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복병전 2

by Rooney Kim


여전히 많은 갑사들이 마인들을 상대하며 고전하는 중이었다. 갑사 셋이 마인 하나를 겨우 상대할 정도였으니 조금만 지났으면 갑사들이 모두 몰살을 당할 지경이었다.


"고맙다. 월화야, 수비야! 가자, 모조리 죽여버리자!"


“크르르르르. 크아아.. 어흐으으으으으으으응!-“


천검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수비가 엄청난 소리로 포효하자 백 마리도 넘는 호랑이들이 동시에 뜀박질을 시작하더니 무서운 기세로 마인들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악- 투둑-'


'퍼퍽- 찌이익- 뚜둑-'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이미 수십의 갑사들이 다치거나 희생되었지만 날래고 강력한 호랑이들은 한 마리당 마인 한 둘은 거뜬히 제압하고 찢어발겨 죽이거나 숨통을 끊어 놓았다.


'제길.. 일단 뜨자.'


마인들 덕분에 쉽게 상황을 정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산비초는 백도 넘게 몰려온 호랑이들을 보고는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저기, 저 놈이다. 저 녀석을 찢어 죽여라!"


멀리서 달아나는 산비초를 보고는 천검이 소리쳤다. 곧바로 범 한 마리가 달려가서는 산비초의 등을 덮쳤다.


'퍼퍽- 휘이익- 퍽-'


"끼에엥-"


하지만 산비초는 역시 괴인이었다. 온몸의 상처들은 언제 나았는지 흔적도 없어졌고 자신의 등에 올라탄 범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후려 치더니 범의 어깻죽지를 잡고는 앞으로 내던져버린 것이다.


‘터억- 꾸에엥.’


'저.. 저런 괴물 같은 놈이.'


산비초는 곧 사라졌다. 그리고 마인들과의 전장도 곧 정리되었다. 백여 마리가 넘는 호랑이들은 마인들을 모두 찢어 죽인 후 착호갑사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다. 갑사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모두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들을 도우러 왔다는 점은 분명했기에 무서움과 고마움이 공존하는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원래라면 호랑이를 잡으러 다니는 착호갑사들이 오히려 호랑이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으니 세상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월화야, 수비야, 고맙구나. 내가 너희들에게 큰 빚을 졌다."


천검이 둘에게 다가가자 월화가 천검에게 다가와 얼굴과 몸을 비비댔다. 그리고 수비가 상처를 입은 말봉에게 다가가 천검을 바라보았다.


"도와줄 수 있겠느냐..?"


이에 수비가 눈짓을 하자 범 하나가 달려와서는 말봉이를 둘러업고 마을로 뛰어 내려갔다.


"이 호랑이들은 뭐요.. 덕분에 살았소만 우리를 알고 도와준 거요..?"


정만의 물음에 천검이 대답했다.


"오랜 친구 사이입니다. 한 때는 제가 녀석의 목숨을 구해줬는데 이번에는 녀석이 제 목숨을 구해줬네요."


"거참, 대단한 인연이구만 동물이, 그것도 호랑이들이 사람을 돕다니. 그것도.. 착호갑사들을.”


곧 월화는 수비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사라졌다. 이번 상황은 모면했지만 산비초는 잡아들이지 못했다.


"산비초는 조선에 큰 위해가 될 녀석이니 정예 갑사들과 군사도 동원해야겠다. 일단은 다들 정리해서 내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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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맞지 않는가, 박대감."


"두 말하면 잔소리 입죠. 윤대감님. 그러면 앞으로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한양 전체 기방과 주막에 아편환을 뿌려라. 환은 산비초라는 자에게서 얻으면 된다. 최대한 빨리하거라. 그리고 전국으로 넓혀라."


박정필 대감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아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얻는 몫은..? 하하."


"산비초. 그자가 떼어줄 것이다. 얼마나 받아갈지는 합의하거라. 네 덕에 그 자도 떼돈을 벌테니 절반은 주지 않겠냐?"


".. 네, 하하. 그렇지요."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네 몸속에 좀 들어가야겠다."


