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나작(羅勺) 주막 7

by Rooney Kim


"행장아, 가족들 다시 만나니 좋지?"


행장이의 할머니가 마치 예전과 같은 인자한 미소로 행장이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렇구만요. 평생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응께.."


"껄껄, 시방 나도 이게 꿈인가 싶다. 아가야, 이제 우리 여기서 평생 같이 살자꾸나."


엄마는 부엌에서는 식사를 준비 중이셨고 아빠는 물을 길어와 집 뒤편의 솥에 채운 뒤 아궁이 불을 때는 중이었다. 너무나 평화로워서 너무나 완벽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행장이의 동생까지 데굴데굴 굴러와 행장이 옆에서 잠들었다.


'헉헉. 이 집도 아니야.'


그런데 선준은 벌써 서른 채도 넘는 집들을 돌아보면서 조금 수상한 점을 느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아니, 귀신들이 모여들었지? 왜 다들 저승으로 가지 않고 여기서 살 수 있는 걸까..?’


"헉헉헉. 선비님..!"


"자령씨, 없나요?"


선준의 질문에 자령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못 본 집이 수 천 채도 더 됩니다. 이러다가 녀석들이 우릴 잡으러 오기라도 한다면.."


"그렇지요. 어쩌면 우리가 여기서 더 머물면서 행장이를 데려갈 기회를 보는 게 나을지.."


"어, 선비님.. 저기.."


선준은 자령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손을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행장이..?!"


둘이 바라본 곳에는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듯 두 분이 반쯤은 감긴 행장이가 선준과 자령이 있는 걸어오고 있었다. 행장이는 아직 둘을 못 본 듯했다.


"자야! 자야!!"


선준이 소리치자 행장이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재?! 아재 소린디..?'


"행장아..!"


“아재..? 아재!!"


마침내 선준을 발견한 행장이가 양팔을 벌리고 한걸음에 달려와 선준에게 안겼다.


"자야, 몸은 괜찮으냐? 도대체 어디로 갔던 게냐?"


행장이는 선준을 다시 만나 반갑고 기쁜 얼굴이었지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왜 그러냐? 자야, 그나저나 우리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한다. 알고 보니 여기가 바로 할멈이 가지 말라고 했던.."


"가족을 만났다요.. 우리 가족요.."


'행장이의 눈빛이 또 달라졌어..'


일 년 전 온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은 충격을 가슴에 묻고 살았던 행장이의 눈은 다시는 그런 충격을 받고 싶지 않은 간절함과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어.. 아재.. 지는 그냥.."


선준은 행장이가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고 있었다. 저 나이의 아이가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이라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 말해보거라."


행장이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는 선준과 자령을 쳐다보며 드디어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냈다.


"지는.. 지는 그냥 여기서 우리 엄마, 아빠랑 가족들이랑 살면 안될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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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아, 됐냐?"


"네, 이제 이 방으로 들어오지 마슈. 내 이 참에 귀로도 찾고 그 애들도 구해오리다."


할멈은 정법을 믿으면서도 괜스레 걱정이 되었다. 약 오십여 년 전, 정법은 대악 이무량과의 대축귀전에서 대무당 할멈과 호령, 자겸, 태례와 함께 이무량을 한 번 무력화시키켰을 정도로 한 때는 강력한 무공과 축귀력을 자랑했었다.


'이쯤에 문이 있었는데..'


정법이 영계를 드나드는 방법은 단순했다. 정법이 사방에 축귀부를 붙여두고 개문부적을 천장에 달아두고 잠에 들면 그의 혼이 빠져나와 개문부적을 통해 영계로 들어가는 식이었다.


아예 육신 그대로 영계로 들어간 선준 일행과는 달리 그의 몸이 이승에 있었다.


'몸이 가벼워. 너무 가벼워! 내가 죽어 혼이 되면 이렇게 되는 거겠지? 키아.'


'자, 이제 귀로를 한 번 찾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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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준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행장이의 눈빛을 보면 도무지 그를 다시 데려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선비님, 저들이 행장이의 가족령들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여긴 영계예요. 산 자인 행장이가 여기에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게다가 여긴 나작 주막이잖아요?"


