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이무량 대 왕도깨비 1

by Rooney Kim


정법도 겸세에게 다가왔다. 필시 이무량의 능력이 구 할이겠지만 육 척의 키에 떡 벌어진 어깨와 근육질의 사내는 그냥 막일이나 하기엔 아까운 신체 조건이었다.


"고맙소. 덕분에 우리 모두가 죽다 살아났으니."


"별말씀을 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할멈은 의심스러웠지만 대놓고 묻질 못했고 정법은 뭔가 아쉬웠다. 그들에게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인 윤대감 일당을 처리하는데 분명 큰 역할을 할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잠깐."


겸세가 막 자리를 뜨려던 참이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왕도깨비가 할멈의 집 입구에 떡 하고 버티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왕도깨비가..?"


선준은 행장이를 돌아보았다. 행장이는 아직도 등과 어깨의 통증에 끙끙거리며 선준의 옆에 붙어있었다.


"자야, 네가 불렀냐..?"


"아닌디요.. 지금도 온몸이 쑤시고 아픈디.."


'쿵, 쿵, 쿵.'


왕도깨비는 한눈에 봐도 귀마왕보다 훨씬 큰 키와 덩치에 솥뚜껑만 한 주먹으로 주변을 압도하는 위압감이 있었다.


그런 그가 겸세에게 다가가자 겸세가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응..? 나?"


왕도깨비는 겸세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응. 네 안에 있는 자. 이무량이 맞지?"


왕도깨비는 거침이 없었다.


'아니, 이 도깨비 자식이?'


'야, 가만히 있어. 사고 치지 말고.'


"이무량이든 아니든 전 그냥 조용히 살아가는 백정에 불과.."


'휘익-'


겸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왕도깨비가 겸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겸세는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이를 쉽게 피했다.


"어, 왜 그러시오?"


'파팍, 팍팍-'


하지만 왕도깨비는 겸세에게 날아가 쉴 새 없이 공격했다. 당연하게도 겸세는 무섭게 날아오는 왕도깨비의 주먹을 모두 막아내거나 피했다.


"맞구나. 이무량."


겸세는 당황스러웠지만 침착을 유지하려 했다.


"내 안에 뭐가 있든 전 최겸세입니다. 그저 백정이지요."


‘야, 너 안에 나 있다 그래! 왜 말을 못 하냐?!'


'득츠..'


둘의 살벌한 분위기에 할멈을 비롯한 모두는 덩달아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니, 전 그저 여기에 큰일이 난 거 같아 도우러 온 건데, 당최 왜..?"


"왜긴, 넌 존재 자체가 재앙이야!"


왕도깨비는 가뜩이나 무서운 얼굴을 더 무섭게 찡그리곤 양 주먹에 힘을 실었다.


'고오오오오오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산이 울리더니 땅이 진동하고 사방의 작은 돌과 바위들이 뿌리째 뽑히더니 공중으로 떠올랐다.


'왕도깨비의 주특기인 사물 조종술이야. 겸세야, 피할 수 있지?'


"받아라!"


'휙휙- 구아아아앙-'


왕도깨비의 구령에 사람보다도 더 큰 바위들이 일제히 겸세를 향해 맹렬히 날아갔다.


'쿠아아아아앙-'


모두 합쳐 집채보다 더 큰 바위들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주변은 온통 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겸세가 그대로 맞았다면 끔찍한 최후를 맞을 듯했다.


왕도깨비는 어쩐 일인지 여전히 화가 잔뜩 나 보였다.


곧 연기가 걷혔고 왕도깨비를 포함한 산 위의 모든 사람들이 사방을 살폈지만 겸세는 없었다.


'이 쥐새끼 같은..'


"어이, 나 여깄어!"


소리가 난 곳을 보자 겸세가 큰 소나무 가지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 새끼가..!"


왕도깨비는 왜인지는 몰라도 심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무량에 대한 무조건적인 분노가 그 이유인 듯했다.


왕도깨비는 바람처럼 달려가서는 겸세가 앉아있는 소나무를 뿌리째 뽑아 저 멀리 대벽산까지 던져버렸다. 하지만 겸세는 이미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곳으로 피했다.


'겸세야, 왕도깨비 놈 흥분했어. 그만 끝내자.'


겸세도 일단은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슈아앙-'


'퍼억-'


겸세는 어느새 다른 소나무에서 튀어나와 왕도깨비를 향해 쏜살보다 빠르게 날아와서는 영력을 실은 주먹으로 왕도깨비의 얼굴을 강타했다.


"크헉-"


갑작스러운 반격에 당한 왕도깨비는 거대한 몸집을 꿀렁거리며 약간 비틀댔다.


"뭐야..?!"


"아, 아재.. 왕도깨비가 맞았다요..!”


하지만 이대로 당할 왕도깨비가 아니었다. 왕도깨비는 곧바로 겸세의 멱살을 쥐어 잡고 들어서는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퍼어억-'


그리곤 솥뚜껑만 한 양주먹으로 겸세의 얼굴과 온몸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퍽, 퍽, 퍽, 퍼버버버버버버벅-'


이 정도 힘이면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패대기쳐졌을 때 온몸이 터져 죽었을 정도의 힘이었다.


'야, 언제까지 받아줄래? 걍 끝내래도.'


겸세는 왕도깨비에게 악의가 없다는 걸 알기에 공격을 받아줬지만 이제는 끝낼 때가 되었다.


