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 할멈! 선준씨! 헥헥."
그때였다. 멀리서 소백과 전신 그리고 차선이 달려왔다.
"아까 날리신 부적을 보고 지원하러 왔습니다."
소백 일행은 할멈 일행의 찝찝한 얼굴을 보곤 뭔가 문제가 있음을 눈치챘다.
"산비초는 관아로 잡혀갔어요. 여기가 그 사대부인 박대감의 집인데 직접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할멈이 근중의 말을 끊었다.
"그런데 아까 산비초가 박대감을 보고 윤대감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 그러고 보니 그랬네요."
"하지만 박대감이 곧 허튼소리 하지 말라고 단번에 반박을 하지 않았습니까?"
"아냐 아냐. 뭔가 미심쩍어. 수상해."
“이중안이었습니다. 박대감의 몸속에 누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랬나? 이제 노안이 와서 난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그렇다면..?”
할멈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어려웠다.
"뭔가 윗선과 얽혀있는 게 분명해. 이거 좀 구린내가 나잖아? 산비초가 저 대감집에는 어떻게 저리 자유롭게 들어갔겠어?"
"아참! 포도부장님도 아직 옥에 갇혀있을 텐데..!”
할멈과 일행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길달은 방 바깥으로 난 쪽문틈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산비초, 이 바보 같은 놈. 거기서 윤대감 이름을 언급하면 어떡해. 이제 녀석은 정말 눈밖에 났네. 여기 가도 저기 가도 죽을 수밖에.'
"산비초도 잡고 포도부장도 구하면 되겠네요."
물포가 욱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할멈이 결심이 선 듯 말했다.
"이렇게 우르르 몰려갈 순 없다. 일단 난 은진이 그리고 선준과 행장이랑 여기 뒷산에 숨어 동태를 살필테니 근중네가 소백 일행을 데리고 가서 산비초를 끝장내고 포도부장도 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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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세는 그 사이에 인왕산의 정상까지 올라갔다.
'한양이 굉장히 어수선한데.. 안 그래, 이무량?'
'야, 겸세. 을이 나타난 것 같다.'
'을..? 을이라면 그.. 거구귀인 우와 을의 을?!'
'응. 내가 수백 년 전에 둘 다 제압해서 저승으로 보내버렸는데 을 이 자식은 또 어디선가 생겨난 것 같아.’
'을이라면.. 그 뭐냐.. 전쟁을 부른다는 귀신?'
'응. 맞아. 내 허락 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별론데 완전 변태같이 번식해서 더 별로.'
'니가 둘 다 없애버렸다면서 어떻게 또 나타났지?'
'우와 다르게 을은 번식이란 걸해. 그것도 인간들을 통해서 말이지. 그리고 을이 괴물 성체가 되는 데는 각각의 능력에 따라 시간편차가 많이 존재해. 적게는 수십 년에서 많게는 수백 년이지.'
'그럼 전국에 여러 마리가 있을 수 도 있다는 말이네?'
'그렇지. 여하튼 그래봤자 서너 마리가 성장 중일 거고 그중 하나가 이 녀석인 것 같아.'
'어?!'
겸세와 이무량이 얘기하는 동안 저 멀리 목면산에 조마구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올랐다가 다시 급강하하는 게 보였다.
'봤어?'
'너도? 나도..!'
'수상하지 않냐. 빨리 가봐!'
'할멈 일행도 찾아야 하는데 무슨 일이 이렇게 많냐.'
겸세는 곧장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목면산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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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령아! 조심해!"
조마구를 겨눈 자령의 위로 다른 조마구가 날아들었다.
'슈우웅. 퍼엉-'
귀로는 곧바로 영력을 모아 축귀포를 날렸다. 거대한 부리에 축귀포를 맞은 조마구는 몸을 틀어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쿠웅-'
하지만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조마구들은 아직 전투 경험이 부족할 뿐이지 조금만 지나면 살육귀로 거듭날 것이 자명했다.
'타앙- 퍽-'
자령은 총구를 돌려 자신의 옆에 떨어진 조마구를 쐈다.
'푸더덕.'
하지만 둘의 공격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조마구는 자리에게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려 둘을 바라보았다.
귀로는 다시 양 주먹에 영력을 끌어모았다. 자령은 축귀탄을 재장전하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죽어라!"
귀로는 재빠르게 달려가 조마구의 부리와 배를 강타하며 육탄전을 시작했다.
정법과 천검 일행은 다른 쪽에서 스무 마리도 넘는 나머지 조마구들 상대하고 있었다.
"축귀풍..!"
정법이 합장을 한채 큰 소리를 지르자 그의 뒤에서 거센 바람이 일더니 스무 마리의 조마구를 향해 날아갔다.
