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최겸세, 수수께끼의 사내 1

by Rooney Kim

성주산 자락. 성주산성


겸세는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의를 거의 탈의하고 앞섶도 없는 마고자 하나만 걸친 채 맨손으로 가마솥만 한 바위를 두 개씩 옮기고 있었다.


칠 척에 가까운 키, 솥뚜껑을 두 개는 붙여놓은 듯한 어깨와 등판, 소도 때려잡을 듯한 거칠고 험한 손으로 그 누구와도 한마디 농담 없이 성곽에 쌓을 바위만 가져다 나른 지 벌써 석 달이 지나고 있었다.


"야, 저 새끼는 왜 이래 잘 버티냐. 덩치만 커서 하는 짓이 꼴같잖은데. 확 그냥."


"아, 칠성 형님, 참으슈. 이번에 또 사고 치면, 보름치 삯이 없을 거라 하지 않았소."


"형석아."


"네, 형님."


"너는 이 새끼야. 이 형님 기분이 새우젓같다는데 그런 소리가 튀어나오냐?"


'아, 씨.. 이 형님이 또..'


칠성의 변덕에 형석은 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아, 박필두, 박양반! 이리 와보거라."


점심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터라 다들 다시 바삐 성곽 보수와 새로운 성곽 쌓기에 한창일 때 칠성이 한바탕 싸움놀이판을 벌여보려고 했다.


"눼눼, 형님, 무슨 일이 십니까?"


필두가 달려오자 칠성이 나무 기둥에 기댄 앉은 채 눈짓으로 겸세를 가리켰다.


"저 새끼. 벌써 석 달이 되었다. 왜 아직도 저 모양이냐..?"


"네?!"


필두가 또 한 번에 퍼뜩 못 알아듣자 형칠이 필두의 귀에 뭐라 속삭였다.


"아.. 아아..! 형님, 어..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저 새끼는 말로도 안되고 이 주먹.. 이 주먹으로도 솔직히.."


"솔직히 뭐..?! 뭔데 이 새끼야아!"


"안.. 안되던데요. 전에 광태랑 애들 팔 꺾이고, 목 돌아가고.. 기억 안 나십니까..?"


"형님, 그런데 지금은 뭐, 뭐가 불만이신데요?"


"아나, 오늘따라 이 새끼들이 왜 이리 눈치를 못 채지? 형석이도 그러더니, 너도 그러냐? 야, 너도 형석이 따라가냐?"


사실 형석과 필두도 가끔은 의아했다. 만약, 누군가가 거슬리는 행동을 하거나 잘못을 했다면 흠씬 두들겨 패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겸세는 딱히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만약, 거슬리는 게 있다면..


"저 새끼 자체가 거슬려. 일도 적당히 잘해야지. 참, 말 한 번 잘했다. 전에 광태랑 팔보랑 둘이 덤볐다가 묵사발 난 거, 그것도 복수해야지 않냐?"


"형님, 그땐 녀석들이 괜히 깝죽거리다가 맞은 거고요. 그 이후로 아무도 겸세 저 녀석 안 건들잖아요. 아니, 일 잘하는 친구를 왜.."


"아쭈, 형석아, 너 많이 컸다? 이제 내 말에 막 반항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요, 형님.."


형석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실망한 칠성은 필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역시 한 눈치하는 필두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형님! 요 아래 성곽 쌓는 애들이 겸세인가 꼄세인가 저 새끼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애들이 좀 있던데요. 제가 가서 바람을 좀 잡아보겠습니다."


"흐흐흐,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필두가 말이야, 아주 많이 올라왔어. 아주 좋아."


해가 질 무렵 아랫 성곽으로 내려간 필두는 덩치 크고 어린 녀석을 대여섯 명을 모아놓고 슬슬 바람을 잡고 있었다.


"너도 여기서 일한 지 넉 달이 넘었다고? 그런데 녀석이 한 번도 인사를 안 했단 말이지?"


"그렇다니까요. 한 번은 제가 먼저 아는 척을 했는데도 그냥 쌩하고 지나가던데요. 귀가 안 좋나 했더니 지나가던 까치 소리는 듣고 손을 흔들던데요?"


"뭐? 까치? 으하핫"


"필두 형님, 전 그 새끼가 예의를 모르고 저리 날뛰는 것도 거슬리지만, 그 새끼가 진짜 그렇게 센지 그게 궁금합디다. 낄낄."


