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귀로의 분노

by Rooney Kim


십여 년 전. 지금의 경상북도 일대.


"정신 차려, 여보! 아니야, 내가 다 해치웠어! 내가 다.."


“으아아.. 끼아아아아.. 여, 여보, 저, 저것들이 자꾸만 다가와. 나, 날.. 날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 해.."


귀로의 아내는 이미 이년 째 귀신에 시달리고 있었다. 명색이 고을에서 이름난 축귀사인 귀로조차 원인을 알 수 없었던 터라 귀로의 아내는 날이 갈수록 쇠약 해져만 갔다.


"자령아, 엄마가 몸이 많이 안 좋구나. 이번에도 명이 이모네에 가 있으렴."


"...네, 아빠. 그런데 엄마를 괴롭히는 게 정말 귀신이 맞아요? 아빠는 귀신을 잡는 사람이라면서요..?"


"그렇지. 아빠도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혹시 귀신이 없는 게 아닐까요? 엄마가 그냥 헛것에 시달리거나.."


"넌 아직 어려서.."


"꺄아아아아아악-"


순간, 안방에서 아내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귀로는 당장 방으로 뛰어갔다.


"여보!!"


안방에 들어간 귀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귀로의 아내가 허공에 뜬 채 울먹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끌끌끌끌끌. 그러게 내가 그렇게 귀신들을 그만 쫓으라고 하지 않았나?"


귀로가 온갖 부적을 꺼내 들고 축귀경을 읊던 차에 방구석의 어두운 곳에서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너.. 넌, 누구냐?”


"껄껄껄. 귀신들은 잘도 때려잡더니 아직 눈치는 없구나."


귀로의 아내는 여전히 허공에서 겁에 질린 채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동공이 커진 채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이 악귀 자식, 저승으로 보내주겠다!"


귀로는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발에 기를 잔뜩 실어 튀어나가며 노인에게 주먹을 날렸다.


'우우웅-'


'휙-'


하지만 노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고 귀로는 허공에 빈 주먹질을 할 뿐이었다.


'어디로 간 거야.'


"끄아아아악. 끼아아아악-"


"여.. 여보!"


귀로는 허공에 떠 있는 아내를 억지로 끌어내렸다. 아내의 두 눈은 이미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망상귀에 갇혔어. 일단 이승에서는 답이 없다. 일단 영계로 보내야 해. 영승원에 가서 치료를..'


'휘리릭- 휘리릭-'


순간 어둠 속에서 축축이 젖은 까만 팔 수십 개가 튀어나오더니 귀로의 손과 팔을 휘감았다.


'뭐야. 이 잡귀들이.'


귀로가 기공을 실은 손으로 까만 팔들을 쳐내고 뜯어냈지만 뜯어내는 족족 더 많은 팔들이 귀로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다른 팔들이 그만 아내를 낚아채고 말았다.


'휘리릭. 타악- 휘이이이익-'


"안.. 안돼에..!!!"


귀로는 축귀를 시작한 뒤로 이토록 무력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귀신들을 부리는 능력을 타고났기에 악귀들을 처단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 믿으면 축사를 하며 살아온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아내를 되찾고 싶다면 둘 중 하나야. 네가 축귀를 멈추고 죽던가 아님 날 저승으로 보내던가. 으하하하하하하."


"닥치고 내놓아라. 내 아내를 어서 돌려놔! 네 혼이 갈갈이 찢어져 저승에도 못 갈 정도가 되기 싫다면 어서 당장.."


"끼아아아아악-"


곧장 귀문이 열렸고 귀로의 아내는 수십 개의 검은 팔에 붙들려 영계로 끌려가고 말았다.


"안.. 안돼에-!!!"


이 날 이후, 귀로는 귀문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귀로 역시 이승에 있는 귀신을 때려잡기만 했지 귀문을 열고 영계로 가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귀로는 살아오면서 이렇게 분노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이토록 원망하고 원수를 갚기 위한 복수심에 들끓은 적은 없었다.


귀로는 아내가 빨려 들어간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귀문은 이미 닫힌 뒤였다. 귀로는 아내가 잡혀간 벽에 대고 수십 차례의 주먹을 날렸다. 때문에 단단한 흙돌벽이 삽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아.. 아빠..? 엄마는, 엄마는 어디로 간 거예요?"


"... 엄마가 잡혀갔다."


