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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이 필 무렵
68화 폭풍의 전조(前兆) 1
by
Rooney Kim
Sep 21. 2023
'시장이다. 시장으로 간 그놈이야..!'
정만은 단숨에 시장으로 달려갔다. 시장은 기방에서 멀지 않았다. 남대문 바로 뒤쪽이라 찾기도 쉬웠다.
'이 놈은 어디까지 간 거야. 왜 안 보여?'
정만은 시장에 가득한 사람들을 헤치며 계속해서 달렸다. 남대문 시장이 워낙에 큰 탓에 녀석이 눈에 띄는 괴상한 복장을 해도 찾기 어려웠다.
'웅성 웅성'
"야야, 저 사람들 죽은 거 아냐..?"
"와. 괴물이야, 괴물. 힘이 어찌나 장사던지. 사람 셋의 배를 저렇게.."
"말세다, 말세야. 시장 한 복판에서 사람을 셋이나 죽이고도 버젓이 걸어 사라졌잖아."
정만은 한창 달리던 중 드디어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발견했다. 멀리 서는 포졸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다.'
'어엇..'
정만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곧 달려온 포졸들이 정만을 알아보고는 길을 터주었다.
시장 바닥에는 정만이 심어두었던 젊은 무인들이 하나같이 배가 뚫린 채 큰 출혈을 보이며 끔찍한 모습으로 쓰러져있었다.
'다.. 죽었어..? 격투와 무예에 출중한 녀석들 셋을..?'
괴인에게 당한 사람들은 포도청 소속 중급 무관들로 뛰어난 무예를 자랑하던 자들이었다.
정만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끼는 후임들을 셋이나 보냈다는 슬픔과 미안함이 가장 컸다.
괴상한 옷의 괴인이라는 자가 얼마나 강력하길래 일을 이지경까지 만들 정도로 대담한 자인지 몰라도 정만은 이내 복수와 처벌에 대한 마음으로 활활 불타올랐다.
'이 놈.. 이 새끼가 누군지 모르지만 분명 오늘 일어난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다. 반드시, 반드시 잡아 족치고 목을 쳐서 뿌리를 뽑아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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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저런 천하에 불태워 죽일 놈을 봤나. 아니지, 이미 악령이니 화형부적 속에 가둬 평생을 태워도 시원찮을 녀석이구나. 선준인가 하는 선비가 맘고생이 심했겠어."
"아빠, 아빠. 진정해요.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구요. 행장이 사연은 더 기구해요. 하루아침에.."
선준의 안타깝고 기가 막힌 사연에 분노한 귀로에게 자령이 작은 목소리로 소곤댔다. 행장이는 그동안의 고된 여정에 지쳐 건넌방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은진씨도 저희와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제 아비에 대한 분노를 해결하고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는 더 이상 대벽 마을에 있을 수많은 없는 상황이라는군요."
귀로는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귀로 선생님, 경비는 걱정 마십시오. 이날까지 제가 모아둔 돈으로 충분히 지낼 수 있습니다."
"거봐, 아빠가 퍼뜩 대답 안 하니까 다들 돈 때문인 줄 알고 그러잖아요."
"야, 넌 진짜 자꾸 사람들 앞에서 돈 가지고.."
"모두들! 걱정 마세요. 저희 아버지 돈 많아요. 그깟 윤대감인가 하는 악령 해치우고 다시 돈 벌면 돼요."
그러자 선준과 은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자령의 말이 고마웠지만 마냥 귀로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았다.
"윤대감이라고..?"
귀로는 자령의 말에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네, 제가 쫓는 자가 윤대감입니다. 부끄럽게도.. 제 증조부 외할아버지셨지요.."
'어.. 혹시..'
귀로는 곧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고개를 들었는데 무언가 결심한듯한 표정이었다.
"쾅쾅쾅- 계시오? 안에 계시오?"
넷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갑자기 누군가 집 대문을 세게 두들겼다.
"누가 이 시각에.. 은진씨, 혹시 여기 누가 올 사람이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만.."
"쾅쾅쾅-"
문을 저 정도로 두들긴다는 건 필시 무슨 급박한 일이 있음을 의미했다.
"뉘시오?"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젊은 여자 무당이 있지 않나요?"
'끼이익.'
선준이 곧 대문을 열었고 그 뒤로 은진과 자령 그리고 귀로가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어.. 그쪽은..?"
"어? 산에서 만났던 선비님? 여기에 어쩐 일로.."
