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귀로의 필살기

by Rooney Kim


"네놈이었구나. 고작 부적 두 개로 기방 전체에 결계를 친 게.. 으흐흐. 그래도 네놈은 인간치고는 강한 놈이라 가치는 있겠어."


전신은 더 이상 축귀경을 외지 못했다. 지금 욌다가는 같이 끌려갈게 뻔했기 때문이다.


‘형을 구해야 하니까.. 미행을 해야겠다.’


곧 어디선가 날랜 사내 둘이 오더니 기절한 소백을 끌고 갔다.


윤대감은 사방을 슥하고 한 번 둘러보더니 자리를 떠났다.


전신은 기운과 숨을 죽인 채 담벼락의 그늘에 숨어 있었다. 잠시 후 소백이 끌려가는 곳으로 발소리를 죽인 채 쫓아갔다.


‘여.. 여기는..?'


전신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십 칸은 넘어 보이는 큰 기와집이 서너 채, 행랑채로 보이는 것만 서너 개, 거기에 곳간만 대여섯 개는 되는 마치 대궐처럼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었다.


'엄.. 엄청난 대감님임에 틀림없어. 그래도 형이 할아버지에게 저렇게 당하다니.. 가만, 형이 어디로 잡혀갔지?'


전신은 담벼락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소리가 나지 않게 달리며 소백의 기운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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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박대감 몸에서 튀어나올뻔했잖아. 허허, 너만큼은 아니지만 이 자식도 좀 쓸만해."


산비초는 윤대감의 이야기를 들으며 먼저 곳간 안으로 들어갔다.


"어라?! 이.. 이 자는..?"


"왜? 아는 자야?"


"아.. 네네, 그게, 하아 참. 이 자는 제가 전국의 잡귀들을 잡아들이도록 의뢰하는 친구인데.. 왜 기방에.. 어, 아하!"


윤대감은 산비초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이 자에게 한양의 잡귀들을 잡아들이라고 했거든요. 그.. 윤대감님께 바치는 귀신들 말입니다. 한양에 아편 하는 자들이 늘어나서 잡귀들이 인간들한테 잘 들러붙거든요. 히히.."


"뭬야? 그런거였구만 어쩐지. 암튼 그럼 이 자는 지금 죽이기엔 아깝네? 한양의 귀신들을 거둬들이는데 제격이니."


"물론 입죠. 어.. 그냥 정신을 잃었을 때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윤대감님의 정체도 모르는 게 낫고.."


"그래, 그럼 갖다 버려. 계속 일 잘 시키고. 난 이만 박대감의 부인에게나 가 봐야겠다. 으흐흐."


"네..!"


산비초는 멀어지는 윤대감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실 산비초라고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나.. 아 씨 정말..'


"야, 거기 둘, 여기 와봐."


그러자 아까 소백을 날랐던 무인 둘이 달려왔다.


"이 녀석 내보내."


"네!"


둘은 곧 소백을 들어 올려 곳간에서 나왔다. 전신은 창살 사이로 이를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야야야!"


"네??"


"그 녀석을 그대로 보낼 거야? 이 추운 겨울에? 깨워야지. 대문 밖에서 깨워서 보내. 얼어 죽으면 어쩌냐."


"아.. 넵!"


둘은 대문 밖에 소백에 앉힌 뒤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소백은 윤대감의 발차기를 정통으로 맞은 충격으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찰싹-'


소백이 깨지 못하자 무인 하나가 소백의 뺨을 날렸다. 그제야 소백은 천천히 눈을 뜨더니 곧바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이 씨.. 이것들 누구야?!"


"깼네. 가라. 운 좋은 줄 알아. 원래 잡혀오면 최소 능지처참인데.. 낄낄."


무인 둘은 비아냥거리며 대문으로 걸어갔다.


"잠깐..!"


"왜? 살려줄 때 얼른 가."


전신은 담벼락 모퉁이에 숨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긴 어디야? 누구네 집이야..?"


"여기 조선 최고의 권력자, 박ㄷ.."


"야, 닥쳐. 어디 전국 방방곡곡에 방이라도 붙일 거냐?"


'박..? 박대감?'


무인 둘은 곧 사라졌고 이윽고 전신이 달려왔다.


"형!!"


"어, 전신아, 어떻게 된 거냐. 내가 노인네에게 맞고 한방에 나가떨어지고는 기억이 없다. 야.. 살다 살다 저렇게 센 할배는 첨 본다. 괜히 나랏 관리가 아닌가벼."


"형, 빨리 가요. 여긴 위험해."


둘은 곧 한양 한강 어귀의 초가집에 도착했다. 소백이 한양에 터를 잡기 위해 미리 사둔 그들의 거처였다.


"어.. 엄청난 힘이었어요.."


"응. 엄청 아프더라."


"아니, 형, 그 정도가 아니에요."


전신은 소백이 붙들려 갔을 때 창고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소백에게 모두 알려줬다.


"뭐어?!"


"충청도부터 한양까지.. 우리에게 큰돈을 주면서 축귀를 맡긴 자가 바로 산비초라는 자구요. 그 모든 게.."


"윤대감이라는 귀신 잡놈에게 전국의 망령, 잡귀, 악귀들을 다 갖다 바치는 거였다고?!"


