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나작(羅勺) 주막 8 - 대탈출

by Rooney Kim


"그런디.. 엄마가 쩌어기 딱 저렇게 있고 집 안에 가족들도 다 있고.."


"행장아, 어서 오렴. 그분들이랑 인사 다 끝나지 않았어?"


행장이네 엄마가 계속해서 재촉하듯 행장이를 불렀다. 선준은 마음이 급한 나머지 행장이의 옷자락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자야, 나도 잘 모르지만 어쩌면 이 안에서 보는 건 모두 다 허상일 수 있다. 우린 여기서 나가야 해."


"행장아, 할머니랑 동생이 너 찾는다. 퍼뜩 오니라."


어느샌가 행장이의 아빠까지 나와서 행장이를 불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행장이도 가족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아부지까지.. 아재, 저, 잠깐만 가족들한테 가서 물어보고 오면 안 된당가요?"


"행장아, 이리 오렴. 이제 우리 평생 같이 살아야지? 응?"


"그.. 그래."


선준은 간절한 행장이의 표정에 녀석을 놓아줄 수밖에 었었다. 그럼에도 행장이가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오길 바라는 마음은 굴뚝같았다.


"선비님, 분명히 이거 함정 같은데요. 수상하지 않아요? 산 자랑 여기서 어떻게 산다는 건지."


자령의 한마디에 선준의 머릿속으로 불현듯 무언가 지나갔다. 선준이 돌아보았을 때 행장이는 이미 골목을 돌아 가족들과 집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쿠당탕. 쾅쾅'


"잡아라! 저 놈 잡아라!"


'퍼퍽. 퍽퍽.'


그때였다. 마을 입구에 서 있던 선준과 자령은 뒤편 연회장 쪽에서 들려온 큰 소리에 놀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일까요..?"


"그러게요. 아주 평화롭게 연회가 벌어지던 중이었는데."


'퍼퍼퍽. 쾅. 콰아앙.'


거대한 식당 안에서 무슨 패싸움이라도 났는지 온통 시끄러운 소리에 둘은 정신이 팔렸다.


'쾅-'


요란한 소리에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라도 터질 것 같더니 기어이 둘 나왔던 연회장 문이 박살이 났고 그 안에서 귀로가 튀어나왔다.


"자령아!! 내 딸, 자령아! 어디에 있느냐?"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커다란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선준과 자령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자령씨.. 설마 저 사람이 아버지요?"


"아빠..?! 정말 아빤가..?"


"자령아! 어디에 있어?"


자령은 귀에 익은 목소리에 당장 튀어나가려 했지만 순간 여기가 영계라는 걸 상기했다. 혹시라도 악귀가 아빠로 둔갑을 한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던 것이다.


"자령아!!!"


'퍼퍽. 퍽-'


귀로는 자신에게 연거푸 달려드는 사람들과 수인들을 기공술로 쳐내면서도 계속해서 자령을 불렀다.


"그런데 주막에 있는 것들과 싸우는 걸 보면 어쩌면 진짜 자령의 아버지일지도 모릅니다..!"


"그..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왔을까요?"


"그건.. 의문스럽지만 여긴 영계가 아닙니까? 무슨 일이든 가능하겠지요."


자령은 멀찌기서 나는 소리의 주인공이 아버지인지 둔갑한 요괴인지 여전히 의심스러웠지만 이를 그대로 뒀다간 곧 수에 밀려 잡혀갈게 뻔해 보였기에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탁.'


선준은 순간 튀어나가려는 자령의 손목을 잡았다.


"선비님, 왜요?"


"저것들의 수가 너무 많아요. 제게 생각이 있으니 같이 합시다."


자령을 멈춰 세운 선준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마치 쏜살같이 튀어나와 내리막길로 내리 달리며 귀로를 향해 소리쳤다.


"눈 감아요, 눈!"


"네? 뭐요?"


선준은 곧장 귀로를 지나쳐 아래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수인과 영가들을 향해 뛰어오르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일령, 광!!"


'쑤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삽시간에 작렬하는 빛이 사방을 향해 번져나갔고 수십의 영가들은 모두 고통에 찬 신음을 뱉으며 뒤로 날아갔다.