"네? 왜요? 누가요?"


"귀신들한테.."


"아빠가 귀신 잡는 사람인데 도대체 어떻게..?"


자령은 공포와 슬픔이 한데 섞인 얼굴을 하고는 귀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걱정 마라. 아빠가 곧 엄마를 구해올게.”


귀로의 말에 자령은 멍한 얼굴로 그저 빈 방 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귀로는 곧장 대무당 할멈을 찾아갔다. 대무당 할멈은 수십 년 전 대악귀전에서 조선의 가장 큰 악령인 이무량을 해치우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 중 하나였기에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귀로는 당장 할멈을 찾아가 귀문을 열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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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헤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하지 않았냐. 나이도 젊은 양반이 갔다가 무슨 일을 당하려고."


"제 아내가 잡혀갔다니까요. 지금 경상도에 일대에서 귀신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자네, 귀신을 부리는 자가 아닌가?"


귀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막질 못했다?"


"치욕적이지만 그렇습니다. 누.. 눈앞에 아직도 아내의 일그러진 표정이.. 크흑..”


귀로는 순간 감정에 복받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런 무력감은 처음입니다. 마치 이무량 때.."


"어허, 어디 함부로 그 이름을 올려. 앞으로 다시는 이무량 같은 악령은 없을게다. 적어도 수 백 년 간은."


"간사하고 강력한 노인이었습니다."


"노인?"


"네, 홍의를 입은 노인이 수백의 악귀와 역귀 따위를 부리는데.. 제 능력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누님의 명성을 듣고 왔습니다. 제발 한 번만 귀문을 열어주십시오."


"흠.."


"보아하니 네 영력은 쓸만하다만. 영계가 어떤 곳인지 알아?"


"저도 잡귀들을 저승으로 보내기만 한지라.."


"솔직히 말하마. 지금 네 아내가 영계 어디에 있는지 당장 알 방도는 없다. 그런데 가보면 알게야. 거기에 있는지 없는지. 그런데 만약 이미 저승으로 간 뒤라면. 그건 내 영역이 아니야."


"그.. 그렇다면."


"신들의 영역이지. 그건 나도 모른다."


"그럼. 귀문을 열고 닫는 방법만 알려주십시오..! 그 뒤는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하아.."


"제발.. 한 번 만.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조심해. 동서남북에 네 개의 궤가 있다. 혹여 그걸 발견하더라도 모른 체 지나가."


"그건..?"


"떽. 그냥 그러라면 그래!"


"아.. 네네, 알겠습니다."


"그럼 보름 뒤 그믐달이 떴을 때 찾아오거라."


“아아,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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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후, 현재.



'부스럭. 부스럭.'


"누구냐!"


"웬 놈이야! 당장 나와서 정체를 밝혀라!"


무수대망까지 처리했지만 선준을 비롯한 일원들은 여전히 초긴장 상태였다.


이들 뒤에 필시 어떤 큰 세력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존재가 윤대감이 맞다면 더 무시무시한 녀석들을 차례로 보낼 수 도 있었기 때문이다.


'부스럭. 부스럭.'


우물가 풀숲에서 계속해서 소리가 났지만 당장 눈에 드러나는 게 없자 소백이 풀숲으로 달려갔다.


'휙-'


"아유, 깜짝이야!"


"귤바 귤바, 아구랴 귤바."


"기이이이이, 에에엥."


"뭐야? 너네들 거기에 있었어??"


또 어떤 괴물일지 몰라 긴장하던 중 갑자기 해치와 불가살이가 풀숲에서 튀어나오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하아.. 다행이다."


"선비님, 해치랑 불가살이가 나왔다요!"


"욘석들! 내가 모르는 사람들 따라가지 말랬지!"


대무당 할멈이 마당 어딘가에서 싸리비를 들고는 해치와 불가살이 앞으로 달려갔다.


"아구랴 웅바, 웅바.."


"끼에엥.."


그러자 해치와 불가살이가 겁을 먹고는 둘이 딱 붙어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할멈도 자식 같은 녀석들이 걱정되어서였지 정말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흰둥아, 불덩아.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내가 아무나 따라가지 말랬지?"


선준과 귀로를 비롯한 일원들은 이 모습을 여전히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뭐라고? 응. 아, 그랬다고?"


할멈이 해치, 불가살이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교감을 하는 동안 다들 숨죽여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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