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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Rooney Kim Dec 30. 2023

하츠코이: 첫 사람의 기억으로 사는 법

‘첫 사람’의 기억은 어쩌면 첫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뛰어넘은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처음엔 불꽃처럼 번쩍이는 감정의 발화였겠지만 짙은 향의 기억처럼 순식간에 휘발되는 것 또한 번쩍이는 감정의 마지막이기에 어쩌면 첫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된 기억은 단순히 ‘첫사랑이었지’라는 식의 추억의 한 지점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닌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하루미치(남주)의 첫사랑이 바로 그런 ‘첫 사람’이었다. 그에게 야에(여주)의 영향력은 그동안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만큼 컸기에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첫 사람’. 그래서일까, 대부분 첫사랑은 추억의 조각으로 간직한 채 삶의 이면에 넘겨두고 잊고 살아가는 반면, 하루미치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

불량학생이던 자신이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도, 에어쇼를 보며 멋지다며 감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파일럿이 되는 것도 모두, 과거의 하루미치에게는 ‘인생에 없던 계획’이었을 정도로 그의 삶의 지표는 야에에게 맞춰져 있었다.

야에에게 발생한 불의의 사고 이후, 뜻하지 않게 그녀와 헤어진 이후, 그는 파일럿이 되었지만 삶의 지향점을 잃은 현실의 하루미치는 방향을 잃어 표류하고 더 이상 격납고에 갇혀 더 이상 이륙하기 못하는 비행기처럼 어느새 도시의 대형 빌딩을 관리하는 보안요원이 되어있었다.

하늘을 날 수있는 동력과 도착지라는 명분이 사라진 비행기는 이륙할 이유가 없기에 하루미치 역시 계획했던 미래가 아닌 일상을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소비할 뿐이었다. 그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다 못한 여자친구가 민항기의 조종사 자리를 다시 알아봐 주지만 하루미치는 더 이상 날아오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첫사랑과의 재회는 차갑게 식은 엔진을 다시 돌리는데 충분한 동력을 제공했다.

비록 기억상실로 인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녀였지만 그녀라는 ‘첫 사람’과의 재회를 통해 하루미치의 삶의 지향점이 다시 복기된 것이다.

첫 사람을 잊지 못하는 그는 약혼한 여인에 이별을 고하고, 결국 다시 혼자가 된다. 혼자가 된 그는 곧 첫사랑인 첫 사람에게 돌아갈 것 같았지만, 어차피 과거의 연인이었던 자신을 기억조차 못하는 그녀에게 돌아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듯 그마저도 그만둔 채 멀리 아이슬란드로 떠나 작은 마을의 공항에서 기장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우타다 히카루의 ‘First Love’(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OST 타이틀 곡)를 통해 상실했던 기억이 조금씩 번뜩이며 차츰차츰 과거를 찾아가는 야에는 하루미치가 그녀의 첫사랑(첫 사람)이었음을 다시 기억해 내고 서로에게 첫 사람이었던 둘은 결국 첫사랑을 회복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대개, 첫사랑의 기억은 아련하고 아득하다.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항상 가슴 설레게 궁금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물론, 기혼자는 꺼내서는 안 되는 금기의 단어지만,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힘은 생에 처음 느낀 강렬한 감정의 기억이라는 진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누군가에게 그가 사랑한 ‘어떤 이’는 그저 한 순간의 기억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그땐 그랬지, 그때가 좋았지.

그 사람이라서 행복했어.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

사실, 첫사랑은 성공의 유무를 떠나 이러한 감정의 복기와 곱씹음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삶은 풍요로웠다고 할 수 있다. 첫사랑이 훑고 간 감정의 후폭풍이 비록 쓰고 잔인할지라도 덕분에 넓고 옅게 퍼진 스펙트럼을 갖게 되었고 그 스펙트럼은 이후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에.

우리의 진짜 삶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간접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기에 사소한 이벤트와 감정의 교류 또한 크게 다가오고 또 그래서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