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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Nov 20. 2019

처음으로 폭토를 한 날

폭식을 하고 토를 하기 시작했다

<나의 폭식증에 대한 이야기> #4 


옷가게 알바생이 되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명동의 한 의류매장에서 알바를 했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던 터라 사람들이 옷을 살 때 어떤 부분들을 고려하는지 궁금했다. 신기한 건 정말 이 옷을 입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던 옷들도 찰떡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패션에 전혀 관심 없을 것처럼 보이는 혼자 온 손님들이 사실 옷을 살 때 더 과감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진짜 옷을 사려고 매장에 들어오는 사람과 지나가는 길에 잠깐 구경하려는 사람을 구분하는 노하우도 생겼다. 사람들의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것들이 존재했고 옷 가게는 옷 가게만의 보이지 않는 질서와 규칙이 있었다. 눈치가 빠른 편이었던 나는 알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미아역 근처에 살고 있던 나는 아침 8시에 일어나 씻고 화장을 한 후 4호선을 탔다. 명동역에 도착하면 9시 45분 정도가 된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청소와 입고된 옷 정리를 하고 오후 1시경에 점심을 먹는다. 원래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가 아니지만 내가 알바를 했던 때는 방학 기간이라 쉼 없이 손님이 찾아왔다. 그리고 오후 6시경에 저녁을 먹는다. 퇴근한 직장인까지 밀려오는 저녁 시간대를 지나 퇴근은 저녁 10시.


지금으로서는 흔치 않은 강도 높은 노동이었지만 당시엔 판매직종 대부분이 하루 12시간씩 근무했다. 점심과 저녁을 먹을 때 빼고는 하루 종일 서 있었다. 대체로 입구가 마주 보이는 행어 옆에 서서 고객이 들어오는 즉시 인사를 한다.


“어서 오세요”


그리고선 옷을 구경하는 손님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손님에게 어울릴법한 옷을 추천한다.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손님의 얼굴을 외면한 채 옷가게 알바생으로서의 소명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재고가 많은 제품에 손님이 관심을 보일 때면 그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해 손님의 마음이 혹하게 만들어야 한다.


여느 의류매장이 그러하듯 내가 일하던 매장에도 곳곳에 거울이 붙어 있었다.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는 행어의 옷들을 정리하면서 틈틈이 거울 앞에서 몸단장을 한다. 옷가게의 거울은 신기하게도 날씬하게 보인다. 그 모습에 하루 종일 거울로 나의 모습을 흘끗흘끗 보게 되고 만다.




그 시절 알바생 다이어터는 무엇을 먹어야 했나


매장엔 나를 포함 총 4명이 근무를 했고, 식사는 한 명씩 돌아가며 근처 식당에 가던지 매장으로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다. 음식을 먹는 곳은 탈의실. 두 칸이었던 탈의실 한쪽에 들어가 혼자 밥을 먹었다. 그땐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라 책을 보며 밥을 먹거나 그저 먹기에만 집중하던지 했다.


식당 음식이 보통 그러하듯 그곳에서 먹는 음식은 대부분 기름지고 간이 셌다. 그리고 나는 다이어트 중이었다. 꽤나 극단적인 다이어트였다. 인터넷이나 잡지, TV 등을 통해 접한 다이어트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은 음식을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으면 안 되는 음식’으로 나누어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게끔 만들었다. 아침을 거르고 먹는 기름진 점심 식사, 과자나 초콜릿 등 간단한 간식으로 오후를 버티고 먹게 되는 점심식사와 비슷한 저녁 식사. 그 음식들 중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가령 짬뽕 위에 올려져 있는 양파라거나 순두부찌개 속의 순두부 정도.


지금처럼 닭가슴살 간편식을 판매하지도 않았고 다이어트를 위해 음식을 가려먹는 사람은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집단생활에서 유난을 떠는 애'로 여겨지기도 한 때였다. 알바생 중에서도 막내였던 나는 집단에서 유별 나보이지 않기 위해 일반적인 음식 중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만을 골라 먹었던 것이다. 그렇게 탄수화물과 고기들은 골라내고 야채 몇 조각으로 버티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그렇게 되면 저녁 식사로 인한 포만감은 이내 사라지고 퇴근시간인 10시가 되면 버튼이 눌러진 것처럼 강한 허기짐이 몰려온다. 야식은 다이어트에 독약과도 같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허기짐은 더욱 심해진다.


어느 퇴근길, 도저히 배고픔을 참지 못했다. 지금 바로 뭔가를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의 마트에서 대용량 과자를 샀다. 떨리는 손으로 봉지를 뜯어 달달한 과자를 입에 넣었다. 그 순간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세상에서 이보다 맛있는 음식은 없을 것 같았다.


허겁지겁 정신없이 나머지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먹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할 때 즈음 과자 봉지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과자 봉지가 비워질수록 행복감은 후회와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사고가 마비되었다.


지금 먹은   합쳐  칼로리지? 살이 찌면 어떡하지? 싫은데, 죽어도 싫은데.  시간에 저걸  먹었다니! 다시 살이 쪄버릴 거야!’


집에 도착하는 순간 화장실로 달려갔다. 목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깊숙이 넣어 방금까지 먹은 과자를 다 게워냈다. 불안감과 공포심도 함께 게워내 졌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먹은 걸 토해낸 날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겨울의 일이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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