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초는 필시 오랜만에 방심하다 당하고 말았다. 포졸들 역시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옥 밖에서 창으로 쑤셔 둘을 떼어놓았다.
“그만해 이놈. 그리고 포.. 포도부장님도 이제 그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산비초는 피가 터진 코를 부여잡고 구르다 말고 제 귀를 의심했다.
‘포도부장..? 설마 그놈이 그때 여기로 잡혀온 건가.’
“그래 다 끝났어.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제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됐어. 자네들은 나라님의 명을 받들었을 뿐이다. 하던 대로 해.”
정만(포도부장)은 다시 구석으로 가 앉았다. 산비초는 흐르는 코피를 도로 들이마시고는 지푸라기로 얼굴을 닦았다.
“어쩐지. 너였구만. 포도부장이라니. 으히히. 이렇게 높은 녀석이랑 같이 옥에 갇히니 뭐 딱히 억울하지도 않네.”
정만은 산비초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산비초는 오히려 다시 여유만만한 얼굴이었다.
“산비초, 너도 결국 버림받았나 보군. 여기에 갇힌 걸 보니.”
“으하하하핫, 그걸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어쩐지 보통 사람이 나를 이 정도로 괴롭히진 못할 텐데. 누군가 했네. 포도부장 자네도 운 좋은 줄 알아. 내가 최근에 다리도 꺾이고 여기저기 다쳐서 상태가 영 안 좋았거든. 그래도 싸움 실력은 인정해. 으히히.”
“배후가 누구냐?”
정만은 다짜고짜 물었다. 하지만 산비초는 계속해서 장난스러운 말투로 응수했다.
“내가 그걸 왜 말하냐? 그리고 말해주면 믿기나 할 거야? 귀신 들린 세상에 진실이 무슨 소용이야? 시부럴, 낄낄.”
“애꿎은 사람들을 죽게 해서 귀신을 만드는 게 너잖아. 그것도 아편으로!”
“누가 아편을 하라했냐? 난 그저 장사를 했을 뿐이야. 그 사람들이 안 사 먹었으면 나도 아편 장사를 안 했겠지.”
“그딴 말이 어디 있냐. 어서 불어. 난 곧 나갈 것 같으니 당장 뿌리를 뽑겠다.”
그러자 산비초가 코웃음을 쳤다.
“아서라, 포도부장이나 포도대장 정도가 나서서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아니야.”
“너, 어차피 너도 지금 버림받은 것 같은데. 나한테 정보를 넘겨. 그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에헤이. 이따위 옥? 크크 부수고 달아나면 그만이야. 그리고 니가 나설 판이 아니라고.”
순간 정만의 머리가 번뜩였다. 그 말인즉슨 포도대장보다도 더 윗선, 큰 판을 만든 자들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은 그럼 종 2품인 포도대장님보다 더 높은 사람이 뒷배에 있다는 말이네?”
'아차차. 괜한 단서를 줘버렸네. 제길.'
"난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산비초는 애써 무마하려 했지만 정만은 이미 그림이 그려졌다.
'적어도 정 2품이나 그 윗선에 누군가 있다는 말인데. 누굴까. 그 정도 관직이면 명예도 돈도 다 평생 대대손손 누릴 만큼 있을 텐데..'
정만은 골똘히 생각하다 다시 산비초를 쳐다보았다.
"너 우리 쪽으로 붙어라."
"뭐..? 실성했나 이놈이."
"내가 볼 때 넌 이미 버림받았어. 윗선이 누군지 몰라도 널 내쳤다고. 전국적인 아편상인 널 옥에 넣은 거 보니 단물은 다 빨았단 소리고. 모르긴 몰라도 전국에 있는 네 대마밭들도 이제 다 그 자식의 손에 넘어갈걸?"
"뭐라..?!"
'아차차, 지금 내가 흥분하면 꾐에 넘어갈 뿐이야.'
"허튼소리 마라. 게다가 윗분들은 대마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크하하하하."
그러자 정만이 배를 잡고 웃었다.
"산비초 너 이 자식, 생각보다 순진하구나. 귀여운 구석이 있네."
"뭐라는 거야. 닥쳐. 이 세계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녀석이."
"크흐흐. 어이, 산비초. 나 포도부장이야. 그쪽 야생이 얼마나 거쳤는지 몰라도 이쪽 권력의 세계는 폭력만이 있는 게 아냐. 배신, 모략은 넘쳐나고 일족 참수 등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많은 줄 알아? 피도 눈물도, 가족도, 내편도 없는 곳이 권력의 세계야.”
산비초는 머릿속으로 복잡한 셈을 시작했다.
"지금 네가 이 옥 안에 있다는 건, 넌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지. 네가 아편으로 벌어다 준 돈, 그거 넌 한 푼도 못쓰고 이제 곧 죽는다고."
'하긴 여길 빠져나가서 양근으로 달아나려면 일단 포도부장이랑 협조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이 씨 게다가 윤대감 그 새끼는 나도 이젠 더 이상 꼴도 보기 싫고 오히려 복수하고 싶은데..’
산비초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는 정만의 의견에 어느 정도 수긍한다는 무언의 알림이었다.
“포도부장.”
“왜? 생각이 좀 바뀌었어?”
“됐고. 니 계획은 뭔데?”
—————
‘슝. 슈우웅. 슝슝슝.’
“우와앗!!”
“으아아.. 호랑이.. 진짜 호랑이다아아아..!”
