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어엿하게 성장해 제법 어른의 태도 나고, 직장인의 면모도 갖춘 모습을 상상하니 굉장히 뿌듯한데, 한편으로는 가슴 한쪽이 허전해져. 왜 그럴까. 하하, 신경 쓰지 마. 별 의미는 없으니까.
일은 곧잘 해도 사회성이 없어 뾰족한 가시 같던 네가, 동료들과 어울리고 좋은 선배가 되어가고 있을 것이라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분이 좋다. 그런 생각만으로 내 입가에 미소가 막 번져, 그래서 아주 크게 소리 내어 웃고 싶다.
왜? 그냥, 그냥 너무 뿌듯하니까.
너, 지금쯤이면 아마 주변을 아우르는 네 모습에 하나 둘, 너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네게 의지하고 있을 거야.
어쩌면 너도 조금씩 느끼겠지. 그리고 후배들은 그런 네 모습을 닮고 싶어 할 거야.
막, ‘좋다고, 고맙다’고 말로 표현하기도 하겠지.
낯간지럽지. 부끄러울 수 도 있고. 그런데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어.
그렇게, 그렇게 살다 보면 그냥 좋은 사람, 좋은 어른이 되는 거라고.
만약, 네가 사람들에게 그런 얘길 들으면 꼭 이렇게 말해.
“나에게 고마운 만큼,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도 꼭 그대로 해주라고. 그럼 된 거라고.”
세상은 그렇게 서로 보듬어주고 이해해 주면서 사회에서 얻은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을 얻는 거야.
결코, 극소수의 힘으로만 세상이 돌아가는 게 아니거든.
알지?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야.
어른다운 행동을 해야 어른이지.
관심, 책임 그리고 보호.
그것만 잘해도 아주 좋은 어른이야. 아니, 아주 훌륭한 어른이지.
집에서는 좋은 부모로서, 사회에서는 맡은 역할을 잘하는 구성원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하는 것 그리고 어떤 행위든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 그게 우선이야. 그럼에도 아직 미숙하고 어려 힘든 시기를 건너고 있는 누군가를 보살피고 손 내밀어, 시행착오를 겪어도 낙오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
이게 참, 말은 너무 쉽거든, 그런데 행동은 참 어렵다.
그래서 진짜 어른이 존경과 대접을 받는 거야.
난, 네가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
동시에,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버텨낸 네 모습 말이야.
그거 억지로 잊으려 하지 말고 이젠 보듬어줘.
“참.. 대단하다. 정말 고생 많았다.”
그렇게 한 마디하고 꼭 한 번 안아줘.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되어버린다는 건 참 슬픈 일이야. 누군가는 일찍 철들어서 좋겠다지만, 그거 되게 어설픈 위로도 안되는 거잖아. 사랑과 관심으로만 가득 차도 모자랄 어린아이의 눈망울에 근심과 두려움이 어린 모습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잖아?
엄마, 아빠에게 떼쓰고 어리광 부릴 나이에, 집 걱정, 끼니 걱정, 생활비 걱정을 하며 아픈 조모를 모셔야 하는 얄궂은 운명을 탓하는 거, 그거 외엔 달리 할 게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책임을 다해낸 네 모습. 정말 대단하다.
수고했다. 너무 잘 버텼어.
지난한 과정을 지근지근 밟으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절어버린 몸보다 더 찌그러진 네 마음을 상상해 보면 너무 가슴 아프다. 그런 와중에도 다른 사람까지 걱정해줬으니.. 넌 모르겠지만, 너 참 대단한 아이야.
그럼에도 앞으로 네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많은 일들이 있을 거야. 아마 흔들릴 때도 있겠지.
그런데 흔들리는 게 정상이야. 안 흔들리면 언젠가 꺾여버리거든. 흔들림은 다시 잦아들지만, 꺾이면 그냥 그걸로 망가져버리는 거야.
그렇게 십수 년이 흐르고 또 그게 쌓여 수십 년이 지나면, 네가 기뻐 웃었던, 슬퍼 울었던 날의 기억들이 차곡차곡 나이테처럼 가슴에 새겨질 거야. 덕분에 돌아보며 회상할 추억에 기분도 좋아지겠지. 나이 들수록 그걸 곱씹으면서 기쁨을 얻거든.
그러니 그냥 살아. 너무 많은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네 삶을 살아.
궁금하다.
궁금하지만 그냥 참을게.
언젠가 또 밥 한 끼 먹을 날, 그런 날이 오겠지. 달큼한 술 한 잔에 인생을 꿀꺽 삼키고, 시원한 커피 한 잔에 하루를 바짝 버티며 살아가는 이야기, 고민과 걱정, 그럼에도 나아갈 계획 등등
너무 심각한 얘기 말고,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렇다면 언젠가,
이미 너나 나나, 우리 모두, 우리보다 훨씬 어린 세대에 밀려, 이젠 촌스러운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는 나이가 되어도 마냥 든든하고 기쁠 것 같아.
“나이를 잘 먹었구나. 그래도 내가 조금이나마 가치 있는 삶을 살았구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으면서 꿋꿋하고 멋있게 살아왔구나.”
얼마나 뿌듯할까.
아,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너, 잘하고 있어.
아주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앞으론 가족이랑, 주변 사람들이랑 잘 먹고 잘 살아갈 생각만 해.
무엇보다 너 자신, 널 먼저 생각해. 알겠지?
요즘 들어 생각한 건데. '행복해라'라는 말이 참 모호하더라. 행복의 기준과 경계는 사람마다 다르고 너무 불분명하잖아. 그래서 또 생각을 더 해봤지. 그런데 ‘내 맘에 들게’는 명확하더라. 내 마음에 드는 기준이니까 선도 경계도 정확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