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동헌(수령의 정청)이 어디오?”
근중의 덩치에 압도된 아전들은 근중의 질문에 쉬이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저쪽이오. 그.. 그런데 왜 그러시오. 지.. 지금 사또는 자리에 없을 텐..”
“이방은 있지 않소?”
근중은 마당을 가로질러 바로 동헌으로 직행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아전 하나가 근중을 재빨리 쫓아왔다. 근중은 당장이라도 동헌의 문을 열고 이방을 만나볼 참이었다.
‘덜컥-‘
하지만 동헌은 비어있었다. 근무 시간이 끝난 지 이다경도 지났으니 이 시간에 사또와 이방에 여전히 관아에 머물리 없었다. 필시, 집으로 갔거나 음주나 노름을 즐기러 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 저기, 지금 이방은 여기에 없습니다. 내일.. 내일 다시 오시지요.”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오?”
“… 네에.. 모르옵니다만..”
근중이 동헌 근처에서 이방의 위치를 확인하는 동안 마당에 갑사 여럿이 모여들었다. 아무래도 근중이 관아에 직접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오?”
갑사 중 장급으로 보이는 자가 근중에게 물었다. 근중이 뒤를 돌아보니 다들 평온한 척하는 얼굴을 한채 한 손은 검과 활에 붙어있는 걸로 보아 필요시 언제든지 공격할 작정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허허허, 나 하나 때문에 이렇게 우루루 몰려온 거요? 난 그저 이방께 볼 일이 있어서 왔는데.”
“그렇다면 내일 날이 밝으며 절차를 밟으시지요.”
‘끼이이.. 끄으으.. 끄아아..’
근중이 갑사들의 얼굴을 살펴보며 못 이긴 척 돌아 나가려는 순간, 동헌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근중은 그 소리를 갑사들도 들었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돌려 갑사들의 동태를 살폈으나 돌아보았으나 갑사 여섯 모두 그 소리를 못 들었는지 오로지 근중의 얼굴만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근중은 곧장 동헌의 대청으로 뛰어올라가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대청의 우측에 붙은 방문을 빠르게 열어보았다.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근중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갑사장이 근중이 있는 대청으로 뛰어올라왔다.
“여보시오. 이렇게 무례하게 굴면 당장 잡아가겠소. 이게 뭐 하는 짓이오?”
“아아, 하하하. 걱정 마시오. 난 아무도 없는 동헌에서 소리가 나길래 관아의 안전을 위해 확인을 하려 했던 것뿐이오.”
“관아에는 현재 기갑사(騎甲士), 경갑사(京甲士) 등 무장 갑사만 오십이오. 여긴 안전하니 얼른 동헌에서 썩 나오시오.”
근중이 여유 있게 돌아보며 갑사장과 눈을 마주친 순간 별안간 방 안에서 다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갑사장 역시 소리를 들은 눈치였다.
“이래도 안전하오?”
근중은 대청을 내려가려다 말고 다시 방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안은 수령의 업무 서적들이 쌓인 책상과 작은 책장들 외에 별다른 건 없었다. 하지만 방안을 매섭게 살펴보던 근중은 별안간 낮은 책장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쪽문을 발견했다.
‘동헌에 저런 쪽문이라니..? 저런 게 있을 이유가..’
‘달그락. 끼이이이이.’
근중이 쪽문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는 찰나, 갑자기 그 쪽문이 천천히 열리는 것이 아닌가.
“이보시오. 당장 내려가지 않으면 무력으로 진압하겠소.”
“자, 잠깐. 저기, 저기 저 안을 보시오!”
그때였다. 근중이 수상히 여기던 열린 쪽문 안으로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들 여럿이 마치 여기저기 널브러진 듯 꿈틀거리는 다리만 보였고 기괴한 신음이 간간이 새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저건, 이것 봐라. 확실히 관아에 뭐가 있긴 있구나.’
근중의 말에 방 안의 수상한 동태를 확인한 갑사장 역시 문틈 사이의 기괴한 모습에 흠칫 놀라는 듯했다.
“그.. 그래도 이건 아니 되오. 당장 동헌 밖으로 나가시..”