축귀력은 보통 영적인 존재들에게만 통하지만 축귀풍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라면 모두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정법의 축귀풍에 수백 년도 더 묵은 소나무들이 흔들렸다. 조마구들 역시 바람을 버티기 위해 발톱을 땅바닥에 깊숙이 찔러 넣어 고정했다.
'이대로 대형 귀멸구만 만들면 승산이 있다! 나 아직 쓸만하잖아? 흐흐.'
정법은 다시 영력을 모으는데 집중했다.
때마침 귀로와 천검 일행도 달려들었다.
"이 자식들. 다 죽어버려라!"
귀로는 축귀풍에 버티고 있던 조마구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퍽. 퍽 퍼어억-'
방어 상태에 있던 조마구들은 귀로에 주먹을 맞곤 차례대로 나가떨어졌다.
'덩치만 컸지. 별거 아니네.'
'팍팍. 퍼어억-'
천검도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중검을 꺼내 들고 달려갔다.
'휙 휙. 휘이익-'
달려드는 호랑이도 단번에 제압하는 천검의 중검 실력은 강력했다. 아직 축귀풍 이후 정신을 못 차린 몇몇 조막들은 깜짝 놀라 날아올랐다.
"덤벼라, 이자식들아!"
말봉이와 진둘이 역시 쌍검을 들고 달려갔다. 병팔은 그 뒤로 쉴 새 없이 화살을 쏘아댔다.
'좋아. 합이 제법 괜찮네. 이제 곧 내 귀멸구만 제대로 모아지면.'
정법이 사방을 둘러보며 영력을 최대한으로 모으는 중이었다.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엑-'
"으악. 깜짝이야."
"아악. 무슨 소리야?!"
정법 일행에게 당하던 조마구들 사이로 덩치가 더 큰 놈 하나가 튀어나왔다.
‘뭐야 저 새카만 놈은.. 설마 흑조마구..?'
보통 옅은 흑색 또는 붉은색을 띠는 조마구들 중에서 가장 오래 악질적인 놈은 까맣다 못해 밤처럼 어둡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 변하려면 보통 수십 년은 걸리는데 근래 오십 년 가까이 조선땅에서 조마구를 보았다는 소릴 들은 적이 없으니 저렇게 오래 묵은 조마구가 있을까 싶었다.
"흑조마구.. 흑조마구다. 다들 엎드려..!"
순간 정법은 깨달았다. 이무량 대악귀전 보다 훨씬 전, 그가 상대해 온 수많은 악귀와 요괴 중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흑조마구였다는 것을.
"응?"
"왜 그래요? 이제 곧 끝.."
'쿵쿵쿵. 우다다다다.'
당황한 초짜 조마구들 사이로 갑자기 엄청난 덩치의 흑조마구가 튀어나왔다.
붉게 타오르는 안광, 다른 조마구에 비해 갑절가까이 큰 몸집과 날개, 검다 못해 빨려 들어갈 것 같이 까맣고 두꺼운 가죽에 날카로운 발톱까지.
흑조마구의 등장에 사방은 두려움과 공포로 얼어붙었다.
"어..? 뭐야."
"으아아.. 저건 진짜.."
정법의 고함에 다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먹히면 안 된다. 모두 일단 피해!"
흑조마구는 가운데 자리를 잡고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포효했다. 마치 자신이 혈투의 지배자라는 걸 과시하는 몸짓이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그러자 당황하던 다른 조마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우두머리가 명령하자 갑자기 없던 힘이라도 생겼는지 매우 공격적으로 변한 것이다.
'끼에에에에-'
'끼아아아아-'
정법 일행의 적극적인 공세에 밀리던 조마구들은 이제 각성이라도 했는지 이제 도로 정법 일행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으윽. 더는 안 되겠다..'
"귀멸구..!"
정법은 날뛰는 흑조마구를 향해 그동안 모았던 영력 구체인 귀멸구를 날렸다.
'츄와아아아아아-'
정법이 꽤 오래 영력을 모은 귀멸구는 거친 소리를 내며 조마구들을 향해 날아갔다.
'츠와아아아아아아아- 슈우웁. 꿀꺽.'
"어.. 뭐야.. 저, 저게 어떻게..?"
정법이 흑조마구를 향해 귀멸구를 날리자마자 녀석은 가뜩이나 큰 입을 쩌억하고 벌리더니 귀멸구를 한입에 삼켜버리고 말았다.
"으아아.."
이에 정법만 놀란 게 아니었다. 천검 일행은 물론 귀로와 자령도 멍하니 이를 바라 볼뿐이었다.
'번쩍'
정법의 귀멸구가 든든한 밥이라도 됐는지 흑조마구의 눈은 더욱 번뜩이며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