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oney Kim Mar 12. 2024

116화 조선대악귀전 - 서막 4



같은 시각 할멈 일행도 어느새 북악산 입구로 접어들고 있었다.


‘윤대감이 결계 안으로 들어왔군. 북악산 일대에 모두 결계를 쳐뒀으니 위치를 파악하는데 문제없겠어.’


할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윤대감 때문인지 북악산의 기운은 더욱 사나워졌다.


‘가뜩이나 음기가 찬 골짜기가 많은 곳인데.. 아주 그냥 으스스한 게 산 전체를 묘지로 만들어놨네그려. 쯧.’


“누이, 이제 어떻게 할까? 진을 치고 들어갈까, 아님 단번에 우르르 돌격해서 쳐들어가? 겸세도 같이 왔으니까.”


“안돼. 윤대감은 강하고 교활한 작자야. 우리가 이무량을 상대할 때처럼 전면전을 허용하진 않을 거 같아. 약삭빠르고 야비한 자라 그에 상응하는 전략을 짜야해.”


그때 겸세가 앞으로 나왔다.


“제가 먼저 선봉에 나서서 치겠습니다. 솔직히 이무량의 공력을 실은 제 무공이라면 윤대감을 제압하는 건 시간문제 일 듯합니다. 이무량은 불의 힘이 없이도 귀마왕이나 조마구를 손쉽게 이겼잖습니까? 솔직히 윤대감이 우와 을에 필적하는 정도인지도 모르고. 일단 제가 제압하든 시간을 벌든 할 테니 할멈과 나머지 분들은 후방에서 지원하면서 같이 공격하는 전법으로 가시지요. 어떻습니까?”


겸세의 제안에 할멈은 물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만도 한 게 현재 조선 최악의 악령인 윤대감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선뜻 공격을 하기가 애매했던 것이다.


“겸세, 정말 괜찮겠소?”


정법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물론 내심 겸세가 그렇게 나서준 것에 고마움도 느꼈다.


‘아니, 저 양반들은 내가 얼마나 센지 알면서 저런 걱정을 하는 거야? 히히. 저 늙은 노망 변태 영감탱이는 내가 확 조질테니. 겸세 넌 그냥 몸만 써.’


‘또또, 앞서 간다. 이무량, 너도 옛날의 네가 아냐. 윤대감이 어느 정도인진 모르겠지만 방심해선 안돼.’


“아아, 물론이지요. 어떻게든 붙어 볼 테니 뒤에서 빠르게 협공해 주시죠.”


겸세는 말을 마치자마자 북악산의 골짜기로 내달렸다.


“자, 그럼 우리도 바로 준비를 하자. 우선, 나와 은진이는 윤대감이 있는 골짜기가 파악되면 양쪽 입구에서 축귀부를 날리고, 직후에 정법, 귀로, 자령, 근중네와 천검네 모두 쳐들어간다. 소백은 전신이와 함께   우측 측면에서 준비해, 무작위 공격이다. 놈은 현재 조선 최악의 악귀야.”


“네, 그러지요.”


겸세는 북악산 등성이를 타고 빠르게 올라갔다. 윤대감의 영향인지 산에는 순식간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더니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요놈 봐라. 아주 유치하고 야비한 수법을 쓰네.’


눈앞에 짙어진 안개를 보며 이무량이 말했다. 하지만 겸세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너도 참, 인간 주제에 진짜 겁이 없어. 날 내 몸에 넣은 이유가 이 때문이겠지. 히히.’


‘조용히 좀 해. 바로 공격당할 수 도 있어. 나 지금 초집중, 초긴장 상태라고..!’


‘걱정 마라, 내가 있는데 뭘 그리.’


‘휙, 휘이익-‘


순간 안갯속에서 검은 팔이 서너 개 튀어나왔다. 새카만 팔은 마치 불에 탄 것 같았고 낡은 두루마기는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런 얕은 수작을..’


겸세는 곧장 공중으로 뛰어올라 자신에게 날아온 팔을 피하더니 그 위에 올라섰다.


‘자, 이 팔이 누구 건지 한 번 찾아볼까?’


겸세는 팔 위에 올라선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전방에서 다른 팔들이 십 수개씩 튀어나왔지만 그저 가볍게 손바닥으로 튕겨냈다.


‘이런 자잘한 수법으로 뭘 하자는 거야? 윤대감 알고 보면 진짜 별거 없는 거 아냐?’


검게 탄 팔 위를 한참 달리던 겸세는 눈앞에 나타난 바위를 피하기 위해 뛰어올랐다.


‘이거 이 바위에서 나온 거야..?’


‘탁.’


바위에 올라탄 겸세는 사방을 둘러보며 살폈다.


‘이무량,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게 나도 느껴지는 게 없.. 어어!’


‘쩌어억!!’


순간 겸세가 올라선 바위가 반으로 갈라지더니 겸세를 한 번에 꿀꺽하고 삼켜버렸다.


“으아앗..”


‘야, 겸세, 너 먹힌 거야? 이거 석괴(바위형 괴물) 같은데.’


‘깜깜하네. 근데 이 정도야 뭐..’


“격파공!”


‘콰아앙!!!’


겸세가 주문을 외며 주먹을 내지르자마자 바위가 폭발하듯이 터져버렸다.


‘별거 아니지.’


산산조각 난 바위를 뒤로하고 겸세는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왔다. 사방은 고요했다. 하지만 땅바닥의 기운을 통해 무언가 많은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 오는 게 느껴졌다.


‘야, 윤대감 이거 되게 쫄보 아니냐. 안개도 그렇고, 계속돼도 안 하는 걸 보내.’