하지만 근중은 갑사장의 대꾸는 안중에도 없었고, 이 수상하고 미심쩍은 기괴한 장면을 확인하기 위해 동헌의 방 안으로 들어가려 할 참이었다.
“으으.. 으아아아악-“
“끄아아.. 호.. 호.. 호랑이다..!”
갑사들이 근중과 대치하는 사이, 갑자기 관아의 담을 넘은 호랑이가 마당으로 가로질러 달려온 것이다. 갑사들은 갑작스러운 호랑이의 습격에 몹시 당황하며 여기저기 흩어졌다. 갑사장 역시 꺼내든 칼을 호랑이 쪽으로 겨누고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두려움에 팔이 떨리고 있었다. 이 난리통에도 차분하게 사태를 모두 지켜본 근중은 태연하게 갑사장에게 물었다.
“아니, 당신들이 갑사들이면 호랑이를 잡아야 하는 게 아니오? 헌데, 왜 이리 다들 호들갑이오?”
“뭐.. 뭐요? 우리는 경갑사(京甲士)와 기갑사(騎甲士)들이오. 착호갑사가 아니란 말이오.”
마당에 뛰어든 호랑이는 겁에 질린 갑사들을 향해 오늘의 먹잇감을 찾기라도 하듯 고개를 돌리며 두리번거렸다.
“에잇-“
‘꽈아악. 핑-‘
‘핑- 핑-‘
곧 갑사 몇몇이 화살을 쏘아 호랑이를 제압하려 했으나 호랑이는 바람처럼 이를 모두 피하고는 그 사이 먹잇감을 정했는지 곧 어느 갑사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으아.. 으아아아악..!”
“뭐.. 뭣하냐! 얼른 착호갑사들을 불러라. 천검을 데리고 와! 어, 어서!”
갑사장은 동헌의 대청에 서서 갑사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호랑이는 쓰러트린 갑사를 제쳐두고, 고개를 돌려 갑사장을 쳐다보더니 이윽고 갑사장이 있는 대청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이에 근처에 있던 근중도 긴장이 되었는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어어.. 으헉..!”
갑사장은 달려드는 호랑이를 향해 큰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호랑이는 자세를 낮춰 능숙하게 피하고는 앞발로 갑사장의 가슴을 내리눌러 순식간에 갑사장을 넘어트리고 말았다.
‘꿀꺽.’
이에 근중이 갑사장을 구하기 위해 호랑이에게 덤벼들 태세를 취하려 할 때였다. 갑자기 호랑이가 고개만 쏙 하고 돌려 근중을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이에 천하의 근중 역시 오금이 저린 기분을 피할 순 없었다. 그렇게 호랑이와 눈을 맞춘 경각의 시간 동안 근중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본듯한 이 눈빛은 뭐지. 저, 저 녀석.. 뭔가 얘기를 하는 것 같잖아?’
“저기, 저기 대청 위에 보시오. 갑사장이 당하고 있소.”
‘꽈아악. 핑-‘
‘핑- 핑-‘
곧 멀리고 착호패들이 쏜 화살이 대청으로 날아들었다. 호랑이는 근중을 쳐다보다 말곤 다시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화살을 모두 피했다.
‘팍-‘
“끄아악! 야, 화살, 내가 맞았잖아. 그만, 그만 쏴..!”
호랑이가 피한 화살 중 하나가 그만 대청에 누워있던 갑사장의 허벅지에 꽂히며 비명을 지르자 착호패는 화살 쏘기를 중단하고 칼과 방패를 꺼내 들고 호랑이 쪽으로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달려온 천검은 상황을 모두 파악한 뒤 대청에서 대치 중인 호랑이를 살폈다.
근중은 호랑이가 언제 달려들지 몰라 여전히 바닥에 자세를 낮춘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거 좀 이상한데. 보통 호랑이라면 이쯤에 뒤나 옆 통로로 튀어 달아나거나 우리에게 달려들 텐데.’
대청에 서서 착호패를 바라보는 호랑이는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호랑이의 위세는 여전히 대단했지만 당장 공격할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저.. 저 녀석. 월화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