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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이 필 무렵
40화 물포, 잡혀가다
by
Rooney Kim
Jun 6. 2023
'정오에 대벽산 북녘 방향 중턱으로 나오시오. 이번 갑사의 파견 건으로 긴히 드릴 첩보가 있소. 혼자 나오시오. 여럿이 움직이면 위험하오.'
잠깐 휴식을 취하러 방으로 들어간 물포는 자신의 옷가지 옆에 놓인 간찰을
발견했다.
'뭐야, 누가 보낸 거야.'
하지만 간찰에는 해당 내용만 적혀있을 뿐 발신인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첩보라고..? 척결패와 관련된 건인가? 그렇다면 형님께 꼭 알려야.. 그런데.'
근중에게 간찰을 가져가려던 물포은 가던 길을 멈췄다.
‘혼자 나오라고? 여럿이 가면 위험하다잖아.. 이걸 굳이 나한테 따로 보낸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물포는 이 간찰을 보낸 이 가 누구일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동반 아전일리는 없어. 우리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으니 어림도 없지. 어, 그럼 서반 아전이 아닐까..?'
물포는 발길을 더 서둘렀다. 정오까지 약속한 장소로 가려면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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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형님!"
장태가 평소답지 않게 큰소리로 근중을 부르며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형님, 누군가 우리 거처로 이 간찰을 돌멩이에 묶어서 던지고 갔습니다. 누군지 알아보려 했지만 어찌나 발이 날랜지 저보다 산을 더 잘 타는 자 같았습니다."
'내용이 뭔데 그래?"
'정오에 대벽산 북녘 방향 중턱으로 나오시오. 이번 갑사의 파견 건으로 긴히 드릴 첩보가 있소. 최소 인원으로 나오시오. 여럿이 나오면 위험하오.'
간찰을 읽은 근중은 고민에 빠졌다. 어제 관아 사건 이후로 관아나 갑사가 장난을 치거나 덫을 놓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형님, 어쩔까요. 거실 겁니까?"
"수상하긴 해. 최소 인원으로 나오라니 나를 잡아들이겠단 건지."
"형님, 이건 믿을게 못됩니다.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도 영 감이 안 좋다. 필시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 같아. 처음 본 필체이기도 하고 물포에게도 보여주자. 물포는 어디 갔냐?"
"아.. 그게 말입니다."
장태가 망설이자 근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 녀석이 또 아침부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요즘 종종 무슨 일이 있는지 안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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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헉. 이쯤일 텐데. 뭐, 아무것도 없잖아?"
대벽산의 북으로 뻗은 산자락을 따라 중턱까지 올라온 물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울창한 나무와 바닥에 잔뜩 쌓인 낙엽들 외엔 눈이 띄는 게 없었다.
"이거 어떤 새끼야. 어떤 녀석이 장난친 거냐고. 뭐야, 혹시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갑사들이 형님들을 덮치거나 기습하는 거 아냐?!"
북녘 방향 중턱에 아무것도 없자 물포는 간찰의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누군가가 자신을 속였고 어쩌면 형님들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물포가 발 길을 돌려 내려가려 할 때였다.
'스스슥'
'응. 뭐여.'
물포의 뒤쪽 북쪽 산중턱의 언덕 아래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산짐승인가? 아니면 쪽지를 보낸 녀석인가?'
산아래를 향하던 물포는 다시 발길을 돌려 자신이 서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스스슥. 스스스스슥.'
이번에는 그 소리가 제법 컸고 더 오래갔다. 물포는 필시 저기에 무언가 수상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뭐야, 가보자.'
물포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서 있던 곳을 지나 왼편 고개로 조금 더 올라갔다.
낮은 언덕 뒤로는 계속해서 산꼭대기로 향하는 길만 있을 거라 생각한 물포는 산중턱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견했다. 그가 돌아선 울창한 나무들 아래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넓은 밭이 일궈져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게 다 뭐야.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어? 누가 이런 데다 밭을 만들었지?"
그곳엔 마치 누군가 얼마 전에 무언가 파종이라도 한 듯 질서 정연한 밭고랑 수십 개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제 곧 겨울이 올 텐데 누가 뭘 심은 거야? 그나저나 여기에 이렇게 넓은 곳이 있었나?"
'스스슥. 스스스스슥.'
물포가 밭을 보며 방심한 순간 언덕 아래 수풀에서 장정 여럿이 튀어나왔다.
"뭐냐, 누구야!"
물포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도를 꺼낼 준비를 했다. 하지만 곧 자세를 고치곤 그들을 향해 반갑게 웃으며 다가갔다.
"여어, 선창이 아냐, 이 장정들은 누구야? 나졸들이야?"
그들은 서반 아전인 선창과 나졸들이었다. 물포는 긴장을 풀었지만 그들이 여기에 나타난 이유는 여전히 궁금했다.
"선창아, 관아에 있지 않고 여기까지 뭣하러 왔어? 혹시 너도.."
"형님.. 그러게 왜 그러셨슈.. 하아, 참."
"뭘? 아니, 대체 얘가 뭐라는 거야."
경식은 물포를 보고 크게 한 숨을 한 번 쉬었다. 물포는 선창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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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여깁니다. 그런데 여긴 딱히 아무것도 없는데요?"
