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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이 필 무렵
42화 귀문(鬼門) - 처연한 새벽 2
by
Rooney Kim
Jun 14. 2023
"일령? 그게 뭔데 그러오"
"궁금하냐?"
할멈은 마치 정법을 골리기라도 하듯 웃으며 물었다.
"이 누님, 또 이러신다. 뭔데요? 또 알고 보면 별 것 아닐 거면서. 허허.”
할멈은 이미 정법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호령, 자겸 그리고 태례가 거기에 있다네."
할멈을 만난 이후 계속해서 만면에 미소를 띠던 정법의 얼굴이 세 사내의 이름을 듣자마자 새하얗게 변했다.
"정말이오..? 정말, 걔들이.. 거기에 있단 말이오?"
“왜? 이제 좀 구미가 당겨? 낄낄.”
“아니, 누님. 그걸 말이라고 하오. 내 생애.. 녀석들을 다시 볼 수 만 있다면야.”
“그래. 할 얘기가 많구나. 그리고 해야 할 일도 많다. 허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니 먼저 급한 것부터 해보자."
곧 법당 옆 부엌에 붙은 쪽방으로 재빠르게 들어간 할멈은 주머니에 넣어온 부적 몇 개와 자작나무가지를 꺼내놓고 귀문을 열기 위한 준비를 했다.
"정말 할 거요?"
"그럼. 이번엔 혼자 할 테니 이제 그만 신경 꺼."
"아니 오랜만에 귀문이 열리는데 여기 기거하는 영들 중에 갈만한 녀석들이 있으면 좀 데려가라 할랬더니."
"난 안 들어간데도. 기력도 없고 무엇보다 내 명분은 없어."
"그런데 왜 하시우?"
"귀로. 귀로 그 녀석이 무리했더라고. 혼자 영계에 가 있어. 그리고 은진이가 오래전부터 준비하던 것도 있고 또.."
“귀로, 그 자식. 기어이 일을 쳤군요. 당최 뭘 믿고 그러는지. 지가 아무리 잘나 봤자 아직 사람인데. 엥이. 뭐, 여하튼 이번엔 이유가 많구만요.”
"말했잖아. 강철이가 나타난 것도 그렇고 지방의 악령들의 세가 심상찮아. 조용하던 한양까지 들쑤실 수 도 있어. 그전에 여기서 묶어야 해."
할멈의 고민에 정법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어쩌면 옛날 생각이 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북방의 궤를.. 허허, 엇험. 누이, 내가 혹시 도울 일은 없소?"
"없데도."
"아.. 누이! 서운하오."
그러자 할멈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정법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허, 호령이랑 얘들이 그렇게 된 거 보고도? 안돼. 나도 고민이 많았다고 했잖아. 그런데 기회라고 생각했어."
“흠. 나도 쩝.. 어떤 기회요?"
"우리가 사라진 세상에 또 다른 악령들에 맞설 다음 세대를 위한 일종의 교육이랄까.."
"그럼 내 도움도 무조건 필요하겠는데..? 아니, 이 위험하고 지독한 성주사에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오?"
"그야 여기는 이미 온갖 잡귀들이랑 요괴가 넘치는 곳이니 사람들도 안 오잖아. 그래서 온 거지. 방해꾼도 없고."
"그리고요."
"우리 집은 안돼. 거긴 청정 구역이야."
"나참, 결국 여기가 싸움판을 벌이기 좋아서 온 거구만요."
"우리 집엔 또 해치랑 불가살이가 있어. 귀문이 열리면 걔네들도 놀라."
"아니 그 영물들이야 뭐, 원래 영계를 오가는 녀석들이잖아요?"
"됐다. 내가 뭐 하러 너한테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을 다 하냐. 에휴."
“그니까. 누님, 나도 좀..”
"시끄러워. 나 바쁘다."
할멈은 탁하고 방문을 닫고는 귀문을 열 준비를 시작했다.
북쪽을 향한 벽의 한가운데 일렁이는 촛불 위로 개문 부적이 하나 붙었고 그 앞으로 자작나무 가지가 마치 누가 손으로 잡고 있기라도 한 듯 교자상 위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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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쪽문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그저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선준은 은진이 가리킨 쪽을 쳐다보았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방 북쪽으로 난 작은 쪽문이 있었다. 문창살 없이 통으로 만든 문이라 얼핏 보면 문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럼 다녀오겠소."
선준이 쪽문의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 준비를 했다.
"꼭 명심하세요. 영계에 산자는 백귀로 씨 외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비는 해야 하니 이것만은 기억하세요. 산 자는 손과 발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허나 죽은 자들은 보이지 않거나 희미하게 보입니다. 그걸로 둘을 구분해야 합니다."
"네, 명심하겠소."
"그리고 귀신들이 모인 곳, 악령들이 활동하는 곳은 그게 무슨 색이든 빛이 날 것입니다. 그걸로 습격이나 위험에 꼭 대비하십시오."
선준과 일행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귀문은 지금부터 이튿날 자정까지 열어둘 것입니다. 그러니 이걸 가져가셔서 영계에 진입하자마자 영계에 있는 이 집의 단단한 나무 기둥에 이 동아줄을 묶어두세요. 이 동아줄은 이 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은진이 건네준 동아줄에는 한 자마다 축귀를 위한 축사부와 귀문의 개문을 위한 개문부 부적이 달려있었다.
"이게 이승과 영계를 잇는 유일한 동아줄이군요."
"맞습니다. 혹시나.."
쪽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선준과 행장이 그리고 자령은 은진이 한마디를 더 하려다 말고 얼버무리자 모두 멈칫하며 돌아보았다.
"누이 누이, 말씀하시오. 뭔디요?"
"그래, 혹시나 귀로 씨 외에 새하얀 피부에 기생오라비같이 잘생긴 남자, 그러니까 혼백이 아닌 사람을 만나면 제게 꼭 알려주시오. 만에 하나에 대비해서 말씀드리는 것이오."
"그 자가 누구인데 그러오?"
밝고 온화하던 은진의 얼굴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눈가엔 분통함이, 입가에는 화가 일었다.
"제 어머니와 저를 망친 자, 제 아비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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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곧 쪽문의 방문이 닫혔다. 방 안은 굉장히 좁아 셋이 들어가 서 있기조차 버거웠다.
"아재, 여기가 영계가 맞는교?"
"조금만 기다려보자꾸나. 이제 곧.."
"응? 선비님, 이 소리를 들어보세요."
방안에 들어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세찬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그들이 영계로 들어온 건지 아직 현세에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은진 씨..? 은진 씨? 이제 됐나요? 나가도 될까요..?"
하지만 바깥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대신 세찬 바람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쾅-'
별안간 바깥에서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문에 대고 자세히 들어보니 여기저기 문들이 강한 바람에 여닫히며 끼익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진 씨..? 은진 씨 거기 계시오?"
선준이 문에 대고 물었으나 답변은커녕 인기척조차 없었다. 곧 행장이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아재, 혹시 여기가 영계 아닝교..? 누이가 이 방으로 들어가면 영계로 들어간다고 했응께.."
"그런 것 같아요. 저도 느낌이 이상해요. 분명 우리는 그대로인데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러자 선준이 조심스럽게 쪽문을 열어보았다.
'끼이익'
가뜩이나 아무도 없어 을씨년시러운 방 안에 까끌거리는 쇠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눈꽃이 필 무렵은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 리그와 문피아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 리그: https://novel.naver.com/my/myNovelList?novelId=1020387
• 문피아: https://novel.munpia.com/245153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snow-moun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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