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병패의 졸개들은 부리나케 흩어졌다. 그들은 곧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인을 찾기 시작했다.
곧 십여 명에 가까운 여인들을 데려왔다. 다들 이미 약에 취했는지 얼빠진 얼굴에 제정신이 아니라 거의 끌려 나오다시피 했다.
"물포야, 그거 꺼내봐라."
"네, 형님."
물포는 가슴팍에서 꼬깃하게 접은 그림을 꺼냈다.
"아닌데.. 저 사람도 아니고.. 흐음."
장태와 물포는 은진이 그려준 그림을 몇 번이고 대조해 봤다. 이미 넋이 반쯤 나간 여인들이라고 해도 닮은 구석이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은진의 미모와 닮은 이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만약, 아편굴에 어머니가 안 계신다면 아버지라도 찾아보세요. 그자는 한산이든 어디든 분명 아편굴에 있을 겁니다. 반항이 심하다면 알아서 처리하셔도 됩니다. 그자는..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이길 포기한 자죠.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위해서라도 없어지는 게 나아요..’
장태는 은진이 한 말을 떠올렸다. 그래도 아비인데 오죽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싶었다.
'하긴 그렇게 지독하게 시달렸다는데 십 년이나 지났으니 탈출했거나 혹은..'
"형님, 없는데요."
"그래, 그냥 돌아가야..”
장태와 물포가 수색을 끝내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누구냐? 누구야?! 어느 미친 새끼가 우리 병태를 죽였어?"
갑자기 지하 굴 쪽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지며 터져 나왔다.
"너희들이냐? 척결패 새끼들이."
둘은 커다란 고함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별안간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의 남자가 굴에서 나와 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랑 붙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뭐 전국을 통일했다고? 의적인척하고 다닌다지? 그래봐야 다 똑같은 산적 아니냐, 어디 정의로운 척하고 있어."
"이 씨, 저게."
"잠깐 있어봐라, 물포야."
장태가 나서려는 물포를 말리고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는 나이가 제법 들어 보였다. 적어도 족히 불혹은 넘었을 얼굴이었지만 여전히 여러 여인을 홀릴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키도 제법 크고 기생 오래비같는 외모라면..?'
"누구야? 병태를 죽인 게. 너야? 너냐?"
사내는 장검을 들고 다가왔다. 하지만 장태는 뒷짐을 진 채 그를 빤히 바라봤다.
"혹시 은진이라는 여인을 아시오? 성은 최가요."
사내는 은진이라는 이름에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여전히 분에 찬 얼굴이었다.
"뭐 하는 놈들이냐? 산적 주제에 그 이름을 어찌 알아?"
"자기도 산적이면서."
물포가 뒤에서 중얼거렸다.
"맞구만. 하아, 이걸 어쩐다. 은진씨는 십수 년째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데, 아비라는 넌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한양에서 더 큰 아편굴로 여러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죽이고 있었네?"
"뭐..?"
사내는 살짝 머뭇거렸다. 장태의 말에 십 년 만에 잊고 있던 과거가 떠올랐다.
‘이 인간들은 은진이를 어떻게 아는 거야? 설마 은진이가 날 죽이려고 수를 쓴 건가.. 제길 그때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두목님, 저 인간들입니다. 우리가 한꺼번에 덤비면.."
"자네 이름이 최정평?"
그는 수병파의 두목이자 한양 최대의 아편굴을 운영 중인 한산의 아편왕 그리고 은진의 생부, 최정평이었다.
"제길, 이 자식들. 안 그래도 죽일 생각이었는데, 안 되겠네. 쳐라!"
정평의 한마디에 수병파 산적들 십 수명이 다시 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에 물러설 장태와 물포가 아니었다. 게다가 수병파 대부분은 지금 둘의 능력에 바짝 쫄아있는 상태였다.
"이야아!!"
물포가 먼저 달려들었다. 수병파 녀석들이 창과 칼로 공격했지만 물포는 애들이랑 놀아주듯 그들의 공격쯤은 쉽게 피하더니 곧바로 셋이나 찔러 쓰러트렸다.
'푹. 푸욱. 파악-'
"끄아아아아."
장태는 물포보다 더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창을 그냥 맨손으로 잡아버리더니 그 창으로 바로 앞의 녀석들을 순식간에 응징했다.
'휘휘휙. 촤아악. 휙휙.'
"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악."
사실 수병패는 알리 없었다. 척결패의 장태가 창과 봉술의 달인이라는 것을.
'휘휙. 팍팍. 푸우욱-'
장태의 창에 벌써 열도 넘게 죽어나갔다.
정평은 장태와 물포의 강력한 무공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새끼들 뭐야. 난데없이 나타나서..'
'파악'
어느새 장태의 창 끝이 정평의 턱끝에 닿았다.
젊은 시절의 혈기도 사라지고 그저 술과 아편에 찌들어 산지 십수 년이 넘다 보니 정평은 이제 대항할 체력도 무공도 없었다.
"도대체 이유가 뭐냐? 여기는 나도 산비초가 도와 달래서.."
"말했잖아. 네 딸이 네 엄마를 찾고 있다고."
"아.. 으흐.. 으흐흐. 걔 엄마 말이야? 없어, 여기 없다고."
장태를 녀석의 눈을 정면으로 뚫어지게 바라봤다.
겁먹은 표정이지만 눈빛은 탁했고 이미 맛이 간 상태였다. 설사 그녀가 여기에 있다고 해도 믿기 힘든 얼굴이었다.