"응. 맞아요."


"아니, 왜?"


"분명, 이유가 있겠죠?"


"형.. 우리가 계속 이 일을 하는 게 맞을까요..?"


소백은 생각에 잠겼다. 평소에 장난기가 넘치고 짓궂은 소백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 그들 모두가 내가 누군지 알아."


"글쵸."


"내가 갑자기 못하겠다고 하면 더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 하긴.. 무섭고 잔인한 자들 같아 보이니.."


"차라리 일을 더 하고 이 놈들에 대해서 더 알아보자..!”


—————


'쿠우우우우우웅-'


할멈의 황천경 저승문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슈우욱-'


'턱-'


칠 척에 가까운 키에 엄청난 덩치, 황금 띠로 둘러진 갑옷은 붉은빛과 푸른빛이 뒤섞인 장식들로 빛나고 있었다.


"여~ 오랜만일세."


'저.. 저것이.. 씨댕.'


"누이, 저건 귀마왕.. 맞죠?"


할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인이 떼로 올 때부터 짐작은 했던 터라 크게 놀라진 않았다.


"웬일이냐? 니가 왜?"


"허. 니가 왜? 아직도 이무량 잡던 시절에 취해있나? 너, 이제 할매야. 낄낄낄낄낄."


할멈은 발끈했지만 티는 내진 않았다.


"누이, 저거 그냥 쪼개버리죠."


정법은 호기롭게 나섰지만 이미 체력은 바닥이었고 귀마왕 주변에는 수많은 마인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젠장.. 근데 힘들어죽겠는데..'


할멈도 결정을 내리긴 힘들었다. 마인 떼들도 버거워진 마당에 귀마왕을 상대할 체력이나 영력은 없었다.


"뭘 원하냐?"


"잘 알잖아."


귀마왕은 부엌 쪽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해치 하나로 충분했는데 보니까 불가살이도 있더라? 그럼 금상첨화지!"


"미쳤냐?! 내가 쟤들을 보내줄 것 같아? 그리고 쟤들은 영물이라 내가 영원한 주인도 아냐. 내 생에 잠시 보살펴주는 거지."


"그래? 그럼 잘됐네. 이제 너도 늙었으니 새로운 주인에게 넘겨줘."


"윤대감? 걔는 나보다 더 할배 아냐? 낄낄낄."


할멈은 참다못해 귀마왕을 도발하고 말았다.


귀마왕은 콧방귀를 뀌더니 할멈과 모두를 둘러보았다.


"이것들 안 되겠네."


그러자 귀로가 갑자기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게 아닌가.


"꺼져. 어디서 귀신들 따위가 수작이야. 날도 밝았으니 사라져라.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귀로의 당당한 태도에 귀마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 아!! 너구나 영계로 와서 잡귀들을 괴롭히며 물을 흐린다는 인간이? 너, 귀신 좀 부린다며? 히히히."


귀마왕은 낄낄대더니 갑자기 고개를 까딱했다.


'휙휙-'


그러자 마인 둘이 귀로에게 돌진했다.


"부동귀..!"


귀로는 양 손바닥을 앞으로 펼친 채 손가락을 반으로 접으며 외쳤다.


그러자 위협적으로 달려오던 마인 둘이 갑자기 땅바닥에 발이 박힌 듯 꼼짝을 못 했다.


'휙-'


'퍽, 퍼억-'


'쿠쿵..'


귀로는 번개 같은 속도로 마인들에게 달려가서는 영력을 실은 주먹을 날려 순식간에 둘은 쓰러트렸다.


"쟤.. 아까 저걸 좀 쓰지."


정법 역시 귀로의 능력에 놀라며 할멈에게 말했다.


"크크크. 그럼 어디 이것도 해봐."


귀마왕은 이번에는 마인 여섯을 내보냈다. 귀로는 집중했다. 이번에도 귀신들을 부릴 때 쓰는 부동귀로 녀석들을 꼼짝 못 하게 한 뒤 보내버릴 참이었다.


"이야압-"


그러자 마인 넷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하지만 그 뒤로 둘이 더 튀어나오더니 귀로에게 달려갔다.


'슝, 슝-'


귀로는 마인 둘에게 축사포를 날렸다. 하지만 축사포 한 방에 나가떨어질 마인들이 아니었다.


'휙-'


'퍼퍽- 퍼억-'


귀로는 마인의 주먹을 피하곤 뛰어올라 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쿵. 쿠웅-'


마인 둘은 귀로의 주먹에 넘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귀로는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얼른 귀마왕을 끝내고 싶었다.


"장난 그만하고 덤벼..!"


귀로는 마인들을 뒤로하고 귀마왕을 향해 달려가다 튀어 올랐다. 그의 주먹에는 끌어모은 영력이 가득했고 그걸 정통으로 맞는다면 충격이 엄청날 것으로 보였다.


'빠아악-'


'맞았다..!'


귀로에게 남아있는 모든 기운이 실린 주먹이 귀마왕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다.


'먹혔다.'


바닥에 착지한 귀로는 다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 으아앗!"


하지만 귀마왕은 털끝하나 흐트러짐 없이 끄덕도 하지 않은 채 되려 귀로의 멱살을 잡더니 휙 하고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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