근중과 장태는 간찰이 일러준 대로 대벽산의 북녘 쪽 중턱에 도착했지만 별다른 특이한 점을 발견하진 못했다.
"그러게 말이다. 네 말대로 오지 말았어야 했나. 아님, 일종의 함정일까..?"
장태가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았으나 울창한 나무와 산 새소리 외엔 별다른 게 없었다.
"야아아!"
'퍽. 퍼퍽.'
'팍.'
"으윽."
근중과 장태가 다시 발 길을 돌려 내려가려고 할 때였다. 별안간 반대편에서 누군가 싸우는 큰 소리가 들렸다.
"들었냐?"
"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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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포는 벌써 나졸 둘을 쓰러트렸다. 건장한 장정들도 물포의 무쇠와 같은 주먹 한방에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이 자식.. 나 아니래도. 난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님이 양귀비를 경작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저도 몰라요. 관아의 명이니 그냥 따를 수밖에. 나졸들을 더 괴롭히면 죄는 더 중해집니다."
곧 덩치가 큰 나졸 둘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긴 창을 들었지만 그 정도는 물포에게 누워서 떡먹기였다.
'휙- 휘휙'
'휙휙-'
'퍼벅, 퍽퍽'
나머지 나졸 둘 역시 물포에게 창을 빼앗기고 제압당했다.
'스윽-'
끝까지 저항하는 나졸 하나의 목을 팔로 감고 혈자리를 짚어 힘을 빼던 물포의 얼굴 앞으로 서슬 퍼런 장검이 들이쳤다.
"하.. 뭐냐? 선창이 너, 진짜 돌았냐?"
하지만 서반 아전인 선창은 아무런 대꾸 없이 나졸들에게 명령했다.
"뭣들 하냐. 얼른 포박해!"
물포는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하고 나졸들에 둘러싸여 포승줄에 묶였다.
"난 아니야, 난 모른다고!"
"형님, 괜히 죄만 늘었잖습니까. 저도 명에 따르는 겁니다. 관아에 가서 말씀하시오."
“멈춰라!”
선창이 물포를 끌고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근중과 장태가 양귀비 밭의 건너편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로 외치며 달려왔다.
"혀.. 형니임! 저 좀 살려주십쇼. 저 억울합니다.!!"
근중과 장태까지 나타나자 선창과 나졸들은 마치 산중에 범이라도 본 듯 급기야 묶인 물포까지 놓고 뒤로 물러섰다.
"무슨 연유로 물포를 잡아가느냐? 송달서가 있느냐?"
"물론 입죠."
근중은 선창이 건넨 송달서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분명 관아에서 발급한 것이 틀림없었다.
'
아편이라니.. 포도부장이 여기에 와있는 이유와 관련이 있을까.'
"그런데 왜 정식 통보가 아닌 급습이냐."
장태가 정곡을 찌르며 묻자 선창은 당황하며 답했다.
"어.. 그야, 물포 형님이 산적이라 이 방법도 그나마.."
선창의 대답에 물포는 다시 발끈했지만 그게 현실이라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곧 근중이 물포에게 다가가 물었다.
“물포야, 난 널 믿는다. 정말로 이 밭은 너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게 맞지?"
"형님!! 물론이죠, 형님. 전 정말 억울합니다..!!!"
근중은 물포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돌려 선창을 바라보았다.
"일단 데려가라. 물포는 명백하니까 금방 풀려날 거다. 해가 지기 전까지 끝내라. 우리가 찾아가겠다."
"형님..!? 저 지금 안 구해주시고요? 저, 억울하다고요. 아편은 본 적도 없고 양귀비는 어떻게 기르는 지도 몰라요. 해, 해바라기도 제대로 못 길려서 몇 번을 죽였잖아요..! 형님, 형님!"
나졸들이 물포를 끌고 가려하자 물포가 근중을 향해 소리쳤다. 곧 근중이 물포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일단 가거라. 별일 없을게다. 함정이야."
"가자!"
선창이 큰소리로 외치곤 물포를 데려갔다. 근중과 장태를 이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보다 당장 후에 닥칠일에 대한 대비를 해야했다.
"형님.. 진짜 괜찮을까요? 저 녀석.. 정말 이 밭이랑 관계없겠죠? 또 사고 친 거 아니겠죠..?"
"지금은 우리가 몸을 사려야 한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누군가 척결패의 씨를 말리려고 작정을 했어. 이렇게 큰 양귀비 밭은 나도 처음 본다. 어쩌면 저번보다 더 큰 환난이 들이닥칠지도 모르겠다."
"그 말은.."
"아직은 짐작만 할 뿐이다. 누군가 아편의 대량 공급에 대한 누명을 물포를 시작으로 척결패에게 넘길 모양이지. 어쩌면 수 십의 갑사가 이 고을까지 들어온 건 이런 누명을 씌워서라도 정말 우리를 치려고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
장태 역시 근중의 추측에 동의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건 전국구 산적패인 척결패보다 훨씬 거대하고 큰 힘이 그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눈꽃이 필 무렵은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리그와 문피아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리그:
https://novel.naver.com/my/myNovelList?novelId=1020387
• 문피아:
https://novel.munpia.com/245153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snow-moun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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