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미행 2

by Rooney Kim


'턱-'


산비초가 오른팔을 소백의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목숨 한 번 살려줬으면 그냥 조용히 귀신이나 잡을 것이지 우리 뒤는 왜 밟았을까?"


소백은 끝까지 잡아뗄지 아니면 산비초와 한판 붙을지 고민이 되었다.


전신은 얼굴 가득 소백을 말리는 표정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얼른 이 자리를 뜨자는 뜻이었다.


"아하하, 뭔가 오해가 있으신데.."


소백이 산비초의 팔을 조심히 잡아 내리고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휘이익, 꽈아악-'


하지만 산비초는 이때를 틈타 잽싸게 소백을 팔을 잡고는 돌려 꺾었다.


허나 소백 역시 이대로 당할 자가 아니었다. 소백은 곧장 팔이 꺾인 방향으로 재주를 넘더니 꺾인 팔을 풀어버렸다.


'어쭈?'


소백을 우습게 본 산비초는 살짝 놀라며 다시 소백의 멱살을 잡았다. 그런데 소백은 그동안 숱하게 많은 귀신과 괴물을 때려잡은 축귀사다. 소백은 체력도 좋지만 그의 뛰어난 영력은 제아무리 괴인인 산비초라도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


'팍. 꽈아악-'


"아, 이러실 것까진 없죠."


소백이 웃으며 산비초의 팔목을 꺾었다.


“이게 미쳤나. 어디 미행을 해놓고선.”


'파악-'


산비초는 힘으로 안될 것 같아 그대로 냅다 소백의 가슴팍을 발로 차버렸다.


'쿠당탕-'


"으아악."


소백은 넘어지면서도 흥분하지 않으려 애썼다. 지금 산비초와 싸워버리면 더 큰 세력이 다시 자신들을 쫓을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씨, 별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잔뜩 흥분한 산비초가 소백에게 저벅저벅 걸어오다가, 갑자기 길 반대편을 흘깃 쳐다보더니 갑자기 주막 뒷마당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뭐야..?’


그러자 갓을 쓴 사내도 곧장 산비초를 따라 달아났다.


"잡아라! 저놈 잡아라!"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귀로가 달아나는 산비초를 보고 맹렬히 뛰어 산비초를 쫓기 시작했다. 그 뒤로 천검과 일행들이 따라갔다.


"형. 우리도 가볼까요?"


"당연하지."


소백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전신과 함께 귀로 일행의 뒤를 따라갔다.


'이번엔 저 새끼를 반드시 잡고 만다.'


'축도장(縮跳長. 뛰는 속도를 높이는 기술. 축지법과는 원리와 방식이 다르다.)'


'휘익-'


"히에엑-"


산비초는 열 길이나 빠르게 달리던 자신의 바로 옆에 나타난 귀로를 보며 마치 귀신을 본 듯 비명을 질렀다.


'터억-'


귀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왼손으로 산비초를 들었다가 전방으로 던져 내팽개쳤다.


'푸아아아악-'


"크허억.."


비록 오전의 격투로 다친 몸이 아직 회복이 안된 걸 감안하더라도 인간의 몸으로 괴인인 산비초를 이토록 함부로 다루는 이는 산비초 본인에게도 처음이었다.


뒤따라온 천검은 산비초 뒤를 따라 달리던 갓 쓴 사내를 쉽게 제압했다.


"쿨럭. 뭐냐. 누가 보냈어? 오늘 나 찾는 사람이 되게 많거든. 그런데 넌 아침에 왔었잖아아~"


"어디서 앙탈이야. 이 새끼가 뒤질라고. 야, 산비초. 너 똑바로 불어. 그 아편들 어디서 났어? 이렇게 대규모로 유통하는 거, 혼자 하는 거 아니지? 니 뒷배가 누구야?"


산비초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힘 자체는 자신이 뛰어날지 몰라도, 귀로의 공력은 자신보다 훨씬 강했다. 게다가 지금은 몸이 성치 않으니 반격도 힘들었다.


"히. 뒷배는 무슨,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내 이름 석자면 천하가 벌벌 떤다고."


'피식.'


그러자 귀로가 비웃었다.


