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 은진이의 축귀부야!”
할멈의 한마디에 다들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가자, 다들 준비됐지?”
“네..!”
물포와 말봉 등은 눈앞의 고기를 한 주먹씩 쥐어다가 입으로 쑤셔 넣었다. 이번에야말로 나가면 언제 돌아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박대감네로 가자..!”
할멈과 정법, 귀로와 자령 그리고 근중과 천검 일행은 일제히 박대감네로 향했다.
“너무 우르르 몰려가면 검계같고 수상해 보이니 일정 거리를 유지해서 갈 거요. 나랑 정법이는 먼저 가서 선준이를 만날 테니 뒤따라 오시오들.”
천검 일행은 남대문 시장을 통해 돌아갔다. 한꺼번에 몰려갔다가 포졸들의 눈에 띄면 다 같이 붙잡힐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 형님, 저기 저 앞에, 저놈 산비초 아닙니까?”
말봉이 시장 입구 귀퉁이에 서 있는 덩치 큰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라, 맞는데. 맞아. 저 자식, 내가 가만 안..”
“잠깐.”
말봉과 병팔이 흥분하자 천검이 둘을 불러 세웠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아. 포졸들이 잡아갔다고 했는데 지금 저기에 나와있다는 건 다시 풀어줬다는 뜻이 아닐까?”
천검의 추측에 둘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금 만나는 자가 혹시..”
“윤대감과 관련이 있는 자..?!”
셋은 골목에 숨어 산비초를 유심히 살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 혼쭐을 내주고 싶었지만 더 큰 그림을 위해 산비초가 누굴 만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천검아..!”
“으아앗, 깜짝이야..!”
산비초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천검 일행은 정만의 큰 소리에 깜짝 놀랐다.
“포, 포도부장님..?!”
“아니, 형님, 어떻게 빠져나왔습니까? 풀려난 겁니까? 필시 오해가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러자 정만은 일순간에 다시 근심 어린 얼굴이 되었다.
“무슨.. 일이라도..?”
“탈옥했다.”
“네에?!?!”
“뭐라고요? 형님, 그럼 지금쯤이면 관아에서 난리가 났을 텐데요..?”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 날 쫓을 인원이 없을 거야.”
“도대체 어떻게 탈옥하신 겁니까?”
“창살을 부셨다.”
정만의 대답은 셋은 모두 놀랐다. 포도부장이라는 계급을 달고 그런 일을 했다면 후에 중형을 면치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비초, 산비초도 잡혀가지 않았습니까? 같은 옥일진 몰라도..”
“응, 산비초가 옥의 나무살을 부셨고 같이 탈옥했어.”
“네에..?!”
정만의 대답에 셋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말입니까? 산비초는, 우리의 적이고 원수 아닙니까..?”
“물론, 한바탕 했지. 그리고 다시 머리를 굴렸어. 산비초가 옥에 갇혔다는 건 이제 쓰임을 다했다는 말인데, 우리 입장에서는 녀석의 정보가 큰 도움이 되잖아?”
“그야..”
“아..!”
그제야 천검 일행은 정만의 행동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었다.
“그럼 지금 저기 산비초가 있는데.. 어라?!”
“어, 산비초가 왔어?”
말봉은 말을 하다 말고 골목 밖을 뛰쳐나갔다.
“형님! 형님들, 저기 산비초가 달아납니다!!”
“뭐야?!”
골목을 빠져나와 보니 산비초가 시장입구에서 바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이를 본 정만이 달려 나가려다 말고 급하게 돌아섰다.
“잡아라! 저놈 잡아라!!”
‘제길, 포졸들이야. 그래서 산비초가.. 이제 나까지 잡으러 오겠군. 산비초랑은 어디서 만나지.’
정만은 천검 일행 뒤에 숨어 시장을 크게 돌아 빠져나가며 지난밤 산비초와 한 얘기를 떠올렸다.
—
‘윤대감? 히히. 사실, 박대감이 윤대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윤대감이 얼마나 지독한 놈인지 알아? 왜 그토록 최악의 악귀가 되는데 집착하는지 모르겠지만, 윤대감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길 바라고 있어. 아편이 뭐야? 술보다 더 독하고 더 많은 사람을 미쳐서 서로 죽게 만드는 거잖아? 크히히. 그리고 전쟁이 뭐야. 그야말로 피바다, 죽음의 잔치 아니냐고. 윤대감이 원하는 게 그거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그러니까 저리 미쳐 날뛰지. 아참, 그리고 이건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뭔데?’