자령은 행장이가 듣을세라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자야, 잠시 이리로 와 보거라."


선준은 행장이의 의견을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기가 영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자야, 내 네 마음은 아주 잘 안다. 다시는 부모님이랑 가족들이랑 헤어지기 싫겠지. 꿈에 그러던 네 가족들을 되찾았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알지라.."


"그런데 여긴 영계다. 게다가 여기는 나작 주막이야. 우리도 모르고 들어온 거지만 할멈이 그렇게 경고했던 나작 주막 안이란 말이다.."


"네?! 여기가 나작 주막이 당가요? 어.. 그런디 별 일이 없었는디.. 오히려 가족들도 만나고.."


"행장아, 할멈이 그랬잖아. 여기는 우리의 욕망이나 결핍이 드러나는 곳이라고. 영계는 무슨 일이든 생각만으로도 눈에 드러나고 나타날 수 있는 곳이야. 물론, 저들은 네 가족처럼 보이지만, 혹시라도.."


행장이는 똑똑한 아이였다. 행장이는 선준이 말 한 의미를 이해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행장아, 언제 오니?"


선준과 행장이의 대화가 길어지자 멀리서 행장이의 엄마가 그를 불렀다.


행장이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분명 몸은 다시 가지 말라 하는데 마음은 온통 가족에게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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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 형님, 그 말이 사실이오? 양화 누님(대무당 할멈)이 우리 딸을 만났고 지금 그 애가 여기, 영계에 있단 말이오?!"


정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넌 여기서 뭘 그리 오랫동안 있는 거야. 응? 다들 걱정하잖아."


하지만 귀로도 여기에 있고 싶어서 있는 게 아니었다.


"그야.. 제 개문 부적이 그렇게 불타 사라질지도 몰랐고 요 몇 달 동안 아무도 귀문을 안 열지는 몰랐지요. 한 번은 경상도에서 문이 열렸길래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글쎄, 사람이 연 게 아니더군요."


"응? 요즘엔 귀신들도 귀문을 막 열고 그래? 백중도 아니었는데??"


"모르겠어요. 분명히 귀문이 열린 곳의 바깥은 이승일 텐데, 거기에 굉장히 많은 수의 악귀와 역귀들이 몰려있는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대로 나갔다간 오히려 제가 당할 것 같더군요."


"그래? 흐음.."


정법이 귀로의 얘기에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귀로가 되물었다.


"형님, 그런데 자령이 여기에 있다고 하지 않았소? 걔는 일본에 건너간 지 좀 되었는데.. 아니, 걔는 어찌 조선으로 돌아온다는 한마디 없이 언제 돌아왔으며.. 참, 얼마나 되었죠? 아직 하루가 지난 건 아니죠?"


"응."


귀로는 말을 끝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자령을 데리러 갈 참이었다.


"자네, 바로 갈건가? 혼자?"


"아뇨? 형님도 가실 거잖아요?"


"나?! 나야 가고 싶은데 보시다시피 난 지금 몽로를 통해 들어온 거라.. 하하."


"상관없습니다. 저 혼자 데려올 수 있습니다."


"그래, 알겠는데. 어떻게 하게? 뭐 뾰족한 수라도 있어?"


"그럼요."


"그래? 그럼 난 너랑 나작 주막까지만 같이 가주마."


"아닙니다. 안 오셔도 돼요."


그러자 정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귀로를 보며 물었다.


“정말? 너, 지금 나작 주막이 어딘지 아냐?"


귀로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답했다.


"그.. 원래 마을의 저잣거리가 끝나는 곳 근방에.."


귀로의 답변에 정법은 고개를 내 저었다.


"아니야, 귀로 너 영계에 오래 있더니 감을 잃었구먼. 나작 주막 입구는 매일 바뀌어. 으이구, 이래 갖고 딸을 구하기는커녕 길이나 헤매지 않으면 다행이지."


“헛.. 흠.. 그럼, 앞장 서시죠."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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