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밀실의 비밀

by Rooney Kim


“쾅-“


이정만은 닫혀있던 동헌의 사또 방문을 주먹으로 쳐 열어젖혔다.


“뭐야, 마당에도 대청에도 아무것도 없고, 이 방에도 뭣도 없는데, 그동안 뭘 한 게냐? 조금이라도 사소한 일이 발생하면 내게 당장 튀어와 일러바치라고 하지 않았느냐?”


“죄, 죄송합니다요..”


동헌의 마당에 선 나졸 둘은 포도부장의 위세에 눌려 벌벌 떨며 사죄했다. 나졸들에게 포도부장은 그 얼굴은커녕 그의 의복조차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 갑사들과 대치했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네, 넷.. 저희도 입구에 있다가 큰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 봤더니 이미 호랑이가 날뛰고 있었습니다요..”


“그래서, 착호 녀석들이 왔고?”


“네..”


‘그렇다면 애초에 산적 두목 녀석은 왜 여길 온 거지? 여기에 올 이유가 없잖아? 여기에 갑사들이 있다는 걸 눈치챘나? 조만간 산적 소탕을 할 거란 걸 안 건가?’


“다른 건? 특이 사항은 없었나? 녀석이 늦은 시각에 관아에 온건 필시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라고, 모르겠어?”


정만의 윽박에 나졸들은 오금이 저려 죽을 지경이었다. 그도 그런 게 나졸들은 동헌 내에서 일어난 일을 알리가 없었기에 할 말이 없어 더 피가 말랐다.


“포도부장님, 부장님!”


그때, 행정 업무를 보는 동반 아전 하나가 멀리서 달려오며 포도부장을 불렀다.


“뭐냐, 별거 아니면 나중에 보자. 지금은 바쁘니.”


“포도부장님, 밝혀냈습니다. 이, 이유요. 산적 두목 근중이 여기에 온 이유 말입니다.”


“뭐라? 그게 사실이냐? 그럼 당장 말해보거라.”


동반 아전은 숨을 가다듬고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곧장 정만에게 그 연유를 일렀다.


“근중이, 근중이 동헌의 사또 방문을 열고 여기저기 수색이라도 하듯 살폈다고 합니다.”


“사또의 방? 저기 대청 옆방 말이냐?”


“네넵. 그리고..”


“거긴 별거 없던데.”


“사실, 그 방안 쪽문 안으로 작은 서적 창고가 하나 있는데.. 그 안에..”


“거기에..? 뜸 들이지 말고 얼른 답하거라.”


동반 아전은 정만의 뒤쪽으로 잔뜩 겁을 먹고 서 있는 나졸 둘을 바라보았다. 마치 이 일은 그 누구도 들어서는 안된다는 눈치였다.


“어이, 너네 둘, 저쪽으로 가서 일 보거라.”


“네..? 넷..!”


정만의 명령에 둘은 다시 관아의 입구로 달려갔다. 정만은 아전 쪽으로 돌아보며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도대체 뭔데? 뭐길래 나를 이토록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냐. 별 것 아니면 아주 그냥 혼쭐을..”


‘부스럭 스윽-‘


별안간 동반 아전이 품 안에서 보자기를 하나 꺼내 펼쳤다. 펼쳐 보인 작은 보자기 속에는 갈색 가루가 보였는데 갈린 모양새는 투박했지만 예사롭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이냐?”


동반 아전은 갑자기 주변을 살피더니 다시 보자기를 덮고는 꽁꽁 싸맸다.


“포도부장님,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이게 그겁니다. 포도부장님이 여기에 오신 그 이유 말입니다.”

동반 아전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정만은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 번개와 같은 속도로 왼팔로 아전의 멱살을 잡고 팔뚝으로 아전의 목을 짓누르며 정청의 벽으로 밀어붙였다.


“이 자식, 넌 누구냐. 내가 여기에 온 이유라니.”