‘악신이 되면 저승으로 안 가도 된다고 믿고 있어. 그래서 저리도 세를 확장하는 거야.’
‘악신? 이승에도 신급이 있나?’
‘나도 윤대감이 하는 소리만 들은 건데. 뭐라더라? 사방의 궤 중, 세 개를 이미 열었다던데? 신급이 저승에만 머무는 게 아닌가 봐.’
‘뭔 소리야..?’
‘나도 몰라. 히히.’
—
“천검, 지금은 어디로 가는 길이었지?”
“저희 모두 조를 나눠서 박대감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박대감.. 그자가 윤대감이라는 증거를 찾은 건가?”
“아뇨. 그건 모르겠지만 산비초가 거기를 들락거리는 걸 봤고.. 거기에 포졸들이 집결하는 걸로 봐선 뭔가 미심쩍은 게 있어서요.”
“박대감이 윤대감이 맞아.”
“네?!”
확신에 찬 정만의 말에 천검은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박대감이 진짜..”
“박대감의 몸에 윤대감의 악령이 빙의된 거야. 그래서 지금 박대감은 박대감이 아니야. 뭐, 원래도 주색을 밝혀 문란한 삶을 살던 자였지만, 이런 일을 꾸며 벌일 정도로 대범한 위인은 아니거든.”
“그럼.. 어떻게 한다. 일단은 박대감을 포졸들이 없는 곳으로 끌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가보자. 박대감이 방어진을 모두 구축해 버리면 일이 더 커진다. 가서 방법을 찾아보자.”
—————
할멈 일행은 곧 선준과 만났다. 선준은 일행 모두에게 길달이라는 도깨비를 만난 일을 전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길달이 박대감을 북악산으로 유인한 뒤 모두가 북악산으로 가서 윤대감을 처단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 그놈이 얼마나 센지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달렸네.’
할멈은 곧바로 부적을 하나 꺼내 들더니 북악산을 향해 팔문진경을 욌다. 부적은 새파랗게 타오르더니 곧장 북악산 방향으로 날아갔다. 북악산에 미리 결계를 쳐놓고 윤대감을 그 안에 가둘 가둘 심산이었다.
“누이, 그런데 박대감 집 안에 포졸들이 너무 많아. 입구 쪽에는 군사로 보이는 자들도 있던데? 그것도 오십 명도 넘게.”
“윤대감 생각대로라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자신에게 흡수될 원혼도 많으니 이리 모은 거겠지?”
“그렇다면 우리가 올 걸 알았다는 거야? 아니면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 건가?”
“몰라. 간단하게 보자면 ‘귀신이 정 2품 대감을 이용해서 군사를 움직여 뭔가 하려는 것’ 이 정도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박대감 안에서 윤대감을 꺼내 끝장내버리고 저승으로 던지면 그만이야.”
“아 누이, 말이야 쉽지. 저놈은 이 시대의 대악귀라고. 아참.”
할멈과 일행들은 다들 저마다 바위와 나무 뒤에 숨어 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박대감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드디어 오늘이야. 저것들도 다 모였겠다. 집안에 있는 졸개들 원혼이랑 영력이 그득한 저치들의 혼백까지 다 먹어치우면 정말 조선땅에서는 날 상대할 자는 없잖아? 그럼 삼방악신(사방악신 중 세명)도 약속대로 날 인정해 줄 거고, 그럼 북방의 궤는 내 것이 되겠지?’
윤대감은 홀로 안방에 앉아 생각을 곱씹고 있었다.
‘치은적(조선의 흑무당)이 그러지 않았나. 영계의 악신 자리가 비었으나 마땅한 자가 없다고. 악신 자리를 꿰차면 영원히 욕심을 채우면서 이승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으흐흐. 그래 내가 여기까지 이들을 끌고 온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으니. 이제 제대로 판을 벌려볼까?”
같은 시각, 언덕에 앉은 할멈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윤대감이 이토록 원혼의 흡수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이무량이야 원체 령 자체가 최강인 데다 만악의 씨앗을 품었던 자라 자잘한 원혼 따위는 신경도 안 썼으니 이런 일을 본 적도 없다만.. 설마..? 엥이, 아닐 거야. 그럴리는 없어. 이미 자리도 꽉 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