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휙휙-'
산비초는 근중이 날린 주먹을 이리저리 쉽게 피했다. 천검이 달려와 도와주려 했지만 근중이 왼팔을 내저었다.
"내가 끝장낸다."
"크큭."
근중은 산비초가 비웃으며 방심하는 사이 녀석의 가슴팍으로 몸을 집어넣으며 산비초를 번쩍하고 들어 올렸다.
산비초 역시 당장 벗어나려 했지만 근중의 근력과 순발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이 새끼. 세긴 세네.'
'휘익-'
‘우당탕’
근중은 산비초를 바닥에다 내팽개치곤 그 위에 올라타 돌덩이 같은 주먹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팍팍팍. 퍽퍽퍽. 파바바바박-'
산비초 역시 무자비한 힘으로 내리치는 주먹을 막는 것 외엔 달리 할 게 없었다.
‘에잇, 어찌 전보다 더 세진 것 같냐..'
순간 산비초가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곧바로 근중의 목을 조르듯이 감았다. 이대로 근중을 떼어놓을 생각이었다.
'으윽. 뭐냐, 이 새끼.. 힘이?!'
산비초는 용케 근중의 목을 다리로 감쌌지만 근중의 허리힘이 어찌나 강한지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왜? 너만 괴인이냐? 나도 한 때는 괴물로 불렸다."
근중은 산비초가 당황한 틈을 타 열린 얼굴로 오른 주먹을 강하게 쳐 넣었다.
'빠아악-'
"으허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산비초가 처음으로 고통에 찬 신음을 뱉었다.
'탁. 꽈아악.'
이후 근중은 자신을 목을 감싼 산비초의 왼발을 잡고는 발목을 비틀어 꺾어버렸다.
'우두두두둑-'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산비초는 윤대감에게 당한 이후 아주 오랜만에 당황스러운 고통을 느꼈다.
근중은 일어나서 산비초의 멱살을 쥐고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퍽. 퍽. 퍽.'
근중은 왼손으로 녀석을 쥐고 오른손으로 묵직하게 얼굴을 십수 차례 강타했다. 한참을 두들겨 맞던 산비초는 어쩌면 이대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였다.
"이리 오너라."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는가 생각한 순간 어디선가 포졸들 여럿이 들이닥쳤다.
"왔구나. 으흐흐."
근중에게 얻어터지던 산비초는 자신의 집을 둘러싼 포졸들을 보더니 얼굴에 피범벅이 된 채로 웃음 지었다.
근중은 산비초를 땅에 집어던지고 정황을 살폈다.
'우리를.. 도우러 온 건가?'
정만이 포졸들과 포졸장을 쳐다보며 외쳤다.
"잘 왔다. 당장 저 괴인을 잡아 족치거라!"
그러자 포졸들이 갑자기 포졸장의 얼굴을 보더니 쭈뼛거리는 게 아닌가.
"뭐 하냐? 어명이지 않느냐. 당장 붙잡아라..!"
포졸장의 엄포에 포졸들은 순식간에 정만을 포승줄로 말아 묶어버렸다.
전혀 뜻밖의 상황에 포도부장인 정만 본인은 물론, 근중과 천검 등 다른 사람들 모두 눈이 동그래져 이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뭐.. 뭐 하는 짓이야? 다들 미친 게냐? 저 괴인, 산비초를 잡으라고!"
"포도부장님, 송구하지만.. 포도대장의 명입니다. 일단 포도청으로 압송하겠습니다."
"뭐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포도대장님이 그랬다고?"
그러자 바닥에 널브러졌던 산비초가 낄낄거리며 일어났다. 부러진 다리는 절뚝거렸지만 용케 서 있었다.
"아유, 우리 나리들이 일을 제대로 하시네. 여여, 보슈. 이 작자들이 떼로 몰려와서 나를 두들겨 패서 죽이려고 했다니깐."
"이 새끼가..!"
근중이 다시 산비초에게 다가가려 하자 포졸 셋이 근중을 둘러쌌다.
"다들 잡혀가기 싫으면 해산하시오. 일단 명은 포도부장만 압송하라셨으니 운들이 좋소. 그리고 산비초 저자에게서도 멀리 떨어지시오."
"포도부장님..!"
근중이 정만을 보며 외쳤다. 곧 정만이 잡혀갔고 근중 일행은 이를 허망하게 바라볼 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으으.. 네 이놈을..!"
근중이 산비초를 향해 다시 돌아섰다. 하지만 산비초는 어느새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천검아 애들이랑 여기를 샅샅이 뒤지자. 오늘은 이놈 초상을 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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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기운이 느껴져요. 바로 저 집입니다."
은진의 한마디에 귀로는 양주먹에 영력을 모았고 선준은 일령을 꺼내 들었다.
"어..?!"
"왜 그러오?"
"우리보다 먼저 온 손님들이 있는데요?"