"너 오늘 팔 하나는 분질러야겠다. 아침에 사내 하나도 죽였지? 그 사람 내 친한 사람의 하인이야. 너도 똑같이 만들어줄게."


'젠장..'


산비초는 본능적으로 강자를 다루는 법을 알았다. 강자에게는 무리하게 반항할 필요가 없다. 대신 적당히 맞춰주거나 혹은 강자의 빈틈을 노려 삼십육계를 놓는 게 살 길이다.


"잠깐잠깐!"


"뭐냐?"


"도대체 나를 쫓는 이유가 뭔데? 진짜 아편 때문이야? 아니 전국에 아편쟁이가 나뿐이냐고?"


"응. 이 정도로 크고 빠르게 널리 퍼뜨리는 건 보통 사람은 못하지. 너도 최근에 규모가 커지고 빨라졌잖아? 누가 봐주지 않으면 할 수 없지."


"그래서 그게 누군지 알아? 너네가, 겨우 이 정도 힘과 세력으로 덤빌 수 없어. 나도 몇 대 맞고 포기했다니까."


"누군지 충분히 알고 왔으니까. 위치만 말해. 그럼 넌 보내주마."


산비초는 고민했다. 어차피 지금 도망가면 또 잡힐게 뻔했다. 몸도 성치 않아 제대로 대항할 수 도 없었다.


'제길, 이래서 축귀사들은 번거롭다니깐.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죽사발을 내면 끝인데. 이씨..'


"다 죽기 싫으면 그냥 이쯤에서 모른척하고.."


'휘익-'


산비초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시장 좁은 길로 달려가더니 산으로 뛰어올라 가기 시작했다.


귀로는 곧바로 뒤쫓았지만 어찌나 날랜지 성하지 않은 몸으로도 꽤나 빠르게 도망쳤다.


축도장을 쓰려했지만 골목도, 장애물도 많았고 무엇보다 산으로 들어가면 빽빽한 나무 때문에 기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제길, 다 잡은 걸 놓치다니..’


귀로는 곧 돌아왔다. 그 사이 소백이 갓쓴 남자를 무릎을 굽혀 놓고 신문하고 있었다.


"천검, 저 자는..?"


"아까 산비초 옆에 있던 부하 놈이오."


소백은 봉을 녀석의 턱아래에 대고 물었다.


"그래서 그 박대감님 집이 본거지가 맞는 거지? 뭐야? 그럼 박대감님이 뒷배야?"


갓쓴 사내의 갓은 벗겨진 지 오래고 그저 뭐라 대답할지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이었다.


"에잇-"


녀석이 갑자기 소백의 봉을 잡더니 소백을 끌어당겼다.


'미련한 놈.’


‘퍽.’


“크악."


하지만 소백이 누구인가. 곧바로 봉을 잡아끌더니 녀석의 얼굴을 살짝 가격한 후 멱살을 잡았다.


"네놈이 안내해."


갓쓴 사내는 벌벌 떨며 앞장섰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사내는 잊지 않는 게 있었다.


'산으로.. 산으로 가자. 가면 돼. 거기 가면 나도 살 수 있고 다 끝낼 수 있다..!’


귀로 일행과 소백 일행은 시장과 마을을 벗어나 한참 걷는 중이었다.


'여기는 목면산(木覓山. 현재, 남산) 입구가 아닌가?'


산 중턱의 산성과 저 멀리 보이는 궁이 위치를 대략 짐작케 했다.


"어이, 그 대감의 집이 여기에 있는 게 확실하냐? 만약에 함정이면 네 목숨은 없다."


귀로가 재차 묻자 사내는 여전히 경직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인다. 저 위 중턱의 산성 뒤에 숨은 수십 마리의 조마구들의 등짝이.. 흐흐.. 다행이다. 목숨은 건졌다.'


'슈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더 이상 집이 안 보이는 곳으로 들어서자 별안간 큰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그런데 그 새의 크기가 웬만한 집채보다 훨씬 컸다.


"형.. 형 저건."


"조마구.. 조마구다. 저게 어떻게 여기에?"


소백은 조마구를 보자마자 봉을 힘껏 쥐었다. 소백 역시 수많은 괴물들을 상대했지만 자신보다 다섯 곱절이나 큰 괴물은 붙어본 적이 었었다.


