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기업 그리고 개인의 변화와 나아갈 길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떠들썩해진지 이미 1년도 더 지났다.
4차 산업혁명은 소위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테이터, 블록체인, 클라우드 컴퓨팅, 바이오 등 지능정보기술
이 기존 산업과 서비스에 융합되거나3D 프린팅, 로봇공학, 생명공학, 나노기술 등 여러 분야의 신기술과 결합되어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사물을 지능화하는 산업의 기술 및 현상을 말한다. 이처럼 네트워크, 사물, 지능이 따로 분리된 게 아닌 ‘초연결’과 ‘초지능’을 특징으로 인간 사회에 그 어떤 산업혁명 시대보다 더 넓고, 더 빠르고, 더 크게 영향을 끼치기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창한 명제와 함께 시작된 새로운 시대의 기술들은 아직은 완전히 피부로 와닿지는 않는 걸음마 단계이지만 점점 우리 삶 속의 일상으로 하나둘씩 자리 잡고 있다. 올해 초, 아주 큰 이슈가 되었던 암호화폐만 하더라도 그렇다. 특히, 2030세대가 열광한 것으로 알려진 암호화폐는 한 설문조사에서 2030세대의 38.7%가 이에 대해 알고 있고 4명 중 1명은 암호화폐 거래를 해봤을 정도로 짧은 기간 동안 급속히 퍼져나갔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주요 기술 중 하나인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화폐 시장은 기술에 대한 이해도나 파급력을 떠나 엄청난 사람들이 몰렸고 그로 인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AI는 또 어떤가? AI(Artificial Inteligence)가 인공지능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IOT를 통해 이미 휴대폰, 냉장고, TV 등 전자, 가전기기들이 사람들의 편의를 생각하고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나아가 AI를 통해 스스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설계하고 결정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은 TV 속 전자제품 광고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은 더 세밀하게 발전하고 모든 지식과 정보는 융합되며 점점 더 발전 단계를 높이고 있는지만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오래전부터 산업의 발전은 사람들의 삶과 행동양식을 바꿔왔다. 그런데 변혁의 시작점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변화의 고통과 일상의 몰락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것은 마치 대의명분을 위한 당연한 희생처럼 힘없는 시민들과 노동자들은 그저 그 고통을 감내하고 견뎌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반발이 생겨났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산업혁명 시대 때마다 변화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은 참고만 있지는 않았다.
증기기관과 함께 시작한 1차 산업혁명은 증기로 가는 기차, 배, 자동차 등 탈것들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대규모 수공업에 의존하던 공장에서 사람이 빠지고 기계가 그 일을 대체하기 시작하자 급속도로 일자리를 잃은 인력들에 의해 19세기 영국에서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 일어나 기계를 파괴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기술은 발전하는데 이에 발생 가능한 노동자들의 권익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결과 벌어진 일이었다. 게다가, 전기에너지를 기반으로 더 안전하고 더 작지만 훨씬 생산성이 높아진 기계가 발명되면서 대량생산에 박차를 가한 2차 산업혁명은 결과적으로 20세기 초, 대불황과 신제국주의를 발생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컴퓨터를 통한 인터넷 기반의 지식 정보 혁명인 3차 산업혁명은 또 그동안의 패러다임과 생산방식 및 가치 있는 정보를 바꾸면서 제조 시스템, 생산,유통, 판매의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와 우리가 굳게 믿고 있던 삶의 방식들은 또 여지없이 바뀌어버렸다.
즉, 전통적인 일자리가 새로운 기술을 통해 혁명적으로 바뀌어버리거나 사라져버리는 일은 역사를 통해 되풀이되었는데 그때마다,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고 기술과 산업에만 집중한 결과 무수한 노동자들, 직장인들은 항상 좌절감을 맛보았고 이는, 서민들이 감당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왔다.
그래서 이제는 산업의 발전과 함께 일자리, 일하는 방법, 일과 관련된 시스템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도, 정부와 기업에 주도에 의해서만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기업이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여야 하며 단순 취업만이 아닌 개인의 창업 또는 개인이 기업들과 유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등의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사회 구조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아보고 앞으로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 개인, 정부, 기업의 입장에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정규직/비정규직, 9시 출근, 6시 퇴근, 주40시간 근무, 이석 금지, 업무시간 개인 활동 금지, 주별/분기별/반기/연간 계획과 목표 달성, 상명하복,조직질서 준수’
위의 글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지금까지는 당연하게 생각해왔지만 앞으로 변할 세상에서도 이와 같은 시스템이 유지되는 게 맞을까?
