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괴인 산비초 2

by Rooney Kim


- 3년 전 여름.


'와구와구. 챱챱.'


산비초는 방금 맨손으로 잡은 멧돼지의 배를 손끝으로 푹하고 찔러 가르더니 곧바로 내장을 뜯어내 게걸스럽게 포식하고 있었다. 산 깊은 곳에 외딴집을 하나 지어놓고 지내던 그의 집에는 좀처럼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외진 곳에 있었다.


‘괜찮게 쓸만한 힘을 가졌구만.’


‘챱챱챱. 와구와구.’


‘으드득. 뚝.’


‘챱챱챱챱챱.’


산비초는 자신의 등 뒤에 누가 와 있는데도 인기척을 느낀 건지 아니면 못 느꼈는지 그저 멧돼지를 먹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다 먹고 나면 나랑 얘기 좀 하세.”


산비초 뒤의 노인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의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으드드드득, 뚜욱.’


산비초는 힘이 어찌나 센지 맨손으로 멧돼지의 가죽을 뜯어냄은 물론 억센 척추와 갈비뼈도 손쉽게 으스러트렸다.


‘스윽’


“이거나 드슈. 그리고 이런 데는 당신 같은 얌전한 양반들이 오면 안 되는 곳이니 얼른 썩 가보쇼.”


노인은 거침없고 호탕한 산비초의 태도와 무지막지한 힘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산비초가 내민 고기 덩이를 받아 들었다.


“오늘 처음 본 자에게 이 귀한 생고기를 내어줄 정도면 심성도 뛰어난 편인데 어찌 지역에서 악독한 자로 소문이 났지?”


산비초는 고기 덩이를 건네준 뒤 노인의 동태를 살폈다. 분명히 사람이라면 이런 생고기를 받아먹을 수 없을 테고 귀신이라면 무언가 용건이 있어 찾아왔을게 당연했다.


‘으적 으적. 지이이이익.’


하지만 노인은 산비초와 눈을 마주친 채로 생고기를 잘도 뜯어먹었다. 산 사람처럼 보이는, 그것도 양반 옷차림을 한 자가 자신의 행색과 얼굴 그리고 행동을 보고 조금의 놀라움이나 두려움을 갖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뭐지. 이 새끼는?’


산비초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는 노인 대해 조금씩 경계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사람과 심지어, 귀신 들린 자도 만났지만 자신의 눈을 조금이라도 피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당신, 누구야.”


드디어 수상한 방문자의 정체에 대해 경계심이 든 산비초는 허리춤에 팔을 얹는 척을 하며 허리 뒤에 숨긴 손칼에 손을 갖다 댔다.


‘으적 으적. 챱챱챱.’


상황은 반전되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산비초가 멧돼지를 뜯으며 노인의 말을 무시했었는데 이제는 노인이 멧돼지를 뜯느라 산비초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산비초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닌지라 겨우 이 정도로 호들갑을 떨진 않았다. 단, 이 노인이 어떤 인간인지, 여기에는 뭘 하러 왔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게다가 자기의 눈을 피하지 않는 걸로 보아 보통 사람이 아닌 건 차치하고, 아예 사람이 아닐 수 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허허, 이제 나한테 좀 관심이 생겼나? 들었던 것보다는 빠르게 상대해 주네. 뭐 나야 시간도 벌고 좋지만.”


하지만 산비초를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남게 한 원동력 중 절반이 괴물 같은 힘과 귀신같은 담력이었다면, 나머지 절반은 미친 감지력과 빠른 판단력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로 움직이는 실행력이었다.


‘파바박. 척-‘


삽시간에 손칼을 꺼내든 산비초는 순식간에 펄쩍하고 뛰어올라 노인 앞으로 날아가더니 손칼을 노인의 목에 갖다 댔다.


“누구냐 너, 보아하니 누가 보냈을 리는 없고. 그런데 나이도 꽤나 잡수신 양반이 왜 이런 첩첩산중에 날 찾아오냐고. 뭐, 혹시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야?”


그러자 노인은 고기를 씹다 말고 큰소리로 껄껄 웃어댔다.


“담력과 힘, 순발력은 일단 인정하마. 그런데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접하면 곤란한데.”


“뭐야, 이씨-“


산비초는 급한 성격답게 칼로 노인의 목을 당장이라도 그으려 했다.


‘펑-‘


“으아악-“


‘퍼퍼퍼억’


산비초가 노인을 그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자마자 갑자기 폭발하는듯한 엄청난 힘이 산비초의 복부와 배 그리고 가슴을 강타했다. 그리고 마치 엄청난 힘의 장사가 번쩍 들어 집어던지기라도 한듯 산비초는 곧장 날아가 한 길 앞에 자신이 뜯어 놓은 멧돼지의 뱃속에 처박혀버렸다.


“쯧쯔. 그러니까 좋게 말로 하자니까. 난 좋은 기회를 주러 온 거야.”


