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봉과 진둘은 흑조마구가 뱉어낸 천검에게 달려갔다. 어느새 회복한 병팔도 달려와 천검을 부축했다.
"형님, 괜찮습니까?! 정신 차려보십쇼..!"
"괜찮다. 다시 정신 차리고 공격하자..!"
"아유, 형님은 저기 바위뒤로.."
하지만 천검은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중검은 흑조마구의 식도에 꽂혀있었지만 단검은 들고 나왔다.
"모두 활을 장전해. 녀석들이 당황할 때 쳐야 해..!"
귀로와 정법도 부리나케 다시 달려갔다. 흑조마구를 제압하려면 지금이 최적이었다. 두 사람 모두 예전에 할멈이 말한 경고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조마구도 오랜만에 싸울 땐 많이 당황해서 약해 보일 수가 있는데, 그때를 가장 조심해야 해. 녀석들은 상대가 방심할 때를 노리거든.'
그때였다.
'콰득. 콰드득.'
'크아아아아..!'
'콰드드드득. 꿀꺽.'
갑자기 여기저기서 호랑이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조마구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뭐야.. 저, 저것들이..?!"
월화를 따라 조마구들을 상대하던 호랑이들이, 갑자기 2차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달라진 조마구들의 전광석화 같은 부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크아아아앙. 크아아-'
‘콰드득’
‘푸아악’
벌써 서너 마리의 호랑이가 반동강이 나서 먹혔고 다른 쪽에서는 산채로 먹히는 중이었다. 월화와 수비는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동족들의 몸짓을 보니 분노가 끓어올랐다.
'끼에에에에에엑-!!'
하지만 흑조마구도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녀석이 몸을 힘차게 흔들자 월화와 수비는 그저 가벼운 먼지처럼 털려 날아갔다.
그리고 녀석은 곧바로 수비를 향해 부리를 크게 벌리고 돌진했다.
'아드득.'
흑조마구는 서슴없이 수비의 상반신까지 입에 넣어 물었다.
'으윽. 끄으윽-'
'안돼. 수비..!'
하지만 수비는 호랑이의 대장답게 쉽사리 당하지 않았다.
‘어, 역시..! 아직 기회가 있어.'
수비는 단단한 등근육과 굵고 두터운 앞다리로 흑조마구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버티고 섰다.
"수비야!"
천검은 곤경에 처한 수비를 부르며 단검을 들고뛰었다.
"이야아-"
'팍팍. 파아악-'
천검은 흑조마구의 부러진 부리에 달려든 후 그 사이로 보이는 잇몸과 혀를 마구 찔렀다.
수비는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싸움을 치렀지만 이런 괴물은 그에게도 처음이었다.
'콰드득. 콰득.'
월화는 왼쪽 날개 근육을 물어 찢었다. 하지만 한 번 각성한 흑조마구는 좀처럼 쓰러지지 않았다.
말봉과 병팔은 큰 소나무 뒤에서 연신 화살을 쏘아댔고 진둘은 중검을 꺼내 들고 녀석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끼에에에에에에-!'
흑조마구가 괴성을 지르더니 온몸을 흔들어댔다. 이 때문에 천검과 월화가 다시 흙먼지처럼 튕겨 날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수비를 반쯤 물고 있었다. 진둘은 녀석이 잠잠해지자 다시 달려갔다.
'내 살다 살다 호랑이 도움도 받아보고 호랑이를 위해 싸우게 될 줄이야.. 인생 참 모르겠군.'
"이야아아아-!!"
진둘은 흑조마구의 눈을 찌를 요량으로 부리를 지나 곧장 얼굴을 향해 뛰어올랐다.
'두두두두두. 파아악-'
'우르르르르르.'
눈 깜짝할 사이였다.
"진둘아!!!"
"진둘.. 진둘이가.."
흑조마구는 진둘이가 뛰어오르자마자 앞으로 무섭게 돌진해 진둘을 밀친 채로 성벽으로 돌진했다.
'콰아앙!!'
곧 성벽이 무너졌고 흑조마구의 입에 매달려있던 진둘 역시 그만 벽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진둘아!!!”
천검과 말봉, 병팔은 성벽으로 달려가 아래를 확인했다. 성벽 아래는 온통 무성한 숲 속이라 진둘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목숨은 건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말봉아, 병팔아. 너네 둘은 당장 아래로 내려가서 진둘이를 구해라."
"네! 형님. 그.. 그런데 여기는 어떡하고요. 조마구들도 많은데."
"형님.. 형님도 위험합니다. 저는 여기 남겠습니다."
'휘이익-'
흑조마구는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녀석의 입에는 여전히 수비가 반쯤 물린 채로 버티고 있었다. 이에 천검도 월화도 무기력한 얼굴로 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방법이 없다. 방법이. 뛰어난 영력자들인 정법과 귀로도 고전 중인데 우리 같은 비영력자들이 할 수 있는 건 뭘까..'
그러자 곧장 눈앞에 그들을 위해 여기저기 전장을 누비며 목숨을 걸고 싸우는 호랑이들이 보였다. 착호갑사들인 자신들을 위해, 그저 월화의 요청으로 희생당한 저들을 보니 퍼뜩 정신이 들었다.
