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두는 겸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당장 그를 향해 소리치고 싶었지만 잔뜩 겁에 질려 개미만 한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휘이익. 탁.'
필두와 여섯 장사들을 내려다보던 겸세는 감자를 한 입에 다 욱여넣고는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너네들이구나. 요 아래 산등성이에서 성곽 쌓는 애들."
겸세가 녀석들을 둘러보며 다가왔지만 녀석들은 한마디도 못한 채 어찌할지 갈피를 못 잡고 오직 필두와 겸세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장사 출신 녀석이 필두를 향해 속삭였지만 필두 역시 긴장한 탓에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형니임..! 칠까요? 쳐요?"
그제야 필두는 결심을 한 듯 겨우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ㅊ.. 쳐라! 모두 한꺼번에 덤벼라!!"
장사 출신의 거대한 몸집을 가진 녀석과 그 뒤로 무식한 팔힘으로 솥뚜껑도 아작 내는 녀석이 달려갔다.
'슈아악-'
'슈우웅-'
둘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찰나의 차이로 시간차를 두며 주먹과 발차기를 날렸다.
"어엇.. 크헉."
'우두둑.'
"어.. 으아아아악!"
하지만 겸세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장사의 발차기를 받아내고는 다리를 따라 미끄러지듯 팔을 움직여 바지 고름을 휙 하고 잡아끌어 뒤로 던져버렸고, 왼손으로 팔힘이 좋다던 녀석의 주먹을 가볍게 받아내고는 녀석의 주먹을 그냥 사정없이 꽉쥐어 으스러트려버렸다.
'괴.. 괴물이야. 사람 맞아..?'
필두는 보름 전 그날이 떠올랐다. 광태의 팔이 꺾이고 철광이의 목이 돌아가 사경을 헤매다 겨우 살아난 그날 말이다.
'아씨.. 칠성 형님은 자기가 싸울 것도 아니면서 왜 또 저 새끼를 건드려가지고.'
겸세 뒤로 장사가 비틀거리며 일어났고 팔힘쟁이는 으스러진 오른손을 펴지도 못한 채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울먹이며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끝났냐? 그럼 난 이제 저녁 먹으러 간다."
삽시간에 상황이 종료되자 겸세가 몸을 돌려 산 아랫길로 내려가려던 차였다.
필두 옆에 있던 넷이 동시에 겸세에게 달려들었다. 덩치가 큰 녀석을 앞으로 내세우고 살주계 출신이라던 녀석은 셋 뒤에 숨어 허리춤에 항시 소지하던 단도를 쥐었다.
"야아압!"
'퍽- 윽.'
'퍼버벅. 끄아압'
눈 깜짝할 사이에 살주계 녀석 앞에 있던 셋이 입과 코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겸세의 주먹이 어찌나 빠른지 눈에 보이지도 않아 얼핏 보면 셋이 동시에 쓰러지는 것 같았다.
살주계 녀석은 당황했지만 어쩌면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경험상 상대방의 공격이 끝난 시점이 가장 무방비 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스으윽- 휙-'
셋을 한꺼번에 처리한 겸세 앞으로 살주계 녀석이 파고들더니 겸세의 왼쪽 목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필두는 오싹함도 잠시, 살주계 녀석이 한 건 할 수 도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단도? 옳지. 그래 저 놈도 인간이라면 칼에는 당하지 못하겠지.'
'탁. 파직.'
하지만 겸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왼편으로 날카롭게 파고들던 단도의 날을 꽉쥐어 막고는 그대로 꺾어 단도를 부셔버렸다.
당황한 살주계 녀석은 바로 왼쪽 골반을 뒤틀어 몸에 무게를 잔뜩 실은 뒤 발차기를 날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탁. 팍. 턱-'
'으윽, 이 새끼는 사람이 아닌 거 같아.'
모든 연속 공격이 막힌 살주계 녀석은 바지춤에 숨겨둔 독침을 꺼내 들었다.
'무공이 난 놈이라 당장 죽여버리긴 싫지만.'
'휙'
살주계 녀석이 손에 독침을 숨긴 채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겸세는 본능적으로 그 주먹을 막았다.
'지금이야.'
살주계 녀석이 손에 숨긴 독침으로 겸세의 팔을 찌르려 할 때였다.
'우두두두둑.'
'끄아아아아아아아악..!'
겸세는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녀석의 손이 아닌 팔목을 잡아 반대편으로 휙 하고 돌려 으스러뜨리듯 꺾어버렸다.
'툭.'
곧 독침이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겸세가 이를 주워 팔목이 꺾인 채 고통에 신음하는 살주계 녀석의 종아리에 독침을 냅다 꽂았다.
"끄아악! 아, 안돼. 그거 독침이야..!"
그러자 겸세가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넌 되고 난 안 되냐? 허허, 웃긴 놈일세."
겸세는 고개를 들어 필두를 바라봤다.
"거기, 필두 양반, 오늘 초상 하나 치르기 싫으면 저 녀석들이랑 이 놈 얼른 의원에 데려가쇼."
필두는 공포에 얼어붙어 아무것도 못하고 있던 중 겸세의 한 마디에 얼른 살주계 녀석에서 달려갔다. 독침을 맞은 녀석의 안색은 보랏빛이 되어 벌벌 떨고 있었고 온몸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필두 역시 손과 발이 떨려 감히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이었지만 이대로 두었다간 살주계 녀석이 당장 죽을 것 같았다.
"야.. 야이 놈들아, 얼른 와서 이 자식 들어라. 마을 의원으로 데려가자. 어서!"
겁에 잔뜩 질린 채 소란스럽게 산아래로 내려가는 녀석들을 본 겸세는 목을 이리저리 돌려 풀고는 뒤따라 마을로 내려갔다.
'아, 오늘 저녁은 뭘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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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아, 금정아..! 너, 너희들 어떻게 나온 거냐?"
둘을 구하러 가기 위해 나름의 작전을 세우고 만반의 준비를 다 한 소백과 차선 앞에 전신과 금정이 나타났다.
"너희들 괜찮아? 어디 다치거나 맞은 덴 없어?"
"응, 괜찮아."
"관아에 끌려갔다면서? 나졸들이 괴롭히진 않았어? 아니 도대체 왜 끌고 간 거야. 내 이것들을 진짜.."
소백이 또 슬슬 열을 올리자 차선이 그를 막아서며 다그치고 말을 이어갔다.
"전신아, 손에 든 건 뭐야? 웬 쌀이랑.. 감자야?"
그러자 여전히 놀란 마음에 얼어있던 전신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아, 누나, 이거 포도부장님이 주셨어요. 그분은 좋은 사람 같아요!"
"응. 맞아 맞아, 언니, 이거 우리가 받아 왔어요."
"포도부장? 포도부장이라고..?!"
"응."
"오빠, 포도부장이면 포도청에서 나온 사람아냐? 포도대장 아랫사람이지?"
"그렇지. 엄청 높은 사람이지. 어, 그런데 그 사람이 여기에 왜 와 있데? 관아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몰라요. 그런데 그.. 아! 갑사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소백과 차선은 갑자기 심각해졌다. 갑사들뿐만 아니라 포도부장까지 왔다면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자,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전신아, 금정아, 방에 가서 쉬고 있어. 내가 오빠랑 밥 차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