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러니까. 원래 살던 집주인은 어디 증발이라도 했는지 행방이 묘연하고 그 가족들은 이후, 짐 싸들고 야반도주라도 했는지 아무도 없고.. 그런데 당시 사또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 이방이 제일 수상했단 말이지. 그런데 너네들이 왜 거기서 나오냐고, 응?”
“이.. 이방이요?”
“그래, 거기 살던 대벽 마을 이방 말이야.”
“저.. 저희들은 그 이방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관련이 없는데요.. 저희는 그저 악령을..”
‘쾅-!’
계속해서 똑같은 문답이 오가는 상황에 짜증이 난 포도부장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고 전신과 금정은 깜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에이씨,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저 귀신을 잡는 애들이지, 이방과는 관련이 없다? 그리고 너네 역시 이방이든, 에이씨, 아니다. 뭐, 암튼 귀신을 쫓는다? 그 말인 게냐?"
“네.. 넷, 맞습니다..”
포도부장 이정만은 다시 한번 부리부리한 큰 눈으로 전신과 금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정만의 경험상 이 아이들은 당시의 참극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였다.
“너희들 내가 왜 이 지방 고을까지 온 줄 아느냐?”
갑작스러운 포도부장의 질문에 전신은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모.. 모릅니다.”
“지난, 미월에 여기서, 한양에 비하면 이 코딱지만 한 고을에서 서반 아전 여럿이 죽어나갔다. 그것도 한 날에 말이지. 허허, 포도대장님은 내게 이 사건을 귀신 씐 자들의 일이니 무료부장(無料部長)급으로 사람을 보내서 그 방면으로 조사하고 조용히 다녀오라 했지만, 결국 내가 직접 행차를 했다. 왠 줄 아나? 내 경험상, 그리고 육감상 이건 그냥 보통 살인 사건이 아니야. 필시, 아주아주 구린 무언가가 엮여있는 거지.”
‘꿀꺽..’
전신은 포도부장이 하는 얘기를 전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자신들에 대한 의심과 혐의는 점점 벗겨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봐.”
“네..?”
“나가보라고. 써억, 얼른 사라져. 어쩐지, 이런 애들 데리고 무슨 일을 한다고. 집으로 돌아가. 너희들에게 더 이상 볼일은 없다.”
“네? 저, 정말요..?”
“진짜요? 우리 집에 가도 돼요?”
전신과 금정은 포도부장의 뜻밖의 처사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당장 안 나가면, 저기 옥에 가둘 테니, 얼른 사라지거라. 난 퇴청하고 밥이나 먹어야겠다.”
“가.. 감사합니다! 가, 가자, 금정아.”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갑작스러운 해방에 전신은 물론, 금정이까지 포도부장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꼬르륵-‘
전신과 금정은 집에 가도 좋다는 소리와 함께 긴장이 풀렸는지 배에서 그만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지만 배가 고픈지도 몰랐다.
“야, 너네들.”
포도부장이 밖으로 나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불렀다. 전신은 혹시나 자신들을 다시 잡아갈지 몰라 두려운 마음에 마른침을 삼키며 발걸음을 멈췄다.
“왜, 왜 그러십니까. 저희 지금 바로 나갈 건데.. 요..??”
“아니, 너네 말고, 나졸들아, 듣고 있냐? 얘네들 집에 갈 때 감자라도 몇 알 싸줘라. 쌀 있으면 쌀도 한 되 퍼줘라. 난 간다.”
전신은 마냥 공포스럽게만 생각했던 포도부장이 감자와 쌀까지 퍼주는,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 얼떨떨하게 이를 지켜보다 포도부장이 저만치 한 길도 넘게 떨어지고 나서야 큰소리로 인사했다.
“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가, 감사합니다!”
“오라버니, 우리 먹을 거 받았어? 우리 저녁에 이거 먹을 수 있어? 흰쌀밥이야?”
“응,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 형님과 누이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야.”
—————
근중은 일종의 협상을 해볼 계획이었다.
갑사들이 훈련하고 있는 관아에 직접 들어가 수령과 아전들을 마주할 때 그들이 동요하면 그들의 목표는 분명 자신과 척결패일테고, 만약, 그들이 근중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면 자신들이 주목적은 아닐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어디까지 연결이 되어있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 일은 그냥 이방의 사적인 일이거나 대벽 마을에 한정된 일일 수 도 있잖아? 명백한 원인을 알기 전까지는 두려움에 괴롭지만, 이를 알고 나면 오히려 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 오늘이.. 그날이다.’
“장태야, 물포야, 잘 듣거라.”
“네, 형님.”
“내 관아에 직접 들어갈 것이다.”
“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지금 안 그래도 갑사들이 우릴 치려고 저러고 있다잖아요~!! 아, 어쩌시려고..”
장태와 물포가 한사코 근중을 말리자 근중은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그, 그야..”
“호랑이를 산이나 집에서 마주하면 내가 살기 힘들겠지? 그런데 만약, 호랑이가 제 굴을 채 나서 기도 전에 호랑이 굴로 쳐들어가면 오히려 이길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
언제나 그렇듯 설득력과 힘이 있는 근중의 말에 둘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천검을 믿느냐?”
둘 역시, 근중과 천검이 서로 알고 지낸 지 오래이나 그다지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근중의 질문은 이런 상황만 점점 더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아, 형님, 그 자를 어찌 믿습니까? 사실, 갑사에 대해 알려준 것도, 그것 때문에 우리가 더 헷갈리지 않습니까?”
“물포야, 쫌.”
“하하, 뭐, 그 말도 일리는 있다.”
물포의 거침없는 말에 근중도 살짝 웃어 보였다.
“형님, 그래도 전 천검 형님이 그 정도로 우릴 싫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갑사들의 동태를 일러준 데에는 필시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장태의 대답에 근중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근중 역시 천검의 말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다.
“맞다. 그래서 오늘 관아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에 대한 그들의 계획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가 먼저 확인하고 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 갑사들이야 훌륭하겠지만, 지금 그들은 전투 준비 중이다. 이때 내가 관아에 들어가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느냐?”
“형니임..! 아유..”
근중은 장태와 물포가 말리는 것도 잠시, 곧바로 관아로 직행했다. 근중의 결정을 그 누구도 제지할 순 없었다. 척결패의 시작과 끝이 근중이었고 그의 선택은 항상 옳았기 때문이다.
“장태 형님, 근중 형님 좀 말려보쇼. 아, 어쩐다요. 저러다 우리 모두 잡혀가면..”
“야이씨, 넌, 지금 이 순간에 니 걱정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린 모두 척결패잖소. 만약, 형님의 작전이 잘못되면..”
“기다려봐라. 다 생각이 있으실 게다.”
근중이 관아의 입구로 들어가자 나졸 하나가 근중을 막아섰다.
“웬일이냐.”
“이방님께 볼 일이 있다.”
“오늘은 모든 업무가 끝이 났으니 내일..”
그러자 반대편에 있던 나졸의 두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지더니 근중을 향해 냅다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 근중 형님..?!”
“어허, 나 좀 들어가자.”
“네, 넷!”
나졸 둘은 곧 관아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근중이 관아의 중앙 마당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근중을 쳐다보았다. 육 척이 넘는 키와 솥뚜껑 보다 한자는 더 커 보이는 등판을 가진 거대한 맹수와 같은 사내의 등장에 누구라도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