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박대감의 음모

by Rooney Kim


길달은 곧장 집 밖으로 나왔다. 새벽에 산비초를 도와 아편이라도 좀 날라줄까 했는데 녀석의 태도를 보니 마음이 싹 바뀌었다.


일단 당장 충청도로 가야 했다. 축지법 몇 번이면 몇 달음에 갈 수 있지만 곧 동이 터오니 산속에 숨어 해를 피하거나 그늘진 길로 달려야 했기에 축지법을 쓰기도 마땅치 않았다.


'길달이 너는 꼭 전국의 구미호들을 잡아와야 한다. 이 구슬이면 아마 환장할 게다. 구미호들은 구슬을 좋아하거든. 낄낄낄.'


길달은 윤대감이 한 말을 떠올렸다.


'미친놈. 일단 하긴 하겠다만. 영..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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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김대감. 요새 잘 지냈는가?"


박대감이 궁을 나서던 김대감을 불러 세웠다. 그러자 김대감이 목례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요 앞전에 시장에서 병사들이 죽었다던데. 별 일은 없는 거지?"


김대감은 박대감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며 표정을 살핀 뒤 말을 이어갔다.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민심이 예 수상합니다. 시장 주막마다 싸움이 끊이질 않고 귀신 들린 자들이 그리 많다는군요.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아참, 요즘 기방들은 어떠한지요 요즘에도 자주 나가시지 않습니까?"


김대감의 한마디에 박대감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유도신문하려다 되려 당한 꼴이었다.


'끄응. 저것이..'


"그나저나 우리도 이제 서방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나? 십 수년 전에 양요도 두 번이나 치렀으니. 또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는 일이고. 지금 왜놈들은 청이랑 대립도 심각한데 내부에서도 청에 대한 반발 세력도 있다는 거 잘 알지?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갑신년이구만.”


"안 그래도 학자들과 대비 중입니다."


"학자들이 궁리한다고 대책이 나오겠나? 전쟁은 무인들이 하는데."


"지략가들은 학자들 중에 많지 않습니까."


"허허, 한 마디를 안 지네그려. 여튼, 곧 이에 대한 모집을 하겠네. 준비하시게나."


"네, 그러지요."


박대감은 김대감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윤대감이 의도한 대로 아편환은 한양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중이었다.


특히 주요 사대부들이 다니는 기방에서도 수요가 엄청났고 몇몇은 이것이 아편환인지도 모르고 따로 구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김대감에게 사람을 더 붙여라. 아무래도 뭔가 낌새를 눈치챈 것 같아. 저 놈이 보통 놈이어야지."


“네. 알겠습니다.”


“만에 하나, 김대감이 민감한 정보를 습득한다면..”


“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검은 옷의 무인이 박대감의 발끝을 바라보며 물었다.


“잘 알지 않느냐? 깨끗하게 처리하거라. 어차피 너네 검계들이 그런 궂은 일은 잘하지 않느냐? 시대가 시대인만큼 핑계 댈 건 많다.”


그러자 무인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렇다면 뒷일은 봐주시는 건지요?”


“어허, 사고사에 뒷일이 어디에 있는가? 왜놈이 그랬는지, 청이 그랬는지, 조정에서 그랬는지. 내 알게 뭐냐? 허허허.”


그러자 무인이 슬쩍 박대감의 얼굴을 살피고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일에는 마땅한 대가를 허락해 주셔야..”


“예끼, 말이 길다. 누가 듣겠다.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해주지 않겠느냐? 썩, 물러가거라. 네놈들이랑 있는 걸 누가 볼까 두렵다. 쯧.”


“네.”


검은 옷의 무인은 곧 수하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이들은 곧 마을의 어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따, 형님. 그럼 박대감님은 김대감을 어찌하란 말이오? 그냥 두고 보란 거요. 처리를 하란 거요.”


“일단 두고 보자.”


“그런데 만약 우리가 거사를 치르면 정말 뒷일은 누가 감당하는 거죠, 형님? 아무리 우리가 검계지만.. 대감님이나 되는 분을..”


“철평아, 두껍아, 우리는 검계 아니냐. 앞뒤 생각하지 말자.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세를 다시 늘리는 거지. 지금 조선에 검계가 씨가 말랐다. 척결패 놈들이 조용한 이때가 지금이 우리가 전국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도 있지 않겠냐.”


“아, 그야 글죠. 형님이야 똑똑한께. 저희는 뭐 형님만 따릅니다.”