‘학창시절이 끝날 때쯤 짜인 시간표의 종말과 함께 속박의 결계가 풀리고 자유의 시대가 도래하는 줄 알았다. 내 맘대로 고르는 대학의 시간표와 수업을 빼먹어도 큰 죄책감이 없는 나의 시간들은 학점관리와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수 없이 많은 활동들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본능 사이에서 잠시 방황하다 결국 취업이라는 사회의 또 다른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나 자신을 깎아내고 베어내며 색을 죽이고 밝은 후광은 희미하게 만든 뒤 수많은 사람들을 밀쳐내고 '보이지 않는 벽'으로 둘러싸인 좁디좁은 문을 통과해 겨우 딱딱하고 작은 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꽉 막힌 사무실과 타인에 의해 결정된 시간표에 따라 살기 위해 그토록 먼 여정을 지나왔을까? 새로운 산업혁명과 함께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은 또 산업혁명의 후폭풍에 희생당하며 살아야 할까?
세상은 이미 변했고 이제 이런 업무에 대한 변화하는 트렌드는 조금이라도 깨어있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이런 생각에 부딪히고야 만다.
"나만, 우리만 변하면 뭐 해? 다른 사람들이, 다른 회사가 변하지 않는데. 90% 이상의 회사가 이렇게 일하는데 우리만 어떻게 변해?"
그들은 보이지 않는 벽을 인정했고 받아들였다. 변화를 통한 고통이라는 한 치 앞의 벽 때문에 평생 자신의 삶을 옥죄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에 갇혀 누군가의 결정에 자신의 1분1초를 바치고 있는 것이다. 기업 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리스크와 문제들은 머리를 싸매서 해결하면서 왜 변화에 따른 고통은 더 크고 어렵게 생각할까? 회사의 문제나 자신의 미래를 위한 변화나 어차피 똑같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라면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허물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개개인의 순수한 마음과 넘치는 에너지와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이제 나를 위해 써보면 어떨까?'
우선, 하루8시간, 주40시간 근무라는 틀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얼마나 오래 또는 적게 일하는 건 본인의 선택일 뿐 기업과 개인은 이제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공동의 이익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마주 보니 싸우기만 할 뿐이다. 기업은 개인이 일하는 과정을 개선할 수 있게 돕고 개개인이 그들에게 맞는 과정을 선택하며 이후 서로 결과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게 맞는다는 말이다.
이는 결과 지상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개인에게 과정과 환경에 대한 선택권을 주고 그에 맞는 책임도 넘겨주어 그로 인해 나오는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즉, 이 모든 것이 개인의 판단, 책임 그리고 실력에 달려있다는 이야기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100년이 넘도록 관행처럼 이어져온 '정규직', '9시 출근, 6시 퇴근'을 거스르기 힘든 사회, 직장의 구조라고 생각하고 바꾸고 싶어 하지만 정작 용기를 내기는 어렵다고 한다. 힘들지만 회사가 만든 시스템이고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 참고 일한다는 말이다.
19~59세 직장인들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설문조사를 보면 현대인들이 기존의 직장생활과 시스템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현재 자신의 삶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에 가까운지 물어본 설문에서 단 9.5%만이 ‘그렇다’고 했고 무응답을 제외한 88.4%는 워라밸과는 거리가 먼, 즉,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시스템을 견디며 살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사실은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워라밸에 대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당장 여건이 안 되니 못하는 것일 뿐, 이젠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일하는 방식,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1800년대 중후반에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아직도 유지하고있는 바로 ‘그 시스템’ 말이다.
나는 더 많은 보통의 직장인들에서부터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역사적인 모든 의식의 혁명은 개개인들이 모인 시민운동에서 발생했듯이 일하는 방식의 변화도 기업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직원들, 개인들이 먼저 나서서 배우고 깨닫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록수'(심훈)의 시절이 그저 과거의 이야기일까?
50년 뒤의 후손들이 바라볼 미래의 과거가 지금 우리들이 추구하는 허상으로 가득 찬 현재다. 2050년쯤에 태어난 아이들이 2060년대에 읽을 책의 내용이 현재의 대한민국이자 전 세계의 실정이라는 말이다. 책 제목은 '닫힌 정원'쯤으로 하자. 드넓은 초원과 숲에서 상록수를 길러냈더니 알고 보니 자물쇠로 잠긴 누군가의 정원이었다는 게 우리의 지금 모습이니 말이다.
