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이무량 대 왕도깨비 2

by Rooney Kim


'화르르르륵-'


왕도깨비는 끝없이 성가시게 몸을 얽는 나무줄기를 떼어내기 위해 온몸을 푸른 불덩이로 만들어 나뭇가지들을 순식간에 불태워버렸다.


‘후후, 역시 귀마왕 같은 조무래기와는 달라.’


‘야, 지금 그런 여유를 부릴 때냐?’


‘겸세 너 정도면 혼자 해결 가능하잖아? 히히’


‘그래봤자 난 인간이라고! 왕도깨비는 보통 영물이 아니잖아?’


‘아 그래그래, 도와줄게.’


식체 조종술에서 벗어난 왕도깨비는 곧장 날아올랐다. 당황한 겸세는 이무량에게 조언을 구했고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반도의 최고 악으로 군림한 이무량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청룡 승천기(靑龍 昇天氣)!!”


겸세는 왕도깨비가 땅에서 치솟자마자 그에게 곧장 날아가서는 오른 손바닥을 왕도깨비의 가슴에 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츄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순간 엄청난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집채만 한 푸른 용이 왕도깨비의 가슴팍을 뚫고 지나갔다.


"크아악.."


"아니.. 이게.."


"아.. 아재..?! 왕도깨비가.”


‘쿠우우우웅-'


왕도깨비는 겸세의 필살 일격에 결국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콰르르르르르릉- 쩌어어어어어어어억-‘


겸세가 이무량의 도움을 받아 쏜 청룡은 곧장 승천하더니 구름 사이로 사라지며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었고 수천 가닥의 벼락을 만들어냈다.


할멈을 비롯한 일행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별안간 나타난 겸세가 귀마왕을 반으로 쪼개며 멸해줬지만, 행장이의 수호령인 강력한 왕도깨비 또한 결국 쓰러트렸기 때문이다.


"누이.. 쟤 우리 편일까요?"


"몰라.. 내가 말했지? 쟤가 새벽에 본 걔야.. 이무량, 이무량이 저 안에 있다고."


겸세는 쓰러진 왕도깨비에게 다가갔다.


'툭, 툭.'


겸세는 왕도깨비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흔들어 깨울 모양이었다.


'야, 이무량, 너 힘 조절 못한 거야?'


‘기술은 니가 써놓고 나한테 그러냐.'


'힘의 원천이 너니까. 야, 왕도깨비에게 해를 입히면 나 뭐 벌 받고 그런 거 없어..?'


'낄낄낄. 내가 최강의 귀신인데 뭘 걱정하냐.'


'아니, 사천대왕이나 뭐 저승의 각종 신들이나.'


'걱정 마, 그분들은 이런 일로 이승에 관여하진 않아.'


곧 왕도깨비가 움찔거렸다. 여전히 다른 일행들은 말 한마디 못 붙이고 있었다.


"어.. 왕도깨비, 정신이 드오?"


"끄으응.."


왕도깨비는 정신을 차리더니 곧장 일어났다.


“후우.. 오랜만에 느껴본 힘이네. 이무량이 맞구만. 너, 어떻게 이승에 있는 거냐."


"아 그게.."


"야야, 내가 얘기할게. 왕도깨비 형, 오랜만이야. 허허."


왕도깨비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지만 사뭇 달라진 이무량의 기운에 적대감은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냐고?"


왕도깨비의 질문에 정법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무량 아니, 겸세라는 자가 이무량이 자신의 속으로 들어간 이유를 알리는 없겠지만 이무량이 그걸 상세히 밝힌다면 누이와 의가 끊길게 분명했다.


'아.. 이거 믿을란가 모르겠지만, 지국천님이 날 다시 살려주셨어.'


이 얘기를 들은 할멈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국천님이..? 아니 왜..?'


"넌 그때 힘의 절반을 잃고 봉인당하지 않았냐? 여기 저 대무당과 법사들한테 말이야.”


'아 그게.. 쩝 말하자면 긴데. 흠.. 봉인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지국천님이 나를 우치라는 새타니에 넣어줬어.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를 떠돌던 아이 귀신이었지. 뭔가, 한이 있나 봐. 그러니까 영계도 저승도 못 가고 구천을 떠돌았겠지. 그리고 바로 옆에 있던 한 아이의 몸에 심어줬는데 그 아이가 큰 결과가 요 괴물 같은 겸세였고, 요놈이 어릴 때 들어온 거지. 히히.’


"저승에서 허락했다고..? 희한하네."


'뭐, 지금은 조용히 살고 있어. 그런데 요새 쫌 수상쩍은 잡귀들이 설치더니.. 오늘은 여기서 큰 기운들이 뒤엉켜 싸우길래 올라와본 거야.'


'됐어. 그만 말해.'


겸세가 이무량의 말을 끊고는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인가요? 대무당의 집에 잡귀 떼는 물론 귀마왕이라니요..?"


차분한 겸세의 목소리에 할멈을 비롯한 일행들은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 겸세 그리고 이무량이 이들을 도운건 사실이고 당장 이들이 자신들을 해칠 사람이 아니란 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일단 고맙소. 귀마왕 때문에 우리 모두 죽을 뻔했는데 목숨을 구해줬으니."


