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전쟁을 부르는 거구귀, 을(鳦)

by Rooney Kim


"좋소. 어차피 이 집에 있어봤자 해치를 잡으려고 계속해서 온갖 귀신들만 보낼 테니 다 같이 쳐들어가서 끝내버리지요."


'응.. 잠깐. 해치라고?!'


이무량은 할멈의 말에 귀를 더 쫑긋했다.


"해치가.. 있나요?"


겸세가 조심스럽게 묻자 할멈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무량이 뭐라 하는가?"


'윽.. 해치..?! 내가 오십 년 전에 그, 그 자식한테 내 불기운을 뺏겼잖아..!!!'


'아~ 해치?’


'야이씨! 넌 그동안 내가 넋두리할 때 뭘 들었냐? 만 번도 넘게 말했구만.'


'훗. 그래서 쫄리냐?'


'쪼.. 쫄리긴! 내가 해치를 못 이기는 게 아니라.. 나아참, 또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 하나. 그니까..'


이무량이 겸세와 투닥거리는 동안 할멈이 눈치를 채고 한마디 거들었다.


"호령과 태례, 자겸은 이제 이 세상에 없고 해치는 원래 혼자서 이무량을 상대할 순 없었다오. 해치는 영물이라 제멋대로 굴진 않을 거요. 게다가 원래 신령급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녀석이니 걱정 마시게나.”


"알겠습니다."


'야, 알긴 뭘 알아! 해치놈, 날 보면 또 달려들 텐데.'


하지만 겸세는 이제 이무량의 엄살은 들은 채 만채하며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길달은 지금 어디로 갔죠?"


"모릅니다."


"그저 그 자의 말만 듣고 움직이기엔.."


"허나 진실된 눈이었습니다. 길달 정도의 도깨비라면 분명 제 안에 있는 이무량을 눈치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찾아와 알려줬다는 건 뭔가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음.."


"참..! 그런데 길달이 어떻게 다시 이승으로 왔지?"


그건 겸세는 물론 이무량도 궁금했다. 아주 오래전에 저승으로 간 줄 알았던 도깨비가 다시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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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아!! 너네들 왔구나야! 전신아, 나와봐라. 차선이랑 도희, 금정이가 왔다!"


'우당탕- 벌컥-'


"누나!!!"


전신은 차선을 보자마자 소백과 있을 때와는 달리 반색을 하며 달려가 폭하고 안겼다.


‘아니, 저 자식, 원래 저렇게 밝은 애였나?!’


"어이구, 웬일이냐. 힘들었구만. 왜, 저 오빠가 밥도 안 챙겨주디?"


"야아- 내가 전신이 얼마나 챙겼는데. 전신아, 너 왜 갑자기 밝은 척이야?!"


“아, 형. 그게 아니라요. 에휴..”


전신은 선채로 그 간 있었던 일을 술술 읊었다.


"뭐어?! 오빠, 잡혀갔었어? 미쳤어, 미쳤어. 그니까 이제 축귀 할 때 나대지 말랬지? 요즘 음기가 충만해서 잡귀들도 강해. 갑사년이 연말에 위험하다고, 응?"


"야, 내가 누구냐. 소백이야. 전국구 축귀패의 수장이자.. 또.."


"얘들아, 들어가서 짐 풀자. 전신아 불 좀 때줘. 바로 밥 하게."


"응, 누이."


“야 너네들 내가 말하는 중인데, 얘들아, 얘들..”


전신은 차선과 도희, 금정과 오랜만에 만나니 기분이 편안하고 좋아졌다. 신무패는 아주 오랜만에 편안한 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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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대궐의 별궁.


"불이야! 불이야!!"


별안간 별궁 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고종은 경우궁으로 이어했고 왜군의 개입까지 허가되자 정변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삽시간에 궁은 시끌벅적 난리가 났다. 불을 끄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물을 날랐고 대신들은 왕을 피신시키는 중이었다.


'어이, 박대감.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일단 두고 봐야지요. 윤대감님, 지금은 절대 어느 한쪽으로 움직여선 안됩니다. 이건 실패할 확률도 높아요.'


'껄껄껄껄껄. 정변말인가? 난 관심도 없네. 자네나 중심을 잘 지켜. 난 오로지 조선의 모든 귀신과 요괴들의 대왕이 되는 것이 일차 목표야. 낄낄낄.'


'그, 그럼 이제 제 몸에서 그만..'


'어허? 난 아직 자네를 제대로 이용도 안 했는데?'


'윤대감님.. 전 지금 뭘 할 수 도 없습니다. 그저 기, 기방에서 놀고 뒷돈이나 챙기는 게..'


'포도대장은 잘 부리지 않느냐. 그 아래로 포졸과 갑사가 몇이냐?'


'네..? 아니, 그건 왜?'


