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작 주막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욕망하는 대로 세상을 보는 곳입니다. 즉, 그 아이가 만난 가족들은 여기 수인이나 여귀들이 그 아이의 가장 큰 약점이자 욕망인 가족들로 둔갑한 거죠. 그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려야 여기에 남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 아이는 산 자 아닙니까. 산 자에게서 뭘 바라고.."
"육신과 혼백. 둘 다 여기 있는 여귀, 역귀, 아귀들에겐 굉장한 식량이 됩니다. 수많은 영가들이 여기로 흘러오지만 살아있는 자의 혼백만큼 뛰어난 것도 없거든요."
"그, 그게 사실인가요? 그럼 지금 당장 구하러 가야 하는데요."
"문제는 우리도 쫓기는 상황이고 이제 그 아이까지 구해야 한다는 거군요."
"아빠, 할 수 있겠죠?"
"음, 뭐. 가능이야하지. 그런데 그 애가 어디 있는지 알아?"
귀로의 물음에 자령과 선준도 서로 마주 보며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근방인 건 확실합니다. 저희도 아까 근처에서 행장이를 만났거든요."
"우선 여기서 어떻게 나가죠?"
"바깥에 우리를 찾는 수인들이 가득할 텐데요?"
"혹시 여기 들어올 때 짚옷을 보았소?"
귀로의 물음에 선준과 자령은 다시 고개를 내 저었다.
"여기도 밤에는 춥기 때문에 그럴 땐 짚옷을 입지요. 아까 창고에 네댓 개가 있더군요. 그걸 입고 빠져나갑시다."
"좋습니다. 그럼 행장이는 어떻게 구하죠..?"
"다 생각이 있소. 둘 다 나만 따라오시오."
'끼이이.'
귀로는 방문을 살짝 열어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다행히 이들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지 수인들은 집 안까지 들어오진 않았다.
"바로 저 창고로 갈 거요. 저기서 짚옷을 걸치고 나를 따라 오시오."
"네에."
셋은 곧바로 방을 나와 창고로 달려갔다. 거기엔 정말 짚옷이 네댓 개가 있었다.
"이제 집 밖을 나가자마자 한 줄로 걸을 거요. 내 등 뒤에 자령이 그리고 끝에 선비가 붙으시오."
사방은 고요했다. 영계 특유의 희뿌연 연기 같은 것들이 사방을 더 어둡게 만들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곧 수인들이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셋은 짚옷을 얼굴까지 뒤집어썼던지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갔다.
선준과 자령은 안도와 함께 마른침을 삼켰지만 귀로는 별 일 아니라는 듯 그저 전방을 살피고 있었다.
"산 자가 나작 주막에 들어오면 하루를 넘기기 힘드오. 보통 그날 다 끝이 나죠."
"하루 만에 끝이 난다니 무슨 말이죠..?”
그러자 귀로가 손으로 자신의 목을 그어 보였다.
“정말이오?!”
"그래서 그 아이가 여기에 있다면 지금쯤 분명 마을 입구에 수인들과 귀신들이 떼로 몰려있을 거요."
"왜죠..?"
"기다리는 거죠. 자기 차례를."
"차례라면..?"
"식사 차례 같은 거죠."
"네에?!"
선준과 자령은 기겁한 표정으로 서로 마주 보았다가 귀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귀로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녀석들의 시선을 확인하면 돼요. 저기 마을 입구에 있는 놈들이 모두 어딜 쳐다보고 있는지. 우린 그걸 따라가면 됩니다."
선준과 자령의 놀랍도록 차분한 귀로의 모습에도 놀랐다.
"아빠, 아빠도 여기와 봤었어요?"
"그럼."
"언제요? 그리고 어떻게 탈출했어요?"
"여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지. 나도 그때 역귀들에게 당해서 죽을 뻔했는데 여기 주모가 도와준다길래 들어왔었지."
귀로는 곧 손짓으로 자세를 낮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저기, 쟤네들 보이오? 쟤들이요."
귀로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과연 수백의 수인과 귀신들이 마을 입구에서 단 한 방향으로 한 집만을 바라본 채 서성이고 있었다.
"저.. 저렇게 많은 귀신들이 어째서.."
"한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는 거라고요..?"
"응. 한 사람, 특히 아이의 영기는 워낙 강력해서 많은 혼의 허기를 채울 수 있지. 어린애를 제물로 삼는 야만 의식 같은 것도 들어봤잖아?"