‘맞아.. 내가 어리석었다. 이럴 때가 아니잖아. 우리를 원수로 아는 저 영물들 마저도 맹목적으로 우릴 돕는데 뭘 망설이냐.’
“말봉아, 일단 여기를 정리하자. 호랑이들도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다. 진둘이는.. 잘 있을 거다. 항상 행운이 따르는 놈 아니더냐. 여길 끝내고 다 같이 구하러 가자.”
“네, 형님..!”
말봉과 병팔은 활과 단검을 다시 고쳐 잡았다.
“가자, 끝까지 싸워보자..!”
천검 일행은 다시 귀로와 정법이 혈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 누구 하나 몸이 성한 자는 없었다. 하지만 월화의 호랑이 떼는 이미 다섯 마리를 희생했기에 이젠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천검은 월화를 향해 애정과 신뢰가 가득 담긴 눈길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월화는 낮은 소리로 그르렁거리며 응답했다.
흑조마구는 수비를 문채로 날아오르다가 갑자기 수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으윽. 이 자식이..’
‘고오오오오.’
수비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떨어지면 몸이 두 동강이 나서 죽을 테고 그렇다고 흑조마구의 입안으로 기어들어가면 먹히기 십상이었다.
‘끄으윽. 젠장. 여기까지인가..’
흑조마구는 이제 번거로운 호랑이 대장인 수비를 끝장내고 목면산에 있는 귀찮은 인간들을 모두 먹어 삼킬 요량이었다.
‘슈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흑조마구는 맹렬한 기세로 목면산을 향해 급강하했다. 어차피 흑조마구는 부리가 박살 나도 며칠이면 금방 재생되었기에 거리낄 게 없었다.
‘휘이잉- 번쩍’
“생절공! (生切攻, 빈손으로도 원거리의 괴물을 절단 내어 죽일 수 있는 이무량의 맨손 필살 기술)
순간 허공에서 엄청난 빛이 번쩍였다. 지상에서 다른 조마구들에 대항하던 정법과 일행들 마저 순간 눈이 부셔 찡그린 채 허공을 바라볼 정도였다.
‘츄와악-‘
‘썽둥-‘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휘이이이이이잉.’
‘콰아앙. 털썩.’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자령은 바위틈에 숨어 활을 쏘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흑, 흑조마구가.. 죽었어..?!’
“아빠!!! 흑조마구가.. 흑조마구가 죽었어요!!!”
자령은 있는 힘껏 냅다 소리를 질렀다. 수비는 어느새 흑조마구의 입에서 빠져나왔다.
‘수비! 괜찮아..?’
‘끄으으.. 정말 죽다가 살아났네.’
월화는 등가죽 안으로 깊게 파인 수비를 자신의 등뒤로 숨겼다. 다른 조마구들은 예상치 못한 흑조마구의 소멸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런데 누구지..? 누가 흑조마구를 이렇게 가볍게 반으로..”
‘휘리릭, 턱.’
“어..! 당신은..?”
“반갑습니다. 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네요.”
겸세는 주변을 돌아보며 인사했다. 괴물들과의 끔찍한 사투로 정법 일행과 호랑이 떼마저 모두 기진맥진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알고 온거요..?”
“할멈과 약속했잖아요. 그런데 이거 조마구가 한두 마리가 아닌데요? 분명 어제 타고 올 때는 한 마리인 줄 알았는데.”
“네? 조마구를 타고 오다니..?”
‘야야, 잡설이 길다. 일단 저것들 다 죽여버려. 귀찮아지기 전에. 흐흐.’
이무량이 여유를 부리는 겸세에게 쏘아댔다.
“일단 긴박한 상황 같으니 여길 먼저 정리하죠.”
조마구들은 흑조마구가 죽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두려움에 휩싸였다. 녀석들은 아직 미숙한 개체라 흑조마구만큼의 강력함이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법이나 귀로도 혼자서 한 마리를 해치우는 건 무척 버거웠다.
월화는 다친 수비를 뒤로 숨기고 살아남아있는 십여 마리의 호랑이들을 불러 세웠다. 우두머리인 흑조마구가 사라졌으니 전열만 가다듬은 뒤 다시 치면 승산이 있었다.
‘이무량, 여러 마리니까 한방에 끝내자. 다른 사람이나 호랑이가 더 이상 다치면 안 된다.’
‘좋지. 해봐, 겸세. 흐흐.’
겸세는 양 주먹을 꽉 쥐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우두머리가 사라진 조마구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위험했다.
‘한 방, 단 번에 끝낸다..!’
“파멸공!(破滅攻, 보라빛을 띤 기공파로 영력 구체에서 여러 가닥의 영력파를 만들어 순식간에 다수의 적을 척살하는 기술)”
겸세가 큰 소리로 외치자마자 손에 엄청난 크기의 보랏빛 영력 구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에 십 수 가닥의 영력줄기가 조마구들에게 날아가더니 녀석들의 몸을 사정없이 뚫고 들어갔다.
‘파박. 파바박. 팍팍팍.’
‘펑. 펑펑. 퍼퍼펑.’
겸세의 파멸공을 맞은 조마구들은 마치 몸 안에서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녀석들은 하나같이 내폭음과 함께 몸을 들썩이더니 곧장 축 처진 채 모두 죽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