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쩌억- 쿠우우우웅-!!'
곧 사방의 부적들이 불타올라 사라지더니 황천경이 만든 저승 구멍도 쪼그라들어 사라졌다.
온 기운을 다 쓴 할멈은 바닥에 주저앉듯 쓰러져버렸다.
"누이..!"
"할머니!!"
정법과 귀로, 선준이 할멈에게 달려왔다. 그런데 은진이 허공을 보며 마치 온몸이 얼어붙은 듯 서 있는 게 아닌가.
"저.. 저건.."
은진은 너무 놀라 더 이상 축귀경을 외지도 못했다. 아니 더 이상 욀 수 없을 정도의 극한의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은진씨? 왜 그래요?"
황천경과 축귀경이 모두 사라지자 다시 사방에서 귀신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선준은 은진을 얼굴을 보고 예사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 저기.. 저저.."
은진은 극도의 공포감에 말도 제대로 잇질 못했다.
이에 선준이 은진이 응시한 곳을 쳐다보았다.
'뭐야.. 도, 도대체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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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아, 부적은 다 붙이고 왔냐?"
"네, 형."
"히야아.. 여기가 조선 최고의 기방 중 하나인 기연정이라고? 귓동냥으로만 듣던 곳엘 와 보다니."
"형, 그런데 기방은 재밌는 곳이에요? 어른들이 왜 이렇게 많이 들락거리죠?"
"야야, 으른들의 세상이다. 넌 아직 어려서.."
"형도 기방 가봤어요?"
“음.. 아니."
때는 자정에 가까웠다. 그믐이라 을씨년스러운 게 잡귀가 설치기에도 딱 좋았다.
"몇 장이나 붙였지?"
"두 개요."
"결계는?"
"잡귀 수준이라고 해서 그냥 간단하게 하나만 걸었어요."
"좋아. 이제 기다려보자. 아까 싸 온 고구마 있지?"
"네."
“우선, 그거나 먹자.”
"차선 누이랑.. 다들 괜찮겠죠?"
"그래도 우리가 무거운 짐은 다 갖고 왔고. 한양까지.. 음.. 열흘 안으로 오겠지?"
"그 초가집을 잘 찾아올까요?"
"물론. 여하튼 오늘 이거 잘 끝내고 앞으로 두세 개 더 남았지?"
"네, 형."
"애들 다 올라오면 고기 잔치를 하자. 소도 먹고 돼지도 먹고. 히히"
전신이 역시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지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악-"
"아우! 깜짝이야!"
둘이 즐거운 상상을 하는 동안 갑자기 멀리 떨어진 방에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왔다보다..!"
'우당탕 퉁탕-'
곧 어느 방에서 속옷만 입은 여인이 튀어나왔다. 정신없이 달아나는 것을 보니 필시 귀신을 본 게 틀림없었다.
"옳지."
그리고 그 뒤로 온몸이 뒤틀린 사내가 하나 튀어나왔다.
"크와악.. 크와아아아아아악!"
사내는 괴성을 지르며 여인을 쫓아갔다. 뒤뚱거리며 절뚝거리는 모양새가 누가 봐도 미친 사람 같았다.
"귀신 들린 걸까요?"
“그러게. 그냥 귀신은 아니네. 아유, 그냥 단순 잡귀가 좋은데.. 사람한테 씐 건 독해서. 쯧."
'끼아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곧 이어 여기저기서 여인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귀신들의 잔치가 시작되고 있었다.
"전신아, 축귀경 준비하고."
"네!"
"난 뒷마당부터 담벼락 그늘을 통해 한 바퀴 돌테니 한 번에 쓸어 담자!"
"좋죠!"
소백은 여기저기 소란스럽게 난리가 난 기방의 담벼락으로 기어올랐다.
"어.. 저, 저 사람들은 나랏일하는 사대부들 아니냐?"
담을 넘어가던 소백이 담장에 올라서서 말했다.
"어디요? 전 안 보여요."
"자, 내 손을 잡고 올라와 봐."
"끙차-"
전신은 벼슬의 계급이나 복장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처음 본 녀석의 눈에도 높은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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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윽-'
"윤.. 윤대감님.. 갑자기 제 안에 들어오시면 어떡합니까..? 내일 임금님도 알현해야 하고 또.."
"시일이 급해서 먼저 왔다. 보아하니 오늘 여럿 죽어나가겠구나. 이히히히히."
박대감은 기방에 누워있다 말고 숨이 막히는지 가슴팍을 쳐댔다.
"영에 씌는 게 첨이라 좀 답답할 게다. 허허. 그래도 참아."
박대감은 숨 쉬는 것도 답답한지 가슴을 쥐어짜 내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당분간 네 몸은 내가 조종할 테니 그리 알아라."
"아.. 아니.. 끄으읍."
