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중은 미월의 난 때도 지금도 마을 곳곳에서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모든 게 명쾌하게 연결되었어. 왜 저리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귀신에 홀리나 했더니.. 술보다 강력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편이었다니.'
"아, 아편요?! 형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근중은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자신들이 누명을 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포야 애들에게 구토로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들을 모두 구해 산으로 옮기라고 전해라. 나도 장태와 함께 사람들을 구하겠다."
"혹시 관아에서 또 우릴 의심하진 않을까요..?"
"이미 일은 터졌다. 그리고 이 난은 우리와 관계없어. 어차피 물포 네가 의외로 쉽게 빠져나왔으니 아편이랑 우리는 관계없다는 걸 그 포도부장도 알 거다. 게다가 우리가 구해준 사람들의 가족들은 우리를 믿고 지지해 줄 거야. 시급하다. 굉장히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그럼.."
"불을 끄고 아편으로 쓰러진 사람들을 구해라. 우리는 전투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건 아직 우리의 싸움이 아니다. 다들 알겠느냐?"
"네!"
----------
"선비님, 그럼 우리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녜요? 대무당 할멈이 분명.."
'달칵'
선준의 방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던 둘은 누군가 방문을 열자 입을 닫았다. 곧 참새 얼굴을 한 수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손님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중앙 저잣거리의 귀빈을 모시는 식당이 있습니다. 곧 뵙지요."
참새 인간은 곧 돌아갔고 선준과 자령은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가도 될까요?"
"아무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지만.. 일단 행장이를 찾읍시다. 그러려면 식당엘 가봐야겠군요."
"까짓 거.. 가시죠. 뭔 일이야 있겠어요? 행장이만 데리고 어서 여길 나가요. 선비님."
둘은 곧 바깥으로 나왔다. 곧바로 제비 얼굴을 한 수인이 따라붙었다. 앞과 뒤에 한 명씩 배치가 된걸 보아 둘을 안내하는 듯했다.
제비 인간은 참새 인간보다 좀 더 날렵한 몸에 단정한 옷을 입고 있었다. 선준의 눈에 둘 다 괴이하면서도 귀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들은 곧 아까 마당에서 눈으로만 보았던 엄청난 규모의 기와집들과 누각이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엇..?'
"선비님..!"
"느꼈소?"
"네.. 저도."
둘은 제비 인간들이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대화했다.
"연회가 열리는 건 알았지만 마당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아무런 소리가 안 들렸는데 들어오자마자 엄청나군요."
“네, 저도 바깥에선 별소리도 못 들었는데요. 진짜 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을 줄이야..”
선준과 자령은 말로만 듣던 별천지와 신천지를 본 사람처럼 넋을 놓고 제비 인간들을 따라갔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적게는 열댓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이 모여 끝나지 않는 잔치를 즐기는 듯 보였다.
선준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영가(靈駕)들인지 궁금했지만 제비 인간들은 정면만 바라보며 걸었고 설사 묻는다 해도 사람 말을 할지도 의문이었다.
"궁금하신 게 있나요?"
선준이 그런 생각을 할 찰나에 제비 인간이 고개를 살짝 돌리며 물었다. 선준은 제비 인간이 사람 말을 한다는 것과 혹시 자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가 하는 마음에 내심 놀랐다.
"아까부터 자꾸 절 쳐다보시며 머뭇거리시길래요."
"아, 물론이죠. 저희는 아직 이승의 사람들이다 보니 이런 엄청난 광경을 보면 신기할 따름입니다. 혹시..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영들인가요?"
제비 인간이 사람 말을 한다는 걸 안 뒤 선준은 궁금한 걸 모두 묻기로 했다.
"그렇죠."
"다들 여기서 잔치를 하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이 잔치는 언제 끝나나요? 저들은 언제 저승으로.."
그러자 제비 인간이 가던 길을 멈춰 서더니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했다.
"첫 질문에 죄송하지만 그 질문은 여기서 하지 않는 게 불문율입니다. 이들 모두 저승에 가기 싫어 여기로 들어왔으니까요."
"아니, 그래도 언젠가는.."
"다른 질문을 하시지요. 참, 같이 오신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합니다. 식당에 미리 와 있다고 하는군요."
"오, 정말이오? 행장이가 다 나았단 말이인가요?"
"네."
'정말 다행이야. 그럼 밥을 먹고 이제 여기를 빠져나가야지. 할멈이 그렇게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나작 주막에 들어와 버렸으니.'
자령은 선준과 제비 인간이 대화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사방을 살폈다. 분명히 태어나서 처음 보는 화려한 연회와 잔치가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음악 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무언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던 중 몇몇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는데..
‘헉, 맙소사.. 저들의 눈이..'
아뿔싸, 서로 마주 보며 서서 호탕하게 웃으며 연회를 즐기는 줄 알았던 그들의 눈이 상대방을 응시하지 않고 여기저기 마치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는 듯 굉장히 빠른 속도로 위아래,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들어가시죠."
제비 인간은 연회장의 입구까지만 안내하고 어느새 홀연히 사라졌다.
"행장아!"
"어.. 아재!!"
행장이는 선준이 부르자마자 소리치며 달려왔다. 평소와 다름없이 밝고 힘찬 걸 보니 몸은 완전히 다 회복한 듯했다.
"괜찮으냐? 다 나은 거야?"
"네, 아재. 여기 어의가 준 약을 먹고 잠깐 잠이 들었고 일각도 안돼서 깼는데 몸이 개운해졌다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선준은 건강히 무사한 행장이의 이곳저곳을 살핀 후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연회장의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자야, 얼른 여기를 나가야 한다. 여기가 할멈이 말한.."
'끼이이.'
"어.."
선준이 미처 말을 끝내기 도전에 선준의 뒤로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엄..마?"
행장이는 연회장에 들어온 누군가를 보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굳어버렸다.
"행장아..!"
"엄마요? 진짜 엄마잉교..?"
그러자 입구에 서 있던 여인은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엄마아아아..!!!"
행장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그 여인에게 달려가 품에 쏙 안겼다.
"엉엉엉.. 진짜 엄마요? 엄마 맞는교..? 엉엉."
"그럼, 그럼. 엄마랑 아빠는 그날 이후 한 번도 널 잊은 적이 없단다.."
"엉엉엉.."
행장이는 엄마의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한참을 울었다. 어린 나이에 가족 모두를 한 날 한 시에 잃었음에도 눈물을 참고 살아온 날들의 울분이 한꺼번에 터지는 듯했다.
"지가.. 지가 얼마나 엄마랑 아빠 또 할머니랑 동생이 보고 싶었는지 아시요..? 흑흑."
울음이 조금 잦아들자 행장이는 그제야 엄마랑 대화를 시작했다.
선준과 자령은 그저 뒤에서 측은한 마음으로 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 선준도 부모를 윤대감 악령 때문에 여의었고 자령도 자신의 아비가 영계에 갇힌 상태였으니 행장이의 마음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백분 이해했다.
"아버지는 요..? 할매랑 동생은 어디 있단가요?"
그러자 여인은 그저 인자한 미소를 띠며 자신들이 머무는 거처에서 행장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할 뿐이었다.
"가자. 여기에 우리가 머무는 집이 한 채 있다. 거기서 가족들을 모두 만나자. 이제 다시 다 같이 살 수 있단다."
행장이는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머릿속에 집어넣기라도 할 기세로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경청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