차선은 문이 열리자마자 집 마당으로 뛰어들어왔다. 상기된 얼굴과 행동을 보아하니 급히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무슨 일이시죠..?"
차선은 주변 사람들을 모두 둘러본 뒤 조금은 안심한 얼굴이 되어 은진의 물음에 답했다.
"저희 대장과 셋째가 해치를 잡으러 갔다가 이 시각이 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요."
"네?!"
"해치를 요??"
차선의 얘기를 듣자마자 자령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차선을 바라보았다.
"해치..? 아, 그 영물 중 하나라는 큰 호랑이 같이 생긴 요괴..?"
자령의 한 마디에 모두들 그녀의 얼굴을 스윽하고 쳐다보았다.
"누가 해치를 잡으라고 한 겁니까? 아니, 영물을 부적에
잡아가두라니 당최 말이나 되는 건가요?"
"그러니까요. 제가 그렇게 말렸건만.. 돈 때문이지요."
"얼마나 쳐 주길래.. 참나, 한 두 냥은 되나."
"다섯 냥이요. 그래서 눈이 돈 거죠. 아휴. 쯧."
"히에엑..?! 정말요?! 다섯 냥이라면.."
"지금 다들 어디로 간 건가요?"
"대벽산 뒤의 세 봉우리요. 거긴 항상 결계가 쳐 있잖아요? 꼭대기에 대무당 할멈이 살고 있으니.. 아시죠? 은진씨.."
은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만약 정말 저들이 해치를 잡으러 세 봉우리로 간 것이라면 심각한 상황에 처했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가 봐야겠는데요?"
이야기를 다 들은 은진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해치도 해치지만 불가살이도 있어요. 다들 평소엔 얌전하지만 잘못 건드려 위협이 된다 싶으면 웬만한 악귀는 물론 어둑시니가 몇이 나 달려들어도 못 당합니다. 게다가 해치는 이무량을 마지막으로 잠재운 녀석 아닙니까."
은진의 설명은 차선은 마음이 더 동해졌다.
"그럼, 좀 도와주세요. 우리 오라버니와 동생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치를 잡아오라고 시킨 어떤 무리가 있다는 것도 문제잖아요? 은진씨나 귀로 선생님이라면 잘 아실 텐데.."
차선의 상황을 들은 귀로와 선준이 당장 짐을 꾸려 나왔다.
"갑시다! 해치도 위험하지만 그 뒤에 숨은 세력들이 아무래도 수상하네요. 필시 민심을 혼란케 하여 질서를 교란시키는 자들인듯하니. 어쩌면 윤대감도 연루되었을 수 도 있고.."
둘이 나서자 차선의 얼굴에 밝은 빛이 감돌았다.
"아재, 아재, 어디 간다요? 나도 같이 가자요."
선준은 자령과 행장이는 좀 쉬도록 두고 갈 요량이었으나 사실 자령과 행장이는 가만히 집에서 쉴 생각이 없었다.
"아빠, 나도 준비됐어요. 자자, 바로 출발하시죠."
이를 본 은진도 곧 입을 열었다.
"축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아요. 워낙 결계도 강한 곳이라. 대신 각자 부적을 하나씩 들고 있어야 합니다."
선준은 행장이가 걱정되었으나 힘들수록 움직이는 아이란 걸 잘 알았기에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자,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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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해. 어차피 지금 넌 내 몸 안에 갇힌 한 줌의 영혼일 뿐이야."
"야야, 내 말을 들어! 지금이야. 지금이 복수를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닥치라고. 아, 말 많네. 복수는 내가 무슨 복수? 너 옛날에도 입으로 싸우고 입으로 사람들 괴롭혔냐?"
"아니, 이 새ㄲ.. 으읍.."
겸세는 심호흡을 하고 눈을 지그시 내려 감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올라오는 음성에 미칠 지경이었지만 마음만 잘 다스리면 열흘이 넘도록 고요할 때도 있었다.
'지가 옛날에 천하제일이었으면 뭐 어쩌라고. 니놈이 나한테 갇힌 것도 엄벌이라면 엄벌이지.'
겸세는 성곽을 쌓고 돈을 벌고 그걸로 생계를 이어가는 동안에도 돈을 조금씩 모아 일 년에 두 번은 꼭 이름 없는 무덤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며칠 안 남았네.'
겸세는 고민이 되었다. 묘지를 방문하기 전에는 항상 몸과 마음을 깨끗이 했는데 이번에는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그 목소리가 하필 이 시기에 들려와 자신을 괴롭힌 것이다.
'복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혼자 사는 내 팔자에 누가 누구에게 복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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