놀라고 말았다. 이유인즉, 선준도 처음으로 일령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좋은 영들이라는 것만 알았지 그들의 이름까지는 몰랐던 것이다.
“자네, 이거 축귀 때 주로 악령들을 공격하는 용도로만 쓰는가?”
“네, 일령은 저도 아직 완벽한 사용법은 다 모르지만 주로 공격용 주문이 많아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만..”
“일령은 달과 물의 기운이 넘친다. 이름은 일령이지만, 허허. 방어가 훨씬 강해.”
“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알려주겠네. 자, 은진아, 이제 내려가거라. 미시가 지났으니 곧 해가 진다. 이쪽 길로 가거라, 내가 길을 단축해 놓았으니 일다경 내로 산 입구에 도착할 게다. 얼른 마을로 가거라.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 엥이.. 빨리 귀문을 열어서 귀로를 데려오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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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이제 완전히 산을 빠져나왔으니 강철이도 우릴 쫓아오진 않겠지?"
“헉헉헉, 응, 오라버니, 그나저나 얘들은 지금 어디에 있으려나? 우리가 너무 늦었잖아?”
“그 빈 집으로 가 있겠지. 지금 우리가 거기 말곤 갈 데가 어디라고.”
소백과 차선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빈집으로 달려갔다. 시간은 흐리고 흘러 벌써 신시(申時, 오후 3~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전신아, 도희야, 얘들아, 집에 있냐?”
“도희야, 금정아! 언니랑 오라비 왔어!”
둘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불렀지만 빈 집은 아무도 없는지 고요했다.
‘이거 뭔가 수상한데..’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든 소백이 안방과 사랑방의 낡아 빠진 문을 세차게 열어젖히며 내부를 확인했다.
“없어..!”
“없어? 여기도..”
소백이 방 안을 확인하는 동안 차선은 부엌과 창고 내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도 없었다. 방 안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곤 요 며칠 이 빈집에 머물며 가져다 놓은 낡은 이불과 빨래를 하고 널어놓은 옷가지 몇 개가 전부였다.
“어, 오라버니!! 언니!! 언니 맞아..?”
담장 너머로 별안간 도희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집 안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 헉헉..”
“야, 김도희, 너 어찌 된 거냐? 전신이는? 금정이는?”
“그.. 그게..”
어쩐 일인지 도희는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 추운 날이 아니었고 솜옷까지 입고 있었지만 얼굴까지 창백한 게 필시 무슨 일이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