박대감은 의복을 대충 걸친 채 기방을 나섰다. 어찌 된 일인지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난무했고 기괴한 몸짓의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긴 높은 관료들이 이런 데서 놀지 어디 가서 놀겠냐. 썩을 것들."
소백이 담장을 뛰어내리며 외쳤다.
"시작하자!"
전신은 곧장 축귀경을 욌다. 그러자 이제는 기방 내에 있는 귀신 들린 자들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악-'
"형, 먹혔어요!"
"좋아!"
축귀는 아무런 제지 없이 자연스럽게 술술 풀렸다.
"에헤야~ 그럼 한 바퀴 돌아볼까."
소백은 담벼락을 따라 기방 전체를 수색했다. 어차피 잡귀들은 이제 곧 부적 안으로 빨려 들어갈 테니 축귀경에 저항하는 이들만 잡아다가 패대기치거나 기력이 실린 주먹으로 몇 대 두들겨주면 잡귀는 금방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끄으으.."
소백의 눈에 비틀거리며 걷는 사대부 의복을 입은 한 대감이 보였다.
‘저, 저런 분이 왜..? 수상한데..’
"아, 인간의 몸은 오랜만이라 그런가. 왜 이다지도 약한 거냐. 에휴, 얼마 못쓰겠네."
하지만 소백의 눈에는 딱 봐도 귀신이 들린 게 보였다.
'요녀석이 아직 안 빨려들어갔구만.'
소백은 살금살금 대감의 뒤로 다가갔다. 다행히 대감은 아직 눈치를 못 챘다.
'턱-'
'파악-'
소백은 대감의 어깨를 잡자마자 오른 손바닥에 기공을 잔뜩 실어 대감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
"크허억-"
대감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거의 앞으로 나자빠질 뻔했지만 소백이 그의 어깨를 꽉 쥐고 있었기에 넘어지진 않았다.
"누구냐..?"
박대감은 등을 돌리려 했지만 소백의 손아귀 힘이 너무 강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어휴, 하마터면 박대감의 몸에서 튀어 나갈 뻔했네. 뭐지 이 자식은?'
윤대감은 다른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간 게 처음이라 아직은 몸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다.
"뭐야?! 내 손바닥에 맞고도 안 튀어나왔어? 어이, 대감 양반? 안에 뭐가 든 거.."
'휘익-'
'팟-'
소백이 허리를 숙여 박대감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순간 박대감의 주먹이 날아왔다.
'아휴, 맞을 뻔했네. 할배가 날래네.'
'팟-'
윤대감이 빙의된 박대감의 몸은 슬슬 윤대감에 의해 장악되고 있었다.
'휘휙-'
방심한 소백에게 윤대감이 주먹을 두방 날렸다. 하지만 소백은 이를 쉽게 피했다.
'아쭈- 요것 봐라.'
소백은 그래도 사대부의 몸에 들어간 귀신인지라 좀 신경 쓰였다. 괜히 사대부에게 상처라도 냈다가는 후일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윤대감은 여전히 새로운 몸에 적응 중인지 아직 제 실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때 소백이 윤대감의 오른팔을 잡고 끌어당겨 그를 어깨에 둘러메더니 허리를 꺾으며 휙 하고 돌려 앞으로 냅다 던졌다.
'쿠당탕-'
'옳지.'
소백은 축귀를 끝내기 위해 윤대감에게 달려갔다. 그즈음 전신은 축귀경을 끝내고 담벼락을 따라 소백을 찾기 시작했다.
"어이, 잡귀 양반, 어디 감히 사대부 대감의 몸에 들어가.."
'휙-'
'턱-'
'빠악-'
소백이 쓰러진 윤대감에게 다가간 순간 윤대감이 갑자기 벌떡하고 일어나더니 소백을 멱살을 잡고는 이마로 소백의 얼굴을 강타해 버리는 게 아닌가.
"아아악- 크흡-"
소백은 윤대감의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소백은 예상치 못한 반격에 당황할 틈도 없이 다시 얻어맞기 시작했다.
'퍼퍽- 퍼퍼퍽-'
윤대감에 완벽 빙의한 박대감의 몸놀림은 노인의 것이 아니었다.
'으윽.. 무슨 할배가 이리 세..? 안 되겠다. 일단 피하자.'
윤대감이 각성한 이후로 한 대로 때리지 못하고 맞기만 한 소백은 뒤로 공중 돌기를 해 우선 상황을 면하려 했다.
'어딜?'
'휘이익-'
'빠악-!'
소백이 뒷돌기를 끝내 땅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윤대감이 돌려 감아 찬 오른발이 소백의 얼굴을 강타했다.
"으헉-"
소백은 윤대감의 뒤후려차기 한 방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으아아.. 혀.. 형!'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전신은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