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월에 난 때 수많은 주범들이 동시에 많이 죽어버렸기에 이후 그나마 미미하게 이어지는 어떤 명맥 같은 걸 찾아냈다고 직감한 순간이었다.
"김진립 대감이라고 했었겠다."
'헉..'
선창은 분명 자신이 말했던 이름임에도 화들짝 놀랐다.
"내 곧 한양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대벽 마을의 난에 대해 보고를 드릴 예정이다."
선창은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세 명의 눈치를 보며 고개는 들지도 못한 채 그저 눈만 아래위로 굴렸다. 선창의 다리가 점점 더 떨리는 바람에 누가 봐도 그의 불안함을 알아볼 지경이었다.
"새벽에 미쳐 날뛰던 자들 그리고 귀신이 들려 넋이 나간 사람들의 손에 공통적으로 묻어있던 게 뭔지 아느냐?"
"모.. 모르옵니다."
"갈색 가루. 그리고 입가의 구토 흔적."
“저, 저는 진정 모르는 일이옵니다. 진짜요. 전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저 같은 아전이나 향리 따위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런.."
"네 이노옴!!"
선창이 다급한 마음으로 말을 더듬대며 변명을 하자 포도부장은 극대노하며 벼락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때문에 양옆에 앉아있던 갑사장과 착호장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말은 그 일을 주도한 자, 네게 준 자가 있을 것이고 네가 그 자를 안다는 말이며 너도 여기에 동조하고 일을 행했으니 지난 새벽에 일어난 동짓달 난의 중심에는 너도 있는 셈이다."
선창은 감히 감은 눈조차 뜨지 못했다. 이제는 어깨까지 떨리며 식은땀 마저 흘리고 있었다.
"저 밖에 사람들의 울부짖음, 슬픔, 고통이 느껴지나? 이 수많은 아픔과 한은 또 어디로 가겠나?"
선창은 비로소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지 입술이 조물 거리며 들썩였다.
포도부장은 결단이라도 내렸는지 선창이 입을 뗄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이.. 이름은 저도 모르옵니다. 그, 그런데 그게.."
"하, 그자가 두려운 게냐? 나나 김진립 대감보다도 더 무서운 게야?"
"하아.. 그, 그게."
선창은 이제 결심을 했다는 듯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말했다.
"칠 척 만한 키에 우람한 몸집인데 행색이 조선 사람은 아닌 듯했습니다. 비슷한 복장이긴 하나 묘하게 달랐습니다. 머리도 산발을 했다가 묶기도 했는데 상투를 틀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래 알겠다. 그래서 그게 누구냐?"
"광기 어린 눈을 가졌습니다. 뭐랄까 마주치며 오금이 저리고 온몸이 꼼짝없이 얼어붙는 살기 같은 그런.."
"너 이 자식, 계속해서 빙빙 도는 얘길 계속하는 이유가 뭐냐?"
"그 자가.. 그 자가 자신에 대해 누설하면 저는 물론 우리 가족까지 갈가리 찢어 죽인다고 했.."
"하하하하하."
선창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포도부장이 큰소리로 웃었다.
"겨우 그 자가 나보다, 대감님보다 무섭다고? 한양에 있는 조선의 수 만 군사와 포도청 보다도?"
하지만 선창은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아편에 관해 자신이 아는 걸 모두 알려준 뒤 자신이 위험에 처한다고 해서 조선의 군사나 포졸, 나졸이 자신을 지켜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내 약속하마. 이 일과 관련하여 네 죄만 묻고 너와 네 가족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지켜주겠다."
선창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쩌면 이 마을 아니, 조선을 떠나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포도부장까지 나섰으니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일말의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전국에 몇 군데 더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런데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그 자는.. 신출귀몰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게 마치 홍길동 같습니다만 그 자는 의적이 아니지요.."
"전국에..?! 아니 그럼 최근 들어 아편으로 인한 사고가 늘고 크고 작은 환난이 잦은 게 다 전국에 늘어난 대마밭 때문인 건가?!"
"그.. 그럴지도요. 저는 거기 까지는 잘.."
