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근중과 은진의 해후

by Rooney Kim


"저는 근중입니다. 산적패인 척결패의 두목이지요."


"저는 천검이라 하오. 착호갑사장입니다."


"어! 척결패라면 그 뭐야 전국을 통일한 그 산적 아냐? 검계들도 전부 때려잡고. 포도청보다 일을 잘하지 아마. 크흐흐."


정법이 근중을 반기며 호들갑을 떨자 할멈이 눈치를 줬다.


"여하튼 반갑습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두 한양에 모였으니 서로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가뜩이나 할멈 일행으로 가득 찬 용상네에 근중과 천검 일행이 합류하자 온 집안이 떠들썩해졌다.


"산비초, 그놈은 괴물 같은 놈이오. 군대를 끌고 가야 잡을 수 있을까 말까요."


"그보다 포도부장님이 걱정입니다. 우리랑 같이 산비초를 잡던 중 포졸들에게 끌려갔습니다. 필시 누명을 쓰신 게 틀림없습니다."


필경의 말에 근중과 천검의 표정 역시 어두워졌다.


"나라에 뭔 일이라도 날라나 벼. 아편이 판을 치고 크고 작은 난이 터지고 귀신들이 날뛰고. 역시 성주산 법당에 있는 게 제일 편한데. 크흐."


정법의 우스갯소리 같은 넋두리 이후에도 다들 입을 열지 못했다.


"아편 때문에 귀신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설치고 이로 인해 폭력과 살인이 방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축귀는 모르니 일단 아편의 유통을 쫓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지요."


"네, 포도부장님이 이를 처음부터 발견하고 쫓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산비초라는 강력한 용의자를 잡아들이기 직전에 저리 잡혀갔다면.."


"그 말은 필시 윗선과 산비초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말 아니오?"


천검의 설명에 귀로가 거들었다.


"그렇소. 전 반드시 그럴 거라 보오."


"우리는 윤대감이라는 대악귀를 쫓는 중입니다. 혹시 이와 관련이 있는 자일까요?"


선준이 물었다.


"산비초가 뿌린 아편환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고 귀신판이 벌어지긴 하지만.. 그건 아직 모르겠군요."


천검이 다시 나서며 대답했다.


"자아, 자자~ 다들 고생하셨으니까. 고기랑 밥을 드시지오. 곧 하인들이 수라상 같은 상을 내올 겁니다. 으히히."


용상은 신이 났다. 자신의 은인인 할멈과 정법은 물론, 전국에서 모인 강자들이 자신의 집에서 머물고 대접할 수 있다는 데에 큰 보람을 느끼는 듯했다.


"용상이 자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이러면 내가 미안한데."


"아휴우, 정법 형니임! 그런 말씀 마시라니까. 히히히.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있으셔도 됩니다. 그 뭐냐, 볼 일 다 보실 때까지 근심 없이 계세요들. 자자, 뭐 하냐, 빨리 상 좀 들여라."


할멈 일행과 근중, 천검 일행은 아주 오랜만에 따뜻한 밥과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받았다.


내일부터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어쩌면 앞으로 닥칠 날들에 대비한 마지막 쉼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은진은 잠을 못 이루었다.


한양 어딘가 필시 어머니가 살아계실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찾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의 목표는 뚜렷했다.


산비초를 치고 윤대감을 소멸시키는 것.


'달칵.'


은진은 기어이 일어나 살며시 문을 열었다. 때마침 달이 밝아 바깥이 훤했다.


"흐아아아아아함-"


'어..?'


은진이 나온 길 반대편에서 근중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둘은 곧 눈이 마주쳤다.


"어라, 은진씨. 잠 안 자고 어쩐 일이시오?"


"그냥..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아서요. 근중씨는..?"


"아, 뒷간에 다녀왔지요."


"네에.."


근중은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가려다 말고 뭔가 사정이 있어 보이는 은진의 표정을 읽었다.


"혹시.. 아직도 아버지를 쫓고 있나요?"


은진은 근중에 물음에 헛웃음이 났다.


"아뇨. 뭐.. 언젠가 다시 찾아 벌하고 싶겠지만."


"그럼 무엇 때문에 그리 근심이오? 혹시.."


“어머니 때문이지요..”


“아아, 그랬죠. 십 년 넘었나요?"


은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한양에 계실까요?"


"적어도 제가 알기론.. 그곳은 한 번 꾀이면 빠져나올 수가 없는 곳이니까요."


"아편굴이니.. 산비초와도 연결이 되어있으려나."


"음.. 그럴지도요."


"찾고 싶죠?"


“물론이죠..”


근중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랑 같이 가지요. 한은 풀어야 삶이 편합니다."


"아니.. 그.."