“커헉, 컥컥. 포도부장님. 아이고, 커헉.”


“얼른 말해라. 너도 첩자냐?”


“케헥. 컥컥, 아, 아닙니다. 자, 잠시만, 켁켁.”


정만을 아전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잠시 힘을 풀어 숨통을 틔였다.


“허튼소리로 거짓을 고하면 죽는다. 말해보거라. 이게 어디서 났는지 또 네놈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케켁.. 하이고, 숨 넘어갈 뻔했습니다요. 포도부장님, 저도 그냥 시키는 대로 전달할 뿐입니다. 그저 저 위에 엄청 높은 사람만 있다는 걸 알 뿐입니다.”


아전의 대답은 정만은 다시 한번 아전의 목을 눌러 녀석의 반응을 확인했다.


“크헥.. 켁켁, 지, 진짜입니다. 절 믿어 주십쇼.. 켁켁.”


“그럴 리가. 분명히 들은 게 있을 텐데. 얼른 생각해 보거라.”


정만은 기껏해야 지역 고을의 동반 아전이 자신의 앞에 아편 가루까지 들고 올 정도라면 정말 자신의 편이거나 혹은 함정이라고 생각했기에 알아낼 수 있을 때 모두 캐내야 한다고 믿었다.


“크아악, 케켁. 아맞다.. 자, 잠시만요. 포도부장님, 케켁.”


“거봐라, 생각이 나질 않느냐.”


정만이 다시 아전을 풀어주자 아전은 한 동안 호흡을 고른 뒤 놀라운 얘기를 전했다.


“이건.. 저도 전해 들은 거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요..”


“빨랑 말해라. 얼른!”


“우.. 우참찬님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저, 저도 더 이상은 모릅니다. 진짜입니다. 정말 포도부장님을 도우라고만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동헌의 방을 수색하다가 이를 발견한 것입니다. 지금 방에 가보시면 분명히 바닥에 흩어진 가루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까 전에 이를 거기서 가져..”


“우참찬..? 우참찬(정2품 무관으로 오늘날의 장, 차관급)이라고 했느냐? 거짓이라면 이제 네 목이 달아날 것이다.”


“지.. 진짜 옵니다. 저도 그냥 들은 것으로 그대로 알려드릴 뿐입니다요. 제가 왜 굳이..”


허나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우참찬이라면 전국적으로 모든 무관을 부릴 수 있으니 그게 옳은 쪽이든 부정한 쪽이든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우참찬이라면 김정립 대감님이신가. 정말일까..? 포도대장님도 알고 계신 걸까?’


정만은 아전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벌벌 떠는 모양새가 영 거짓은 아닌 듯했다.


“방은 동헌의 수령 방 말이냐? 내 이미 보았는데 아무것도 없던데?”


“그, 그게. 책장 옆을 보시면 쪽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그 안에..”


“앞장서라.”


“네..?”


“당장 가서 문을 열어라.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


—————


"형, 그런데 대벽산은 어디까지 갔어요? 부적 붙일만한 곳 많죠?"


전신의 질문에 소백과 차선은 잠깐 눈을 맞추더니 머뭇거렸다.


"왜요? 좀 늦게 오길래 어디까지 갔나 해서요."


"그게.."


평소 화통하던 소백이 머뭇거리자 전신과 도희는 뭔가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 다 결계에 걸렸었어."


"네??!!"


소백의 대답에 전신이 깜짝 놀랐다.


"진짜요? 어떻게 빠져나왔어요?"


"들어봐, 결계가 문제가 아니었어. 대벽산 수색을 생각보다 빨리 끝내서 뒤쪽 세 봉우리로 갔거든. 분명 차선이랑 같이 있었는데 갑자기 둘 다 혼자가 된 거야."


"형, 거긴 음기랑 영기가 강한 곳이라 부적 없이 들어가면 무조건 결계에 걸릴 수밖에 없어요.."