'팍-'


겸세는 왕도깨비의 주먹을 양손으로 막아 쥐더니 다시 벌떡하고 일어났다. 겸세의 힘에 당황한 왕도깨비가 겸세의 기세를 꺾기 위해 오른발로 겸세의 복부를 강타했다.


"크흡-"


'어우, 이건 진짜 아프겠다."


정통으로 복부를 맞은 겸세는 처음으로 위기를 느꼈다.


겸세는 당장 자세를 고쳐 잡고는 제대로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왕도깨비지만 이대로 뒀다가는 자신이 당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파멸공..!"


겸세가 오른팔을 뻗으며 주문을 외자 순식간에 보랏빛의 기운이 응축되더니 왕도깨비를 향해 강력한 기공포가 날아갔다.


'어엇-'


왕도깨비는 간신히 이를 피했고 파멸공은 그대로 날아가 멀리 있는 뒷산에 명중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러자 파멸공이 날아간 뒷산에 집채보다 더 큰 구덩이가 생기면서 주변에 있던 나무와 바위들이 산산조각 났다.


'역시, 이무량.. 엄청난 힘이다..'


할멈은 이 싸움에 큰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불의 기운을 잃은 반쪽짜리 이무량이지만 이무량은 이무량이다. 왕도깨비가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겸세라는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이무량은 전성기 능력 그대로였다. 제아무리 왕도깨비라도 이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왕도깨비의 양주먹에 푸른 불꽃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필살기에는 필살기. 왕도깨비도 제대로 결판을 보길 바라는 심산이었다.


"아.. 아재, 이건 말려야 하는 거 아닌지라..?"


"그러게 말이다. 둘 다 너무 강력하니 뭔 일이나도 제대로 날 텐데.."


하지만 선준은 말리기는커녕 이 판에 들어갈 엄두도 못 내었다.


"이야압!"


먼저 달려든 건 겸세였다. 이무량의 힘을 가졌지만 겸세는 이제 스무 살이 넘은 청년일 뿐이었다.


왕도깨비에게 달려든 겸세는 양주먹을 날리고 발차기를 하며 왕도깨비의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옳거니.’


'휘휙-'


'파파팍-'


하지만 왕도깨비는 이런 근접 전에서는 영계의 귀신들 중 거의 최강자였다.


'타닷. 툭탁-'


겸세의 주먹을 모두 받아낸 왕도깨비는 겸세가 차올린 오른발을 막자마자 오른 주먹으로 겸세의 명치를 강하게 내리쳤다.


“크아앗- 허억..”


겸세는 왕도깨비의 가공할 한 한방에 열자도 넘게 날아가서는 뒹굴었다.


'쯧쯔. 너답지 않게 왜 긴장했냐. 내가 다 부끄럽다야.'


'시끄러. 왕도깨비는 나도 첨이라 그래.'


'어후, 내가 지금 내 몸을 가지고 있었으면 왕도깨비고 뭐고.. 콧김으로 다 날려버릴 텐데.'


‘됐어. 자, 그럼 이제 제대로 해볼까?'


겸세는 곧장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는 왕도깨비를 바라보았다.


왕도깨비는 눈 깜짝할 사이에 겸세에게 날아가더니 멱살을 잡고 푸른 불꽃이 일렁이는 주먹으로 사정없이 얼굴을 내리쳤다.


'퍽. 팍. 팍팍. 파악-'


그리곤 겸세를 다시 담벼락으로 냅다 집어던졌다.


'퍽-'


'스르륵-'


'응? 뭐야?!'


왕도깨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이 집어던진 겸세가 알고 보니 짚덩어리 인간이었던 것이다.


‘가체 분신술..?!’


"어떠냐? 도깨비들이 하는 짓에 당해보니?"


왕도깨비가 고개를 들자 겸세가 허공에 떠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아재. 우짜믄 왕도깨비가.."


"그래, 저 녀석, 강해도 너무 강해."


왕도깨비는 당장 반격하려 뛰어올랐지만 순간 땅속에서 구렁이보다 몇 곱절은 굵은 나무줄기가 튀어나오더니 두 발을 감싸 쥐었다.


“으으, 이 따위 잡기에 내가 당할 것 같으냐.."


왕도깨비는 전에 본 적 없이 침착함을 잃고 있었다.


'투두둑. 툭. 투두둑-'


하지만 왕도깨비는 이를 쉽게 끊어냈다.


"자, 그럼 이것도?"


겸세가 허공에서 오른 손바닥을 돌리자 사방에서 십 수 개의 나무줄기가 솟아나더니 순식간에 왕도깨비의 온몸을 감았다.


“식체 조종술은 내게 소용없다니까..!"


왕도깨비가 온몸을 흔들자 굵은 나무줄기들은 마치 지푸라기처럼 투둑 하고 끊어졌다. 하지만 나뭇가지는 끝없이 솟아나 다시 왕도깨비의 온몸을 쥐어짜듯 휘감았다.


"이무량, 힘의 절반을 잃었다고 하더니 사실인가 보구나. 허허. 겨우 이런 잡기 외엔 이젠 능력이 없어?"


왕도깨비의 도발에 이무량은 발끈했다.


'내 저걸 당장. 겨우 도깨비의 왕 따위가.'


'야야, 진정해. 저 말에 흥분하면 오히려 당한다.'


왕도깨비는 계속해서 나무줄기를 끊어냈지만 줄기가 끝도 없이 생겨나는 통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으윽, 안 되겠다.. 청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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