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해치 사냥 1

by Rooney Kim


"이번에는 그냥 잡귀나 단순 원한령이 아닌 해치를 잡아오라구요?"


소백과 전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기, 그동안 저도 물어보고 싶어 못 견디게 궁금했지만 참아온 게 있는데요."


소백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매번 일감을 전해주던 사내가 약간 움찔하며 대답했다.


"뭐요?"


"아니, 우리가 같이 일한게 몇 년 째인데 아직도 통성명도 제대로 없이 매번 일러주는 곳에 와서 일 받아가고 귀신들 잡아서 부적 전달해 주고.. 이거 이거 너무 정 없잖수?"


그러자 사내는 눌러쓴 갓 아래로 끌끌 대며 웃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뭐 돈 못 받은 건 없잖소?"


"아니 그야 그렇죠.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감당 못할 이야기는 애초에 시작을 안 하는 게 좋아. 우리 덕분에 전국을 다니며 전국구 축귀패로 이름도 좀 알려지고 돈도 벌어먹고살면 됐지."


예상외로 더 뻣뻣하고 방어적인 사내의 태도에 소백도 멋쩍어졌는지 그만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전신이 잠시 소백의 옷자락을 끌어 사내가 들리지 않도록 말했다.


"형, 그런데 해치는 말도 안 돼요. 걔를 어떻게 잡아요. 해치는 영물이에요. 게다가 얼마나 강한데. 전에 세 봉우리에서 결계에 걸렸을 때 만났었다면서요??"


"그지. 응. 그런데 생각보다 사납진 않더라고."


"그럼, 할 거예요? 이걸?"


"네가 더 벌자며. 겨울이 오기 전에 더 벌어놔야 한다더니. 해치가 평소 다른 건에 비해 두 곱절도 더 쳐준다는데 안 할 이유가 있냐. 먹고살려면 뭐든 해야지."


하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보통의 부적들도 역귀나 악귀 등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만 가둘 수 있었지. 해치와 같은 영물을 가두는 건 들은 적도 없었다.


평소 이 정도의 제안 금액이라면 당장 달려들었을 소백과 전신이 머뭇거리자 사내도 조금 신경이 쓰였는지 다시 물었다.


"왜 그러시오. 힘드슈?"


그러자 소백이 좋은 생각이라도 났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곤란한 척하며 역으로 제안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보통 원귀나 악귀라면 우리도 쉽게 응할 텐데 해치는.. 해치는 영물이잖소?"


"그런데?"


"영물 중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보통 사람들이라면 평생 한 번도 못 보는 게 다반사인데.. 그런 영물을 어찌 한 번에 잡는다 말이오. 게다가 이 돈으로는 어림도 없소만, 엇험."


"형, 형 왜 그래요..?"


전신이 생각지 못한 소백의 행동에 그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렸지만 소백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뜻 밖에 그게 통했던지 사내는 입을 우물거리며 한동안 대답을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보름을 주겠소. 그리고 아까 제안 금액의 두 곱절을.."


"열 곱절은 주시오."


소백의 대담한 제안에 사내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갓 너머로 얼굴이 드러날 뻔했다.


"우리 대장이 해치를 못 잡아서 이러는 줄 아쇼? 열 곱절이면.."


“열 냥이죠. 해치는 영물 중의 영물이오. 게다가 수십 년 전에는 이무량을 부적에 봉인하는데 큰 역할을 하루정도로 막강한 전투력도 지녔소. 단순 악귀들은 물론이고 어쭙잖은 어둑시니나 구미호, 거인귀조차도 감히 덤벼보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녀석이란 말이오."


"하아.."


사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가 잠시 후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형, 형, 대체 어쩌려고요. 열 냥이면 지난해 우리가 한 해 내내 천에 가까운 악귀들을 잡아도 못 벌 만큼 큰돈인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해치를 잡아오라는 게 말이 되냐. 우리가 모두 죽으면 죽었지 해치는 못 잡아.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이런 뻘같은 소리에는 더 크게 불러야 쟤들도 정신 차리지."


"아.. 그럼 이 일을 안 하려고 일부러 부른 값이 열 냥이에요?"


"그렇지. 이제 내 깊은 뜻을 알겠냐? 이 형이 그래도 십 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이렇게 협상을 잘하게 된 것도 모두.."


'털썩. 찰랑.'


소백이 채 말을 끝내기 전에 둘 앞에 돈 꾸러미가 던져졌다.


"응?!"


