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길달의 계략

by Rooney Kim


"뭐? 귀마왕이 반토막이 나서 저승으로 갔다고?!"


윤대감은 실로 오랜만에 놀랐다. 그저 해치를 잡아 흡수하고자 했을 뿐인데 강한 녀석들이 계속해서 제거되니 골치가 아팠다.


"누구냐? 어떤 놈들이 귀마왕까지 처리해?"


"그게 아시다시피 과거 대악귀전에서 이무량을 봉인했던 무리 중 대무당과 법사가 그 산꼭대기에 있는 걸로 압니다. 첩보에 따르면 그 외에도 능력자가 많다고 하던데요."


산비초가 윤대감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어느새 회복한 산비초는 상태가 더 좋아 보였다.


"그래? 그럼 그 놈들을 싸그리 잡아다가 다 흡수를 하면 내가 더 세지겠네? 안 그래?"


윤대감이 박대감의 얼굴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에휴, 욕심이 지독한 노인네. 내가 한양에 아편 다 돌리고 나면 그냥 지방으로 뜬다 진짜.'


"에이,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죠. 근데 그걸 누가 하느냐가.."


윤대감이 산비초를 스윽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넌 사람이니 그때 그런 녀석들을 담당하면 되겠고.. 길달..! 길달은 어디로 갔느냐? 요새 통 소식이 없네?"


"어.. 며칠 전에 구미호 잡는다고 나가서는 저도 모르겠는데요?"


"아 맞다. 내가 시켰지. 낄낄낄. 우리 외손녀가 얼마나 잘 컸는지 궁금한데. 구미호면 내 영력에도 도움이 되고 말이야."


'뭐야.. 설마.. 지 외손녀까지 흡수하려고 찾는 거였어? 이거 상상을 초월한 미치고 지독한 새끼네.'


"그래서 한양은 이제 다 접수했냐? 좀 시끄럽더니. 요샌 통 잠잠하다. 겨우 이 정도로 귀신들을 다 모으겠어?"


"아아, 이제 절반 가까이했으니. 나머지는 금방입니다. 생각보다 아편도 더 많이 팔렸으니 민가나 양반가에서도 귀신들이 튀어나올 거고요."


"그래. 서둘러. 곧 이런저런 난들이 일 텐데.. 이럴 때 많이 죽어야 많이 흡수하지. 낄낄낄."


'도른 놈.'


산비초는 싱긋 웃어 보였다.


"귀마왕까지 갔으니 이젠 녀석을 준비시킬 때가 된 거 같네."


"누구.. 말이죠?"


"있다. 넌 입이 싸서 말 안 해줄란다. 낄낄낄."


‘어이없네, 황당한 새끼. 으이구, 어디 이무량 같은 놈이 진짜 나타나서 줘 패 줬으면.’


"왜 대답이 없냐?"


"..어.. 네? 아하핫, 네네, 전 입이 싸니까 제 일만 할게요.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잠깐."


산비초가 돌아서자 윤대감이 불렀다. 윤대감은 박대감의 장식장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산비초 앞으로 뭔가 툭하고 던졌다.


"어..??!! 이, 이건..?!"


"선물이다. 네가 맡은 일만 잘 해내면 앞으로 그것의 백배도 넘게 가질 수 있다."


산비초는 조심스럽게 황금 두꺼비를 들어 올렸다. 자신의 손바닥만 한 황금이라 족히 삼백 돈은 넘어 보였다.


'이 정도면 아편을 천 명에게 팔아도 살까 말까인데..'


"어허, 그 정도로 감동받지 말고 이제 들어가 봐라. 박대감이 괜히 오해받으면 안 되니."


윤대감은 곧 뒤를 돌아 집으로 갔다. 산비초는 황금 두꺼비를 손에 쥔 채 열심히 계산 중이었다.


'이거 백개? 그래 백개 정도면 더 이상 아편도 안 팔아도 되고, 윤대감 저놈 피해서 이국으로 뜨던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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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대장님, 제가 두 눈으로 확인했고 우리 포졸과 병사가 몇이나 희생당했습니다."


포도대장은 정만의 두 눈을 똑바로 보았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게 누가 모르는 자와 싸우랬냐? 그것도 보고도 없이? 김대감만 살피랬잖.."


"대장님, 김대감은 아무런 혐의도 없고 오히려 너무 깨끗해서 제가 다 민망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놈은 이미 한양 시장 바닥에서 정예 병사 둘을 죽였고 이후에도 다섯도 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틀렸으니 나한테 책임이 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산비초? 나도 그 자식이 누군진 모른다니까. 아님 산채로 끌고 와 보던가."


"그놈 힘과 계략이 보통이 아닙니다. 괴력에 회복 능력도 뛰어난 괴인입니다. 정예 갑사가 더 필요합니다. 군사도 같이 가면 더 좋구요. 조총병이랑 궁수도 여럿 데리고.."