“자자, 괜찮습니다. 이 녀석들은 사람을 안 해칩니다.”
겸세가 열두 마리나 되는 호랑이를, 그것도 하늘을 날아서 데리고 내려오자 용상네 하인들은 그야말로 기겁을 했다.
그나마 귀로가 먼저 도착해서 목면산에서의 조마구 떼와의 격투를 미리 설명하고 언질을 했으니 그 정도로 그쳤다.
“곧 정법 형님과 천검 일행도 모두 도착할 겁니다.”
그러자 용상이 얌전히 있는 호랑이들을 보며 신기한 얼굴로 다가갔다.
“우와아.. 진짜 호랑이들이야. 저.. 저 녀석은 몸집이 집채만 하는구나..!”
“수놈 호랑이요. 이 무리를 끌고 온 우두머리지. 그런데 등을 다쳤으니 의원을 좀 불러주시오.”
“호.. 호랑이한테 의원이요?”
“이 호랑이들이 없었으면 우리는 더 고전했을 테고 겸세가 나타나기 전에 모두 잡아먹혔을 수도 있소. 우리 생명의 은인들이니 이 정도는 무리도 아니죠.”
“용상아!”
“정법 형니임..! 하이고, 큰일 날 뻔했다면서요? 이제 나이를 좀 생각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형님이 다치면 제 마음도 다칩니다요..!”
“괜찮다. 허허. 그나저나 오늘 다들 너무 고생했어. 계속해서 신세를 좀 지는 게 미안하네만..”
“어어! 아닙니다. 그런 말씀하시면 제가 더 섭섭하지요! 얘들아, 어서 뭐 하냐? 빨리 준비한 고기랑 밥을 내와라.”
“그리고 저 호랑이들도 치료해 주고 고기도 많이 먹여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우리 생명의 은인들이야.”
정법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자 용상은 더 이상 묻지 않고 하인들을 불렀다.
“당장 사대문 안팎의 의원들을 찾아가서 왕진이 가능한 의원님을 데려와라. 그리고 호랑이들 먹일 고기, 필요하면 돼지를 한 예닐곱 마리 잡거라!”
월화와 수비는 얌전히 자리를 지켰다. 그 뒤로 다른 호랑이 열 마리도 마치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마냥 가만히 먹이를 주기만을 기다렸다.
“으.. 정말 우리를 물지 않을까요..?”
하인 서너 명이 금세 잡은 돼지고기를 들고 왔다. 하지만 호랑이 근처에 가자마자 마치 온몸이 경직된 듯 쉽사리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그냥 그 앞에 내려둬요. 이 녀석들은 인간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모두 제 친구들이죠.”
천검의 말에 하인들은 반신반의하며 슬금슬금 다가갔다.
‘스윽’
“으아아! 깜짝이야..!”
돼지고기 냄새를 맡은 호랑이 두어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하인들은 그만 고기를 앞에 던져놓고 달아나기 바빴다.
“크하하하하. 녀석들. 이해하십쇼.”
용상이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 있지. 호랑이 앞인데 당연하지. 하아.. 정말 고마운 녀석들이야.”
‘으적, 으적. 꽈드득. 콰드득.’
‘크르르르릉. 콱 콰드득.’
월화, 수비를 비롯한 호랑이들은 다들 허겁지겁 돼지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누이,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조마구들도 해치웠고 산비초는 옥에 갇혔다면 이제 윤대감 실체는 더 잡기 힘들어진 거 아니우?”
“그렇지. 그런데 박대감이라는 작자의 집에 산비초가 왜 들어갔는지 그리고 웬 포졸들이 그리 많이 왔는지 궁금해. 원래 대감쯤 되면 엄청난 권력 가니까 그런 건가?”
“전에 전신이도 그랬잖습니까. 박대감의 집에서 산비초를 봤었다고. 그렇다면 오늘도 거기를 들어간 게 그냥 우연은 아니란 말인데요..”
선준의 말은 일리 있었다.
“박대감의 집 뒤로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더군요. 언덕도 완만해서 숨어서 박대감 집을 엿보기엔 제격이지요.”
“그런데 아침에 일찍 간들 오늘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데? 어쩌면 이젠 포졸들이 더 지키고 섰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밤에 가는 겁니다. 정확히는 인시(새벽 3시~5시)가 시작되기 전에 이동해서 산 언덕에서 박대감 집을 감시하는 거죠.”
선준의 설명에 모두 수긍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누가 갈지 뭘 어떻게 대응할지 아직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이번에도 최소 2인 1조입니다. 할멈이 말씀하신 것처럼 부적을 쓰는 자는 있어야겠죠.”
할멈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부적을 쓸 수 있는 자는 자신을 포함하여 은진, 전신 이렇게 셋이었다.
“일단 제가 새벽에 나갈 테니 적합한 사람으로..”
“그럼 은진이 밖에 없네.”
선준이 자원하며 나서자 할멈이 곧바로 조를 짰다.
“아재, 아재! 지도 지도 갈랑게요.”
선준은 멈칫했지만 이제 행장이도 자기 몫을 하는 법을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행장이에겐 왕도깨비가 있으니 든든했다.
“그럼 저도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은진 역시 새벽에 나가겠다고 하자 근중이 쭈뼛거렸다. 아무래도 자신도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선준,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 대응은 말게. 은진이 네가 바로 부적을 띄워라. 자는 동안에도 영력은 감지되니 곧바로 우리도 대응할거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