'내가 몇 번을 물었냐. 하아, 멍청한 거냐, 내 물음을 피하는 거냐? 포졸과 정예 갑사들만 적어도 일이 천은 부릴 수 있지 않느냐?'


'그야.. 가능은 하다만요.. 그런데.'


'곧 필요하니 준비해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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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다.


포도대장이 이렇게까지 확신하며 박대감의 안위만 챙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날 밤에도 한양의 많은 주막과 기방에서 귀신 들린 미친 자들이 설쳐댔고 벌써 여럿이 죽어나갔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이런 중인과 서민의 삶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도 그런 게 개화를 위한 정변이 진행 중이었으니 민초들 몇몇이나 십 수명이 죽어나가는 건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끼이익.'


'옳지. 나왔다.'


벌써 다른 방에서 사내와 여인 여럿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 나왔다. 하지만 정만은 달리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성을 잃고 미쳐 돌아버린 눈, 사지가 꺾이는 몸. 필시 귀신에 씐 것이다. 대벽마을에서 본 난과 같다.'


'저벅. 저벅. 저벅.'


"끄아아아함-"


포도대장은 크게 기지개를 한 번 켜더니 사방을 둘러보았다. 분명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 당황하여 조치를 취하거나 달아나기 마련이었다.


'이상해. 아무리 봐도 이상해. 포도대장님은.. 분명히 뭔가 있어. 그렇다면 제일 위에 있는 박대감님도..? 김대감님을 쫓게 한 건 내 시야를 흐리기 위한 연막이었을까..?’


곧 귀신 씐 사내 하나가 포도대장 쪽으로 달려갔다. 포도대장은 가만히 그를 응시하다 날랜 솜씨로 사내의 목을 베었다.


'푸아악-'


사방에 피가 튀며 사내는 고통 어린 신음과 함께 쓰러졌다.


'저.. 저 인간이.. 귀신만 쫓아내면 그저 보통 사람인 저들을..’


'턱.'


순간 뒤에서 근중이 정만의 어깨를 잡았다.


"나가면 안 되오. 아시죠?"


“제길, 같은 관리로써 부끄럽구려.."


"뭘요. 전 저런 걸 일 평 생보며 살아왔소. 오히려 포도부장님이 신기할 따름이오. 목숨까지 걸며 정의에 찬 관리라니. 하하."


정만은 허탈한 마음에 돌아 앉았다. 포도대장이 저지경이니 포도청도 일단 절반은 썩은 게 분명했다.


"어떡할 거요? 어차피 그 괴인 놈은 잡아야 하고 이 귀신 사태의 원인도 찾아야 하지 않소?"


"그렇지요."


하지만 포도부장으로써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수하에 많은 포졸들이 있지만 자신의 위에는 포도대장도 있고 조정의 권력도 있으니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우선 괴인부터 잡읍시다. 애들을 풀어 쫓아 근거지를 알아냈소."


천검의 말에 정만은 힘을 얻었다.


"맞소. 하나하나 해결해 보지요."


—————


"이.. 이럴 순 없소. 저 여인이 무서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도 오늘 처음 본 여인입니다."


사내의 말에 을(鳦. 금계필담에 나오는 전쟁을 부르는 요괴)은 입이 찢어져라 씨익 웃었다.


"죽고 싶냐?"


여인은 거의 발가벗겨진 채로 울고 있었다. 이미 한 번 도망치려 했는지 발목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살려주세요.. 네? 저, 저는 이미 혼인을 약조한 남자가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


그러자 을이 깔깔대며 크게 웃었다.


"그러니까 어서 해. 내 말대로 하면 목숨도 살려준다니까?"


사내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살려면 을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보시오. 그냥 눈 딱 감고 하룻밤만 보내면 우리 목숨을 살려준다 하지 않소. 이건 내 뜻이 아니오."


"안 돼요. 싫어요. 차라리 죽겠습니다."


하지만 사내 역시 사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집에는 어린아이 둘과 아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내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아닌 건 아니었다. 마침 여인의 뒤로 기다란 몽둥이가 보였다.


'키만 컸지 비쩍 마른 요괴다. 저걸로 내리치면..?'


사내는 당장 달려가 몽둥이를 쥐고는 을에게 달려갔다.


"이야아..!"


'쯧. 어리석은 놈.'


'픽-'


'투둑. 퍼어억-'


을에게 달려가던 남자는 순식간에 목이 잘려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바닥에 흥건한 피에 여인은 기겁하며 고함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고요한 밤의 깊은 산속 빈집의 외침은 그걸로 끝이 났다.


'픽-'


여인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두 동강이 나더니 곧 죽고 말았다.


'아이씨, 지금 하나를 더 만들어야 제대로 거사를 치를 텐데.'


을은 곧 자리를 떴다. 때는 진시(오전 7시~9시)에 가까워 곧 동이 틀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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