산비초의 집 마당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바닥에는 산비초와 장태가 흘린 피가 흥건했고 주변에는 근중과 천검 일행이 누군가를 찾는 듯 수색 중이었다.
이때 지하에 숨어있다가 안방 뒷문으로 나오던 산비초가 선준 일행과 딱 마주쳤다.
"너구나? 산비초라는 작자가."
그러자 겨우 몸을 숨겨 겨우 도망칠 정도로 회복한 산비초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아이씨, 오늘은 초대 안 한 손님들이 뭐 이렇게 많이 오냐.."
"뭘 중얼거리냐. 묻는 말에 답만 해주면 목숨은 살려주지."
귀로가 산비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 새끼는 뭐지. 공력이 상당한데. 축귀사인가?'
"뭔데?"
"네놈이 한양에 아니, 전국에 아편환을 판매하는 자가 맞냐?"
산비초는 두 눈이 동그래져서 셋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아, 피곤하네. 이것들도.. 뭔가 알고 온 것 같은데.'
"아하하, 뭔가 잘못 알고 오신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사람이.."
'휙-'
산비초는 사람 좋은 웃음을 하며 다가가더니 갑자기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이에 쉽게 당할 귀로가 아니었다.
'휙-'
'쑤우욱-'
'크크. 그럴 줄 알고 또 내가..'
'파악. 푸우욱-'
산비초는 오른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하는 척하면 왼손으로 단도를 꺼내 들어 귀로의 옆구리를 찔렀다.
'빠아악-'
'뭐.. 뭐야. 이 새끼도 괴물이야..?!'
하지만 귀로는 맨손으로 산비초의 단도를 잡아서는 마치 나뭇가지를 으스러트리듯 구겨 부숴버렸다.
"이런 잔챙이 같은 술수는 내게 안 통해."
'파악-'
귀로는 당황한 산비초의 가슴팍을 세게 차 날렸다.
때마침 그 뒤로 근중 일행이 돌아왔다.
"여기다! 산비초가 여기 있다."
산비초는 삽시간에 앞에는 귀로 일행, 뒤로는 근중 일행에 막혀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했다.
'어라, 저 여인은..?'
산비초를 향하던 중 은진과 눈이 마주친 근중은 가슴속에서 번개가 번쩍하는 걸 느꼈다.
"어명이다! 모두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
산비초를 다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집 마당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집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귀로, 근중 일행이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수십 명의 포졸이 집 뒷마당까지 집결했다.
산비초는 벌떡 일어나더니 또다시 너털웃음을 지었다.
"낄낄낄. 여보게들. 좀 잘 알고 오시게나. 나 이런 사람이야. 관아에서 보호하는 사람을 이리 줘 패도 되는 거야? 어이 거기 포졸장 양반, 어서 이것들을 모두 다 잡아가둬."
하지만 포졸장은 산비초는 본체만체하고 귀로와 근중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돌아들 가시오. 포도청의 명이오. 돌아가지 않으면 모두 잡아가겠소."
"젠장. 이걸로 확실해졌네. 뭔가 있어. 일단 돌아갑시다."
귀로가 돌아서며 말했다. 선준 역시 일령을 다시 보따리에 넣었다.
"자.. 잠깐만 보시오."
귀로 일행이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근중이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은진씨.. 맞죠?"
그러자 은진은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푹하고 숙였다.
"은진씨..? 아는 사이오?"
귀로의 물음에 은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맞구만. 잘 지냈소? 대벽 고을에 있다고는 들었는데. 이렇게 한양에서 그것도 저 놈의 집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네. 잘 지냅니다.."
"한양엔 웬일이오? 게다가 여기는 또 왜?"
"사정이 있어서요. 그쪽은.. 어쩐 일이 십니까?"
"아.. 저 역시. 어..? 혹시.."
"네..?"
"외람된 얘기지만.. 혹시 어머니를 찾으러 온 거요..?"
은진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요상한 기류를 눈치챈 선준이 말을 이어갔다.
"아편환을 만들어 판매하는 자를 찾고 있소. 그자가 나의 원수, 아니 우리 모두의 원수인 악귀와 연결이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악귀라.. 하긴 요즘 들어 전국 곳곳에서 귀신판이 많이 벌어지긴 하더이다."
돌아서 있던 은진이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네. 아편을 파는 자라면, 그것도 한양에 공급하는 자라면 저희 어머니가 있던 아편굴도 알지 않을까 해서요."
그때 장태를 응급처치하고 온 물포가 근중 일행에 편입했다.
"다친 자가 있소?"
"네, 아까 그 괴인을 잡으려다 이리됐지요."
"상처가 꽤 깊네. 일단 저희랑 같이 가시지요."
귀로의 제안에 근중이 물었다.
"어딜.. 말이오?"
"우리와 뜻이 같아 보이니 같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소. 꽤나 실력이 좋은 자들이 많으니 녀석을 잡는 건 시간문제일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