"산비초요? 당연히 잡아 죽여야죠. 그 아편굴의 원천을 쫓으면 산비초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전국으로 퍼져가는 아편의 확산을 막아 무의미한 죽음을 막는 게 목적이니까요. 부담 갖지 마세요."


근중은 혹시라도 은진이 가질 미안함이나 부채감을 최대한 덜고 싶었다.


"하아.."


은진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길고 긴 한숨을 끄집어냈다.


어쩌면 십여 년을 기다린 묵은 원망과 분노를 이번에 털어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만가지 감정이 올라왔던 것이다.


"그리고.."


은진이 근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


"잘 지냈소..?"


근중의 갑작스러운 안부에 은진은 다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잘 지낸다는 것의 의미가, 그래도 밥은 넘어가고 하루하루 허투루 살지 않고 목표를 향한 걸음이라면, 네, 잘 지냈어요. 근중씨는 요..?"


근중 역시 여러 감정과 생각이 이는 지 입을 꾹 다문채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궁금했소. 대벽 마을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더는 찾아볼 이유는 없었으니."


은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필시 어린 시절이 떠오른 것이다.


"저 역시 가끔은 그 기억 덕분에 힘을 냈습니다. 감사했어요."


근중은 마른침을 삼키며 곁눈으로 조심스레 은진을 살폈다.


비로소 평온해 보였다. 아직 해결해야 할 큰일이 남았지만, 조금 전과는 분명히 다른 얼굴이 되었다.


"그럼, 다시 들어가 주무시지요.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네. 꼭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찾고야 말겠습니다."


----------


'사사삭. 스사사사삭.'


월화와 수비를 포함한 서른 마리의 호랑이 떼가 산길을 따라 내달리고 있었다.


목적지는 한양. 얼마 전 천검이 한양으로 가기 전 자신에게 먹을거리를 잔뜩 가져다주며 잘 지내고 있으라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천검님의 체취야. 그 무리들도 함께 이동했어.'


월화에게 천검은 부모와 같았다. 애꿎은 인연이라 착호장과 호랑이로 만났지만, 어린 시절 죽을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해 오랜 기간 돌보 준 그를 부모로 여겼다.


'...'


수비는 월화의 부탁이라 또 한 번 더 함께했지만 언제까지 인간들을 도울 순 없었다.


애꿎은 운명의 관계인 인간과 호랑이는 서로에게 위협이 되어 결국 인간들은 언젠가 또 호랑이들을 사냥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월화, 이번이 마지막이야. 우리에게도 위험한 일이야. 게다가 인간들은 간사해서 언제 우리를 잡으러 올지 몰라.'


'응..'


----------


"오빠, 그럼 여태 우리가 귀신을 잡아다 바친 자가 아편 판매상이었어??"


"응.. 그렇더라고. 하아 나참. 이거 내 면이 영 안서네."


소백은 늙은 대감에게 당한 것도 부끄러웠지만 최근까지 했던 축귀로 큰돈을 벌며 좋아했던 게 더 부끄러웠다.


결국 백성들의 고혈을 짜낸 돈이거나 그들을 사지로 내몬 돈이었기 때문이다.


"아냐. 오라버니가 무슨 잘못이야. 우리가 그걸 알고 한 게 아니잖아?"


"응..?"


소백은 또 차선의 잔소리를 한바탕 들을 거라 생각했지만 차선의 반응이 예상과는 달랐다.


"됐어. 이제 그 사람한테 일 받지 마. 그럼 되는 거 아냐?"


차선의 한마디에 소백과 전신의 표정이 난간 해졌다.


"그런데 누나.. 내가 볼 때 당분간은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안 그럼 오히려 우리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어."


"그래. 나도 죽을뻔하다 온 거고. 갑자기 우리가 일을 못하겠다고 하면 더 의심할 수 도 있고 또.."


"또..?"


가만히 얘기를 듣던 차선이 되물었다.


"이놈들 뭔가 구린 데가 있어. 사대부와 연결된 아편상. 딱 봐도 수상하잖아?"


"괜찮겠어? 그러다 우리까지 나쁜 일에 꼬이면.."


"아냐, 그럴 일은 없어. 우리는 귀신만 잡아다 줄 거니까."


"그럼 좀 이따 또 나가볼 거야?"


"응. 일단 이 부적도 넘겨줘야 하고."


"도희랑 금정이는 많이 피곤하니까 그럼 난 애들이랑 있을게. 혹시 모르니까 중간에서 일 전달해 주는 사람에게 뭣 좀 물어봐."


“그 사람? 무슨 말이나 해줄까 싶긴 한데.."


"그래도 그냥 물어봐, 아무것도 모른척하고."


"그래, 그래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95화 하늘의 지배자 조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