"알겠다. 좋은 정보다. 그래서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모.. 모릅니다.. 그런데 진짜 이건 저한테 들었다고 하시면 안됩.."
"전국에 대마밭이 있다고 했지? 최근에 본 게 언제냐?"
선창은 다시 한번 머뭇거렸다. 하지만 포도부장은 이제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선창이라고 했나? 이건 나라의 명운이 달린 문제다. 조선이, 우리 민족의 생사가 달린 문제일 수 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네가 감당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이제 우리에게 넘겨라. 물론, 네 죄는 나중에 묻겠다만."
"진짜.. 저희 가족은 보호해 주시는 건지요..?"
"물론, 물론이다..!"
선창은 한숨을 크게 한 번 푹 내쉬더니 곧 입을 열었다.
"제가 가장 마지막에 들은 건.. 녀석과 그 무리들이 북쪽으로 올라갔다는 겁니다. 전국적인 규모로 세를 키운다고 들었고 여기서 북쪽이라면 가장 유력한 곳이 한양.. 한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만.. 저, 전 정말 더는 모르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포도부장은 이제 확신이 들었다. 녀석이 누군지 모르지만 전국에서 대마를 재배하고 이를 백성들, 관리들에게 무작위로 퍼뜨리는 자가 한양을 향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가자. 당장 한양으로 간다. 갑사장과 착호장은 들으시오. 날이 밝아오는 대로 바로 한양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인편으로 한양의 상황을 알려줄 테니 착호장은 여기서 며칠 정리 후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으시오."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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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이를 먼저 찾아야 하오."
"선비님, 행장이가 아까 이 방향으로 갔어요. 여기로 가시죠."
선준과 자령은 연회장 내에 있는 길고 긴 회랑을 따라갔다.
'이거, 엄청나게 멀구나. 설사 행장이를 데리고 온다고 해도 누군가 막아서면 여길 빠져나가는 게 쉽지는 않겠는데.'
그때 저 앞에서 참새 인간 하나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선준과 자령은 달리기를 멈추고 아무 일이 없는 듯 지나가려 했다.
"손님들, 길을 잃으셨나요? 아니면 혹시 같이 온 일행을 찾으시나요?"
선준은 참새 인간의 뜻밖의 질문에 놀랐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 저희랑 같이 온 꼬마 아이를 하나 찾고 있습니다. 키는 이만 하고 또.."
선준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참새 인간은 왼팔로 앞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회랑 끝에 집들이 모여 있습니다. 거기서 입구에 등이 켜진 곳에 그 아이가 있을 겁니다."
"고, 고맙소."
"그럼 이만."
참새 인간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후 다시 가던 길을 갔다.
"믿어도 되겠죠?"
"일단, 적어도 우리를 의심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곧 회랑의 끝에 도착한 둘은 그 안에 거대한 마을을 발견하고는 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맙소사.."
"여긴.. 대벽 마을을 몇 개나 합쳐 놓았을 정도로 크군요."
“그런데 여기서 행장이를 어떻게 찾죠..?"
"등불..! 아 맞다, 집 대문에 등불이 켜져 있을 거라고 했지 않소?"
선준과 자령은 곧바로 마을로 들어가 사방을 둘러보며 등불이 켜진 집을 찾기 시작했다.
"찾았어요!"
자령이 앞에서 소리치자 선준은 곧장 달려가 집 안을 살폈다.
"아, 아니오. 여긴 다른 사람들의 집인 것 같소."
"선비님, 저기에도 등불이 켜져 있습니다."
"오, 그렇군요. 어.. 그런데 건너편 집에도 등불이.."
"어라, 그러게요.. 선비님, 그러고 보니 등불이 켜진 집이 수 백 채도 넘는데요..?"
광활한 크기의 동네에 압도된 선준과 자령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젠장.. 거의 모든 집에 등불이 들어와 있잖아.'
"안 되겠소. 자령씨, 자령씨는 오른편 골목으로 돌아 찾아본 뒤 저기 키 큰 나무에서 만납시다. 저는 왼편으로 가겠소."
"네."
둘은 곧장 달려가며 등불이 켜진 집을 모두 확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