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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이 필 무렵
77화 도깨비 길달
by
Rooney Kim
Nov 1. 2023
그렇게 잠시 동안 녀석들과 얘기를 나눈 할멈은 곧 어디선가 쇳덩이와 나무 한토막을 들고 오더니 녀석들에게 던져주었다.
"우아아아앙."
그러자 해치와 불가살이는 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내며 해치는 나무를, 불가살이는 쇳덩이를 물고는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
"뭐.. 뭐라고 하던가요?"
할멈이 돌아오자 귀로가 물었다.
"쟤네들은 누구를 따라간 적이 없대. 오히려 중턱의 결계가 풀려서 산으로 올라오는 역귀와 여귀 떼들을 다 먹어치웠다나.. 흠."
"산으로 올라오는..?!"
할멈의 대답에 정법이 되물었다.
"응. 뭐야? 누구지? 정법이 너 또 무슨 사고 친 거 아니지?"
"아유, 참, 누이도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혹시 결계는 자연적으로 풀리기도 하나요?"
선준이 궁금하던 차에 끼어들어 물었다.
"아니. 그럴 순 없지. 내가 만든 결계는 내가 풀거나 아니면."
"아니면..요?"
"누가 깨고 들어오는 거지. 그것도 적어도 나만큼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귀신이 말이야. 그런데 보통 신들도 인간들이 쳐놓은 결계는 잘 건들지 않거든. 하물며 귀신 따위가.."
이에 귀로가 입을 열었다.
"이 모든 게 홍의악귀 윤대감 때문입니다."
“그.. 아까 무수대망이 말한 대감말이냐?"
"네, 할멈."
선준 역시 이 난을 일으킨 자가 윤대감이라는 걸 확신했다. 붉은 도포에 대감의 모습을 한 악귀 중 그렇게 강력한 세를 가진 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더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꼭 윤대감이길 바랐다. 몇 해를 걸쳐 찾아 헤매던 자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으니 선준은 이를 자신의 부모와 행장이의 가족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귀로, 자네. 십여 년 전에 나를 찾아왔을 때 한 말들을 기억하는가?"
"기억하다마다요."
“그럼 정말로 이 자가 자네 아내를 잡아간 자와 엮여있다고 생각해?"
"... 아마도요. 아니, 맞습니다."
할멈은 생각에 잠겼다. 오십여 년 전, 나라의 명운이 걸린 대악귀전(이무량전으로도 불린다)으로 해치운 이무량 이후 자신의 거처까지 위협할 정도로 대담하게 세를 키운 악귀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자가 제가 쫓던 윤대감과 같은 자라면 세가 더 커지기 전에 얼른 잡아서 멸해야 합니다."
선준까지 나서서 거들었다. 처음엔 결계가 풀려 수상하게 생각했다가 해치와 불가살이가 사라진 걸 보고 분노했던 할멈은 이제 이 일이 더 큰 규모의 대란이 될 수 도 있음을 짐작했다.
정법은 뒤에서 이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혹시, 이것 때문에..? 아, 아냐 아냐, 아직 모르겠다.’
"그래, 알았다. 일단 다시 결계를 쳐두었으니 당장은 잡귀들로부터 안전하니까. 흐음.. 대책을 세워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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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 오셨습니까?"
'쪼르륵-'
길달(삼국유사에 나오는 도깨비)이 담비굴에 단검을 하나 내려놓자 곧바로 소인(검과 전쟁을 좋아하는 3척 소인. 담비와 함께 담비굴에서 살아감. 주로 검을
주면 초피를 가져다 줌)이 굴에서 튀어나왔다.
"히이야! 이.. 이 검은?!"
"환도(環刀, 주로 몸에 소지하는 군도 중 하나)다."
"손잡이에 가죽 끈하며.. 나무랄 게 없는데요. 이히히."
"너한테 맞게 일 척짜리로 했다."
"감사합니다요..!"
"어찌 일은 맞느냐?"
"히히. 그럼요. 다만 하도 오랫동안 전쟁이 없어서 좀 심심하지만요."
"야, 전쟁이 나면 또 얼마나 많은 원귀가 떠도는 줄 아냐. 그거 보는 것도 나름 괴롭고 못할 짓이야."
"그래서 저도 지금은 좋습니다요. 히히."
"그래. 이제 함경도 까지도 한다며?"
"아, 밭이요? 네네, 다해야죠. 거기에도 애들을 많이 풀어뒀습니다. 어차피 수확은 우리 일이라."
말이 끝나자마자 소인이 굴 안에서 갈색의 가루가 가득 찬 포대기를 몇 개나 가져 나왔다.
"그래 내일 새벽같이 모두 산 초입에 갖다 놓거라. 산비초랑 같이 또 한양으로 날라야 한다."
"네네, 알겠습니다요. 그럼 길달님은 어디로 가시나요?"
"바쁘다. 알 것 없다."
"어어! 길달님, 그럼 또 언제까지 가루를 준비하면 될까요?"
"몰라. 산비초에게 물어라. 그 자식 요즘에 한양에서 세를 늘리느라 신이 났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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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엑. 헥헥. 헤에엑. 헥헥."
