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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Jun 02. 2018

onthespot_07_대도시의 골목들

사라져 가는 동네와 골목길 그리고 새로운 발견

사라져 가는 근대화의 '소리', 골목길


60~70년대 국가의 급격한 경제적 발전과 산업 성장에 따라 우리나라의 주거형태가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단독주택이 대부분의 주거형태였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아파트가 들어선 건 1932년 일본이 세운 5층 아파트인 서울 충정로의 유림아파트였지만, 1962년  대한 주택공사가 서울 마포지구에 도화 아파트를 지으면서 이때부터 새로운 주거형태로서의 아파트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부동산 개발 호재 및 지역 개발 붐으로 전국 곳곳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동네의 언덕들은 물론 도시를 둘러싼 높디높은 산들도 온통 솟아오른 아파트에 가려 그 풍경이 사라져 갔다.


하지만 우리의 주거형태가 바뀌면서 사라진 건 비단 풍경뿐 만이 아니었다.


-출퇴근 시간 바삐 오가던 어른들의 구두 발걸음 소리.

-등하굣길 터덜터덜 힘겹게 때론 타닥타닥 흥겹게 오가던 학생들의 재잘대는 소리.

-이 골목, 저 골목 아슬아슬하게 잡힐까 뛰어다니며 놀던 신난 아이들의 소리.

-그리고 물건을 배달하느라 분주한 배달원들과 혹시 고장 난 물건은 없는지 반복적으로 울리던 확성기 소리

 와 저녁 반찬으로 좋은 생선과 야채들을 싣고 온 맘씨 좋은 아저씨의 트럭 소리.


때론 아이들이 뛰노는 시끄러운 소리에 창문 열고 야단치던 아주머니와 장사하시는 트럭 아저씨들의 확성기 소리에 이골이 난 학생들은 독서실로 도피할 만큼 불편했던 기억도 있지만 이젠 점점 추억이 되어가는 '골목길 소리들', 이 소리들이 점점 그리워지고 있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뛰어나올 것만 같은 골목길

대도시의 아파트 단지에선 삼삼오오 모여 집안, 자식들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나누시던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의 모임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는 기껏해야 아파트 단지 내 어디엔가 숨어있는 노인정이나 대형상가의 커피숍에서 겨우 찾아볼 수 있는 귀한 풍경이 되었다. 아이들은 또 어떤가? 술래잡기하며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 명랑한 웃음을 귀에 걸고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젠 정말 진귀한 장면이 되어,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마치 다큐멘터리 영상이라도 보듯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보려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쳐다보게 된다. 물론, 나도 어린 시절을  아파트에서 보낸 아파트 세대이고 그 안에도 나름 동네 꼬마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들로 미소 지을 추억이 있지만 '아무것도 갖춰져 있지 않지만 무엇이든 하며 놀 수 있었던' 골목길의 창의적인 시간들과 비교하긴 힘들었다.


그렇다. 동네와 골목길에는 특유의 감성이 있다. 그것은 마치 정제되지 않은 자연의 것과 비슷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안에 각자의 질서를 가지고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생생한 단면을 보는 것과 같다.


'새벽녘, 동이 트기 전 새초롬 파란 쪽빛이 골목길을 채우며 동네를 밤으로부터 분리하기 시작할 때쯤 골목 사이사이 파고드는 막 떠오른 해가 마침내 동네를 깨우기 시작하고, 바쁜 사람들이 출근하랴 학교 가랴 동네를 잠시 떠난 사이 막 집안일을 마친 주부들은 한낮 한가로이 내리쬐는 햇살이 이웃집 담벼락을 타고 넘어갈 때쯤, 남편의 퇴근을 부르는 노을을 뒤로하고, 포근한 저녁을 맞을 준비를 한다. 골목마다 뛰노는 아이들에게 빨리 들어오라는 어머니들의 성화가 골목골목을 타고 번져나갈 때쯤, 동네 공원에서, 슈퍼 앞 평상에서 이런저런 수다로 시간을 보내시던 할머니들이 굽은 허리를 펴고 느릿느릿 각자 집으로 돌아가시고, 번잡한 일터에서 고된 하루를 보낸 아버지들이 한 손엔 서류가방 그리고 다른 한 손엔 맛있게 구워진 통닭이든 봉투라도 사 들고 돌아가는 퇴근길이라면 온통 군침 도는 구운 닭 냄새가 좁은 골목을 금방 채워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한가롭고도 바빴던 하루를 보냈던 골목의 늦은 밤, 아스라이 높은 가로등이 희미하게 비춰주는 동네엔 여기저기 높이가 다른 집과 담이 만들어놓은 그림자들이 저마다 다른 개성을 뽐내는 달빛마저 잠든 깊은 밤이 되면, 드문드문 켜져 있던 창문들이 비로소 빛을 숨기며 우리 동네 골목도 어느새 고요히 잠이 든다.'