"그거야 뭐. 전 불의는 못 보는 성격이라. 그런데 이놈들이 여기에 이렇게 쳐들어온 건 필시 무슨 목적이 있어서 일텐데..?"


'끼이익-'


그때 해치와 불가살이가 부엌에서 조용히 나왔다.


“아구랴 귤바”


이를 본 이무량은 다시 겸세를 닦달했지만 겸세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조선의 이승과 영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가 있다오. 뭐.. 이무량 정도는 아니지만 지독한 놈인 것 같소. 윤대감이라고.."


할멈에 대답에 겸세 안의 무언가가 움찔했다.


'왜 그래?'


'나 아냐.'


'그럼..?'


'새타니..?!'


수십 년간 말없이 조용하던 새타니가 윤대감의 이름을 듣더니 갑자기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멸해야 해. 복수.. 해야 해..'


'응?'


'야, 이무량, 걔가 뭐라는 거야..?'


한동안 둘은 답이 없었다. 겸세 마저 자신의 안에서 두 영혼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니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기다릴 뿐이었다.


‘겸세, 들어봐. 탁수와 덕빈이라는 자가 자신의 부모님이었는데.. 윤대감?! 뭐 그 작자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나 봐.'


'윤대감..?'


겸세는 곧 입을 열었다.


"혹시.. 탁수와 덕빈이라는 자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소? 아주 오래 전의 사람이긴 한데 사실, 이무량도 잘.."


'탁수, 덕빈.. 이거 어머니한테 들었던 이름인데..?'


선준은 귀에 익은 이름에 벌떡 일어섰다.


"아, 압니다..! 그 이름을 알아요."


"정말요?"


'복수의 때가 왔다는데..? 이거, 새타니의 말이 괜한 헛소리는 아닌 거 같아.'


“윤대감은 생애, 온갖 악행과 더럽고 치욕스러운 범죄를 저질렀죠.. 그 둘도 희생자들입니다. 그 사이에 있던 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돌봐주는 이 없이 굶어 죽어 새타니가 되었었군요.."


“어쩐지.. 흠. 그런데 그쪽은 윤대감을 어떻게 아시오?”


겸세의 물음에 선준이 답했다.


"부끄럽지만 그 자는 우리 외증조부 할아버지요. 하지만 그 자 때문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목숨을 잃었지요."


"우리 아빠도 악령들을 끌고 영계에 갔다가 갇혔는데.. 원인을 쫓다 보니 그 정점에 윤대감이 있더라구요."


멀찌기서 자령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는 이 자들을 돕는 중이오. 이미 이무량을 잠재운 이후 이제 조선에는 잡귀 외에 딱히 신경에 거슬리는 문제가 될만한 녀석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저렇게 몸집을 키운 악령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이무량은.."


"아, 이무량이요? 너무 걱정 마세요. 예전의 그 이무량이 아닙니다. 일단 제 몸 안에 있으니 제가 제어 가능하구요."


'제어? 쳇, 내가 얌전히 있는 거거든.'


할멈은 확실히 어제 이무량의 기운을 느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오늘 귀마왕을 반조각 내며 자신들을 구해주지 않았나. 게다가 이무량 영력의 절반인 불의 기운은 여전히 해치 안에 있었다.


"윤대감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글쎄요. 저희도 이제 찾으러 갈 생각입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쳐들어오는 걸 막고만 있을 순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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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군사가 빠져나가고 왜군들이 조선에 많이 입항했다고 하는데 한양에는 또 기방과 주막에서 기이하고 끔찍한 일들이 연일 터지니, 나라 전체가 잠잠할 날이 없소. 이에 대신들의 대책이 듣고 싶소."


고종은 근심에 찬 얼굴로 좌와 우를 번갈아 바라본 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박대감은 주변을 돌아보며 눈치를 살폈다. 평소와 다름없이 꼿꼿한 김대감도 근심에 찬 얼굴이었고 몇몇은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조만간 무슨 일이 날 것 같은데. 애초에 개화는 무슨 개화야. 청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


"우리도 이 시대의 조류를 거스를 순 없소. 대신들도 다 생각이 있을 것 아니오..?"


하지만 다들 뭔가 짐작만 할 뿐 딱히 의견을 내는 이는 없었다.


"확실한 건 조선 만의 노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라 밖은 지금 아수라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청은 불과 맞섰고 왜는 호시탐탐 우리를 발판 삼아 대륙을 노리니 우리는 다른 세력과 손잡아야 하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한 대감이 소신을 밝히자 다른 쪽에서 또 의견이 나왔다.


"허나, 확실하지 않은 힘은 오히려 새로운 위기를 불러올 수 도 있습니다. 지난 양요들을 고려해 보십시오."


'끌끌끌, 박대감. 이것 봐 벌써 난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가? 자네는 그냥 가만히 있다가 권력이 기우는 쪽으로 가면 돼.'


박대감은 그저 눈치만 살폈다. 양방의 의견에 대한 설전이 오갔지만 자신은 당장 자신의 안위가 중요했다.


'어, 그런데 만약 난이 일어나면 내가 쓸 수 있는 병력도 줄어들겠네? 안 그래 박대감?'


윤대감이 가뜩이나 복잡한 박대감 머릿속에서 자꾸만 자신의 이야기를 해댔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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