얼굴과 몸에 멧돼지의 피와 내장으로 뒤범벅이 된 산비초는 난생처음으로 수치스러운 꼴을 당한 자신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뭐.. 뭐야, 이 미친놈은.. 진짜 사람이 아닌가.’


산비초는 피범벅이 된 얼굴로 노인을 올려보면서 동시에 오른손으로 아까 부러뜨려놓은 멧돼지의 갈비뼈를 몰래 하나 집었다. 노인은 그런 그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에잇-‘


‘휘이익- 파악-‘


산비초는 노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멧돼지의 단단한 갈비뼈로 노인의 정강이를 내리쳤다.


‘옳지. 이번엔 제대로 맞았..’


‘파아악. 빠직-‘


하지만 갈비뼈는 노인의 다리에 맞자마자 마치 단단한 바위를 계란으로 내리친 것 마냥 산산조각이 나 부서져 버렸다.


“어.. 이.. 이건 도대체 뭐야..”


산비초는 난생처음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원.. 원하는 게 뭐냐.”


“허허. 이제야 좀 대화가 되려나. 아무튼 보통 인간은 아니니 쓸만하긴 하겠다.”


‘쓸만하다고? 하, 이 새끼가..’


“아편 장수라고 들었다.”


‘응..?!’


산비초는 순간 긴장했다. 혹시라도 저자가 관아나 나라에서 나온 자라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긴장하지 말고. 천하의 산비초도 어쩔 수 없이 내 앞에서는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하니 너무 억울해하지도 말고, 허허.”


하지만 산비초는 더 이상의 굴욕은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은 어떻게 해도 노인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체득했음에도 멍청한 건지, 용맹한 건지 기어이 할 말을 했다.


"내가 전국 팔도에 대마 밭이 여덟 곳이 있다. 뭘 원하는지는 들어봐야겠지만, 나랑 동업하자.”


그러자 노인이 산비초를 흥미롭게 바로 보았다.


“동업? 그럼 내가 얻는 건 뭔데. 자네,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알고?”


“그야, 정체도 밝히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알겠나.”


노인은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꾀어내려는 산비초의 대담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귀신들이 필요하다. 그냥 지박령이나 망령을 말하는 게 아냐. 억울하게 죽거나 생에 미련이 많거나 원수가 있는 원한령 그리고 그게 오래되어 지독한 놈이 된 악귀, 악령들이 필요하다. 조선 천지에 얼마나 많은 억울한 일이 있느냐. 그 녀석들을 싹 거둬오너라.”


“뭐.. 뭐? 하, 나참. 아편을 재배하고 사람들을 홀리는 게 내 일인데 내가 귀신들을 어떻게 잡아와?”


‘콩-‘


“아얏.”


“떽.”


산비초의 버릇없는 대답에 노인은 산비초의 머리를 곰방대로 콩하고 내리쳤다.


“지금부터 나에겐 존댓말을 쓰고 윤대감이라고 불러라.”


산비초는 곰방대로 맞은 머리가 너무 아파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아편 장사에는 머리가 그렇게 잘 돌아가더니 이 방면은 아예 문외한이구만. 전국 팔도에는 귀신들이 널렸다. 그리고 그 귀신들 때문에 힘든 자들도 많아. 그러다 보니 귀신을 잡는 패거리들이 있다. 녀석들에게 돈을 조금 쥐어주고 귀신을 가둔 부적을 사 오면 된다.”


“돈은, 돈은 무슨 돈으로 하.. 합니까?”


“네 놈, 돈 많잖아? 그동안 아편을 팔아넘겨받은 돈이면 논 만 마지기도 살 수 있는 놈이 무슨 욕심이 끝이 없느냐.”


“그 돈은 내가 번 돈인데..”


“그건 이제 네놈 목숨 값이다. 나를 만나서 이렇게 목숨을 유지하고 살 수 있게 내버려 둔 이는 네가 처음이다. 그리고 동업은 네가 먼저 하자고 하지 않았느냐?”


듣고 보니 그러했다. 아편으로 동업을 하자고 한 건 산비초였기 때문이다.


“네가 만든 아편으로 사람들을 다 홀리고 서로 죽이게 하여 악귀로 만들어 부적에 가둬주면 조선의 원한령과 악귀들은 다 내 거 아니냐."


“그렇게 해서 니가, 아.. 아니, 대감님이 얻는 건 뭡니까?”


“구천을 떠도는 내 손녀를 찾고 싶다. 전국 팔도의 원한령들을 뒤지다 보면 찾을 수 있지 않겠나..”


"네..?"


의외였다. 터무니없는 답변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윤대감은 대답은 의외였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 시작해라. 방법은 알아서 하고 귀신 잡은 부적들을 최대한 많이 가져오너라.”


산비초는 곰방대로 맞은 머리를 긁적이며 윤대감을 지켜보았다. 안하무인, 주객전도의 일념으로 자유롭게 살아오던 그가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하는 건 처음이라 여전히 굴욕적이고 어색했으나 그래도 목숨은 건지고 볼 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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