잠든 골목길. 곧 동이 트며 몽롱한 새벽을 지나 아침이 찾아올 테다

아파트라고 이런 감성이 없을까? 물론 있다. 조금은 다른 모양새와 분위기를 가졌겠지만 분명히 있다. 하지만 골목길들이 가져다줬던 '날 것의 생동감'과 '누구와도 어울리는 허물없음'과는 조금은 다를 것이다.


사실, 수많은 골목을 끼고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동네가 사라지고 아파트가 많이 생기는 것은 단지 정부의 도시개발정책 때문만은 아니다. 골목이 많은 동네는 범죄 발생률뿐만 아니라 좁은 주거환경, 지하철/버스/마트 등 편의 시설과의 거리 등 여러 불편한 요소들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에게 외면받았고, 안전하고 편리한 아파트가 각광받으면서 사람들은 점점 자신들의 주거형태로 아파트를 고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정부와 수많은 건설사들도 아파트 건설에 박차를 가하며 대한민국을 아파트 공화국으로 재건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의 주거형태의 60%가 아파트로 변했고 지역에 따라서는 94%를 넘는 곳도 생겨났다.


경제와 산업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직업과 일터가 바뀌고 삶의 동선, 환경에 대한 인식 역시 급격하게 변하면서 사람들의 주거형태까지 바꾸어버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모든 소중한 것은 지나가면 아쉽고 그립듯이 점점 사라져 가는 '한국 특유의 골목길, 골목길 소리 그리고 풍경'이 벌써 그리워지고 있다.

멀리 보이는 고층 아파트 단지들. 대단지 아파트와 작은 동네 골목들은 모두 한 도시 안에 공존한다


아직 남아있는 과거, 우리 골목길의 미래.


아파트 시대에 골목이 가지는 가치는 무엇일까?

TV에서 보던 옛 동네의 향수와 추억의 조각? 아니면 한 번쯤 기약 없이 걷기 좋은 길?


세상에는 주거형태에 따라 다양한 길이 존재한다. 넓은 정원과 큰 주택 형태가 많은 미국과 캐나다는 골목이라는 개념보다는 집 사이에 난 길 또는 울타리 너머 길 정도의 느낌이 강하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주택들이 서로 맞붙어 높고 길쭉하게 올라간 베트남은 담벼락이 없는 형태의 건물 사이사이의 길이 그들의 골목이다. 주택 형태의 초가집, 기와집과 신분에 따른 주택의 담벼락 문화를 이어온 우리나라는 마을의 도시화와 근대화에 따라 당시에는 미관상의 이유로 욕을 먹기도 했던 벽돌벽으로 둘러싼 주택의 형태가 많이 지어지면서 아직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우리 고유의 동네 골목길'을 형성하고 있다.

동네마다 있을법한 작은 공원. 요즘엔 의자, 운동기구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우리의 동네에도 잘 살펴보면 편의 공간이 꽤 많다. 동네마다 작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등나무 공원이 있는가 하면 작은 동산을 끼고 있는 동네들은 공기도 맑으며 시내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소위 '달동네' 쪽으로 가면 대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호텔 스위트 룸의 뷰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도시의 모세혈관 같은 골목들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듯이 정겹게 퍼져있다.


그리고 이런 동네 골목들에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대도시들은 수년 전부터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무분별한 개발로 오래된 동네를 부수고 우후죽순처럼 솟은 아파트 재개발이 아닌 동네의 주민들을 보호하고 오래된 동네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기 위한 '재생 프로젝트'의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거의 모든 도시들의 조금 오래된 동네마다 볼 수 있는 '골목길 담벼락 벽화 프로젝트'와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오래된 공장, 폐가 등을 카페, 식당으로 개조하는 사업인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어느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림처럼 나타난 작은 카페

그런데 이미 정부 주도의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부터 저렴한 임대료를 찾던 예술가들이 오래된 동네에 모여들면서 그들을 중심으로 카페들, 맛집들이 생겨났고 가로수길, 경리단길, 망리단길 등 소위 '핫하고 힙한 골목'도 탄생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도시개발을 하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러운 '동네 되살리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골목을 되살리기 위한 도시재생에도 여전히 문제가 많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정부의 개입과 대기업의 자본의 쓰임새다. 도시재생사업의 취지대로라면 노후화된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이 몰려있는 지역을 중점적으로 개발해야 하는데 최근 서울시의 도시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시와 정부의 도시재생 개발구역 후보지를 보자면 이런 노후화된 지역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서울시 내 12개 지역을 도시재생 개발 사업에서 빼놓고 사업을 하는 등 '도시재생사업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시재생도 '될 만한 곳'만 골라서 한다는 원성을 사기에 충분한 조사 내용이다.