'스윽.'
장태는 조용히 창을 내려놨다. 물포가 다른 애들도 다 제압한 상황이라 더 이상의 위협은 없었다. 오히려 이제 수병파의 모든 녀석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물포야, 가자. 여긴 더 볼 일이 없겠다."
"네, 형님. 쩝."
장태와 물포는 미련 없이 아편굴을 나왔다. 은진씨에게는 차라리 정평을 못 본 걸로 할 참이었다. 제 아비의 더 추악해진 모습을 봐서 좋을 게 없었다.
둘이 창고 밖으로 나가자 정평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장태가 던진 창을 주웠다.
'저 x 같은 새끼들, 감히 나를 부하 새끼들 보는데서 쪽 줬겠다. 죽여 버려야지. 이것들..'
정평은 창을 들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장태의 등 뒤를 향해 있는 힘껏 창을 던졌다.
"끄아압-"
'휘익-'
하지만 이대로 쉽게 당할 장태가 아니었다.
'기껏 살려줬더니.'
'파앗! 퍽.'
장태는 뒤돌려차기로 자신에게 날아온 창을 날려버렸다.
이를 본 정평은 놀랄 틈도 없이 장검을 들고 달려왔다.
"죽어라..!!!"
'휘익'
'허. 그냥 죽으려고 용을 쓰네.'
장태가 칼을 피하자 물포가 정평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크아악."
정평이 넘어지자 물포가 장태를 돌아보았다.
"형님, 어쩔깝쇼."
이때까지만 해도 장태는 굳이 정평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정평은 둘의 눈치를 살피더니 단검을 꺼내 들었다.
'하, 어찌 저리 멍청할까.'
"끝내라."
정평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마자 물포가 달려가더니 온몸의 무게와 힘을 오른 주먹에 실어서 장평의 인중에 무지막지하게 날렸다.
'빠가악-'
정평은 물포의 주먹을 맞자마자 기절을 한 건지 아니면 그대로 죽어버린 건지 몇 자나 굴러가더니 땅바닥에 처박혀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두.. 두, 두목님! 으아아아아.."
"두목님..!!"
정평이 뻗은 걸 보자마자 창고에 있던 몇몇이 튀어나왔다. 그나마 정평을 진심으로 따르는 자들 같았다.
"야, 너네들은 이 여인을 본 적 있냐?"
장태가 은진의 어머니 초상화를 다시 꺼내 들었다.
정평의 부하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한 명이 겨우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아.. 아편굴에서 탈출한 지 오랍니다.. 몇 년도 더 됐을 겁니다.. 그, 그런데 여길 나가면 뭘 해 먹고살기도 힘들어서 굶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아 됐고. 그래서 어디에 있는지 아냐고 물어봤잖아."
답답한 나머지 물포가 쏘아붙였다.
"그러니까 그게.. 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건 미아, 미아리 고개 쪽 어딘가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형님, 거긴, 근중 형님이 가신 곳 아닙니까?"
“그러게.. 잘 찾아갔네."
장태는 떠나려다 말고 정평의 몸통 발로 툭하고 건드려보았다. 정평은 미동도 없었고 더 이상 숨을 쉬지도 않았다. 물포의 마지막 주먹 한방에 그대로 죽어버린 것이다.
"가자, 물포야."
"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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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조마구를 쫓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뵙죠."
"우리도 세력을 끌어모아오겠소. 어디서 보면 좋겠소?"
소백과 귀로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천검이 끼어들었다.
"아까 부적을 붙였으니 저 놈의 위치는 확인할 수 있겠죠?"
"그럼요."
전신이 곧바로 답했다.
"병팔이를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합니다."
"짐승형 괴물이지만 조마구는 악영물에 가깝습니다. 진짜 동물처럼 소화를 시키는 건 아니니 그분이 정신만 차리고 있다면 당장 어찌 되시진 않을 겁니다."
"그럼 지금 바로 쫓을까요..?"
소백이 묻자 천검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차라리 용상 형님네로 다 모이시죠. 어차피 다 동일한 악귀를 쫓고 있는 것 같으니. 허나, 저는 조마구를 바로 쫓아야겠습니다."
귀로가 천검과 일행을 둘러보곤 말했다.
"영력이 있거나 영기물(영물이나 귀신이 깃든 물건, 무기)을 다루는 자가.. 아무도 없어 보이는데요. 상대는 호랑이 정도가 아닙니다. 아무리 착호갑사라 해도.."
"용상 형님네라면.. 거기가 어디죠?"
소백이 다시 물었다.
"남대문 입구에 이 진사댁 아시오?"
"어, 알죠! 그 근처에 저희 집이.."
"그 옆집이요. 바로 옆에 붙은 집."
"그 옆이라면.. 흐에엑?! 그 어마어마하게 큰 대저택 말씀이신가요? 99간 집, 맞죠?"
"아마 한양 아니, 조선 최고의 부자일걸요?"
"아아, 알겠습니다. 일단 모두 그리로 가기로 하고.. 전신아 지금 조마구가 느껴지니. 어디쯤이야?"
전신은 눈을 감고 집중하던 중 깜짝 놀란 듯 눈을 떴다.
"한 마리가 아니에요. 두 마리가 더.. 아니다 세 마리. 어..!?"
"한 다섯 마리 되냐? 조마구는 단독으로 움직이는 놈인데. 그래도 그 정도는 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서.. 서른 마리도 넘어요. 그것도 일단 부적에 감지된 것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