"... 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시키는 대로 다하고 돈만 받으면..?"


"그건 네가 할 일이고 내가 잠시 육신이 필요하다."


"네..??!!"


“이레(칠일)를 주겠다. 한양의 모든 기방과 주막에 환을 뿌려라. 그리고 곧 내가 찾아오겠다.”


박대감은 갑작스러운 윤대감의 요청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우선, 그.. 그 산비초라는 자를 만나봐야겠습니다. 그.. 제 몫을 얼마만큼 챙길 수 있는지도 그렇고, 그런데..”


“그런데?”


“제.. 제 몸에는 왜 들어오시려고 하시는지.. 요?”


“네 힘이 필요할 때 쓰려고 그러지.”


“아하하.. 힘은 윤, 윤대감님이 훨씬 세시지 않습니까?”


그러자 윤대감이 크게 너털웃음을 웃더니 다시 박대감을 바라보았다.


“껄껄껄껄껄, 박대감, 보기보다 순진하구먼 그래. 박대감, 박대감은 종 1품이 아닌가?”


“그.. 그렇지요.”


“그럼, 그만큼의 힘이 있지 않나?”


“그러니까 아까부터 말씀하시는 그 힘이란 게.. 하하..”


“네 명에 따르는 군사 말이다. 군사를 부릴 수 있지 않느냐?”


윤대감의 물음에 박대감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왜 그러냐? 혼자 몰래 지방에 밭을 두고 해먹을 때는 잘 만하더니 이제 전국적으로 제대로 좀 해보자니까, 혹시 겁나서 내 빼는 건 아니겠지?"


"그.. 그야, 당연합지요. 제가 왜 이를 마다하겠습니까. 다만, 제 신분과 체통이 있는지라.."


이에 윤대감이 두 눈을 부릅뜨고 박대감을 노려보았다.


"세상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겠지?"


"아..! 그야, 무.. 물론입니다!"


‘젠장.. 역시 귀신들이랑은 내통하는 게 아닌데..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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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산비초라는 자인가?"


"그렇습니다만."


"윤대감에게 얘기는 익히 들었네. 그래 전국적으로 양귀비 밭을 여러 곳에 가지고 있다고?"


"네. 이제 막 한양으로 영역을 넓히려는 참입니다."


"윤대감에게 얘기는 들었나?"


"네, 그렇습죠."


"그래. 내가 자네에게 한양에 있는 모든 기방과 주막에 네 환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 그렇다면 넌 내게 무엇을 주겠느냐?"


박대감의 말에 산비초의 두 눈은 동그래졌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애써 입을 꾹 다물었다.


'젠장.. 뭘 달라는 거야? 권력도, 재물도 다 가졌으면서..?'


"어찌 대답이 빨리 없는가?"


"하늘을 찌르는 권세를 가지신 대감님께서 당최 뭘 원하실지 감이 안 잡혀서 말입니다.."


"껄껄껄껄껄!"


"녀석, 말 한 번 잘하는구나."


"말씀만 하십시오."


박대감은 이제 산비초의 성향을 다 파악했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눈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편 판매량의 칠 할을 내어 놓거라."


"네..?! 치, 칠 할이요? 하아.. 그건 좀."


"듣자 하니 한양 주막에 이제 서너 곳 들어갔다던데. 지금 한양에는 주막만 일백오십여 곳이 넘는다. 기방은 그 수는 적어도 기방 하나당 주막의 다섯 배에서 열 배는 더 받을 수 있다. 이래도 네 몫을 고집할 때냐?"


'아주 역겨운 버러지마냥 욕심이 그득한 자구만. 그렇게 가지고도 참나.'


"어찌 대답이??"


"좋습니다. 대신, 그럼 이를 전국으로 넓혀주십쇼. 대신 한양 외 지역에서는 제가 칠 할을 가져가겠습니다."


'옳거니. 이걸 그냥 들어주는구나. 윤대감이 괜히 겁을 준 건가. 그깟 지방 촌구석의 주막들 수입이야. 끌끌끌.'


"그렇게 하거라."


"네, 그럼 당장 일을 시작합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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