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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Mar 10. 2024

115화 조선대악귀전 - 서막 3



길달이 당황스러움을 숨긴 채 돌아선 동안 박대감은 곧 무인 셋을 앞뒤 호위무사로 붙인 채 북문을 향해 빠르게 빠져나갔다.


같은 시간 산비초는 동쪽 담벼락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설마 길달이 놈이 날 배신하는 건 아니겠지..? 아이씨, 진짜 이거 누굴 제대로 믿을 수가 있어야지.’


곧 길달이 할멈 일행에게 달려와 상황을 설명했다. 군사와 포졸들이 돌변하여 공격할 수 있으니 산등성이를 타고 오라는 말이었다.


“윤대감 놈이 술수를 쓰고 간 거라고? 젠장. 귀찮게 되었네.”


“네. 그럼 우리는 바로 이대로 윤대감을 쫓아가면 될까요?”


겸세가 물었다.


“네. 대신 산등성이를 타고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길을 따라가면 병사, 포졸들과 동선이 겹치니까요.”


그때 갑자기 할멈이 나섰다.


“도깨비 양반. 저 아시죠?”


그러자 길달이 묘한 미소를 띠었다.


“알다마다요. 한 시대를 주름잡은 무당인데, 모를까요.”


“이미 듣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를 이리 돕는 이유는 뭐죠? 아아, 오해는 마십시오. 내 도깨비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괜찮소. 나 역시 인간에게 한 번 크게 당했던지라 두 번 다시는 인간과 엮이지 않고 그냥 저승으로 가길 바랐는데, 나참. 그곳에서 인간들을 도우라고 날 다시 보냈으니 어쩔 수가 있나. 아마도 덕이 부족했나 보죠.”


“그럼 하나만 더 묻겠소.”


“네.”


길달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혹시 윤대감이 삼방악신들과 교류했소? 뭐 길달 양반은 모를 수 도 있지만.”


“북방의 궤 말하는 거요?”


척하면 척이었다. 길달은 단번에 할멈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다.


“역시 아시는군요. 지금 영계의 균형이 흔들려 어지럽지 않습니까.”


“흑렴이 잡혀가서 그렇죠. 음.. 백화(남방의 궤에 갇힌 악신)가 다른 두 악신과 함께 고심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 말인즉슨..”


“윤대감이 북방의 궤를 노리는 게 맞나요? 사방악신중 하나가 되려고 저리 발버둥 치는 게 맞는 거죠..?”


길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대감이 대놓고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저승에 가지 않고 평생 쾌락과 악명을 누리며 사는 방법은 사방악신 중 하나가 되는 방법 외엔 없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됐소. 빨리 가지 않으면 적어도 수백 명의 군사들이 죽을 것이오. 빨리 무리를 이끌고 가보시오. 그리고..”


“네, 말씀하십시오.”


길달은 겸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무량의 힘이 반드시 필요할 거요. 왕도깨비도 있지만, 지금 윤대감은 영계의 악귀나 영물 정도로는 비비지도 못할 거요.”


“걱정 마시죠. 제가 꼭 윤대감을 소멸시키겠습니다.”


“그럼 길달 양반은 이제 어떡할 거요?”


할멈의 물음에 길달이 다른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먼저 출발해서 윤대감의 비위를 맞추고 있어야지요. 너무 늦게 가면 윤대감이 알아챌 수 있으니까요. 여하튼 전 이 싸움을 끝내야 좀 쉴 수 있을 것 같네요.”


길달은 씩 웃어 보이더니 곧장 앞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누이, 그럼 길달을 따라가면 되는 거 아니우?”


“그렇지.”


그때였다. 박대감 집 마당에서 동공이 풀린 채 먹잇감을 찾아 헤매던 군사와 포졸들의 눈에 할멈 일행이 포착되었다.


‘크아악, 크아아아아!’


한놈이 포효하자 다른 놈들 역시 전염된 것처럼 일제히 할멈 일행을 보며 괴상망측한 괴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일행들이 모여있는 담장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아.. 야, 이거 윤대감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고 갔는데?”


정법의 말에 할멈이 입을 열었다.


“아서라, 저들은 모두 보통 사람이야. 지금 윤대감의 흑주문으로 저리 된 거니 전면으로 상대해선 안된다. 죽이지 말고 모두 제압해 놓고 북악산으로 간다.”


“누이, 팔문진경으로 되겠수? 수백 명인데..?”


정법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묻자 귀로와 자령이 할멈을 거들었다.


“우리 둘이 부동귀로 함께 돕겠습니다. 그럼 할멈과 은진 씨의 팔문진경과 함께 적어도 이백 이상의 발은 묶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자, 해보자. 다들 모여봐.”


곧 할멈 옆으로 은진, 귀로, 자령이 나란히 섰다.


“자령아, 할 수 있겠지? 네 몸에는 아비처럼 귀신들을 부리는 피가 흐른다. 그 주문에 집중해.”


“네, 아빠.”


넷은 동시에 팔문진경과 부동귀의 주문을 욌다.