"형님, 요, 요 녀석, 우리 고을 장사 출신입니다. 나졸 다섯과도 붙어서 이긴 적이 있을 정도로 무예도 뛰어나요."


필두는 주변의 극찬에 녀석의 몸을 찬찬히 살폈다. 오척이 훨씬 넘는 키, 허벅다리만 한 팔뚝, 소나무 같은 목과 바위만 한 덩치는 누가 봐도 장사처럼 보였다.


"이렇게 타고 난 애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냐?"


그러자 녀석은 씩 하고 웃어 보였고 옆에 있던 친구가 마저 답했다.


"살인 누명 쓰고 옥에 다녀왔잖아요. 낄낄, 그런데 이 새끼도 가담했는데 진짜 죽인 애는 따로 있거든요."


"좋다. 그럼 다른 애들은 뭐 자랑할 거 없냐?"


"야는 팔힘이 좋아서 두세 명이랑 싸워도 다 이기고, 쟈도 동네 씨름대회 장사 출신이고.. 아! 저기 보이십니까? 나무 둥지 옆에 앉아 있는 놈은 살주계 출신입니다. 흐흐흐."


"살주계? 진짜냐? 하긴, 조선팔도에 살주계가 한 둘이냐만도."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요? 필두 형님?"


곧 필두를 포함해 일곱 사내가 성곽 아랫 길목 입구 여기저기에 진을 쳤다. 이를 알리 없는 겸세는 일과를 마치고 혼자 산길을 따라 내려오는 중이었다.


'탁. 투둑.'


별안간 돌멩이가 떨어져 구르는 소리에 겸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저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


그렇게 홀로 흥얼거리며 걷던 겸세가 아랫 길목의 입구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에잇!"


겸세의 뒤로 마치 누가 보쌈이라도 하듯 커다란 가마니를 뒤집어 씌웠고 그와 동시에 두 명의 사내가 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으윽.."


"쳇, 뭐야? 별거 아니네?"


"야, 밟아!"


필두는 겸세가 쓰러진 걸 확인하자마자 신이 났다.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녀석의 꼿꼿한 자존심을 드디어 뭉개버릴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퍽퍽. 팍팍팍!'


"야야, 죽지 않을 만큼만 쳐 밟아, 크크크. 꼄세야, 이제 좀 정신이 드냐? 어린놈의 새끼가. 크크크."


팔도에서 모인 장사들 여섯이 한꺼번에 덤벼들어 한 식경이 넘도록 흠씬 두들겨 패자 초반에 꿈틀 하며 피하던 겸세는 기절이라도 했는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움직임도, 고통의 신음도 없이 그 자리에 뻗어버렸다.


"야, 너네들 너무 심하게 팬 거 아냐? 죽으면 안 돼. 이 자식, 그래도 일을 잘해서 성곽에 얼마나 필요한 놈인데. 으흐흐흐흐."


신이 난 필두가 쓰러져있는 겸세 앞으로 가서 그를 들어앉혔다. 겸세는 여전히 온몸이 가마니에 덮인 채 조용히 앉아있었다. 너무 조용하니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야, 이 자식 가마니 벗겨봐."


'휙-'


"으아앗..!"


"허억..! 이게 뭐.. 뭐야?!"


녀석들이 가마니를 벗겨보니 그 안에 겸세는 온데간데없고 사람 형태를 한 커다란 짚 뭉텅이가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뭐.. 뭐야. 이 새끼, 어.. 어디로 간 거야?"


"부.. 분명히 사람이었는디.. 저희가, 저희가 이 새끼를 밟을 때 느낌도 정말 사람이었는디요.."


필두와 일당은 당황스러움을 넘어 약간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가뜩이나 수수께끼에 싸인 녀석이라 다들 이렇게 기습을 하지 않고는 이기기힘들겠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이 자식, 뭔가 도술을 쓰나 보다. 주변을 찾아봐!"


"네, 형님."


필두가 일당을 시켜 겸세의 행방을 찾으려던 차였다.


"흐아아아아아아암~"


별안간 공중에서 아주 큰 소리로 하품하는 게 들리는 게 아닌가.


"뭐.. 뭐야, 저 녀석.."


"혀.. 형님, 저 위에 보십쇼. 저 위에.."


녀석들이 가리킨 곳에는 다름 아닌 겸세가 나무 위에 앉아 한 손에는 삶은 감자를 들고 먹으며 한심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꽃이 필 무렵은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리그와 문피아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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