"야 이놈아, 지금 조선의 정세가 어떤지 아느냐?"


"네..?! 그건 저도 알지요. 그런데.."


"청이랑 왜가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데다 개화다 뭐다 내부에서도 파벌이 형성되고 양인들은 또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고.. 안된다. 군사는 못써. 지금도 모잘라."


정만은 막막했다. 산비초를 잡아들이려면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했기에 더 많은 병력이 필요했다.


"이만 나가봐라. 곧 박대감님을 봬야 한다."


“하아.. 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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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달은 세 봉우리의 상황을 멀찌기서 지켜보았다.


귀마왕이 설칠 때는 직접 가서 도와줄까 생각도 했지만 되려 자신이 당할 수 도 있거니와 자신의 신분이 너무 노출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만뒀다.


게다가 이무량(겸세)이 나타나 상황을 정리했으니 굳이 더 보탤 이유가 없었다.


'알리긴 알려야겠는데.. 아니지. 이걸 이용하는 게 낫지. 하아, 어떻게 해야 중간에서 이 상황들을 유리하게 이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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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세는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대무당 할멈 일행 역시 윤대감의 행방을 모르는 데다가 성곽 쌓은 곳에도 잠시 동안 일을 못한다고 해둬야 그동안 한 일에 대한 삯도 받고 다시 돌아왔을 때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보게나."


'흠칫.'


겸세는 방에 들어가려다 말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았다.


"누, 누구시오?"


겸세는 단번에 이 자가 사람이 아님을 인지했다.


'뭐지? 잡귀는 아니고.. 도깨빈가?'


"전할 말이 있어서 왔소."


길달은 혹시나 이무량이 자신을 알아채지 않을까 조금 긴장됐다.


"무슨 일이오? 이 산골에 그것도 아침부터?"


"그 자는 지금 한양에 있소."


"그 자라뇨..?"


"윤대감."


'엇?!'


겸세는 이 자의 말에 놀라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알고 내게 일러주는 거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오. 시일이 급박하오. 지금 윤대감의 세력은 조선의 최대 규모를 넘어 왜국의 수많은 요괴, 정령 신들보다 세가 더 커지고 악랄해지고 있소."


"윤대감이라는 자가 이 시대의 골치이긴 한가 보네.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이오?"


겸세는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그자는 관아와 궁의 일부 권력까지 장악했소 그리고.."


"그리고..?"


겸세는 산비초와 아편에 대해까지 알리려 했으나 그랬다간 나중에 화살이 자신에게까지 날아올게 뻔했다.


"그래서 제 아무리 이무량이라도 혼자는 힘들 수 있소. 그러니 영력자들과 부적 쓰는 자들을 모아서.."


'어허?! 저 조무래기 도깨비가 미쳤나. 야야, 나야 나, 이무량! 아무리 반쪽짜리가 됐지만 그래도 이승에서 날 이길 귀신 따위는 없다고!'


'알았어. 가만히 좀 있어봐. 좀 무시당했다고 버럭 하긴.'


"그런데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믿죠?"


"네..?"


길달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아니, 이런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오? 아니면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어.."


길달은 할 말을 잃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윤대감에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길달은 곧 좋은 핑곗거리를 만들어냈다. 사실 그건 진실이기도 했기에 얕은꾀 따위는 아니었다.


"나도 그와 싸우는 중이오. 하지만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힘들어 전국의 능력자들을 찾는 중이오."


'이무량, 어떻게 생각해?'


겸세는 길달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뭐가 고민이야? 나를 능가하는 귀신이나 괴물은 없다니까. 그냥 가서 싹 쓸어버려.'


'너 반쪽짜리 이무량이잖냐.'


'불의 기운? 야, 그거 없어도 다 이겨. 그때 그 세 놈들 때문에..'


'그럼 믿어 봐?'


'해. 가보자 어떤 놈인지.'


'근데 그럼 성곽 일은 누가 하냐? 나도 먹고살아야지.'


겸세는 잠시 뜸을 들인 후 길달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그 자가 지금 한양 어디에 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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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이오?!"


겸세의 말에 정법이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네, 윤대감이라는 작자가 전국의 귀신들을 흡수했고 이젠 한양에서 엄청나게 세를 모으면서 점점 더 커지는 중이랍니다. 제 안에 있는 이무량 이후 가장 최악의 귀신이 될 수 있으니 얼른 처단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를 알려주는 이유는 뭔가요?"


할멈이 물었다.


"단순합니다. 이무량이 가서 없애버리자고 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할멈은 혹시나 이무량이 딴 소리를 할까봐 가슴 한 구석에는 여전히 우려의 끈을 놓지 않았다.


"녀석의 재산을 몰수해서 제 일당을 받아내야죠. 지금 이래저래 녀석 관련으로 일을 못한 게 많으니.."


"풉.."


이야기를 듣던 정법은 너무 소박한 겸세의 말에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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