순간 물밀듯이 달려오던 수백의 군사와 포졸들의 발이 마치 누군가 끈으로 단단하게 동여맨 듯 땅바닥에 꼿꼿이 선채로 묶였다.


“됐다!”


할멈 일행은 자신들의 코앞에서 일제히 발이 묶인 이들을 바라보며 안심했다.


“주문은 몇 시진 가지 못할 거야. 게다가 우리가 멀어지면 더 빨리 효력을 잃겠지. 하지만 윤대감의 주문 또한 빠르게 효력이 떨어질 테니 이제 여긴 큰 문제는 없다.”


일행의 눈앞에는 수백 명의 군사와 포졸들이 발이 묶인 채 발버둥 치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용을 쓰고 있었다.


“자자, 이제 다 같이 갑시다! 오늘 안으로 윤대감을 잡고 악귀의 뿌리를 뽑아버립시다!”


정법이 큰 소리로 말했다.


“물포야, 넌 천검이랑 애들이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렸다가 와라.”


“네, 형님.”


할멈과 정법은 모두를 이끌고 인왕산 줄기를 따라 북악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좋아. 나도 쫓아가서 상황을 먼저 살펴야겠군. 저 노망 난 늙은 욕정쟁이 윤대감, 정말 오늘이 제삿날이 되려나.’


산비초가 박대감의 마당으로 내려와 모두가 달려간 북악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에는 많은 군사와 포졸들의 발이 묶인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어! 산비초.”


“아이, 깜짝이야..!”


산비초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돌아보니 정만과 천검 일행이 있었다.


“뭐야.. 이 씨, 너 혹시 나 배신하고..”


“야야, 걱정 마. 내가 다 설명했다. 난 네놈이 날 배신하고 달아난 줄 알았어.”


산비초는 긴장한 얼굴로 정만과 천검 일행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거, 운이 좋은 줄 알아. 너 때문에 내 부하들이 얼마나 크게 다쳤었는데.”


천검의 으름장에 산비초는 천검의 뒤에서 눈을 부라리는 말봉과 병팔을 쳐다보았다.


“어, 한 녀석이 안 보이네?”


“응. 다른 괴물이랑 싸우다 다쳐서 방에 누워있지.”


“으히히. 거봐. 난 그 정도로는 안 괴롭..”


“뭐, 파악씨, 이 자식이 포도부장님이 봐줬다고 지금..”


“됐다. 그만들 해. 지금은 윤대감 하나 끝내는 거에 집중하자. 산비초 놈의 죄는 그다음에 묻겠다. 우린 너 봐준 거 아냐.”


천검의 경고에도 산비초는 들은 둥 마는 둥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어 천검 형님!”


천검 일행과 산비초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멀리서 물포가 달려왔다.


“헥헥, 오셨군요. 어라?! 포도부장님이 어떻게..?”


물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자 산비초가 대답했다.


“나랑 탈옥했지. 이히히.”


“뭐야.. 이 쳐 죽일 자식이..!”


뒤늦게 산비초를 본 물포 역시 산비초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자 정만과 천검이 이를 제지했다.


“지금 산비초는 우리와 같은 편이다. 녀석에 대한 과거의 죗값은 나중에 치르기로 했으니 일단 진정해.”


“네?! 아니, 형님들. 제가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이 새끼는..”


“안다.. 알아! 근데 지금은 산비초도 우리를 도와 윤대감을 잡기로 했어.”


“아니 그게 무슨..?”


“이 녀석도 윤대감을 싫어해.”


“···네에?!”


그러자 산비초가 물포에게 다가갔다.


“아, 너구나. 무식하게 힘만 굉장히 좋은 장사 같은 산적 놈. 히히.”


“이게, 이 씨..”


“야, 지금 포도부장님과 착호장님이 나랑 같이 편을 하겠다는데 니가 왜 난리야. 나도 억울하다고.”


물포와 산비초가 서로 격앙되어 있자 천검과 정만이 둘을 떼어놓았다.


“가자, 우리도 늦으면 안 돼. 물포야, 길을 안내해라.”


“네.. 형님. 으으.”


—————


박대감은 어느새 북악산의 한 골짜기로 들어갔다. 어차피 자신의 능력으로 조선의 그 어떤 축귀사나 괴물도 모두 처치할 수 있었기에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어, 길달이는? 길달이는 안 왔나?”


“아, 아까 잠깐 어디론가 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아마도 곧 돌아오지..”


‘투다닥. 투다닥.’


곧 길달이 박대감 일행에 합류했다.


“박대감님, 뒷 상황을 살피고 왔습니다. 일단 여기서 몸을 좀 피하시지요.”


“그래, 알겠다. 어찌 마당에 있던 군사와 포졸들은 많이 죽었느냐?”


“그것까지는 모르겠사오나. 대감님을 쫓는 이들은 따돌린 것 같습니다.”


“오냐. 어차피 걔네들이 오더라도 전부 내 밥이다. 먹어치우면 그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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