소백과 전신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 마주 보았다. 이 일을 피하기 위해 열 냥씩이나 불렀는데 정말로 그 큰돈을 가져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열 냥의 딱 절반. 다섯 냥. 나머지는 해치를 잡아오면 주겠소. 보름이오. 그럼 이만."


"자, 잠깐..!"


소백의 부름에 사내는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도대체 누구요. 누가 해치까지 잡아오라는 거요?"


하지만 사내는 아무런 대꾸도 않고 사라졌다. 소백은 얼른 돈꾸러미를 확인했다.


"진짜야.. 다섯 냥.. 우와.."


"형.. 진짜 할 거예요? 아니, 해치를 어떻게.."


"못 잡아와도 이 돈은 우리 거 아니냐. 이히히."


"형..! 정신 차려요."


"전신아, 해보자. 뭐 안되면 어쩔 수 없고."


"그래도 해치를.. 아니, 해치는 나쁜 일에 쓰이면 안 되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해치를 가뒀다고 쳐. 그래서 후다닥 부적을 갖다 줬어. 설마 그렇다고 쟤네들이 해치로 뭘 하겠어? 해치는 금방 알아서 달아날 거야. 흐흐."


"형, 그래도.."


"그럼 우리는 돈을 벌고 해치는 알아서 살 길을 찾고. 꿩 먹고 알 먹는 셈이지."


둘이 한창 얘기를 하는 동안 차선이 돌아왔고 곧 소백에게 오늘 주문받은 건에 대해 들었다.


“뭐야?! 미쳤어? 이 오라버니가 돈에 환장해도 단단히 환장했구먼."


열 냥은 분명히 엄청난 돈이었다. 그 정도 돈이면 다섯이서 아껴살면 서너 해도 버텼고 웬만한 기와집을 한 두채 사고도 남는 엄청난 액수였다.


"아니.."


“해치.. 기억 안 나? 우리 얼마 전에 해치랑 불가살이한테 당했던 거 그거 걔네들이 장난친 게 그 정도야. 그리고 나라를 지켜주는 영물 중의 영물을 뭐? 부적에 가둬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넘기자고?"


신무패는 그동안 악귀를 잡아들인 부적으로 먹고 살아왔다. 그리고 최근 몇 해 동안은 삿갓을 쓴 어떤 사내의 의뢰를 통해 대벽마을 건 이전부터 적지 않은 수입을 올려온 것이다.


"안돼. 난 못해. 벌 받을지도 몰라."


예상보다 훨씬 큰 차선의 반대에 소백은 난감한 얼굴을 하곤 한마디 대꾸도 못했다.


"형.. 거 봐요. 특히, 차선 누나는 이런 거에 더 민감하다니깐요.."


“하아, 이미 돈도 받았고 이제 곧 겨울인데 그럼 우린 뭐 먹고 사냐고."


"형, 우리 이건 못한다고 하고 그 돈.. 다시 돌려줄까요?"


"아휴.. 너, 그 남자가 누군지, 어디에 사는지 알아? 나도 알면 그냥 돌려주고 싶다.. 쩝."


----------


"그 말이 사실이냐?"


"네, 포도대장님. 대벽마을은 뭔가 저주라도 걸린 마냥 귀신들이 날뛰고 있었습니다. 단순 악귀들의 짓이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닌 게.."


정만(포도부장)은 포도대장에게 대답을 하다 말고 멈췄다. 곧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쳐다보았다.


"계속하거라. 다 들어도 되는 사람들이다."


“흐음.. 아편이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상민이나 천민들 사이에서도 적극적으로 유통되는 분위기까지는 아니었는데 어찌 된 게 난이 일었을 때는 중인은 물론이고 양인, 천인의 집에까지 아편이 퍼져있었습니다."


"으흠. 이게 다 서양문물 때문이다. 가뜩이나 청이랑 여진 그리고 왜구들 때문에 항상 난리인데 양놈들까지 수교를 한답시고 우리 바다에 와서 얼쩡거리니 조선을 가만히 두질 않는구먼. 젠장."


"그런데.."


"말해보거라."


"저, 뒤에 이 자들은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게 좋겠습니다."


정만의 말에 포도대장은 눈짓으로 그의 뒤에 서 있는 무사 둘을 바깥으로 내 보냈다.


정만의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드리웠다. 포도대장 역시 항상 호탕하던 정만의 얼굴에서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걸 본건 처음이었다.


"혹시 김진립 대감님은 요사이 좀 어떠십니까..?”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snow-mountain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3화 괴인 산비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