현실의 벽, 두려움, 타인의 시선, 실패 그리고 실패 이후의 처지, 무엇보다도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일자리, 직업, 취업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와 인식. 사실, 이 모든 것들 덕분에 우리는 아직도 월요일은 출근해야 하고 금요일은 어떻게든 칼퇴하고 싶고 ‘1.2초’ 같은 주말은 언제나 아쉽다. 마치, 더듬이 앞의 냄새가 사라져버리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길 위의 개미처럼 우리는 스스로 시스템의 냄새를 쫓아 안으로 들어갔고 그 속에서 안정을 느끼며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것이 현명한 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우리가 그토록 그 안에서 버티고 살아남아야한다고 믿는 기업. 도대체 기업은 무엇이길래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까? 도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있길래 우리는 그토록 시달리면서 살아왔을까?
기업의 구조를 잠깐 살펴보자.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그러다보니 더 큰 이윤을 만들기위해 초기 비용(대출, 투자금, 부동산 등)부터 중간관리 비용(인력 관리, 사업 운용, 광고 등) 그리고 미래 비용(기술 개발, 재투자, 사내유보비 등)까지 막대한 자금이 끊임없이 드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게다가 사회와 시장은 더 높은 기술력으로 더 나은 제품을 원하기에 기업은 또 더 훌륭한 인재를 뽑기 위해 비용을 쓰고 관리한다. 게다가 고용마저 인구 수에 따라 바뀌고 인재들을 다른 기업에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니 다방면에서 경쟁은 더욱 심화된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 모든 건 경쟁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은 그 비용을 조절하기 위해 고용(인건비)을 쥐락펴락하며(정규직/비정규직/계약직) 기술 개발, 시장 선점을 위해 중소기업을 주무르고(하청업체 등) 따라서, 대다수 재직자들의 노동환경은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다.(야근, 주말/휴일 출근, 초과근무) 즉,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구조라는 얘기다.
그럼 해결 방법은 없을까? 과연, 사회구조와 기업들을 이렇게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걸까? 그런데 사실 답은 뻔하다.
바로, '경쟁과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너무 뻔한 대답일까? 그냥 이 한 문장만 보고서 ‘현대사회에서 그리고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양대 코너스톤인 ‘경쟁’과 ‘욕심’을 버리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간단한 오류는 범하지 않길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가 아직 변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평범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걸 이해하고 극복하는 건 또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아래에서 좀 더 살펴보자.
경제나 자본주의가 그 용어만큼이나 다양한 복잡성과 권위를 가지고 있어서 보통 사람들이 판단하기 어려워할 뿐이지 자본과 경제는 아주 간단한 단어들로 설명이 가능하다. 정말 단순한 몇 가지의 논리와 이유 때문에 기업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이윤이 분배되지 못했을 뿐이다.
기업의 운영 바탕은 수익 창출이다. '고객을 위한다. 사회에 기여한다.'는 모토는 기업이 수익을 내고 안정적인 운영을 할 때나 가능하다. 생존을 위한 이기적인 본능은 사람이나 기업이나 비슷하다. 수익창출의 근본적인 바탕은 '다른 기업 대신 자신들이 판매'하는 것이고, 안정적인 운영의 근본적인 바탕은 '더 많이 판매하고 더 많이 벌기'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욕심이 이끄는 경쟁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 '욕심'이 지금 이런 현실까지 우리를 이끌고 온 것이다. 욕심을 위해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직원과 노동자들을 더 압박했고 그렇게 해서 성과가 나오면 다행인 것이고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서라도 경쟁사를 이겨야 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대부분의 기업은'선의의 경쟁'이 아닌'불의의 경쟁'을 해왔기 때문에 기업도 노동자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우리가 버려야 할 ‘경쟁’과‘욕심’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쉽게 말해, 물불을 가릴 줄 알고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2, 3세 승계를 진행한 재벌 기업들의 가장 큰 맹점은 현실 세계와 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략) 이미 기득권이 돼 버린 자신의 경험을 버릴 수 없다.”
“(기업들이 자신의 욕심과 위치를 빼앗기기가)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현실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시사저널 기업리스크 관련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 인터뷰 중.
그런데 답을 찾기 힘든 현실 속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건 기업이 아닌 또 시장에서부터 그리고 개개인 하나하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업과 개인 모두가 알아야 하는 중요한 진실 중 하나는 모든 변화는 시장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시장에는 개개인의 심리와 욕망이 반영된 현실의 욕구가 녹아있다는 점이다.