귀로는 이미 사내가 자신들을 함정으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혀, 형님. 저, 저 큰 새. 아니 괴물.. 어, 어떻게 할까요..?"


진둘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겨우 입을 열었다.


"다들 활 쏠 준비해."


천검의 말에 진둘, 병팔, 말봉이는 착호 할 때 쓰는 강력한 단촉 화살을 꺼내 들었다. 단거리 용이지만 호랑이의 가죽과 근육을 파열시키는 무시무시한 힘을 자랑했다.


그 사이 갓쓴 사내는 헐레벌떡 달아나는 중이었다.


"저 자식.."


"형님 어쩔까요?"


"쏴라. 허벅지에."


'핑- 팍-'


"으아악!!"


사내는 허벅지에 화살이 꽂힌 채 비명을 지르면 넘어졌다.


"부동귀!"


귀로가 먼저 주문을 날렸다. 조마구는 살짝 움찔했지만, 주문을 깨버린 건지 아니면 통하지 않는지 자세를 유지한 채 맹렬히 날아왔다.


'휘이이이잉-'


'꿀꺽-'


"으아앗..!!"


조마구는 일행들이 방어할 틈도 없이 착지와 동시에 병팔을 집어삼켰다.


"병팔아..!"


"저 새 새끼가!!"


병팔이 먹히자 진둘과 말봉이 한자 반짜리 단검을 꺼내 들고는 달려갔다.


'펄럭-'


하지만 조마구가 날갯짓을 한번 하자 둘은 바람에 날아가 뒤로 굴러 나무둥치에 처박히고 말았다.


"괜찮냐?"


천검이 달려와 이들을 살폈다. 천검은 조마구를 보자마자 느꼈다. 녀석은 호랑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고 강력했다.


"에잇."


그때 귀로가 조마구에게 달려들었다. 제아무리 덩치가 큰 괴물이지만 귀로에겐 그저 한 마리의 퇴치 대상에 불과했다.


귀로는 다짜고짜 달려가 영력이 가득 실린 주먹을 날렸다.


'퍼퍽. 퍼억. 퍽-'


이미 병팔을 입에 넣은 상태라 조마구는 귀로의 주먹을 날개로만 막으며 받아냈다.


'뭐야, 끄떡도 안 하네? 그렇다면..'


귀로는 자세를 바로잡고 양손을 모으더니 크게 외쳤다.


"축귀파!"


귀로가 모은 손 앞으로 붉은 구체가 생기더니 곧장 조마구를 향해 날아갔다.


'슈우웅- 파악-'


조마구는 오른쪽 날개를 펼쳐 얼굴을 가리더니 귀로의 필살기인 축귀파를 막아냈다.


'어? 저걸 막으면 안 되는데..?'


귀로는 과거에 이미 조마구를 상대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 눈앞의 녀석보다는 작은 녀석이었지만 축귀파를 맞고 멀쩡한 녀석은 거의 없었다.


조마구의 날개에는 검게 그을린 흔적이 남았지만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귀로를 노려보았다.


'이런. 이 녀석, 원래 이리 강했나..?'


하지만 귀로는 잘 알고 있었다. 귀신이나 괴물과 싸울 때도 가장 중요한 건 기세라는 것을.


"이야아!!"


귀로는 두 주먹에 영력을 가득 실은 채 조마구를 향해 달려갔다.


조마구의 입 속에는 아직 병팔이 있는지 녀석의 양 볼이 꿈틀거렸다.


'펄쩍. 푸드덕'


조마구는 귀로의 기세에 눌렸는지 움찔함과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달아난다. 쏴라, 어서 쏴!"


'핑- 핑핑-'


진둘과 말봉 그리고 천검이 다시 조마구를 향해 긴급하게 활을 쐈다.


'팍, 팍'


조마구의 날개와 등짝에 활이 꽂혔지만 녀석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전신아! 지금이야!"


소백의 외침에 전신은 귀신을 쫓을 때 쓰는 미행부를 띄우더니 곧장 조마구에게 날렸다.


'펄럭- 슈아아아아악-'


'으으.. 제발..! 붙어..'


전신은 미행부의 운행에 초집중을 했다. 다행히 부적은 바람보다 빨리 날아가 조마구의 꼬리에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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