“가자, 일단 밥이나 먹자.”


—————


“도희야, 금정아!”


“언니! 오라버니들!”


차선의 목소리에 도희와 금정이가 방에서 뛰어나왔다. 이틀 가까이 보질 못했으니 어린애들 입장에서는 무섭기도 했고 언니와 오빠들이 너무 보고 싶기도 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얼마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그래 그래, 미안해. 우리도 일이 있었어. 아 글쎄, 이 오빠랑 전신이가 또..”


“앗하하하, 차선아. 얘들 배고프겠다. 전에 만들어둔 누룽지 밖에 못 먹었을 텐데. 자자, 여기 고기랑 나물도 좀 사 왔다. 어! 엿도 팔길래 사 왔지. 도희야, 금정아, 너네 엿 좋아하잖아?”


“우와! 언니, 이렇게 귀한 고기랑.. 또 엿까지? 오라버니, 우리 돈 많이 벌었어요? 우리 부자예요? 히히”


소백은 도희가 신난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보니 흐뭇해졌다. 항상 어른스러운 아이라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야 뭔가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이 오빠가 돈을 많이 벌었단다. 아.. 해치는..”


“형, 우리 그럼 그 돈 돌려줘야 하는 거 아녜요?”


전신이 기분 좋은 소백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속삭였다.


“야야.. 그래도 노력은 했으니까 절반은.. 절반은 주겠지?”


“내일 점심때 보자고 한 건가?”


“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왔던데요?”


“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겠지. 여하튼 그건 내일 그 사람들 만나서 얘기해 보자.”


이튿날 점심.



“저기.. 해치는 말이죠.”


“압니다."


“네? 뭘요.”


“해치 놓친 거 알아요. 우리 두목도 알고 있습니다.”


“아..”


소백은 할 말이 없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다섯 냥을 모두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럼 돈은.. 어떻게 다시..?”


“아뇨. 그건 그냥 가지시고.”


“…네에?”


소백과 전신은 삿갓을 쓴 사내의 대답에 놀라고 말았다. 이번에도 삿갓을 쓴 이들이었지만 전에 만났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들이 나왔다.


“거.. 요새 우리 두목의 장사가 잘되서요. 축귀는 좀 뒷전이었는데. 해치는 당장 힘들 테니 한양으로 넘어와서 축귀나 좀 더 하시오. 요새 주막이랑 기방에 그렇게 귀신 들린 자들이 설친답디다. 열흘 줄 터이니 부적 열 장만 채워오시오.”


소백은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해치 때문에 골치였는데 그냥 간단한 잡귀들의 축귀라니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게다가 다섯 냥은 그냥 가지고 또 새로운 일은 받은 것이니 이만한 횡재가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한양이오? 한양이면 여기서도 열흘은 가야 하는데."


"열 흘? 자네나 저 남자아이라면 나흘이면 가겠는데?"


"아. 제 가족 중에 어린 여자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러자 삿갓을 쓴 둘이 잠시 자리를 옮기더니 수군거렸다.


곧 삿갓을 쓴 자 둘이 돌아왔다.


“그건 그쪽 사정이니 열흘이 걸리든 아니든 알아서 하시고. 자, 여기 한 냥이오.”


“하.. 한 냥이나 주신다고요? 잡귀들 열 장인데..?”


그러자 전신이 눈이 동그래지더니 소백의 옆구리를 살짝 툭하고 치더니 속삭였다.


“형, 이거 거저잖아요. 딴 소리하기 전에 일단 빨리 받아요.”


“응. 그렇지.”


소백은 다시 근엄한 표정으로 삿갓을 쓴 둘을 바라보았다.


“조만간 한양에 많~은 일들이 터질지 몰라요. 아, 귀신.. 많~은 귀신들이 나타날 터이니 이번에 하는 거 보고 아예 터를 한양으로 옮겨야 할지도 모를 겁니다. 하하하.”


“네?! 그게 무슨..”


소백은 대벽마을에 겨우 잡아 둔 거처를 한양으로 옮겨야 할지 아니면 차선과 아이들만 둔 채 전신과 같이 한양에 잠시 다녀올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자 전신이 소백의 옆구리를 꾹 하고 찔렀다.


소백은 이내 다시 근엄한 표정으로 삿갓을 쓴 둘을 바라보았다.


“아, 네네, 그럼 잘 잡아서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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