"그런데 나작 주막이 왜 최악 중의 최악이냐면, 이들은 산 자든 죽은 자든 가리지 않거든. 만약 산 자가 여기에 들어오면 그 사람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허상을 통해 채워준 뒤 가장 행복할 때 죽이고 먹어치워. 그래야 가장 강력한 힘을, 최대한 많은 영가들이 받아가거든."
죽었으면 저승으로 갈 것이지 왜 영계에서 이러고 있는지 선준과 자령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 귀신들이 얻는 게 뭔데요? 영생? 어차피 귀신인데?"
"저도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러자 귀로가 딱 잘라 말했다.
"이해하지 마시오.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요. 생전에 안하무인에, 표리부동에 사악한 놈들을 봤을 거 아니오? 그놈들의 욕심에 끝이 있던가? 허. 그런 놈들이 영계에서, 특히, 나작 주막에서 이러고 있는 거요."
귀로는 귀신들이 쳐다보는 집을 눈으로 좇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 두 채의 집이 있었는데 하나는 등불이 켜져 있었고 하나는 꺼져있었다.
"찾았다."
"정말요?"
"네. 여기서 멀지 않군요. 그리고 저들이 기다리는 걸 보니 아이는 아직 무사한가 봅니다. 빨리 갑시다."
셋은 짚옷을 입은 채로 내려왔던 길을 따라 다시 올라갔다.
"저기, 저 집이오."
귀로가 가리킨 집은 입구에 등불이 켜진 작은 기와집이었다. 분명 행장이가 살던 작은 초가집보다는 더 크고 깨끗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으리으리한 곳은 아니었다.
'행장이가 항상 말하던 집과 비슷해. 항상 저런 집에서 가족들이랑 살고 싶다고 했었는데.."
귀로는 입구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둘에게 손짓했다. 셋은 곧장 집안으로 들어갔고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청마루에도 안방에도 아무도 없었다.
'벌써 끝이 난 건가? 아니면 이 집이 아닌가.?'
선준이 불안한 생각을 한 순간 귀로가 입으로 한 손가락을 갖다 댔다.
"부엌이에요."
귀로는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부엌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끼이이.'
작은 문소리였지만 셋은 모두 사방을 둘러보며 경계했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문 틈으로 부엌 안쪽의 광경을 본 귀로는 곧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헉..'
부엌 안에는 키 큰 남자와 여자 아이가 부엌의 반대편 문을 살짝 열고 집 뒤편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그들의 등뒤로 숨긴 손에는 날카로운 낫과 서슬 퍼런 부엌칼이 들려있었던 것이다.
'시작됐구나.'
귀로는 곧 문을 살며시 닫고 다시 선준과 자령에게 다가왔다.
"집 뒤편으로 갈 거요. 행장이가 위험하니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격투가 있을 수 있다오."
귀로의 대답에 선준은 자못 긴장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행장이가 위험하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의식이 진행되었다오. 일각이 급하니 내 말대로 하시오."
----------
'이제 씻고 나면 곧 수육이랑 밥을 먹겠네. 그냥 여기서 오래도록 살면 좋겠는디..'
행장이는 들떴다. 벌써 두 식경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가족을 만났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가도 다시 충만한 기쁨에 잔뜩 설레었다.
엄마는 그런 행장이의 기분을 북돋우며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다.
"행장아, 여기 더운물을 받아뒀으니 몸을 깨끗이 씻고 밥을 먹자꾸나."
행장이의 눈앞에는 과연 엄마의 말대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목욕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응요. 옷은 어디에 두 면 된당가요?"
"여기에 내려두렴."
행장이는 옷가지를 하나씩 벗어 목욕통 옆에 내려놓기 시작했고 엄마는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리 오너라!"
행장이가 목욕통 안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던 엄마와 그 뒤에 서 있던 할머니는 별안간 입구에서 들려온 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멈아, 내가 가보마. 넌 마저 애를 보거라."
귀로가 마당에서 큰 소리로 이들을 부르는 동안 선준과 자령은 조용히 집 왼편으로 돌아갔다.
"누구냐? 오호라, 웬 산 자가 또 여기로 들어왔지? 크큭"
부엌에서 튀어나온 남자는 여전히 부엌칼을 든 채 마당에 선 귀로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 옆으로 낫을 든 꼬마 여자애가 섰다.
"잘됐네. 오늘은 포식을 해보자. 이히히히힛."
남자는 비열하게 웃어 보이고는 식칼을 거꾸로 쥐어든 채 귀로를 향해 달려오다가 공중으로 번쩍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