작고 개성 있던 카페와 맛집이 있던 자리는 곧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그 자리를 점령한다. 소위 '뜨는 동네'의 비애다

게다가 두 번째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다. 처음에는 저렴한 임대료와 오래된 건물들의 클래식함 맛에 카페를 열고 식당을 개업했던 영세사업자들은 그들 덕분에 동네가 점차 인기를 얻고 유명해졌음을 기뻐하기도 전에 임대료를 두 배, 세 배 이상 올려버린 건물주들 때문에 동네를 떠나게 되고 동네의 인기에 해당 상권을 차지한 대기업들은 동네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동안에는 영업하다가 작지만 분위기 있는 카페와 나만 알고 싶은 맛집이 사라진 동네에 더 이상 올 이유가 없어 동네의 인기가 다시 시들해지면 얼른 매장을 빼버려 그 동네는 '임대료만 오르고 가게도 없고 사람도 없는 유령 동네'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과거 우리의 동네는 순수한 이유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터를 잡고 살아야지.'라는 마음으로 집을 지었고 그 집들이 모여 동네가 되고, 먹을거리를 살 곳이 필요해 슈퍼마켓이 생기고, 아이들을 맡길 곳이 필요해 어린이집이 생겼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큰 욕심 없는 이유들이다.

개성 있는 벽화 하나로 평범한 동네의 골목길은 '예술작품'이 되었다

예쁜 카페가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고 멋진 벽화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도 좋다. 그게 '자연스러운 이유'에 의한 것이라면. 사라져 가는 우리의 골목들이 조금은 남아있길 바라지만 그 골목을 살리려 무리한 정부의 개입과 대기업의 개발은 조금 자제되었으면 한다. 동네와 골목은 있는 그대로의 풍경과 감성을 전달해주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구성원은 '사람'이다. 그렇다. 제아무리 고즈넉한 분위기를 뽐내고 아련한 추억을 뿜어내는 골목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골목길과 관련된 모든 감성과 회상의 발원지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있기에 골목은 화목함으로 따뜻해지고 사람들의 소리 덕분에 골목은 아파트처럼 높은 건물이 없어도 가득 찬 공간이 된다.


대도시의 골목들에도 아직까지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도심에서는 무수히 지나쳐도 눈인사 한번 없던 사람들인데 난생처럼 방문한 여느 주택가 동네를 지나가면 종종 평상에 앉은 할머니 나를 지긋이 쳐다보며 혼잣말을 하시기도 한다.


'날씨 참 좋네.'

'아, 그렇네요. 하하.'


골목 어귀를 지켜주던 동네 슈퍼, 가게들

어색한 대답에 스치듯 지나가는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이겠지만 골목을 끼고 있는 동네에는 아직도 이런 풍경이 자연스럽다. 사람을 사람으로 봐주고 목적 없이 인사한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걸어 내려가는 발걸음 위로 종종 향긋한 풀냄새와 나무 냄새가 코를 스친다. 햇볕을 가릴 큰 그림자는 없지만 낮은 담벼락 옆으로 진 그림자에 참새들이 옹기종기 앉아 먹거리를 찾는 지나가는 오후가 정겹다.


도시는 뛰고 있지만, 동네는 천천히 걸으며 숨을 쉰다. 도시 안에서는 이리저리 서로 밀쳐내 서 있을 곳도 찾기 힘들지만, 골목길 어귀에선 가만히 나를 기다린 듯 오래돼 낡은 다리를 가진 슈퍼 앞의 평상이 반갑다.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시는 기억으로 넘쳐흐르는 파도에 스펀지처럼 흠뻑 젖었다가 팽창한다"


넘쳐흐르는 기억은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교류할 때 더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는 어디서 만들어지고 있을까.




-참고자료-

한국 최초의 아파트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3875&cid=43667&categoryId=43667

이투데이, 서울시 도시재생 '헛발질'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627738

중앙일보, '공동체 주거' 가로막는 붕어빵 아파트 문화, 손웅익

http://news.joins.com/article/22622887

매일경제, 을지로 인쇄골목의 힙한 카페… 반전 매력 뽐내는 도시인의 휴식처, 양유창 기자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317430



-사진출처-

잠든 골목길. 곧 동이 트며 몽롱한 새벽을 지나 아침이 찾아올 테다

https://deskgram.org/explore/tags/조용한골목길

어느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림처럼 나타난 작은 카페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810133&memberNo=19207366

작고 개성 있던 카페와 맛집이 있던 자리는 곧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그 자리를 점령한다. 소위 '뜨는 동네'의 비애다

http://www.sg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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