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길달과 산비초의 모략

by Rooney Kim


"뭐야.. 그렇게나 많다고..?"


소백과 귀로도 조마구가 수십 마리나 모여있다는 건 처음 듣는 일이었다. 비교적 고전적인 악영물인 조마구는 과거 이무량이 조선땅에서 전부 소각시켰던 적이 있기에 이렇게 많이 나타난 것도 특이한 일이었다.


“앗, 조마구에게 붙은 미행부가 소멸되었어요..”


"뭐라?! 말도 안 돼. 조마구가 그런 걸 떼낼 정도로 똑똑하진 않잖아?"


"누군가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을 한데 모은 누군가가.."


"위치는? 위치는 확인했어?"


"목면산(현재 남산의 옛 지명)이요. 산성이 보인 걸로 보아 중턱쯤인 것 같아요."


귀로가 이야기를 다 듣고 천검에게 다가갔다.


"당신네 부하를 구하는 게 가장 시급하긴 하나 이대로 들어갔다간 모두 전멸이오. 일단 용상 양반집으로 모두 갑시다. 거기서 영력을 쓰는 자들을 죄다 끌고 가야 합니다."


천검을 꽉쥔 검을 채 놓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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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아! 금정아 왜 그래? 또 꿈꿨어..?"


도희가 금정이를 흔들어 깨웠다. 이부자리는 온통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


'벌컥-'


"왜 그래 도희야? 금정이가 또 악몽 꿨대? 금정이 아픈 건 아니지?"


"언니.."


"어, 그래 그래, 금정아 괜찮아?"


"언니, 배고파요."


"오잉? 야아.. 언니 놀랬잖아. 너 또 악몽 꾼 줄 알고.."


금정이는 곧장 일어나 이불 위에 앉았다.


"..꾸긴 꿨어요. 그런데 이번엔.."


"응..? 뭔데.. 무슨 꿈..?"


금정의 한마디에 차선과 도희의 귀가 쫑긋해졌다.


'콰앙-'


다들 집중하는 사이에 갑자기 방문이 급하게 열렸다.


"으앗, 깜짝이야!"


"얘들아, 가자, 밥 먹으러!"


열린 문으로 난데없이 소백이 튀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아 오빠, 깜짝 놀랐잖아!"


"히히. 그렇다면 성공이군."


"지금 금정이가 오랜만에 꿈꿨대. 들어보자.”


“그래? 무슨 꿈?"


"몰라. 우리도 아직 못 들었어."


곧 금정이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 꿈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 그러니까 산보다 더 큰 용 한 마리가 커다란.. 자신보다 더 큰 새.. 봉황! 봉황이랑 싸웠다고..?!"


"응.. 까만, 까만 봉황이요."


"잠깐만 흑봉황이면 까만 봉황이라고?"


"응. 맞아요."


순간 전신과 차선의 안색이 싹 변했다.


"안 좋은 거지? 나도 영물은 잘 모르지만 흑봉황이라면.."


"봉황은 기린, 거북, 용과 함께 사령(四靈)으로 불리는 영물 중의 영물입니다. 특히, 용과 봉황은 천년 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어요.."


전신이 말했다.


"금정아 좀 더 자세히 말해봐. 더 본 건 없니?"


차선이 잔뜩 긴장한 금정을 다독이며 물었다.


"용은 밝게 빛났는데 봉황은 너무 어두워서 마치 용이 거기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그리고?!"


"땅과 산에는 무수한 군사들이 보였는데요. 다들 끔찍한 얼굴에 몸이 성한 곳 하나 없이 칼과 창을 들고 어디론가 이동 중이었어요."


"혹시.. 용이 싸움에서 졌어..?"


"음.. 몰라요. 그전에 깨서."


"뭔가 터지긴 터질 모양이네.. 흐음."


소백이 양반다리로 앉으며 말했다. 그 뒤를 따라 전신도 옆에 앉았다.


"형, 우리 뭔가 대비를 해야겠는데요?"


소백과 전신이 고민에 빠진 사이 차선이 끼어들었다.


"참, 아까 밥 먹으러 가자며? 뭐야? 어디? 무슨 밥? 돈 아껴야지."


"아! 아 맞다. 우리 초대받았어. 요기 이 진사댁 알지?"


"알지.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집."


"근데 그 옆에 더 큰집 기억나?"


"알지. 근데 거긴 사대부 집 아냐? 한양에 그 정도 규모의 집이라면.."


"거기야. 우리가 오늘 가서 저녁 먹을 곳!"


"뭐? 뭔 또 헛소리야, 이 오라버니는."


"누나, 맞아요. 우리 모두 지금 거기로 가야 해요. 맛있는 고기랑 밥이랑 엄청 많데요. 히히."


"뭐..? 진짜야?"


"야! 넌 내 말은 못 믿고 전신이 말만.."


"오라비는 워낙에 쓸데없는 소릴 많이 하잖아. 그러니 평소에 신뢰가 없지 신뢰가..!"


"흥, 쳇."


차선은 도희와 금정이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으리으리한 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간다니 다들 내색은 안 해도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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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구가 나왔다고?"


"네, 정법 형님 기억나시죠? 이십 년 전에도 조마구 한 마리 때문에 대벽 마을 일대에 난리가 났었지 않습니까."


"그랬지."


"이거 다 그 윤대감 작자랑 연결되어 있구만."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멈이 대뜸 입을 열었다.