먼저, 현대의 직장인들이 기업을 바라보고 조직 내에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한 마인드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조직과 회사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고 따라서 그 안의 질서를 지키고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설사,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것들이라 하더라도 개개인의 직장인들은 그냥 참고 넘어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직장인들은 더 이상 불합리적인 상황을 좌시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의 직장인, 노동자들은 그들이 맞서야 할 대상이 설사 기업의 오너라고 하더라도 자신과 직원들을 부당하게 대우하면 정식으로 사과를 요청하고 필요한 경우 SNS 등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도하며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새로운 시대와 세대에 부응하는 일하는 방법의 변화, 직장 내에서의 권리 추구 등의 적극적인 태도들이 그동안 불합리하게 작용해왔던 구시대의 관습과 시스템을 타파하고 직장인들의 권리와 삶을 찾게 해주며 나아가 합리적으로 일하기, 자율적인 노동량 및 생산성 개선 그리고 개인의 삶과 직장의 밸런스 맞추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일자리 문화와 생산성의 혁명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즉, 더 이상 과거 혁명 시기들의 노동자들처럼 가만히 앉아서 변화에 휩쓸려가지만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 세대들은 그렇지 않다. 결코 부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실질적인 행동에 나선다. (중략) 이런 모습은 이전 세대와 명백하게 구분된다. 군중이라고 불렸던 대중들은 더 이상 콘텐츠의 전달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제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개인들이 사건에 개입하면서 이슈를 알리는 미디어 역할을 수행하는 등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너 일방적이고 상명하복적인 과거 질서와는 확연히 다르다. (중략) 이전 세대는 결과 중심이지만 현재는 과정 자체가 곧 정체성이다.”
“사람들은 이제 부조리와 부정을 참지 않는다. 예전에는 내부 폭로를 의리를 지키지 않는 것으로 봤지만 지금은 아니다. 기업을 좋게 만드는 행위다. 건강한 행위로 평가해야 한다.”
-시사저널 기업리스크 관련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 인터뷰 중.
그리고 일하는 방법적인 측면에서도 개개인들의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개념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 최근에 들어서이다. 물론, 아직까지 디테일이나 품질의 개선은 더 이루어져야 하지만 3D 프린팅, 아두이노, DIY 등으로 대표되는 ‘Makers’ 열풍은 IT개발자, 디자이너, 작가들의 고유의 산물로 여겼던 프리랜서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누구나 쉽게 다양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 이를 통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YOLO(You Only Live Once)로 대변되는 개인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역시 단순히 여가나 여행을 통해 삶의 휴식을 찾았던 과거와는 달리 일, 직장, 창업 등 자신의 삶 전체를 스스로 직접 디자인하며 누군가에 의해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자율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일깨워줘 일자리, 일하는 방법에 대한 개개인의 선택권을 넓히는데 일조하고 있다.
세상과 사회는 변하고 있다 한 발만 밖으로 뻗어 바깥으로 나와 상쾌한 숲속의 향기와 바닷가 모래알의 간지러움과 물속에서의 붕 뜬 자유로움을 느껴보면 더 이상 사무실만이 나의 일 터요, 회사만이 나를 먹여 살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직장인이라도 리모트 워크를 통해 집, 카페, 해변에서 일하기도 하고 디지털노마드처럼 전 세계를 여행 다니며 일을 하기도 하고 코워킹 스페이스 등 일하는 장소가 다변화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바라보자. 그렇다면 새롭게 바뀌는 시대에 회사가 개개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자료 출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IT용어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
뉴스투데이 가상화폐관련 기사자료(송은호 기자)
http://www.news2day.co.kr/100550
산업혁명과 노동자(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
스페셜경제SE, 워라밸관련 기사(김영식 기자)
http://www.speconomy.com/news/articleView.html?
시사저널, ‘기업리스크, 신시대 알아야 극복’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 인터뷰 중(조유빈, 김종일 기자)
http://www.sisajournal.com/journal/article/175522
-사진 출처-
4차 산업혁명, 우리 삶 속에 녹아들기 시작하다.
http://www.elec4.co.kr/article/articleView.asp?
러다이트 운동은 기술의 발전이 ‘사람’을 고려하지않고 기술만 발전했을때 벌어질 수 있는 인간의 분노를 보여준다.
https://www.edu.xunta.gal/centros/iesisidropargapondal/aulavirtual2/mod/page/view.php?
꿈 많던 학창 시절에는 사회가 이렇게 꽉 막힌 사람들의 집단으로 이루어진 줄은 몰랐다.
http://people-dont-have-to-be-anything-else.wikia.com/wiki/File:University_of_Virginia_Rotunda_Lawn_spring_students.jpg
현대인들의 시간은 누구의 것일까?
https://www.procurious.com/procurement-news/2016-rewind-day-manage-time-wisely
누구나 제작자가 될 수 있는 ‘메이커스’는 이미 세계적인 현상이다.
https://www.slideshare.net/elanghorst/bring-the-maker-movement-to-your-classr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