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령이 말한 곳에는 정말 불이 켜진 집과 그 앞에 여인이 보였다. 그 집 옆으로 불이 켜진 등에는 주(酒)라는 주막 표식이 빛나고 있었다.
‘나작 주막 (羅勺 酒幕)’
선준은 행장이를 들쳐 엎고 등불이 빛나는 집으로 달려갔다. 허름한 초가지붕에 다 낡아빠진 벽면 그리고 반쯤은 사라진 싸리 담장까지. 선준은 멈칫했지만 지금 영계에서 그나마 악령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만난 건 처음이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물었다.
"혹시 여기에 의원이 있소? 지금 아이가 아프고 역귀에 긁혀 역병에 걸린 것 같소만.."
그러자 여인은 선준과 선준의 등에 업혀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행장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저 여자 아이도 같이 온 자요?"
집 앞의 여인은 자령은 쳐다보지도 않고 선준을 쳐다보며 다짜고짜 물었다. 가만히 보니 여인은 이승에서는 명절에나 한 번 꺼내 입을 진한 붉은색 치마에 깨끗하게 다려진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이런 말끔한 차림의 여인을 영계에서 마주치다니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게다가 그녀의 동공은 묘하게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선준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만..?"
"아주 재미있는 조합이군요."
하지만 어쩐 일인지 여인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검은 물결이 다시 뭉쳐 일렁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규모가 더 커졌다. 일령의 방어에 튕겨나가며 잔뜩 약이 오른 두억시니까지 다시 각성하고 덤벼들 테니 도깨비들도 여럿 더 올 분위기였다.
"보시오. 우리가 시간이 없소. 이 아이도 점점 더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오. 만약 여기에 의원이 없다면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