이무량이 투덜거리자마자 사방에서 동아줄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뻗쳐 왔다. 그 움직임은 워낙 생동감이 있어서 마치 문어다리 같았다.


‘휙휙. 휘휘휙.’


겸세는 곧장 귀마도를 꺼내 앞뒤좌우로 재빠르게 움직이며 동아줄을 잘라냈다.


‘휙휙. 슥, 슥, 샤샥.’


하지만 동아줄의 수가 갑절로 늘어나면서 순식간에 왼팔과 오른 다리가 묶였다. 겸세가 묶이자마자 동아줄은 겸세를 곧바로 당기기 시작했다.


‘으아앗..!’


겸세는 어느새 사지가 묶였고 목과 몸통까지 묶인 채 허공에 떠버렸다.


‘꼴좋다. 약하다고 놀리더니. 크크.’


‘야, 이무량, 웃을 때가 아냐. 빨리 술법 하나 알려줘.’


‘기다려봐. 일단 미끼를 물어야 본체가 드러나는 법. 잠깐 묶여있어.’


‘뭐?! 흠. 일리가 있네.’


겸세는 이무량의 판단에 옳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이런 잔 수법을 쳐내기만 해서는 시간과 체력만 낭비할 뿐이었다.


‘윤대감 이 새끼도 널 간 보는 중이야. 네 속에 나, 이무량이 있는지 모를 테니 겸세 니가 얼마나 강한지 재보는 중이라고. 으히히. 재밌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기꺼이 받아주지.’


겸세는 온몸이 동아줄에 묶인 채 윤대감이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정말 이무량의 말이 맞았던 걸까 어느새 온통 짙은 안개가 걷히고 붉은 도포를 걸친 박대감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은 누구냐? 처음 보는 놈인데.”


박대감의 모습을 한 윤대감은 이무량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른 채 겸세에게 물었다.


“윤대감님? 안녕하슈.”


윤대감은 깜짝 놀랐다. 분명 박대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윤대감이라고 불렀다는 건 자신의 비밀스러운 사정을 다 알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뭐냐, 네놈은 뭔데 날 알고 있는 거냐?”


“허허, 역시 듣던 대로 호탕한 악귀구만. 발뺌하지 않는 걸 보니 싸울 가치가 있네.”


‘야, 말이 많다. 그냥 바로 쳐.’


‘있어봐.’


윤대감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양옆으로 오가며 겸세를 골똘히 바라보았다.


‘괜한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무슨 배짱으로 나한테 달려온 거지? 센 놈인가? 그냥 덩치만 큰 잡놈 같은데..’


“길달아, 저 녀석을 데려와봐라.”


“네, 윤대감님.”


곧 길달이 겸세에게 다가왔다. 길달은 동아줄을 하나씩 끊어내며 겸세에게 귓속말을 했다.


‘이거 끊어내자마자 시작합니다.’


겸세는 길달에게 눈짓으로 대답했다.


‘투둑. 털썩.’


일부러 땅바닥에 주저앉은 겸세는 할멈 일행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일부러 영력을 바깥으로 배출했다.


‘어라, 꽤나 센 녀석인데?’


윤대감은 겸세가 일부러 흘린 기운을 느꼈다.


“길달아, 녀석을 잡아!”


하지만 길달은 뒤돌아 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겸세는 양손에 영력을 가득 모았다. 이는 한눈에 보아도 압도적으로 강한 힘이었다.


“길달아, 뭐 하냐. 이 자식!”


길달은 돌아서더니 윤대감을 노려보았다. 눈치 빠른 윤대감은 그의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길달이 저 새끼. 역시 배신 종자는 어딜 가지 않네. 뭐 예상 못한 건 아니니까, 바로 찢어 죽이겠다.’


“흡령! (吸靈)”


윤대감이 주문을 외자마자 마치 윤대감을 중심으로 사방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듯 세찬 바람이 일었다.


“으아아..!”


‘턱.’


길달은 버티다 말고 윤대감 쪽으로 날아가던 중 나무를 하나 붙잡고 버텼다.


‘휘이이이이이잉. 고오오오오오오.’


‘흐흐. 새끼.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부활한 도깨비라고 이뻐해 줬더니. 역시 도깨비 놈들은 믿을게 못돼.’


겸세도 버티기가 버거웠다. 까딱하다간 힘 한 번 못써보고 윤대감에게 흡수될 판이었다.


“생절공! (生切攻, 빈손으로도 원거리의 괴물을 절단 내어 죽일 수 있는 영력파공)”


겸세가 주문을 외자마자 강력한 영기를 머금은 날카로운 반원 두 개가 윤대감을 향해 날아갔다.


“갑주! (甲冑, 갑옷과 투구로 윤대감의 영력 방어 기술)”


‘파아앙! 콰아앙!’


윤대감은 흡령을 하면서도 동시에 갑주로 방어를 할 만큼 여유로운 영력 운용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걸 막네. 하아. 저 자식이 괜히 이 시대 최악의 악귀가 아닌가 봐.’


겸세 역시 윤대감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이무량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겨우 이 정도로 대응하는 겸세에게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그렇다면 직접 맞붙어서 끝낼 수밖에!!’


겸세는 곧장 귀마도를 불러내 들더니 윤대감을 향해 달려갔다. 나무에 매달려 있던 길달 역시 흡령을 버티기 위해 땅바닥에 두 발을 박아 넣고 양손 가득 영력을 모았다.


“이야압!”





매거진의 이전글 115화 조선대악귀전 - 서막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