산비초는 산비탈을 따라 바람처럼 뛰어 달아났다. 마인들까지 소환하면 삽시간에 제압될 줄 알았는데 하필 호랑이가 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갑사들이 언제부터 호랑이랑 친했냐. 쟤네들은 서로 죽이지 못해 환장한 사이 아니냐고. 아씨 진짜..'
산비초는 달아날 만큼 달아났다고 생각되자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 한 걸음에 십리도 넘게 달려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일단 양근군(현재 양평의 서부 지역)의 거처로 가자. 한양 근처는 위험해.'
산비초는 주머니를 뒤져 약환을 하나 꺼내 깨물었다. 이는 녀석이 판매하는 아편환과는 다른 약으로 기존 아편환의 아편 중 일 할 분량의 아편이 섞여 진통 효과가 있었고 각종 한방초를 섞어 만든 일각 기력제였다.
'아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이씨, 조금만 기다려라 저 인간들 갈가리 찢어 죽여야지. 조용히 아편이나 좀 팔겠다는데, 쯧.'
'덜컥.'
"아이씨, 깜짝이야."
산비초는 안방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안방에는 길달이 다리를 꼬고 누워 심드렁하게 누워있었던 것이다.
"야이.. 너 아직도 여기 있었냐?"
"도깨비가 어디에 살든 내 맘이지. 왜? 도깨비 터라도 만들어 줘? 흐흐."
길달이 자세를 고쳐 앉고 산비초를 맞이했다.
"그나저나 꼴이 그게 뭐냐? 온몸이랑 옷에.. 피야? 너 어디서 줘 터지고 다녀?"
그러자 산비초가 입을 실룩거리더니 방바닥에 털썩하고 앉았다.
"내.. 이씨,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아니 어찌 착호갑사랑 호랑이가 한편이야? 허어참."
"무슨 소리야?"
"우리 이거 쪼오끔 위험해지겠어. 나라에서 이미 눈치챘나 봐."
"군사들이랑 싸운 거야? 아니, 왜?"
"아직 정규군은 아니었는데, 후.. 관악산에 있다가 죽다가 살아났네. 포도부장이라는 자랑 착호갑사들 그리고 어! 척결패 패거리들도 왔더라."
"척결패?"
“알지? 척결패라고 조선의 검계랑 산적을 통일한 산적 무리 있어. 근데 뭐 별건 아니더라. 끌끌끌."
"니가 그 사람들이랑 다 붙었다고?"
"응."
"구라 치고 자빠졌네."
"아 진짜래도. 이 도깨비가 확. 뭐.. 나중에 마인들을 부르긴 했지. 크크. 아 근데 호랑이 떼가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수?"
"희한하긴 하네."
"너였음 부적에 갇혔을 거다. 크크크."
산비초의 마지막 말이 괜히 길달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게 돌았나. 야, 넌 사람이야. 난 도깨비고."
하지만 길달의 심기를 눈치 못 챈 산비초는 신이 나서 계속 길달을 골렸다.
"도깨비일 때도 사람인 비형랑(도깨비를 부린 신라 시대 사람. 귀신의 아들이라고도 불림)에게 끔살 당했잖아? 히히."
그러자 길달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산비초의 말이 그의 심중을 건드렸는지 얼굴은 자못 진지해졌다.
"산비초. 니가 아무리 괴인이지만 넌 인간이야. 마인들을 꽤나 부리고 요즘 윤대감을 등에 업고 잘 나간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본데. 너 입 함부로 놀리지 마라. 찢어 죽이기 전에."
하지만 산비초도 당장 물러서지는 않았다. 잔뜩 약이 오른 길달의 두 눈을 한 번 쳐다보고는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화제를 돌렸다.
"하아- 거참, 길달이 형님 성격도 참. 그래봐야 비형랑은 수백 년 전에 죽어 이승에 없잖수. 형님은 여기에 있고."
"불리하면 형님이냐."
"끌끌끌."
"모르지. 이무량처럼 아직 조선에 있는지."
"응? 그게 뭔 소리야? 이무량은 먼 고릿적 시절의 조선 귀신 대장 아니요?"
"나도 잘은 몰라. 풍문으로 들었다. 이무량의 기운을 가진 자가 있다더라. 충청도 도깨비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어."
"정말? 아니 그렇게 전쟁도 많이 일으키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끔살 한 녀석을 겨우겨우 잡아서 저승으로 보냈다더니.. 아니야?"
"이유는 모르지 뭐.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히야.. 그게 진짜라면 아편이고 윤대감이고.."
"야이씨, 입조심해. 산비초 너는 그게 참."
"히히. 아 우리끼린데 좀 봐주슈. 그래서 언제 내려가는데?"
"강원도는 다 뒤졌고 이제 충청도로 가야지. 요즘 거기에 귀신들이 몰리더라."
"구미호?"
"응."
"근데 윤대감님은 왤케 구미호에 집착해?”
"모르지 뭐. 전국의 모든 귀신과 도깨비를 다 잡아들이는 중인데 구미호는 또 특별하잖아?"
"아구구. 그래 난 좀 쉬어야겠다."
'드르렁. 푸우우-'
산비초는 자리에 눕자마자 곧장 곯아떨어졌다. 회복력이 어찌나 좋은지 상처는 이미 아문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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