"그런데 조마구가 목면산에 떼거지로 모여있다는 건.."


"윤대감 그 작자가 한양에 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누이, 그럼 왜 전국에 있는 조마구를 다 불러 모았을까? 조마구는 이제 거의 전멸해서 없는 줄 알았는데.”


"그야 뻔하지. 뭔가 준비하나 보지. 그리고 괴물 녀석들은 조건만 되면 금방 태어나잖아.”


"누이도 내 생각이랑 같아?"


할멈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무언가 생각이 정리되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금 한양은 아편환으로 하루에도 몇 명이나 죽어나갈 정도로 흉흉해. 게다가 조정도 개화다 뭐다 난리라 군사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아. 그런데 윤대감의 목표가 뭐야, 최대한 많은 귀신들을 끌어모아 흡수하는 거잖아?"


"누이, 그래서 우리가 산비초인가 그 자식도.."


"산비초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거지?"


"보나 마나 윤대감이 있는 곳에 있겠지."


"아! 아까 산비초의 수하 놈도 붙잡았었는데.. 조마구에 집중하느라 사라진지도 몰랐네."


"산비초라면 아까 우리랑 붙었던?"


"맞소. 현재로선 그자가 핵심 인물이오. 그자를 쫓아야 윤대감을.."


"윤대감은 아니지만, 박대감 집에서 그자를 봤습니다."


소백의 말에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곧이어 전신이 거들었다.


“저도 봤어요..! 그리고 박대감댁 가는 길을 알아요. 그때 소백 형님이 정신을 잃고 잡혀갔을 때라.."


"전신아, 굳이 그렇게까지 자세히는.. 어흠흠."


"박대감?! 조정의 박대감님 말이오?"


"그래, 용상아. 너 혹시 뭐 아는 거 있냐?"


"제가 원래 이국과 거래 때문에 그분과 친분이 좀 있는데 요새 쫌 이상하긴 했습니다."


"이상하다면 어떻게..?"


"말투와 행동 입죠. 평소에 제가 알던 분이 아닌 느낌이었습니다. 술과 여자야 원래 끼고 살던 양반이지만 뭐랄까.. 묘하게 이질감이 든달까.."


정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박대감, 박대감의 집이 어디냐?"


그러자 소백 또한 갈비를 뜯다 말고 일어났다.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좋다. 박대감의 집에 가면 뭔가 더 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네만. 내일 이른 새벽에 나가자. 어쩌면 긴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많이 많이 든든히 먹어둬. 껄껄. 이제 뭔가 되려 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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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달은 박대감네 수많은 별채 중 하나에 들어가 아주 오랜만에 편안하고 아늑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행히 박대감은 눈치를 못 챘어. 이제 겸세 그자만 여기로 와 주면 되는데, 둘을 어떻게 붙여놓는다.. 흠.'


"형님, 길달 형님, 거기 있소? 으흐흐."


목소리를 듣자 하니 보나 마나 산비초다.


'덜컥-'


"어찌 이번에는 형님이라 부르고 존대하냐?"


"이히히. 아유, 제가 언제 형님한테 막 했다고."


'저자식 몰골을 보아하니 뭔가 부탁할 게 있나.'


산비초는 이미 하루종일 싸우며 다리가 부러지고 팔이 꺾이는 등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들어와라."


길달은 피곤했지만 산비초가 찾아온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 진짜.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네.”


길달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산비초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게. 조선 인간들 중에 널 이리 만들 인간들이 아직도 있긴 있구나?"


산비초는 인상을 쓰며 눈을 감았다. 길달 역시 처음 본 녀석의 모습이었다.


"꽤 많이 왔더라고요. 나와 아편을 노리는 듯했는데. 결국 윤대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 아닙니까?"


"그렇겠지?"


그때까지만 해도 길달은 산비초가 이를 막을 방도를 같이 고민하자는 말인 줄 알았다.


"우선 그 자식들과의 싸움은 불가피한데.."


'뭐야, 이 자식.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놈들이 떼로 덤비면 솔직히 난 이젠 안될 거 같고. 윤대감은 그래도 버티겠죠?"


"그래서 나랑 널 붙여놨잖냐. 우리 보고 몸빵 하라는 거지."


길달은 다시 자리에 누우며 눈을 감았다.


'윤대감 새끼 어찌 되든 말든.'


"아니 그런데 그 자식들 꽤 강한 놈들인데 녀석들마저 윤대감에게 흡수되어 버리면 이제 조선에서 윤대감을 이길 자가 없을 텐데.. 아씨 짜증 나네.”


'뭐야. 이 녀석도..?'


"뭔 소리냐?"


길달은 산비초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이 필요했다.


"에이, 형님은 언제까지 윤대감을 도울 거요? 게다가 형님은 이름도 알려진 도깨비인데.."


길달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채 산비초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이냐? 윤대감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아 저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죠. 쩝."


"진심이냐?"


"아유, 저도 원래 대마밭이나 재배하면서 편안하게 살던 중이었음다. 기억 안 나슈? 그런데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타나서."


하지만 길달은 여전히 산비초를 완전히 신뢰할 순 없었다.


"그래서 요점이 뭔데?"


"그런데 지방에 을도 나타났다는 말도 있고 사실 을보다 더 심각한 건요.."


"뭔데 빨리 말해."


"전국의 조마구들을 죄다 불러다가 목면산에 모아놨어요. 그것도 수십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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