"하아.. 그렇지. 그걸 간과한 거지.. 암튼, 둘 다 각자 결계 속에서 헤매다가 그걸 만난 거야."


"뭐요..?"


"강철이."


"네에에??!!"


전신과 도희는 감자를 먹다 말고 뱉을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 어떻게.. 그런데 형 어떻게 살아 나왔어요?"


"야, 내가 누구냐. 나 소백.."


"내가 구했어."


소백이 또 장황하게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려자 차선이 이를 끊었다.


"야아, 너. 하긴 뭐.. 쩝"


웬일인지 소백은 차선의 말을 수긍하곤 입을 다물었다.


"나도 결계에 걸렸었는데.. 해치랑 불가살이가 나타나서 날 먼저 구해줬어. 그리고 소백 오빠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더라고."


"해치랑 불가살이요??!! 진짜 해치였어요? 불가살이는 어떻게 알아봤어요? 걔네들이 얼마나 영리한데요. 모습도 잘 감추고."


"해치? 언니 진짜야? 나도 해치 보고 싶어..!"


해치 얘기가 나오자 평소엔 조용하던 금정이마저 관심을 보였다.


"전신이 네가 평소에 얼마나 많이 얘기했냐. 맞아, 네 말이 맞더라 해치는 마치 강아지랑 곰새끼를 합쳐놓은 것처럼 귀엽고, 불가살이는 처음엔 무서운데 하는 짓이 귀여워서 금세 적응되더라."


"세상에.."


"우와, 언니, 너무 부러워요. 나도 보고 싶어요."


전신과 금정은 물론 도희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둘의 무용담에 푹 빠져들었다.


"형, 누나..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형, 강철이 만났다면서요..?!"


"저 오라버니? 만났지. 나참. 그런데 사지가 묶여 사로 잡혀있더라고."


차선이 말을 끝내자 소백이 다급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아, 그게 내가 강철이인지 모르고 기습을 당해서.. 걔도 진짜 도력이 장난 아니더라고. 정말 내가 묶이지만 않았어도."


"해치랑 불가살이가 날 오빠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더라. 그리고 거기서 해치랑 불가살이가 강철이를 쫓아냈어?"


"어.. 어떻게요?"


전신은 예전에는 본 적이 없는 매우 흥분된 얼굴을 하곤 끊임없이 질문했다.


"해치가 강철이의 화염 공격을 모두 흡수? 아니 흡입했어. 막 빨아들여.”


"맞아요! 해치는 불을 먹고 사니까요! 와.. 나도 그걸 봤어야 하는데.."


"그리고 불가살이가 앞으로 튀어나온 길고 두꺼운 송곳니로 강철이 배를 푹하고 찔렀어."


"와아..!"


"아무튼 그러다가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서 강철이가 달아났어."


"목소리라뇨?!"


"모르겠어. 왠지 그 목소리가 해치랑 불가살이를 기르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어, 걔네들을 기르는 사람이 있다구요?!"


"몰라, 그냥 느낌이 그래. 사람 손을 많이 탄 것 같았어. 우리를 구해주는 것도 그렇고."


"우와.. 그게 진짜라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겠는데요? 산신령이나 뭐 그런..?"


"그렇지. 적어도 산신령쯤은 되어야 해치나 불가살이를 다룰 수 있을 테니까.”


그때, 소백과 차선의 이야기에 두 귀를 쫑긋하고 듣던 금정이가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언니, 그런데.."


"응, 금정아 왜 그래? 말하렴."


"강철이가 우리 마을 근처까지 온 건 아마도.."


"아마도..?"


금정이는 말수가 적어 아주 가끔 입을 열었는데 그때마다 언니, 오빠들은 금정이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전에 꾼 꿈이랑 관련이 없나 해서요. 밤하늘만큼 큰 눈요. 꿈에서 본 그 눈.."




눈꽃이 필 무렵은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리그와 문피아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리그: https://novel.naver.com/my/myNovelList?novelId=1020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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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snow-moun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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