'치이이이이이-'


'끄아아. 끄아아아아-'


귀로 역시 빛을 보자마자 눈을 감았지만 일령의 엄청난 광 공격에 순간적으로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탁'


선준은 눈이 부셔 어리둥절하며 어쩔 줄 모르는 귀로의 팔을 잡고 자령이 있는 바위를 향해 달려갔다.


"자령을 구하러 온 거지요? 우선 제가 먼저 구해드리지요."


"아버지?! 아빠!!"


자령은 선준을 향해 달려와 귀로를 부축했고 셋은 곧장 행장이의 집이 있는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이 마을은 규모가 엄청나니 숨기에 좋을 겁니다. 일단 달려요!"


"자령아.. 자령이냐?!"


"네, 아빠, 일단 달려요!"


셋은 곧 대벽마을보다 몇 배는 더 큰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선준은 빈집을 찾기 위해 등불이 꺼진 집을 물색하며 달렸다.


"저기! 저기요. 선비님!!"


자령이 소리치며 손짓한 곳을 보니 과연 사람의 손길을 받지 않은 듯 낡고 어두운 집 하나가 보였다.


"일단 저기로 들어가 숨읍시다."


셋은 낡은 싸리문을 열고 들어가 부엌 옆에 붙은 골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헉헉헉."


"자령아, 자령아 괜찮냐?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아빠, 아빠 맞죠? 우리 아빠 찾으러 왔어요!"


"그나저나 너 언제 조선으로 돌아왔냐? 아빠가 그렇게 돌아오라고 할 땐 답도 없더니?"


"아빠는? 아빠는 우리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고 왔어요?"


귀로와 자령은 만나자마자 서로가 무사한 걸 확인하자마자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각자 궁금한 것만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요. 정말 백귀로씨가 맞다면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어찌 아셨습니까?"


다들 자기가 궁금한 것만 묻는 동안 선준이 귀로에게 물었다.


"네, 맞소. 헉헉. 자령이 다른 사람들과 영계로 들어왔다는 걸 정법 형님을 통해 들었소."


"정법 형님..?!"


"한 때 이무량을 봉인할 때 큰 역할을 했고 축귀로 이름을 날린 분인데.. 모르시오? 하긴 시대가 바뀌어서 모를 수도 있겠구려."


"그럼 양화 누님은 아시오?"


"그 분은 또 누구죠..?"


"대벽산 뒤 세 봉우리의 대무당인데, 누이도 이제 잊힐 때가 되었구만.."


"어..! 대무당 할멈 말이오?!"


"오.. 누이를 아는 구려?"


"네, 저희가 영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입니다."


"그럼 이제 여기서 나가면 되겠군요. 여기 갇힌 사람은 이게 다인가요?"


"아니요. 꼬마 아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행장이라고.. 지금 이승에서 죽은 가족들을 모두 만났거든요. 너무 기뻐하는 모습에 차마 다시 돌아가자고 말을 못 하겠더군요.."


귀로는 선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기가 친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가족들을 만났다고요? 나작 주막에서요?!"


"..네. 무,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귀로는 선준과 자령 둘 다 영계에 대해 그리고 나작 주막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실감했다.


"양화 누이가 왜 나작 주막에 가지 말라고 설명하지 않던가요?"


"무조건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행장이라는 아이가 역귀에게 역병이 옮아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랬겠지요. 나작 주막은 인간의 약한 부위를 파고들어 누구든 꾀는 법이니까요. 그나저나 상황을 들어보니 빨리 그 아이를 구해야 하는데.. 일각이 급박한 상황이오."


"저희도 빨리 행장이를 데리고 여길 나가고 싶습니다만 여기가 영계인지라.. 그리고 오랜만에 가족들의 영가를 만나서 무척이나 신이 나 있는데.."


"그 아이가 만났다는 그 가족들은 진짜가 아니에요."


"네에?!"


선준은 귀를 의심했다. 그렇다면 행장이는 지금 누구랑 같이 있단 말인가. 행장이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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